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우수수, 저기 소쩍쩍
  • 오윤현 기자 (noma@sisapress.com)
  • 승인 2006.10.21 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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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의 선택] 속리산 비로산장
 
누나, 아직 가족 여행을 못 떠났다며? 그만큼 일이 고되고 많은가 보지. 허긴 직장이다 학교다 해서 어디 세 식구 모이기가 쉽겠어. 그렇더라도 한 번쯤 다정하게 모여서 가을 산행에 나서 봐. 누나는 가을에 ‘고운 단풍’을 봐야 겨울을 건강하게 나잖아^^. 갈 곳이 마뜩치 않다고? 그렇다면 여긴 어떨까. 속리산 중턱 비탈에 꼭꼭 숨어 있는 비로산장 말이야.
 
산장은 법주사에서 한 40~50분쯤 걸어 올라가야 나와. 세심정 휴게소를 지나면서부터 길이 험해지지만 상관없어. 이맘때에는 볼거리가 지천이라서 지칠 새가 없거든. 생강나무·상수리나무·까치박달나무 단풍잎이 얼마나 여염(麗艶)한지 몰라. 햇살이 비스듬히 비치면 그 잎은 더 깨끗하고 선명하게 반짝이지. 소슬바람이 한 줄기 불어오면 또 어떻고. 키 큰 나무들에서 단풍잎들이 하늘하늘 우아하게 떨어지지. 내가 낙엽이 ‘우수수’ 지는 소리를 들은 것도 그 산길에서였어.   

 산길은 누나가 만끽할 만추(晩秋)의 맛보기에 불과해. 산장 주위는 더 곱거든. 40여 년 전에 지어진 산장 곁에는 휘거나 곧은 나무들이 빽빽하고, 맑은 계곡 물이 흐르지. 물 위에 둥둥 떠 있는 단풍잎을 보면 마음에 고요가 찾아와. 산장은 밤이 되면 적막에 빠지고, 그 옛날 우리가 소란스럽게 살았던 강원도 고향집이 추억되지. 눈 감으면 창호지를 간지르는 바람 소리와 바위를 어루만지며 흐르는 계곡 물 소리, 그리고 서러운 소쩍새 소리가 들려. 

 
산장에서의 가장 압권은 다디단 주인의 인정과 삼백초 차와 산채정식, 그리고 새벽녘에 나서는 산행이야. 서늘한 아침 공기를 삼키며 허벅지가 뻐근하게 문장대에 오르면, 세상이 다 내 것인 양 행복해지지. 그곳에서 바라보는 태백산맥의 ‘겹 물결’도 장관이야. 고된 산행이 여의치 않으면 산장에서 10~15분쯤 오솔길을 걸어가면 나오는 복천암이나 상환암에 가도 좋아.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고향집처럼 푸근한 절들이지.

만약 정 바빠서 때를 놓치면 눈 내리는 겨울날을 ‘강추’할게. 눈으로 뒤덮힌 비로산장은 또다른 눈맛을 느끼게 하지. 모쪼록 속리산의 ‘숨은 보석’을 놓치지 않기 바라.. 참, 전화번호와 홈페이지는 043-543-4782와 www.birosanjang.com 이야. 그럼 이만,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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