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옹성 쌓은 '경제 권력'
  • 이철현 기자 (leon@sisapress.com)
  • 승인 2006.10.23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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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이건희 삼성 회장, 선두 고수...정몽구 회장은 연속 2위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 무색하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오랫동안 한국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을 일컫는 말이다. 이회장은 지난 2004년부터 올해까지 3년 연속 ‘한국을 움직이는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대통령에 이어 2위에 올랐다.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인(경제관료 포함)’으로 꼽힌 것은 14년째다. 1993년부터 단 한 차례도 순위에서 내려온 적이 없는 것이다.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인 순위에서 2위를 차지한 이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이다. 정회장은 글로비스를 비롯한 그룹 계열사 비자금 조성 사건으로 인해 옥고를 치르기도 했으나 영향력에 변화는 없었다.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은 올해 ‘한국을 움직이는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조사에서도 10위(2.5%)를 차지했다. 사상 처음으로 10위권 안에 진입한 것이다.

자동차 산업은 전후방 효과가 큰 대규모 장치 산업이다. 따라서 국내 1·2위 자동차 업체를 소유한 정회장이 국민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은 이건희 회장 못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올해 환율 급등과 유가 강세로 자동차 수출이 차질을 빚고 있으나 품질과 브랜드 신인도가 꾸준히 개선되고 있다는 국내외 전문기관의 평가도 정회장의 영향력 유지에 기여한 듯하다.
3위에 오른 이는 권오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이다. 경제 부처 수장으로서 재정·부동산·조세 정책을 주도하고 있는 권부총리가 3위에 오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가 7위에 오른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금융통화위원회 위원장으로서 통화·금융 정책을 입안·실행하는 자리이니 만큼 한국은행 총재가 국민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은 막강하다. 한국은행 지위와 영향력이 눈에 띄게 커지고 있는 것도 조사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4위에 올랐다. GS그룹이 LG그룹으로부터 계열 분리되면서 그룹 규모는 줄었으나 오랫동안 국내 2위 재벌이었다는 후광효과와 국내 2위 전자산업체인 LG전자를 이끌고 있다는 점이 구회장의 영향력을 지속시키는 바탕이 되고 있는 것으로 추론된다. 최태원 SK회장이나 정몽준 현대중공업 고문은 각각 영향력 5위와 7위를 기록하며, 몇 년째 꾸준히 순위권을 지켰다.

 
권오규 부총리·이성태 한국은행장, 3·5위

안철수 전 안철수연구소 대표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음에도 9위에 올랐다는 것이 눈에 띈다. 지난해는 10위권에서 탈락했다. 국내 1·2위를 다투는 재벌 총수들이 불법 내지 편법 행위로 인해 구속되거나 소환될 조짐이 보인 것에 대한 반작용이 깨끗한 경영인의 대명사로 통하는 안철수 전 대표를 돋보이게 한 것이리라.
전체 영향력 순위로 보면 이건희 회장은 제 1 야당 대주주인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보다 세다. 하지만 2004년 38.6%, 지난해 39.4%였던 지목률이 올해는 24.2%로 크게 떨어졌다. 이회장이 대통령에 이어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기는 하지만 그 영향력의 위세는 줄고 있다는 뜻이다. 이는 이건희 회장 부자가 삼성에버랜드 편법증여 사건과 관련해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는 것이 악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여진다.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편법 증여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검찰은 11월2일 허태학·박노빈 전·현직 에버랜드 사장에 대한 항소심 공판을 앞두고 이회장 소환 조사를 검토하고 있다.

이회장이 한국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은 곧잘 논란의 대상이 되곤 한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선거라는 법적 절차를 거쳐 통치 권력의 정당성을 얻는 것과 달리 이회장은 오로지 기업 경영 성과와 리더십으로 국내 영향력 2인자에 올랐다. ‘황제식 경영’으로 상징되는 무소불위 권력에 대해 시민단체의 비판이 끊이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영향력이 커질수록 경제 권력의 법적·도덕적 완결성에 대한 요구도 아울러 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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