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를 위해 ‘밥상’ 차린 소설가
  • 이문재 (시인) ()
  • 승인 2006.11.10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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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일의 책]<어머니의 수저>/음식이 주인공인 ‘자서전’

 
몇 가지 징후가 있다. 시력, 허리, 머리카락, 기억력 등이 신호를 보낸다. 노안, 디스크, 탈모, 건망증. 그때부터 남자들은 더 이상 젊다고 말하지 않는다. 내가 수년에 걸쳐 관찰한 바에 따르면, 다른 조짐도 있다. (특히 방바닥에) 앉거나 일어날 때 자기도 모르게 “끄응”하는 소리를 내거나,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함께 어릴 때 먹던 음식 이야기에 열을 올린다면, 그리고 난데없이 어머니 얼굴이 떠오르기 시작한다면, 영락없다. 중년인 것이다.

소설가 윤대녕은 어머니의 수저, 더 정확히 말하면 늙으신 어머니와 함께 먹고 싶은 음식들을 떠올리며 묵직해진 나이를 실감한다. 그가 보기에, 수저는 부부처럼 보이지만, 그보다 먼저 어머니의 두 손이자, 어머니의 온몸이다. 아이들은 숟가락과 젓가락 쓰는 법을 배우며, 어머니의 손길을 거부한다. 그리고 성년이 된다는 것은, 어머니가 차려준 밥상으로부터 멀어진다는 것이다.

<어머니의 수저>는 한국 음식을 주제로 하면서도 다양한 ‘메뉴’를 갖추고 있다. 한·중·일 삼국의 음식 문화를 비교하기도 하고, 음식의 기원을 추적하는가 하면, 식습관과 관련된 저자의 개인사를 펼치기도 한다. 음식이 저자의 은밀한 체험과 버무려지는 문장들은, 윤대녕 소설에 스며들어 있던, 혹은 앞으로 그의 소설 속으로 초대될 법한 장면들이어서 눈길이 더 오래 머문다.

작가 윤대녕의 동선 그대로 드러나

수저에서 시작된 미각 여행은, 된장·간장·고추장·김치·장아찌·젓갈 등 한국인의 밥상의 토대에 해당되는 발효 음식 예찬으로 이어진다. <동국세시기>와 <동의보감> <한국의 미학사상> <자산어보> 등을 인용하면서 발효 음식은 한국인을 의인화한다. 한국인의 정체성이란 한국인의 음식에 의해 결정된다고 말하려는 것 같다.

중년이라면, 앞을 내다보기보다는 뒤를 돌아보는 일이 더 많아지고 또 편안해지는 중년이라면, 음식을 주인공으로 한 자서전을 써야 한다. 지나온 날들을 복원하는 기억력은 음식을 매개로 하거나, 음식 그 자체를 대상으로 한다. 음식은 생애의 아이콘이다. 그 음식이 1990년대 한국 소설의 새로운 감수성을 개척한 소설가의 음식이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니까 이 책은, 설령 의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막 중년으로 접어든 소설가의 자전 에세이다.

 
윤대녕의 음식 에세이에는 소설가 윤대녕의 동선(動線)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밥상과 식탁을 정류장으로 하는 소설가의 동선은 부산, 경주, 곰소, 대관령, 섬진강, 임진강, 대전, 남대문시장, 제주도(그는 제주에서 한 이태 살았는데, 소설가보다는 낚시꾼으로 살았다)는 물론 서유럽, 일본으로 이어진다. 그 사이사이에 거식증에 걸렸다가 몇 년 만에 입맛을 돌아오게 한 강릉 초당마을, 매일 잠들기 전 맥주 한 병을 따지 않으면 꼬박 밤을 새운다는 이상한 불면증(직업병이다), 돔의 생태와 낚는 법, 된장을 부처님이라고 말하는 대학 교수, 회를 아주 잘 뜨는 사진가, 된장찌개 끓여주겠다는 여자의 속마음 등에 관한 이야기가 끼어드는데, 저마다 소설의 한 장면 못지않다.

음식 에세이는 마지막 장 ‘어머니와 함께 먹고 싶은 음식’에서 맛집 기행으로 변모한다. 강화도 꽃게찜, 선운사 앞 동백장호텔 한정식, 경주기와 한우집 등이, 소설가 윤대녕이 어머니를 위해 고이 숨겨놓은 맛집이다.
소설가의 어머니는 어느 날 어두운 방에서 혼자 저녁을 들다가 아들에게 들킨 적이 있다. 깻잎 장아찌와 김치만 올려져 있는 초라하기 짝이 없는 저녁상이었다. 그때 어머니는 “낯선 사내에게 앞가슴을 들킨 처녀처럼 냉큼 얼굴을 감추”며 소설가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늙은 여자가 혼자 먹는 밥상은 다 이런 거야….”
아, 혼자 저녁상을 차리는 늙은 여자를 멀리에 두고 있는 이 땅의 잘난 아들들아, 오늘은 전화 한 통 드리자. “어머니, 이번 주말에 꽃게찜 드시러 가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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