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계 개편이 궁금하면 '정치 2군'을 보라
  • 고재열 기자 (scoop@sisapress.com)
  • 승인 2006.10.16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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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가 바빠졌다. 10월13일부터 국정감사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국회가 바빠진 이유는 또 있다. 10월9일 있었던 북한의 갑작스러운 핵실험 때문이다. 북한 핵실험은 새로운 전선을 형성해주었다. 대북 정책과 대북 제재를 놓고 여야는 전시작전통제권 문제와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지명자 처리 문제 때와 마찬가지로 심각하게 대립해 있다.

여의도 정치 시장에 등록된 1부 리그 정치인들이 이처럼 현안에 얽매여 있는 동안 장외의 2부리그 정치인들은 대권과 정계 개편을 향해 활발히 뛰고 있다. 원외에 있는 이들 정치 2군은 현안과 상관없이 내년 대선에 온전히 ‘올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서는 국정감사가 진행되는 10월 한 달 동안은 현역보다 원외의 정치 2군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현역들이 주춤할 수밖에 없는 10월은 정치 2군들에게도 좋은 기회다. 대선 직후에 치러지는 차기 총선에서 ‘공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해서라도 현역에 비해 몸값이 낮은 이들은 빨리 움직여야 한다. 정치권에서는 이들의 움직임이 향후 대권 구도 정립과 정계 개편 방향을 예상할 수 있는 가늠자가 될 것으로 본다.

이런 정치 2군의 움직임은 소속된 정파와 개인의 정치적 무게에 따라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일단 범한나라당 계열에 속하느냐, 범열린우리당 혹은 범민주당 계열에 속하느냐에 따라 차이를 나타낸다. 범한나라당 계열 정치 2군에 대한 관전 포인트는 간단하다. 이명박·박근혜·손학규 세 후보 중 누구와 가깝게 지내느냐는 것이다.

소속에 따라, 정치적 무게에 따라 다른 행보 보여

범열린우리당 혹은 범민주당 계열 2군의 움직임은 좀더 복잡하다. 정계 개편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범열린우리당 계열 2군은 일단 크게 둘로 나뉜다. 친노무현 정치인을 중심으로 한 ‘옥쇄파’와 노무현 대통령을 배제한 ‘합당파’가 그것이다. 범민주당 계열 2군의 움직임 역시 둘로 나뉜다. 열린우리당 이탈 세력과 다시 합치자는 ‘합당파’와, 한나라당과 공조하자는 ‘한·민 공조파’가 그것이다.

범한나라당 계열 정치 2군은 ‘정치적 무게’에 따라 다른 양상을 보인다. 원로나 중진 정치인은 대선 주자들로부터이 러브콜을 받고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경량급 정치인은 그들이 먼저 대선 주자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이런 혼란의 와중에 김덕룡·박성범·최연희 등 불법 정치자금 문제나 성추행 문제에 발목이 잡혀 ‘관리 종목’으로 전락했던 정치인들도 다시 1부 리그에 복귀해 역할을 찾고 있다.

대선 주자별 접촉 상황을 살펴보면, 일단 박근혜 전 대표는 서청원·최병렬 전 대표, 홍사덕 전 의원 등과 만나서 도움을 요청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중 주목해야 할 인물은 서청원 전 대표다. 지난 8월15일 사면·복권된 서 전 대표에 대해 당 일각에서는 박 전 대표가 ‘강재섭 이후’를 준비하는 카드가 아니냐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만에 하나 강재섭 대표가 리더십 문제 등으로 중도 하차할 경우 서 전 대표를 내세울 수 있다는 것이다.

한나라당 빅쓰리 대선 줄세우기 시동

박 전 대표가 당 원로·중진 정치인과 접촉면을 늘리고 있는 것에 위기의식을 느낀 까닭인지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지난 9월29일 이회창 전 총재를 찾았다. 측근의 공천 문제 등 그동안 박 전 대표로부터 철저하게 배척당했던 이회창 전 총재로서도 이 전 시장의 방문은 달가울 수밖에 없었다. 정치권에서는 이 전 시장이 경선 출마 발표 직전 만났다는 점과 배석자 없이 이야기를 나눴던 점을 들어 이 전 총재에게 지지를 부탁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는 100일 민심 대장정을 마치기 하루 전인 10월8일 최형우 전 의원을 찾았다. 동교동계 좌장인 권노갑 전 의원과 비교되어 '상도동계의 맏형'으로 불리던 최 전 의원은 지난 1997년 뇌졸중으로 쓰러져 사실상 정치권을 떠난 상태다. 손 전 지사는 부인과 함께 최 전 장관 부부에게 큰절을 올렸다. 김영삼 정부 시절 정치에 입문한 손 전 지사는 민주계 법통을 잇는 적자임을 내세워 부산·경남 지역에 지역적인 교두보를 두고 싶어한다.

남경필·홍준표·박계동 의원 등 최근 들어 의원들로부터 지지 발언이 줄을 잇고 있는 손 전 지사에게 원외 정치인들의 관심도 집중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윤여준 전 의원이다. 윤 전 의원은 손 전 지사의 민심 대장정을 “100일 동안 느끼고 깨달은 바를 가지고 무엇을 전달하느냐가 중요하다. 알맹이를 보여줄 수 있다면 그에 대한 국민들의 생각도 변할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현장에서 발로 뛰는 전직 국회의원들도 많아

이처럼 원로·중진 정치인들이 대선 주자들의 러브콜을 받는 동안 정치적 무게가 가벼운 원외 정치인들은 현장에서 발로 뛰며 주자들을 돕고 있다. 대표적 정치인은 이성헌·박창달·박종희 전 의원이다. 이성헌 전 의원은 박근혜 전 대표를 지근거리에서 돕고 있고 박창달 전 의원은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지지도가 낮았을 때부터 일찌감치 이 전 시장 캠프에 합류했다. 박종희 전 의원은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의 외곽 그룹인 동아시아미래재단의 지방 지부 설립을 돕고 있다.

범열린우리당 계열 정치 2군과 범민주당 계열 정치 2군의 움직임과 관련해 주목해야 할 사람은 바로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김 전 대통령은 경향신문 창간 60주년 기념 인터뷰에서 분당에 여당의 비극이 있다고 노대통령의 열린우리당 분당을 비난했다. 이 외에도 김 전 대통령은 노대통령이 햇볕정책을 제대로 승계하지 못했다고 질타하는 등 노무현 정부의 실책을 강도 높게 비난했다.

김 전 대통령의 이 발언으로 노무현 대통령을 배제한 정계 개편론은 더욱 힘을 받게 되었다. 처음 정대철 전 의원이 노무현 대통령을 배제한 신당 이야기를 꺼냈을 때만 해도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특히 문희상·민병두 의원, 김두관 전 장관 등이 격렬하게 비난하면서 힘을 받지 못하고 수그러드는 듯이 보였다.

가설로만 존재하던, 노무현 대통령을 배제한 정계 개편론은 이를 처음으로 실천한 정치인이 나오면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논란의 주인공은 김성호 전 의원이다. 김 전 의원은 ‘노무현 정부의 대미 자주 외교는 친미 굴종 외교이며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좌파 신자유주의 정부가 아니라 재벌을 위한 우파 친재벌주의 정부이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계승 발전시킨 것이 아니라 김영삼 전 대통령의 냉온탕 정책을 계승했다’라고 비난하며 열린우리당을 탈당했다.

향후 정계 개편의 방향과 관련해 김 전 의원은 18대 대선만 보지 말고 그 뒤의 정치 구도도 염두에 두고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열린우리당은 위선으로 묶인 조직이다. 지금 망해주면 결국 망하지 않는다. 그러나 망하지 않으려고 꼼수를 쓰면 결국 망한다. 한 달 동안 고민했다. 나는 탈당으로 심판받겠다”라고 말했다. 김 전 의원은 노무현 정부의 정책에 대해 자신과 비슷하게 비판적 시각을 가진 사람이 현역 의원 중에도 있다며 최재천·임종인 의원을 꼽았다.

지난 8월15일 사면·복권된 신계륜 전 의원과 안희정씨 역시 향후 정계 개편과 관련해 일정한 역할을 할 것으로 지목되고 있다. 특히 오픈 프라이머리(완전 국민경선제)라는 정치 신상품을 성공적으로 도입한 안씨의 향후 거취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신 전 의원과 안씨는 노무현 대통령을 배제한 정계 개편 논의에 부정적이다. 신계륜 전 의원은 “지금은 힘이 크든 작든 보태야 한다. 덜어내서는 안 된다. 지금은 노무현 대통령을 배제하는 것을 논의할 단계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열린우리당 2군은 '옥쇄파'와 '합당파'로 나뉘어

열린우리당을 옥쇄하겠다는 친노 직계 정치인들이 향후 정계 개편을 주도할 수 있다고 자신하는 근거 중의 하나는 금전적인 이유다. 1백40석이 넘는 거대 여당을 포기하고 새로 정당을 창당하고 대선 후보를 내세우려면 상당한 비용이 필요한데, 이를 감당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한 열린우리당 관계자는 “탈당하는 쪽이 2백억원 정도의 손실을 감당해야 한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 아직 답이 없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정계 개편과 관련해 민주당쪽은 전반적으로 친노 정치인을 배제해야 한다는 견해이다. 한 민주당 전 의원은 “신계륜·안희정의 공통점이 무엇인가. 전과범이라는 것이다. 보이지 않아야 할 사람이 나서서 움직이고 있다. 친노 세력은 외환위기와 함께 마감한 김영삼 세력보다 더 비참한 지경에 처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통합과 관련해 정치권에서 주목하는 인물은 최근 대법원 확정 판결로 의원 직을 상실한 김홍일 전 의원이다. 분당을 비난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메시지는 다시 합당을 하라는 것이고, 합당론은 아들인 김홍일 전 의원의 재기를 위해 정치적 포석을 깔아준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런 분석이 나오는 것은 김홍일 전 의원이 연청(김대중 전 대통령의 전국 청년 조직) 명예회장이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서는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합당 주체가 될 세력으로 연청을 꼽는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연청은 단순한 민주당 하부조직으로 볼 수 없다. 해병대가 군인이라는 정체성보다 해병대라는 정체성이 강하듯 연청도 민주당원이라는 것보다 연청이라는 정체성이 더 강하다”라고 말했다.

열린우리당 민주당 합당 관련 연청 역할에 주목

연청 중앙회장 출신인 김영환 전 의원, 연청 수석부위원장 출신인 전갑길 광주 광산구청장이 합당과 관련해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한 민주당 전 의원은 “이미 연청은 전국적인 조직 재건 작업에 들어갔다. 물밑으로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뚜껑을 여는 순간 펑 터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열린우리당 쪽에서는 연청 사무총장 출신인 염동연 의원이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연청의 이런 움직임에는 중요한 시사점이 있다. 민주당 한화갑 대표가 배제되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에 따로 청년국을 두었던 한화갑 대표와 연청은 그동안 긴장 관계를 유지해왔다. 민주당 관계자들은 대법원에 계류 중인 한대표 관련 재판의 판결이 나와서 그가 의원 직을 상실할 경우, 이런 움직임이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연청과 한대표의 긴장 관계와 함께, 민주당 현역 의원과 전직 의원들 간의 긴장 관계까지 가시화하면서 민주당발 정계 개편의 또 다른 축인 ‘한·민 공조론’이 힘을 받고 있다. 한 대표가 당내 주도권을 잃지 않기 위해 열린우리당과의 합당을 견제할 카드로 ‘한·민 공조론’을 계속 들고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한나라당 박계동 의원은 “한-민 공조는 민주당이 앞으로 정국에서 캐스팅 보트를 쥐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북한 핵실험 문제가 잦아들면 다시 부상할 것이다”라고 예상했다.

이같은 민주당 내의 복잡한 사정과 함께 반드시 감안해야 할 또 다른 요소가 있다. 바로 고건 전 총리다. 고건 전 총리의 지지율이 다소 빠지면서 상황이 변하기는 했지만 여권 유력 주자로서의 그의 가치는 여전하다.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을 이끌고 발해를 건국한 대조영처럼 고 전 총리가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유민을 이끌고 정권을 차지할 수 있을까? 앞으로 정치 2군들의 움직임을 잘 살펴보면 단초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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