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5 재·보선, 정 계 개편 도화선 되나
  • 고제규 기자 (unjusa@sisapress.com)
  • 승인 2006.10.13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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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우리당 전패→김근태 의장 퇴진 →열린우리당 해체→신당 창당 가능성

 
사무실 분위기부터 달랐다. 지난 10월12일 인천시 남동구 만수1동 만수빌딩 6층, 열린우리당 박우섭 후보의 선거 사무소. 박후보는 단식 중이었다. 이날부터 그는 72시간 단식에 들어갔다. 강금실 서울시장 후보의 72시간 릴레이 유세를 연상시키듯, 박후보의 단식은 반성하고 초심을 잃지 않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그의 사무실 분위기는 결연했다.

같은 날 남동구 만수5동 국제빌딩 4층, 한나라당 이원복 후보의 선거 사무소. 입구부터 화환이 즐비했고, 후보 방에는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이 보낸 축하 난이 가득했다. 공천을 축하하는 화환이 당선을 축하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후보의 사무실 분위기는 여유로웠다.

두 사람은 10월25일 재·보선이 치러지는 인천시 남동 을에 출사표를 던졌다. 지난 9월14일 열린우리당 이호웅 전 의원이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의원 직을 상실하면서 재·보선이 치러지는 곳이다. 민주당 이정일 전 의원이 의원 직을 상실한 전남 해남·진도와 함께 10·25 국회의원 재·보선 지역은 이렇게 두 군데이다.

네 곳에서 치러진 7·26 재·보선에 비해 지역은 줄었지만, 재·보선 결과가 정치권에 미칠 파장은 더 클 것으로 보인다. 열린우리당, 특히 김근태 의장의 거취와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출범 100일을 넘긴 김근태 의장이 선거 결과에서 자유로울 처지가 아니다. 수도권 표심이 드러날 인천 남동 을이 관심을 끄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인천시 남동 을은 한나라당 후보 ‘강세’

남동 을에 출사표를 던진 열린우리당 박우섭 후보는 김근태 의장의 최측근이다. 의장 비서실 부실장을 지내다 이번에 출마했다. 박후보는 민주화운동에 투신했던 정통 운동권 출신이다. 김근태 의장과 서울대 운동권 선후배 사이이고, 민주화운동청년연합과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등에서 김근태 의장과 재야 활동을 함께 했다.

 
정치권 입문은 박후보가 김의장보다 빨랐다. 그는 1991년 정치권에 뛰어들어 민주당 부대변인을 역임했고, 15대 때부터 인천에서 출마했다. 하지만 16대 총선에서 공천을 받지 못하자, 민주당을 탈당했고 2002년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한나라당 후보로 나서 인천 남구청장에 당선했다. 2004년 2월 한나라당을 탈당했고, 한나라당 자치단체장으로는 처음으로 열린우리당에 합류했다. 그러나 지난 지방선거 때 재선에 실패했다. 선거 당시 인물론을 폈으나 한나라당이 내세운 열린우리당 심판론의 벽을 넘지 못했다.

이번에는 정공법을 택했다. 유권자를 만날 때 그는 먼저 열린우리당 후보임을 강조했다. 박후보는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주고 싶다”라며 그 이유를 설명했다. 이런 진정성을 알리기 위해 그는 공식 선거 운동 첫날부터 72시간 단식에 들어간 것이다. 주요 공약으로 김근태 의장이 줄기차게 주장한 ‘서민 경제 활성화’를 내걸었다.

한나라당 이원복 후보는 예선에서 지옥과 천당을 오갔다.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회가 1차 지명 때 그를 탈락시켰다. 이후보는 중앙당을 찾아가 “지난 전당대회 때 강재섭 대표의 경쟁자였던 이재오 의원을 도운 보복이다”라며 거칠게 항의했다. 하루 만에 최고위원회에서 결정이 바뀌어 그는 생환했다.

그가 공천을 움켜쥔 데는 탄탄한 지역 기반 때문이다. 이후보는 스물일곱 살 때 김영삼 전 대통령측과 연을 맺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비서를 역임했고, 13대 때부터 이 지역에서 출마해 2전3기 끝에 15대 때 금배지를 달았다. 16대, 17대 때는 이호웅 전 의원에게 거푸 무릎을 꿇었다. 이 전의원과는 제물포고 동문으로 15대 때부터 맞대결을 펼쳤다. 17대 총선까지 1승1패. 그래서 17대 총선은 두 사람에게는 최종 승부나 마찬가지였다. 이후보는 “동문끼리 10여 년간 싸우는 것도 못할 짓이어서 낙선한 후 지역구를 내놓을 생각이었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지난 지방선거 때는 한나라당 인천시당위원장에서 물러나, 인천시장 경선에 출사표를 던지기도 했다.

20년 동안 한 지역에서 출마했기에 그의 인지도는 꽤 높다. 지난 10월12일 간석시장에서 유세를 펼칠 때도 한 유권자는 “조용필 노래를 좋아하는 후보다”라며 그와 악수할 정도였다. 그는 지역적 기반을 십분 살려 ‘지역 일꾼론’을 내세웠다. “이 지역은 인천 지역에서 가장 낙후되었다. 주거 환경 개선을 비롯해 실현 가능한 재개발을 이루어내겠다.”

이 지역에서 민주당은 재향군인회장을 역임한 김완용 후보를 공천했고 민주노동당은 지난 17대 때 출마한 배진교 후보를 다시 내세웠다. 지금까지 판세로는 한나라당 이원복 후보가 우세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열린우리당 박우섭 후보측 인사도 “어려운 싸움이다”라고 말할 정도다.

전남 해남·진도는 민주당 후보 ‘우세’

전남 해남·진도 역시 민주당 승리가 예상되고 있다. 열린우리당은 대한광업진흥공사 사장을 역임한 박양수 후보를 내세웠다. 민주당은 노무현 정부 들어 부패방지위원회 사무처장(2002년~2004년)을 지낸 채일병 후보를 공천했다. 한나라당은 전남도당 홍보위원장인 설철호 후보를 내세웠다.

이 지역은 전통적으로 민주당 강세 지역이어서 채후보의 승리가 점쳐진다. 하지만 변수도 있다. 채후보의 인척이 기자들에게 20만~50만원의 돈 봉투를 돌려 선관위로부터 고발당했다. 채후보측은 신문 인지대를 주었다고 해명했다.

 
이렇게 재·보선이 치러지는 두 지역 모두 열린우리당으로서는 고전이 예상되는 곳이다. 예상한 결과가 나오더라도 열린우리당은 요동칠 가능성이 있다. 지난 7월 재·보선 때도 그랬다. 네 곳 모두 예상대로 전패했고, 이후 열린우리당에서는 해체론·신당론 등 정계개편론이 일었다.

이번에도 두 곳 모두 패한다면 ‘열린우리당 해체론-신당 창당론’이 불거질 수 있다. 이럴 경우 지난번과 달리 김근태 의장의 거취에 따라 백가쟁명으로만 그치지 않을 수 있다. 당 안에서는 벌써부터 100일 동안 당을 이끈 김의장 체제를 두고, 재·보선 결과에 따라 일부 의원들이 책임론을 제기할 것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이유는 다르지만 김의장의 참모들 사이에서도 용퇴론이 제기된다. 참모들은 대권 주자로서 지금의 당의장 자리를 족쇄로 보기에, 재·보선 결과에 대한 당내 책임론이 제기되면, 차라리 물러나서 새판을 주도적으로 짜자는 것이다. 침몰 직전의 선장(의장)이 할 수 있는 역할이 많지 않다는 것이 이같은 고민의 배경이다.

하지만 김의장을 대신할 카드가 뚜렷하지 않은 점, 그리고 북핵 변수 때문에 김의장 체제가 지속될 것이라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김의장의 측근이면서 남동 을 후보로 나선 박우섭 후보는 “선거 결과를 놓고 책임질 일 있으면 김의장이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여당 처지에서 특정인에게 책임을 제기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재·보선 31연패를 거듭하고 있는 열린우리당이 10월25일 밤에 터질 재·보선 지진파를 어떻게 헤쳐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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