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잉 접대· 중복 질문 막말 여전한 ‘20일’
  • 고재열 기자 (scoop@sisapress.com)
  • 승인 2006.11.06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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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감사 ‘병폐’ 안 변해… 북한 핵 등으로 김빠져

 
“정치인들에게는 김빠진 국감이었고 기자들에겐 싱거운 국감이었지만 공무원들에게는 무난한 국감이었다.” 이번 국정감사에 대한 한 국회의원 보좌관의 평이다. 국감 직전에 벌어진 북한 핵실험 때문에 김이 빠진 상태로 시작된 이번 국감은 ‘장민호씨 간첩 사건’으로 역시 김이 빠진 상태로 마무리되었다.

게다가 국감 중간에 촉발된 정계 개편 논의로 인해 여당 의원들은 마음이 콩밭에 가 있는 상황이었다. 기자들의 관심도 6자 회담 재개나 간첩 사건 수사, 그리고 정계 개편 논의로 향해서 국감장은 상대적으로 썰렁했다. 덕분에 정부 각 부처 공무원들만 정치권과 언론의 예봉을 피하는 어부지리를 얻을 수 있었다.

10월13일부터 11월1일까지 ‘열전 20일’의 일정을 마친 올해 국감은 사실상 17대 국회의 마지막 국감이었다. 대선이 있는 내년 국감은 형식적인 국감이 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해 국감 역시 병폐들은 여전했다. 한 여당 의원은 ‘내용 없는 비판, 대안 없는 문제 제기, 실효성 없는 질문’으로 가득 찬 국감이라며 ‘3무 국감’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사실상 17대 국회 마지막 국감

갖가지 국감 백태도 재연되었다. 무리한 자료 요구와 재탕·삼탕의 중복 질문이 반복되었고 폭로성 발언이나 정치 공세도 여전했다.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지역구 챙기기 관행도 그대로여서 짬짜미 기업 유치 등 지역 민원 사항을 질문에 끼워넣는 의원들이 있었다. 특정 이익집단의 이익을 대변하는 행태로 비난받는 의원도 있었다.

특히 정치 공세를 펴기 위한 ‘막말 국감’ 병폐가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우리당 선병렬 의원은 ‘걸레 같은 주장’이라는 말을 사용해서 논란을 일으켰다. 한나라당은 재정경제위원회에서 이혜훈 의원이 ‘통일부는 북조선의 서울 지부’라고 말해 물의를 일으킨 것을 비롯해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서 김용갑 의원이 ‘광주는 해방구였다’라고 말해서 당 안팎의 비난을 듣기도 했다.

 
다행인 점은 국회의원들의 이런 막말이 ‘패싸움’으로 번지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한 한나라당 의원은 “김용갑 의원의 발언에 아무도 편들어 주지 않았다. 예전 같았으면 무조건 편들기에 나섰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정무위원회에서 한나라당 이계경 의원이 ‘386 간첩단 사건’이라는 표현을 쓰자 같은 당 고진화 의원이 “모든 386이 간첩이라는 것이냐. 그럼 나도 간첩이냐”라며 제지하기도 했다.

동료 의원들의 팀워크가 예전만 못해지면서 왕따를 당하는 의원도 등장했다. 김근태 의장과 함께 개성공단 방문 당시 식사 자리에서 춤을 추었던 원혜영 의원이 그 주인공이다. 한나라당 국방위 소속 위원들이 함께 국감을 할 수 없다고 버티면서 공군작전사령부 현장 시찰 버스에 오르지 못하는 촌극이 빚어지기도 했다.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그를 남겨둔 채 시찰을 떠났다.

증인석에 나온 피감 관계자들도 핏대 올려

흥미로운 점은 증인석에 나온 피감 기관 관계자들이 가끔씩 국회의원을 뺨칠 정도로 핏대를 올렸다는 점이다. 문화관광위 국감에서 유진룡 전 문화부차관에 대한 청와대 인사 청탁 의혹의 증인으로 출석한 양정철 청와대 국정홍보비서관은 질의하는 의원에게 “호통 치지 말고, 반말하지 말라”며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국감장에서 욕설을 한 윤영월 광주서부교육장은 정직 1개월의 중징계를 당하기도 했다.

국감 증인들의 기를 꺾기 위한 공무원 ‘욕보이기’ 기술도 여전했다. 문화관광위 국감에서 한나라당 이계진 의원은 ‘노조의 출근 저지로 집무를 시작하지 못한 EBS 구관서 사장에 대해 “방송사에 들어가보지도 못한 사장이 무슨 자격으로 국감장에 왔느냐?”라고 묻기도 했다. 보건복지부 국감에서 한나라당 안명옥 의원은 “보건복지부장관이 자살 사이트에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은 자살 방조다”라고 유시민 장관을 비난하기도 했다.

자료 요구와 질의서를 통한 국회의원과 보좌관들의 공무원 길들이기 관행도 여전했다. 필요한 자료만 요구하지 않고 쓸데없이 ‘자료 일체’를 요구하고, 질의서 공개 여부를 가지고 괴롭히는 경우가 여전히 많다는 것이다. 한 정부 부처 국회 연락관은 “보좌관이 질의서를 준다며 밤 12시에 찾아오라고 해서 가보았더니 생각이 바뀌어 안 주겠다고 해서 발길을 되돌렸다. 쓸데없이 사람을 놀려서 화가 났다”라고 말했다.

이런 국회의원들의 거친 공세를 누그러뜨리기 위한 피감 기관의 과잉 접대 관행도 변하지 않았다. 국방위 감사 당시 1군사령부 국감에서는 1군사령부에서 점심 시간에 군악대를 동원해 감사위원들을 영접했다. 농림해양수산위 감사에서는 소속 위원들이 산불 진화용 비상 헬기를 타고 이동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여수산업단지공관 국감에서는 점심을 여수시 최고급 일식당에서 먹기 위해 2시간30분이나 소요해서 빈축을 사기도 했다.

국회의원들의 국감 평가는 크게 두 가지로 갈린다. 하나는 얼마나 언론에 보도되느냐이다. 언론 보도를 위해 북한 핵 이슈에 편승하는 경우가 많았다. 과학기술정보위원회에서는 “북한이 화학무기를 2천5백ℓ에서 5천ℓ 정도 보유하고 있다”라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폭로도 많았다. 문화관광위원회 국감에서 경인TV 신현덕 대표가 회사 1대 주주인 영안모자 백성학 회장이 미국 스파이라고 주장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상시국감 정책국감 등 개선 방안 제시

국회의원 중에는 현행 국정감사 방식이 문제가 많다고 보고 이에 대한 개선을 요구하는 의원들이 많다. 문화관광위원회 소속 열린우리당 이광철 의원은 사안별로 주제를 정해 실시하는 ‘테마형 국감’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같은 당 백원우 의원은 ‘상시 국감’ ‘정책 국감’을 통해 국감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료 미제출과 증인 불출석 문제도 개선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특히 증인 불출석 문제는 국회의 위상과 관련해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는 평가다. 탤런트 하지원씨와 문화일보 사장 및 편집국장, 그리고 많은 기업인이 증인으로 채택되었지만 대부분 국감장에 출석하지 않았다.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은 증인 채택이 아예 부결되기도 했다. 자료 미제출 문제는 현 정부 들어 정도가 더욱 심해졌다는 평가다. 한나라당 이종구 의원은 이런 자료 미제출 문제가 총리실이 국정감사를 조직적으로 방해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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