돈 먹는 ‘검은 고래’ 만리장성 넘어간다
  • 칭다오 · 정유미 (자유기고가) ()
  • 승인 2006.10.09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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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이야기’ 전용 게임기, 중국 상륙 임박… ‘한국인 전용’ 내건 성인오락실 우후죽순 생겨

 
중국 산둥성 칭다오 시에 사는 중국인 짱바오위안 씨(42)는 한국·중국을 오가며 농산물을 사고파는 무역업자다. 짱바오위안 씨는 최근 무역 사업이 잘 되지 않아 업종 전환을 고려하고 있는데 친한 한국인들로부터 대박을 터뜨릴 수 있다는 사업 아이템을 전해 듣고 고민에 빠져 있다. 요즘 한국 정부의 단속 때문에 된서리를 맞고 있는 ‘바다이야기’ 기계를 중국으로 가져와 사업을 하면 대성공한다는 것이다. 짱바오위안 씨는 한국 방송과 신문을 보며 사업 타당성을 검토하고 있다. 짱바오위안 씨의 친구 한국인 박영수씨(39)는 “중국도 단속에 들어갈 것이다”라며 만류했다. 하지만 한국인 전용이라고 간판을 내걸고 사업을 한다면 합법적으로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짱바오위안 씨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지난 여름 한국을 도박 광풍으로 뒤흔들어놓았던 ‘바다이야기’. 검찰 수사가 시작된 지 한달 반이 지난 지금, 각종 비리 혐의로 한국에서 이미 철퇴를 맞은 불법 사행성 게임 ‘바다이야기’가 중국 대륙을 새 안식처로 삼을 태세다. 
최근 칭다오·옌타이·웨이하이 등 한국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산둥성 지역을 중심으로 성인오락실이 우후죽순 들어서면서 ‘바다이야기’ 역시 성행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칭다오의 필자가 사는 동네에는 한 달 사이 성인오락실 세 곳이 한꺼번에 생겼고, 개장을 앞두고 공사 중인 곳도 쉽게 눈에 띈다.

공안에 목돈 주고 개업했다 낭패 보기도

‘바다이야기’는 중국 동북 지방에 처음 발을 들여놓기 시작해, 심천 등지를 거쳐 산둥성 지역으로 들어왔다. 프로그램 설치 비용만 억대에 이르러 웬만한 업주들은 쉽게 설치하지 못하고 서로 눈치만 살피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까지 ‘바다이야기’ 전용 게임기를 직접 목격했다는 사람은 드물다. 대신 PC방 형식으로 인터넷 성인오락실 형태를 띠는 경우가 많다. 업주들에 따르면 오락실 게임의 서버는 한국에 있다고 하는데, 조만간 ‘바다이야기’ 게임기가 들어와 전용 게임방으로 바뀔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현재 성인오락실이 가장 활기를 띠고 있는 곳은 한국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칭다오 시다. 시내 중심가뿐만 아니라 한국인들이 집중 거주하는 류팅·청양·티엔타이 등지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최근 한두 달 사이에 갑작스럽게 늘어난 성인오락실에는 어김없이 ‘한국인 전용’이라는 간판이 붙어 있다. 이는 중국 당국의 법망을 피해가기 위한 것으로, 실제로 중국인들은 출입이 철저히 통제된다.  

 
이처럼 갑자기 성인오락실이 늘어난 것은 두 달 전 처음 문을 연 성인오락실이 대박을 터뜨렸다는 소문이 나면서부터다. ‘초기 자본금 2억원을 투자해 한 달 만에 2억원의 본전을 고스란히 뽑아냈다’는 성인오락실 이야기는 한국 교민들뿐만 아니라 중국인들 사이에도 입 소문을 타고 전해졌다. 
이 바닥에서는 ‘성인오락실은 6개월 장사’라는 믿음이 널리 퍼져 있다. 때문에 빨리 대박을 터뜨리고 발을 빼자는 생각으로 공사를 시작하자마자 단 며칠 만에 문을 여는 업소들이 많다.

10월1일 중국 국경절을 전후한 집중 단속 기간이 끝나면 곧 전단을 돌리는 등의 홍보 활동을 준비하는 곳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산둥성의 한 지역 신문사 관계자는 “최근 성인오락실 광고 게재를 문의해오는 업소들이 계속 생겨나고 있는데 전부 거절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현재 일부 지역에서는 개업을 방해하는 중국 공안들에게 돈을 주고 뒷거래를 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목돈을 쥐어주고 자본금을 회수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업주들도 상당수이다.

또 우후죽순 늘어나는 성인오락실 때문에 교민들이 영사관에 문의·제보·항의 전화를 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칭다오 주재 대한민국 총영사관은 얼마 전 성인오락실 문제에 대한 공지 사항을 띄웠다. 총영사관은 ‘지나친 사행 행위 역시 패가망신의 지름길임을 명심하고, 건전한 기업 활동이 어려워지는 틈을 이용한 과도한 도박 심리로 교민들이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를 당부드린다’라고 공지했다. 아직까지 성인오락실을 이용해 재산이나 사업 자금을 탕진하는 사례는 드러나지 않고 있지만 기업 환경과 교민 문화에 악영향이 우려된다는 제보 전화가 빗발치고 있는 상황이다.

이미 중국 공안국도 영사관에 통보하고 성인오락실 문제를 논의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안국에서는 사정을 파악한 만큼 늦어도 올 연말 전까지는 단속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현재 중국에서 도박은 불법이다. 이미 지난해 초 전국적으로 도박 금지령이 내려져 각지에서 10만명 이상을 도박 혐의로 체포했다. 특히 윈난·광시·지린·헤이룽장성 등 네 성·시의 국경 부근 도박장이 한꺼번에 문을 닫기도 했다.

중국 정부, 도박과의 전쟁 진행 중

중국 당국은 매년 6천억 위안(약 72조원)이 해외 도박으로 유출되는 등 피해가 심각해지자 전국적으로 도박 금지령을 내리고 전면적으로 도박과의 전쟁을 벌여왔다. 이같은 상황에서 한국인 전용이라는 명목 아래 사행성 도박장이 성행하고 있는 모습을 예의 주시하는 것은 당연하다.

성인오락실의 폐해는 교민 자녀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져 더욱 문제가 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아무리 성인오락실이 번창하더라도 청소년이 출입하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일반 PC방과 성인오락실이 구분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칭다오에서 국제학교에 다니는 중학교 2학년생 김 아무개군은 “한국에서와는 달리 밖에 나가도 별로 놀 곳이 없어서 심심했는데 요즘 갑자기 오락실이 많이 생겨서 친구들끼리 가끔 간다”라고 털어놓았다. 주민등록증 확인이 불가능하고 단속하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 어린 학생들까지 성인오락실로 발길을 옮기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처럼 도처에 인터넷이 일반화해 있지 않다는 점을 이용해 “그냥 들어와서 무료로 인터넷을 하고 가도 좋다”라고 반겨주는 주인까지 있다.

칭다오 교민안전협의회 김도형 간사는 “한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바다이야기’ 전용 게임기가 들어온다면 호기심 때문에 잠시 들렀다가 피해를 입는 사람들이 속출할 것이다. 특히 외국에서 중소 규모로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도박 게임에 빠지면 순식간에 사업 자금을 날리는 수가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라고 주의를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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