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조영>, 사극의 본토를 수복하다
  • 강명석 (대중문화 평론가) ()
  • 승인 2006.11.10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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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에 충실하고 짜임새 탄탄…<주몽> <연개소문>은 ‘납치 사극’ ‘합판 사극’ 오명

 
나라를 건국하거나 지키는 영웅, 스펙터클한 전쟁, 그리고 수많은 군웅들의 활약. 이런 요소를 갖춘 사극들을 우리는 ‘대하 사극’이라 일컬었다. 하지만 최근 고구려사를 다룬 몇몇 드라마들은 더 이상 대하 사극이라는 말을 붙이기 민망할 정도다. 대신 ‘시트콤 사극’이나 ‘납치 사극’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MBC <주몽>은 한나라 군과 부여 군의 전쟁을 성조차 세워지지 않은 벌판에서 불과 20~30여 명의 엑스트라로 때우니 시트콤 사극이고, 이렇다 할 스토리 없이 모든 갈등을 주인공 주변 인물들의 납치와 구출로만 극을 이끌어가니 납치 사극이다. 또 SBS <연개소문>은 최근 실제 세트 대신 합판에 성을 그려 배경으로 삼아 ‘합판 사극’이라는 오명까지 써야 했다. 이쯤 되면 <주몽>의 ‘신화보다 위대한 영웅’이니, <연개소문>의 ‘대제국 고구려의 마지막 영웅’이니 하는 제작 의도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어디 그뿐인가. <주몽>은 드라마 초반부터 마치 무협 소설처럼 주몽(송일국)이 아버지 해모수(허준호)에게 잠시 무공을 배운 뒤 천하제일의 고수가 되더니 최근에는 모든 것을 전투로만 해결하려 한다. 누군가를 자기 편으로 끌어들일 때도, 정치적 문제를 해결할 때도 해결 방법은 오직 주몽의 액션뿐이다. 탄탄한 설정보다는 순간적인 눈요기로 사람들을 끌어당기려 하기 때문이다. 또 최근에는 시청률이 높게 나오자 작가조차 반대하는 연장 방영을 시도 중이다.

SBS <연개소문> 역시 드라마 초반부터 주인공 연개소문(이태곤)의 활약상 대신 수나라 황실의 권력 암투를 중심에 놓더니 최근에는 아예 양제(김갑수)의 폭정을 극의 중심에 놓고 있다. 이 때문에 연개소문이 아니라 ‘수나라 비사’나 ‘수양제’로 제목을 바꿔야 하지 않겠느냐는 비아냥도 들린다. 대하 사극으로서 지켜야 할 품위는 사라진 지 오래이다. 대신 사극이 인기를 얻으니 이 기회에 어떻게든 시청률을 올리겠다는 욕심만 있다. 주몽과 연개소문은 오직 대의를 위해 사는 것으로 묘사되는데, 방송사는 정작 대의보다는 실리에 대한 욕심만 드러내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KBS <대조영>의 등장은 반갑다. <대조영>은 오래간만에 만나는 대하 사극의 격을 갖춘 사극이다. <대조영>이 <주몽> <연개소문>과 차별화되는 엄청난 스케일의 ‘전쟁 신’을 보여주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물론 다른 방송사 사극과 비교할 수 없는 대규모 엑스트라와 컴퓨터그래픽을 동원한 <대조영>의 안시성 전투 장면은 초반부터 화제가 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대조영>의 진정한 가치는 발해사에 접근하는 정통 사극으로서의 진지한 태도 때문이다. <대조영>에서는 하늘이 내려준 운명이나 주인공을 돕는 기막힌 우연 따위는 없다. <주몽>에서 주몽은 신녀 여미을(진희경)의 예지력에 도움을 받고, <연개소문>에서 고구려가 수나라의 군대를 물리친 것은 연개소문의 아버지(박인환)가 신통력을 부려 날씨를 마음대로 바꾸었기 때문인 것으로 묘사된다. 반면 <대조영>은 철저하게 사람의 능력과 능력이 부딪쳐 승부를 낸다. 당나라와의 전쟁에서 양만춘(임동진)은 당 태종을 직접 찾아가 그를 도발하여 분노케 함으로써 고구려군에 필요한 시간을 벌기도 하고, 패퇴한 당나라 군은 고구려 군의 추격을 막기 위해 여러 가지 기만전술을 쓰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주인공의 검술 하나면 전쟁의 승패가 바뀌는 <주몽>이나, 이렇다 할 전략 전술 없이 화랑의 ‘정신력’으로 전쟁의 승패가 갈렸다는 <연개소문>보다 훨씬 구체적으로 전쟁의 그림이 그려진다.

 
물론 주인공 대조영이 태어나자마자 왕의 운명을 타고났다는 등의 신화적인 설정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대조영>은 오히려 대조영의 문제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이용하려는 문벌과 군벌 귀족 간의 대립을 그리면서 현실적인 정치 세계를 묘사한다. 그래서 <대조영>은 복잡한 고구려의 정치 상황과, 그만큼이나 다면적인 모습을 가진 인간 군상을 매력적으로 그려낸다. <주몽>에서 한나라 철기군이 얼굴조차 드러나지 않는 투구를 쓴 흉폭한 악인의 이미지로만 그려지는 것과 달리 <대조영>에서 당나라 군은 전쟁이라 할지라도 최소한의 예의는 지킬 줄 알고, 그들 내부에서도 다양한 생각이 공존하는 현실적인 사람들로 그려진다. 누군가는 명예를, 누군가는 부귀영화를 중요시한다. 마찬가지로 고구려 군에서도 오직 국가에 대한 충성심으로 살아가는 양만춘 같은 존재가 있는가 하면, 그 반대편에는 권력을 위해서라면 전시 상황에 군 통수권자인 연개소문마저 암살하려는 문벌 귀족들이 있고, 그 중간에는 권력 지향적이면서도 그 권력으로 고구려 수호에 나서는 연개소문 같은 인물도 있다.

특히 자신이 원하는 것이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세치 혀로 고구려 문벌 귀족들을 회유해 연개소문의 암살을 부추기면서도 미천한 신분이었던 자신을 처음으로 인정해 준 당나라를 위해서는 목숨을 바치는 당나라 장수 설인귀(이덕화)의 캐릭터는 사극을 통틀어 가장 매력적인 악역 중 하나다. 당나라와 고구려 간 전쟁에서 서로 거란족을 끌어들이기 위해 설인귀와 대조영의 아버지 대중상이 벌이는 외교전은 입체적이고 복잡한 내면을 가진 캐릭터의 심리를 이용한 <대조영>의 장점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래서 <대조영>은 ‘대하 사극’이자 동시에 ‘철혈 사극’이다. 단순한 선악 구분으로 캐릭터를 ‘정의 아니면 탐욕, 명분 아니면 이익’의 원칙에 따라 움직이게 하는 <주몽>과 <연개소문>은 그만큼 캐릭터의 행동도 단순한 동기에 따라 결정된다. 주인공은 정의에 따라 움직이고, 악역은 자기 잇속만 챙긴다.

‘현실 정치’와 맥 닿는 KBS 사극 전통 이어

하지만 <대조영>의 캐릭터들은 누구나 자신이 처한 현실을 무시하지 않는다. 출생의 비밀로 인해 태어날 때부터 반역죄를 뒤집어쓴 대조영은 뒤늦게 자신의 어머니를 만나지만, 그들을 추적한 고구려 문벌 귀족 세력에 잡혀 죽을 위기에 처한다. 그가 자신의 어머니 존재를 알고 있다면 죽고, 끝까지 모른다고 하면 산다. 그리고 대조영은 어머니의 당부에 따라 어머니가 자신 앞에서 고문당하는 것을 보면서도 끝까지 존재를 부인한다. 또 그는 어머니가 사형당하는 순간에도 다른 영웅들처럼 적들을 뚫고 그들을 구출하려는 대신 어머니가 죽은 뒤 울면서 그의 시신을 수습하려 한다. 그것이 아직 노비인 그가 할 수 있는 한계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대조영>은 드라마적 재미를 위해 희생되었던 캐릭터와 역사의 현실성을 되살리면서 오히려 한 명의 영웅이 태어나기까지를 가장 리얼하게 그려낸다. 정해진 운명과 타고난 능력으로 승승장구하는 영웅이 아니라 미천한 노비의 신분에서 온갖 굴욕을 참으며 한 발짝씩 전진하는 대조영의 성공담은 발해의 건설이라는 믿을 수 없는 기적을 보여준 영웅의 이야기를 현실 정치와 수많은 인간 군상의 부딪침이 만들어낸 현실로 환원한다. 그리고 이는 KBS표 ‘대하 사극’의 진정한 가치다. <용의 눈물>로부터 <태조왕건>과 <제국의 아침>, 그리고 <불멸의 이순신>까지 이어져 내려온 KBS 대하 사극은 늘 거대한 스케일 속에서 현실 정치의 비정함과 그 현실을 뚫고 나가려는 이상적인 영웅의 모습을 함께 제시했다. 그래서 궁예는 <태조왕건>을 통해 새롭게 해석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 고구려 말기로 돌아간 KBS 대하 사극은 발해의 건국 과정을 통해 한 영웅의 활약상에 국한된 이야기 대신 한 나라가 건국되기까지의 과정을 진지하게 파고들고 있다. 사극마저 마치 조미료를 치듯 자극적인 내용으로 시청자의 순간적인 관심만을 끌려 하는 이때, 대하 사극만이 낼 수 있는 깊은 맛만으로 승부를 거는 <대조영>이 드라마 끝까지 이 길을 유지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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