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다가 무섭게 달려오고 있다
  • 이철현 기자 (leon@sisapress.com)
  • 승인 2006.10.23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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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나타와 경쟁할 '시빅' 11월 국내 출시...중소형차 시장 공략 '시동'
 
국산차와 수입차 시장을 구분하는 경계선이 흐릿해지고 있다. 과거에는 차 값이 비싸더라도 브랜드 가치와 기술 신뢰도가 높은 수입차를 선호하는 소비자 층과 차 값이 합리적이면서도 사후 서비스(AS)가 탁월한 국산차를 좋아하는 소비자 층이 엄격하게 구분되어 있었다. 하지만 일본 자동차를 중심으로 값이 지속적으로 낮아지면서 경계 벽이 조금씩 허물어지고 있다. 가격 파괴를 주도하는 업체는 혼다코리아다.
혼다코리아는 수입차치고는 차 값이 낮은 차종을 출시해 국산차 소비층을 공략하고 있다. 3천만원 안팎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CR-V를 내놓는가 하면 세계 베스트셀링 차종인 중형 세단 어코드도 3천5백만~4천만원에 국내에서 팔고 있다.

혼다는 이에 그치지 않고 중소형차인 ‘시빅(Civic)’을 11월 말에 출시한다. 씨빅은 1972년 미국 시장을 겨냥해 만든 소형차다. 값이 싸나 품질은 떨어지지 않아 30년 넘게 미국 시장에서 베스트셀링 차종으로 자리 잡고 있다. 정우영 혼다코리아 사장은 지난 10월12일 ‘뉴CR-V’ 발표회에서 “소비자 취향이나 경쟁 조건을 비롯한 국내 시장을 면밀히 검토한 끝에 씨빅을 올해 11월에 출시하기로 결정했다”라고 말했다.

씨빅의 등장은 수입 차종 하나가 더 국내에 출시되는 것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씨빅의 국내 판매 가격은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혼다코리아의 가격 정책을 감안하면 2천5백만원 안팎이 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일본에서 팔리는 배기량 2천cc 씨빅 값이 2백21만5천5백~3백9만2천2백50엔이다. 현재 환율을 기준으로 원화로 환산하면 대략 1천7백70만~2천4백70만원이다. 물류와 마케팅 비용을 합쳐도 평균 2천5백만원을 넘지 않을 듯하다. 더구나 미국 시장에서 주로 팔리는 배기량 1천8백cc를 국내에 내놓는다면 차 값은 더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씨빅과 경쟁을 벌일 차종은 쏘나타2.0이다. 쏘나타 값은 1천8백만~2천5백만원이다. 차 값으로 타깃 시장을 정한다면, 씨빅과 쏘나타는 엇비슷하게 겹쳐지면서 같은 소비자 층을 놓고 경쟁을 벌이게 된다. 지금까지 비슷한 가격대에서 쏘나타와 경쟁한 수입차는 없었다.

국산차와 수입차 시장을 구분하는 경계선은 차 값이었다. 국산 자동차 제조업체의 주력 차종은 ‘풀 옵션’이라고 하더라도 4천만원을 넘는 것이 드물다. 반면 수입차 업체는 대체적으로 7천만~1억원이나 되는 차를 주력 모델로 삼고 있다. 일부러 국내에 들여오는 차종에는 풀 옵션을 적용해 차 값을 높이는 일이 다반사다. BMW는 미국 시장에서 2만 달러(2천만원 정도) 중반에 불과한 소형차 ‘미니(MINI)’를 국내에서는 3천6백만~4천만원에 판매한다.

시빅의 경쟁력에 대한 평가 엇갈려

씨빅이 국내 자동차 시장에 미칠 파급 효과는 가늠하려면 혼다자동차가 지난 2004년 10월에 출시한 SUV CR-V의 실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CR-V 이륜구동 값이 2천9백90만원이다. 4륜구동은 3천3백90만원이다. 차 값이 9천만~1억3천만원이나 되는 아우디Q7·벤츠 M클래스·BMW X5 같은 차량과 경쟁 상대가 되지 않는다. 수입 SUV치고는 상대적으로 싼 렉서스 RX350이나 인피니티 FX35도 7천만원 안팎이다. CR-V가 경쟁으로 삼는 차종은 국산차일 수밖에 없다. 현대자동차 싼타페(2천2백cc)·기아자동차 쏘렌토(2천5백cc)가 경쟁 상대이다. 싼타페 이륜구동 값이 2천2백70만~3천3백80만원(4륜구동은 2백만원 가량 추가)이다. 쏘렌토 값도 싼타페와 비슷하다.

 
CR-V는 지난 2004년 출시되자마자 판매 대수 기준으로 수입 SUV 시장에서 1위에 올랐다. 지난 9월까지 누적 판매 대수는 2천7백8대나 된다. CR-V 성공에 고무된 혼다자동차는 지난 10월12일 CR-V 3세대 모델을 한국과 일본에 동시 출시했다. CR-V는 지금까지 미국 시장을 목표로 만든 차종이라서 일본 안에서도 출시하지 않았다. 오우야마 타치히로 혼다자동차 아시아·태평양본부 사장은 “CR-V 3세대 모델을 한국과 일본에 동시 출시하는 것은 한국 자동차 시장이 아시아·태평양 시장에서 최첨단 기술을 요구하는 선진 시장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신형 CR-V는 출시되자마자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출시된 지 나흘째인 10월16일 계약 대수가 3백 대를 넘어섰다. 정우영 사장은 “신형 CR-V의 연간 판매 목표는 1천8백대이다”라고 말했다. 씨빅이 CR-V만큼 선전한다면, 수입차로서는 최대 판매량을 기록할 것으로 점쳐진다.

씨빅이 많이 팔릴수록 신경이 곤두서는 것은 현대차·르노삼성차·GM대우차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판매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게 나온다. 자동차 엔진 부품 업체 사장인 양 아무개씨는 “쏘나타나 토스카에 비해 풀 옵션 차량 기준으로 5백만원가량 비싸고 성능 차이는 거의 없는 씨빅을 구입할 국내 소비자가 얼마나 되겠는가”라고 말했다. 세계적인 자동차 전문 기관이 국산차의 품질을 높이 평가할 정도로 국내 자동차 업체의 기술이 세계 수준에 근접한 것도 이 주장을 뒷받침한다.

하지만 자동차 시장에서는 브랜드 인지도와 신뢰도가 가격이나 성능 못지않게 중시된다. 씨빅이 국산차와 만만치 않게 경쟁할 것이라는 전망은 혼다라는 브랜드가 가진 세계적 인지도와 신뢰도에 기초한다. 자동차 마니아로 자부하는 이 아무개씨(39)는 “몇 가지 옵션을 추가한 쏘나타나 옵션이 떨어지는 그랜저를 2천5백만원 주고 사느니 혼다 씨빅을 사겠다. 쏘나타가 국내에서는 2천만원 이상에 판매되고 있으나 미국 시장에서는 1만2천 달러(약 1천2백만원)밖에 되지 않는다. 미국 시장에서는 오히려 씨빅이 비싸다”라고 말했다.
혼다코리아는 씨빅이 출시되면 중형차 ‘어코드’·SUV ‘CR-V’·고급 대형차 ‘레전드’에 이어 중소형차까지 출시하면서 국내 시장 공략을 위한 라인업을 확실하게 갖추게 된다. 혼다코리아는 이에 그치지 않고 국내 판매 차종을 2~3개 늘릴 계획이다. 정사장은 또 “최고급 차종인 ‘아큐라’도 국내에 들여올 것을 전향적으로 검토하겠다”라고 말했다.

혼다자동차는 수입차치고는 뒤늦게 한국에 들어왔으나 확장 추세를 보면 5단 기어를 넣은 듯 쾌속 질주하고 있다.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수입차가 차지하는 점유율(올해 1~9월 기준)은 4.39%가량이다. 혼다차가 국산 자동차 업체에 얼마나 큰 타격을 줄지는 모르겠으나 수입차 시장점유율(판매량 기준)을 5% 위로 끌어올리는 엔진 역할을 할 것임을 의심하는 이는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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