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의 전당’ 앞세운 브랜드 마케팅
  • 김은남 기자 (ken@sisapress.com)
  • 승인 2006.10.27 17:1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건양대 ‘대학=지식의 전당’ 고정관념 깨…신입생 때부터 진로·취업 교육

대학가 취업 담당자들은 가을을 ‘잔인한 계절’이라 부른다. 본격적인 취업철이 시작되는 데다 전국 대학·대학원을 대상으로 한 취업 통계 조사 결과가 매년 이맘때쯤 발표되기 때문이다. 교육부와 한국교육개발원이 대학별 취업 통계 조사를 벌인 것은 올해로 3년째. 올해 조사 결과는 지난 9월 말에 발표되었다(자세한 내용은 www.kedi.re.kr 참조).

취업률에 따라 대학별로 전국 순위가 공개되는 이 조사 결과를 놓고 대학 간에는 희비가 교차해 왔다. 이 조사로 일약 전국적 인지도를 얻은 지방 대학도 여럿이다. 이름값을 내세우는 ‘전통 명문’에 맞서 스스로를 ‘신흥 명문’이라 칭하는 이들 취업률 상위권 대학은 공급자(대학) 대신 수요자(학생·학부모) 눈높이에 맞추려다 보니 취업 교육을 강화할 수밖에 없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그 결과 취업률이 상승했고, 우수한 학생들이 몰리면서 입시 경쟁률까지 덩달아 높아지더라는 것이다. 

<시사저널>은 한국교육개발원과 취업 포털로부터 그 중에서도 주목할 만한 대학 세 곳을 소개받아 이들의 성공 비결을 집중 탐구해보았다.   취업 교육이라는 블루 오션을 개척해 강소(强小) 대학으로 우뚝 선 이들의 사례가 오늘날 대학이 처한 위기에서 탈출하고 청년 실업 문제를 해소하는 데 새로운 실마리를 던져주기 기대하는 의도에서이다. 


 
  “자, 하나 둘 셋 넷! 허리 세우고, 팔자걸음 걷지 말고, 눈은 똑바로 정면 쳐다보고. 어이, 그쪽 남학생, 어깨도 똑바로 펴야지.”

충남 논산 관촉사 인근에 자리 잡은 건양대 취업매직센터를 찾아가니 남녀 학생들을 세워놓고 때 아닌 워킹 연습이 한창이다. 패션학과 실습 시간이냐고? 대형 전신 거울이 강의실 앞뒤에 설치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그런 착각을 할 만도 하지만 아니다. 전공 불문, 학과 불문. 건양대 학생은 누구나 한 번쯤 이 워킹룸을 거쳐가게 되어 있다고 취업매직센터장을 맡고 있는 최임수 교수(세무학)는 말했다. 입사시 면접 대비용이다.

 
 
건양대는 개교한 지 15년밖에 안 된 신흥 대학이다. 지방 변두리에 있는 데다 전교생이 7천2백여 명 수준으로 규모도 작은 편이다. 그런데도 이 대학은 교육부가 발표한 취업률 조사에서 2004년 B그룹(졸업생 1천명 이상~2천명 미만) 2위에 오른 데 이어 2005년, 2006년 연속 1위를 차지함으로써 전국을 놀라게 했다.

“대학이 바뀌어야 청년 실업 해결된다”
건양대 박찬수 취업정보팀장
 
지난 2003년 건양대에 합류한 박찬수 취업정보팀장은 ‘취업 전담 교수 국내 1호’로 손꼽힌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박교수에게는 학생들의 전화가 쉴새없이 걸려왔다. 면접이며 이력서 작성 요령을 상담하는 전화들이었다.

본래 전공이 무엇인가.

충남대에서 고전문학을 전공하던 중 취업정보실에서 상담 조교를 지낸 것이 인연이 되어 여기까지 오게 됐다. 본래 박사 학위 논문도 쓸 겸 여유 있게 조교 생활을 하고 싶어 취업정보실을 지원했는데 몇 달 지나 터진 외환위기 때문에 망했다. 밀려드는 학생들을 상대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전문가가 돼 있더라(웃음).

최근에는 취업률을 높이고자 애쓰는 대학들이 꽤 있다.

관건은 이벤트 위주냐, 시스템 위주냐 하는 것이다. 지금도 이벤트 위주로 취업 교육을 하는 학교가 많다. 대기업 인사 담당자 불러 취업 강좌 듣고, 콘도나 연수원 빌려 2박3일 취업 캠프를 여는 식이다. 그러나 2박3일 동안 면접 기술 배운다고 무엇이 얼마나 달라지겠는가.

학생들은 휴학과 전과를 반복하며 애타게 자기 갈 길을 헤매는데 이를 잡아줄 사람이나 시스템이 대학에 없다. 교수들은, 자기는 가르치는 일만 할 뿐 취업은 전적으로 학생 개인이 책임질 몫이라고 생각한다. 이른바 명문대일수록 이런 현상은 더하다. 나는 인문학의 위기도 일정 부분 대학의 이같은 무책임 내지 책임 방기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다고 본다. 대학 졸업하면 당장 먹고 살 길이 궁한 학생들한테 김소월이나 ‘제망매가’만 가르쳐서 어쩌겠다는 것인가.

취업 교육만 너무 강조하다 보면 학문 연구라는 대학 본연의 기능이 훼손되지 않겠나.

나는 대학이 존재 의의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메이저급 대학들은 연구 중심으로 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같은 중소 규모 대학은 철저하게 교육 중심으로 가는 것이 맞다고 본다.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력을 양성하는 것도 대학이 할 일이다. 대학이 바뀌어야 청년 실업 문제도 해소된다. 처음부터 학생들이 현실에 눈높이를 맞춰 진로를 설계할 수 있게끔 도와야 한다. 대학이 이런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면 현행 대학 평가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 연구 중심 대학이 아닌 바에야 SCI(과학기술논문색인) 지표가 무슨 의미가 있나.

 
최임수 교수는 그 비결로 첫째, 취업 교육에 대한 대학 전 구성원의 인식 전환을 꼽았다. 1990년대 어느 기업 총수는 “자식과 마누라만 빼고 다 바꿔라”고 해서 화제가 되었다지만 대학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대학은 모름지기 학문을 연구하고 전파하는 지식의 전당이어야 한다’라는 고정관념을 깨는 것, 그것부터가 시작이었다. 때마침 터진 외환위기는 건양대가 어깨 힘을 빼는 데 가속도를 붙여주었다. 

서울김안과 원장 출신으로 건양대를 설립한 김희수 총장은 “입학을 시켰으면 (대학이) 취업까지 책임져야 한다”라며, 취업 교육을 학교 정책의 전면에 내세웠다. 2003년부터 건양대는 ‘취업 중심 대학’ ‘취업 명문 건양대’라는 브랜드를 앞세우고, 일관된 브랜드 마케팅을 펼쳐나갔다.

두 번째 성공 비결은, 취업 중심 대학을 실현하기 위한 체계적 교육 시스템의 확충이었다.  “처음에 우리가 ‘취업 명문’이라는 브랜드를 내걸었을 때만 해도 피식 웃는 사람들이 많았다”라고 최임수 교수는 말했다. 그러나 건양대는 국내 최초의 취업 컨설팅 전용 건물인 취업매직센터를 2004년 완공하는 것으로, 자신들의 의지를 상징적으로 공표했다. 4층 높이에 1천 평 규모로 건립된 취업매직센터는 기업 연수원을 연상시키는 첨단 시설을 갖추고 있다. 건양대생들은 진로·일자리 상담에서 워킹 연습, 모의 면접, 강의에 이르기까지 취업과 관련된 모든 업무를 이 건물 안에서 원스톱으로 해결하고 있다.  

2003년에는 취업 전문가도 외부에서 스카우트했다(상자 기사 참조). 이렇게 취업 교육을 전담할 시설과 인력을 확충하는 한편 건양대는 커리큘럼과 학사 행정도 취업 중심으로 재정비했다.  

무엇보다 건양대는 졸업생 위주로 취업 프로그램을 운영 중인 다른 대학과 달리 신입생 때부터 진로·취업 교육을 실시하는 것으로 차별화를 시도했다. 이를 위해 이 대학은 1학년 교양 필수 과목으로 ‘자기 개발과 진로 탐색’을 신설했다. 대학에 갓 입학한 신입생들이 일찌감치 자신의 적성을 깨달아 전공과 희망 직업에 맞추어 실질적인 취업 준비를 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진로가 설정되고 나면, 자신이 희망하는 직업에 맞추어 자질과 지식을 쌓을 수 있게끔 학년별 ‘경력 관리’ 프로그램이 가동된다. 2학년 이상 학생들은 이에 따라 취업매직센터에 개설된 각종 강좌(취업 매직 프로그램)를 이수하며, 자신에게 필요한 자격증을 취득하고 실무 능력을 익히게 된다. 지난해 센터에서 운영한 취업 매직 프로그램은 1백70개가량. 이를 수강한 학생은 6천2백여 명에 달했다고 한다. 전교생의 90% 이상이 취업 관련 프로그램을 수강한 셈이다.

 
건양대의 세 번째 성공 비결은, 철저한 눈높이 취업 교육이다. 취업 전담 교수인 박찬수 취업정보부장은 저학년 때 자기 처지를 객관적으로 파악해 눈높이를 어떻게 조절하느냐에 따라 취업 성패가 갈리게 되어 있다며, 진로 교육의 초점을 이 방향에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현실적으로 충남·대전 소재 중소기업에 취업할 수밖에 없는 역량을 지닌 학생이 대기업 입사 지망생마냥 토익 공부만 죽어라 하는 것은 시간 낭비라는 것이다.

취업을 코앞에 둔 4학년생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력서 작성과 모의 면접 교육 등이 학생 눈높이에 맞추어 이루어진다. 취업매직센터에는 면접 과정을 촬영해 VTR로 모니터할 수 있게 만든 면접실이 있다. 이곳에서 모의 면접을 치른 학생들은 예상 외로 강도 높은 모의 면접원들의 ‘압박 면접’에 한 번 놀라고, 녹화된 자신의 모습을 보며 두 번 놀란다고 한다. 이 학교 정보전산공학과 이 아무개군은 “면접 때는 그런 대로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모니터링을 해보니 시선이 면접관 아닌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전공과 관련된 질문에 자신감 없이 대답하는 모습도 거슬렸다”라고 자평했다.

물론 건양대에도 아킬레스 건은 있다. 취업의 양보다 질이 중시되는 이즈음 건양대의 대기업 취업률(2.3%)은 전국 4년제 대학 평균(11.4%))보다 현저하게 낮다. 그러나 이는 지방 변두리에 위치한 중소 규모 대학의 한계일 수밖에 없다며, 최임수 교수는 그나마 안정적인 정규직 취업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전체 교직원이 ‘처절한 사투’를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