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라크루즈, BMW-X5 추월할까
  • 이철현 기자 (leon@sisapress.com)
  • 승인 2006.10.16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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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 프리미엄 SUV, 수입차에 도전장…가격 경쟁력 앞세워 북미 시장도 공략
 
수입차가 장악한 프리미엄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시장에 한국 차가 진입했다. 현대자동차가 지난 10월12일 국내 최초로 프리미엄 SUV ‘베라크루즈’를 출시한 것이다. 성능·가격·안전장치 등 모든 면에서 기존 SUV를 표방한 베라크루즈는 배기량 3천cc V6 승용 디젤엔진을 장착해 2백40마력까지 파워를 낼 수 있으나 연비는 1등급이다. 현대차는 베라크루즈를 럭셔리 유틸리티 차량(LUV)이라고 규정한다. 총 개발비 2천2백30억원이나 들여 개발한 신차가 공략할 세부 시장(세그멘테이션)이 프리미엄 SUV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현순 현대차 연구소장(사장)은 “베라크루즈는 국내외 시장에서 BMW X5·렉서스 RX350·메르세데스벤츠 ML350 같은 프리미엄 SUV와 경쟁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수입 SUV 가운데 가장 많이 팔리는 브랜드는 혼다 CR-V다. CR-V는 지난해 1천2백88대가 팔려 수입 SUV 시장 1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올해 1~9월 판매 대수는 1천14대이다. 판매량 기준으로 시장 2위를 차지하고 있는 닛산 인피니티 FX35가 같은 기간 3백5대 팔리는 데 그친 것을 감안하면 CR-V 인기를 가늠할 수 있다. 하지만 CR-V는 프리미엄 SUV로 분류하기 힘들다. 혼다가 지난 10월12일 출시한 CR-V 3세대 모델의 가격은 3천만원이다. 직렬 4기통 엔진(i-VTEC)을 장착했다고 하지만 배기량이 2천4백cc에 불과하고 차체도 프리미엄 SUV라고 하기에는 큰 편이 아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현대차는 베라크루즈를 내세워 혼다 CR-V를 견제하겠다고 나섰다. 베라크루즈 2륜구동 판매 가격을 3천1백80만∼3천9백50만원으로 책정해 저가 정책을 내세운 혼다의 CR-V 고객을 빼앗을 심산이다. 4륜구동도 3천3백70만∼4천1백40만원에 불과하다. 혼다 CR-V와 가격 차이는 1백만~1천만원밖에 나지 않는다. 차량 성능이나 서비스 조건에서 베라크루즈가 훨씬 낫다. 엔진 배기량 측면에서 베라크루즈는 CR-V보다 6백cc 크고, 파워도 CR-V는 1백70마력에 불과하나 베라크루즈는 2백40마력이나 된다. 브랜드 가치나 신뢰도에서 혼다가 현대차보다 앞서기는 하지만 가격 대비 성능만 따져보면 베라크루즈가 CR-V보다 낫다.

 
베라크루즈와 치열하게 경쟁할 상대는 닛산의 인피니티 FX35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인피니티FX35는 배기량이 베라크루즈보다 5백cc 크지만 가격은 6천6백만원가량이다. 닛산의 야심작인 이 차량은 지난해 9월 뒤늦게 출시되었다. 당시 프리미엄 SUV 시장 1·2위를 다투던 도요타의 렉서스 RX330보다 배기량은 1백90cc 높으나 가격은 1백40만원 저렴하게 책정하고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쳤다. BMW X5 3.0과 비교해도 배기량은 5백cc 높고 가격은 2천4백만원 쌌다. 그 결과 인피니티 FX35는 출시된 지 1년밖에 되지 않아 프리미엄 SUV 시장 1위에 올라섰다. 내수 시장에서 베라크루즈의 최우선 공략대상으로 인피니티 FX35가 꼽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배기량(5백cc)을 비롯한 차량 성능은 인피니티 FX35가 다소 낫지만 베라크루즈는 이보다 2천만원가량 싸다는 매력이 있다. 베라크루즈는 차량 성능에서는 인피니티 FX35보다 조금 떨어지지만 가격은 혼다 CR-V보다 다소 높은 시장에 포지셔닝하는 셈이다.

현대차가 당초 경쟁 목표로 삼은 BMW X5·렉서스 RX350·메르세데스벤츠 ML350 모델과 베라크루즈는 브랜드 인지도와 가격 면에서 차이가 많이 난다. 최고급 SUV로 손꼽히는 이 모델들은 베라크루즈보다 두 배 이상 비싸고 지난 수년 동안 시장 안에서 쌓아온 브랜드 신뢰도가 워낙 탄탄해 베라크루즈 같은 새 브랜드가 정면 대결하기 벅찬 상대로 평가된다. 특히 국내 시장의 경우 프리미엄 SUV 같은 고가 차량은 가격 경쟁보다 브랜드 고급화·고품격 마케팅 같은 비가격 경쟁이 시장 판도를 좌우하는 것이 특징이다. 다시 말해 1억원이나 들여 SUV를 사는 소비층은 가격이 싸다고 브랜드 인지도나 신뢰도가 낮은 모델을 구입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더욱이 최고 출력이 3백 마력이나 되고 최고 안전 속도가 2백25km나 되는 차량도 즐비하다.

 
베라크루즈가 당분간 최고급 SUV 시장에 진입하기 힘들다는 전망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인지도나 신인도가 높은 브랜드를 갖춘 유럽 자동차업체는 이 틈새 시장을 파고들기 위해 앞다투어 최고급 모델을 출시하고 있다. 도요타는 지난해 렉서스 RX330 7백5대를 판매한 데 이어 올해 3월 RX350을 출시해 9월까지 2백79대 팔았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지난해 7대밖에 팔지 못한 ML350 모델을 올해 1~9월중 2백83대나 판매해 프리미엄 SUV 시장 2위에 올랐다. 지난해 ML 시리즈 모델 5종을 출시했던 것과 달리 올해에는 ML350만 내놓고 마케팅을 집중한 것이 효과를 본 것이다. 아우디도 지난 6월 Q7 시리즈를 출시했다. 이 모델은 출시 4개월 만에 1백46대를 팔아 업계의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폴크스바겐도 디젤 엔진을 탑재한 투아렉 신차를 올 가을 선보일 계획이다.

 
수입 브랜드를 선호하는 이같은 국내 소비층의 특성상 베라크루즈는 당분간 국내 시장에서는 최고급 브랜드의 난전을 지켜볼 수밖에 없을 듯하다. 단 미국 시장을 비롯한 세계 시장에서는 BMW X5 및 렉서스 RX350과 당당하게 경쟁하겠다는 태세다. 베라크루즈가 최고급 모델과 비교해 브랜드 가치는 떨어지지만 가격 경쟁력이 탁월한 것을 이용해 시장에 침투하겠다는 것이다. 국내 소비자보다 브랜드 충성도가 떨어지는 북미 소비자에게 파격에 가까운 가격과 서비스를 내세워 접근하겠다는 전략이다. 최재국 현대차 사장은 “혼다 파이로트·도요타 포러너·닛산 무라노와 비슷한 가격으로 베라크루즈를 출시하고자 한다”라고 말했다. 현대차는 또 내구성에 대한 의구심을 해소하기 위해 10년 10만km 무상 보증 기간을 보장한다.

현대차는 북미를 제외한 지역에는 10월, 북미 시장에는 12월에 베라크루즈를 수출할 계획이다. 국산차는 환율 하락으로 인해 수출 가격이 높아져 가격 경쟁력이 크게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심지어 일부 제품은 일본산보다 비싸다. 이 난관을 타개할 방안은 브랜드 고급화다. 따라서 현대차가 베라크루즈에 거는 기대는 각별하다. 베라크루즈가 현대차에는 ‘또 하나의 신차’가 아니라 고급 브랜드를 갖춘 자동차 업체로 비약하기 위한 디딤돌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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