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처럼 해봐요, 요렇게…”
  • 안은주 기자 (anjoo@sisapress.com)
  • 승인 2006.11.13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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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 우등생들, 대부분 논술학원 무용론 펼쳐…다양한 독서, 치밀한 독서가 비결
 
논술 바람이 거세다. 대학 입시에서 논술 평가가 강화될 것이라는 소식과 논술을 준비하지 않으면 대학에 가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을 땔감 삼아 논술 불길이 미친 듯 타오르고 있다. 대학 교수조차 ‘대학 논술 문제가 어렵다’고 토로할 정도이니 입시를 앞둔 학생과 학부모들은 더 불안할 수밖에 없다. ‘대다수 사람들이 어떤 일을 억지로 계속하는 것은 두려움 때문’이라는 로버트 기요사키(<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의 저자) 말대로 논술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은 중․고등학생은 물론 초등학생까지 논술 광풍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논술 전문 학원들이 몇 달 만에 우후죽순 생겨나고, 문을 여는 족족 문전성시이다. 유기홍 열린우리당 의원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논술 학원(2006년 6월30일 등록 기준) 10개 중 8개 이상(86.5%)이 2004년 이후 문을 열었다. 2003년까지 전국 63개에 불과하던 논술 전문 학원은 2년6개월 사이에 4백65개로 늘어났다. 수능 중심 강의를 하던 학원들도 통합형 논술에 대비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고, 대형 종합학원은 논술연구소까지 운영하면서 통합형 논술을 연구하고 있다. 그만큼 논술 시장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출판 시장에서는 논술 관련서가 효자 상품으로 떠오르고, 대형 학습지 업체들까지 독서․논술 시장에 뛰어드는 추세다. 홈쇼핑 상품으로 등장한 문학전집은 한 회 방송에 2억원어치씩 팔려나간다. 지난 1998년 처음 발간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은 지금까지 모두 3백20만 부가 팔린 것으로 알려졌다. 5년 전부터 한솔교육과 대교가 장악하던 초등학생 논술 학습지 시장에는 최근 대성학원․천재교육․금성출판사․웅진씽크빅 등이 새로 뛰어들었다. 논술이 학습지와 함께 사교육의 ‘필수’ 코스로 자리 잡아가는 추세인 것이다.

“과외·학원이 논술 타락시킨다”

그러나 막상 논술 시험을 출제하는 대학측이나 논술 우등생들은 사교육에 기댄 이런 논술 광풍이 ‘헛다리 잡기’와 다름없다고 꼬집는다. 특히 요약본을 읽힌 뒤 글쓰기 요령이나 가르쳐주는 학원 및 입시 출제 유형을 분석해 답안을 가르쳐주는 족집게식 논술 과외는 논술 능력을 길러주지 못할 뿐만 아니라 시험 대비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단적인 증거가 학원에서 논술 기술만 익힌 학생들이 써낸 답안은 천편일률적이라는 데 있다. 지난 9월 서강대 수시 2학기 논술고사 답안지 3천7백여 장 가운데 2천 장가량의 결론이 엇비슷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주문 생산된’ 답안이 논술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한 것은 물론이다. 서울대 입학관리본부 김경범 교수는 “논술은 답의 오답 여부를 보는 것이 아니라 답까지 오는 시각이 얼마나 논리적이고 독창적인가, 풍부한 지식을 담고 있는가를 보는 시험이다. 따라서 문제 유형을 분석하고 족집게 답안을 주입하는 단기 학원 과외로는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초등학생들을 겨냥한 논술 교육도 마찬가지다. 5~6년 동안 초등학생 논술 교육을 해온 한 논술 강사는 “초등학생 때부터 논술 과외를 받더라도 책을 많이 읽어 지식을 제대로 습득하지 않으면 결코 훌륭한 글을 쓸 수 없다. 그러나 부모들은 책만 읽힐 것 같으면 왜 논술 과외를 시키겠느냐며 글쓰기 요령을 가르쳐줄 것을 요구한다. 그런 부모의 조급함이 오히려 제대로 된 논술 교육을 방해한다”라고 지적했다.

대학이나 교육 당국에서 논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다양한 독서를 통해 창조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인재를 길러내기 위함이다. 그러나 ‘조물주의 손에서 나올 때는 착한 존재가, 사람의 손에서 모든 것이 타락한다’는 루소의 말처럼, 현재 불고 있는 논술 열풍은 논술 교육의 도입 취지를 무색하게 하고 있다. ‘사회 제도와 정치 제도, 그리고 교육이 인간의 본성을 왜곡한 것’처럼 논술이 입시 수단으로 전락하면서 논술 교육의 본질을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대학측에서 아무리 논술 과외 무용론을 주장해도 공교육에서 논술 교육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학생이나 학부모들은 불안해하고, 사교육 시장에서는 그 불안을 이용해 점점 더 많은 학생들을 학원으로 끌어들인다는 데 있다.

그렇다면 실제로 논술 점수를 잘 받은 학생들은 어떻게 논술 대비를 했을까. 지난해 서울대․고려대․연세대․이화여대에서 논술 최상위권 점수를 받은 학생들을 만나 그들의 경험과 의견을 들어보았다.

지난해 서울대 입시에서 탁월한 논술 점수를 받은 오경환씨(경영학과 1년). 오경환씨도 다른 입시생들처럼 논술 학원에 다닌 경험이 있다. 수학능력 시험이 끝난 뒤 보름가량 학원에 다녔다. 논술에 출제될 문제 유형에 대해 알아보고, 첨삭 지도를 받아볼 목적이었다. 그러나 학원에서 배운 내용은 기술일 뿐 논술 시험에 크게 도움되지 않았다는 것이 오씨의 주장이다. 그는 “학원에서 배운 것보다는 평소 공부할 때 생각하는 훈련을 하고, 학교에서 꾸준히 독서․논술 지도를 받은 것이 더 큰 도움이 되었다”라고 말했다. 그가 다녔던 서울 신일고등학교는 논술 시험을 치러야 할 학생들을 대상으로 논술 지도를 따로 해주었다(딸린 기사 참조).

오경환씨는 수학능력 시험에 대비해 공부할 때나 책, 신문을 읽을 때, 논쟁이 되는 문제가 있으면 혼자서 머리를 굴려보며 자신의 주장을 정리해보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예컨대 신자유주의에 대한 내용이 나오면 신자유주의가 모든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바람직한 경쟁 체제인가에 대해 생각해보고, 책이나 뉴스를 통해 다른 사람들의 주장을 찾아보곤 했다. 덕분에 논술 문제를 받았을 때 어렵거나 당황스럽지 않았다.

 
어릴 때는 다양한 분야의 책을 많이 읽었다. 문학 작품은 물론이거니와 중․고등학교 시절에 이미 철학이나 경제 관련서를 읽을 정도로 독서광이었다. 오씨는 책을 읽을 때면 모든 문장을 이해할 만큼 정독했다. 메모하는 습관이 없어서 따로 독서 노트를 적지는 않았지만, 책을 읽으면서도 책 내용에 대해 다양한 각도에서 생각해보는 것이 습관이었다. 오경환씨는 “논술은 오랫동안 생각하는 훈련을 하고, 독서를 통해 생각의 가지를 풍성하게 만들 재료(지식)를 쌓은 사람만이 잘할 수 있다. 고등학교 과정 중 <사회 문화>나 <윤리와 사상>은 선택 과목이어서 배우지 않는 수험생도 있는데, 논술 시험을 볼 계획이라면 두 과목을 충실하게 공부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라고 귀띔했다.

영화평이나 서평 읽으면 꼭 원본 살펴보기도

지난해 고려대 논술 시험에서 최상위권 점수를 받은 김용수씨(국제어문학부 1년)의 경우는 논술 학원 도움이 컸다. 그는 중학교 3학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 1주일에 한 번씩 학원에 가서 논술 지도를 받았다. 그가 다닌 논술 학원은 입시를 겨냥한 학원이 아니라 독서 지도와 생각하는 훈련을 하게끔 도와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이었다. 글쓰기는 평생 필요하고, 좋은 책을 꾸준하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아 선택한 학원이었다. 학원 덕분에 1~2주일에 한 권씩은 반드시 책을 읽어야 했다. 김용수씨는 “혼자서는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도 모르고 추리소설처럼 쉽게 읽을 수 있는 책만 좋아했는데, 학원에서 양서를 추천해주고 함께 읽으니 큰 도움이 됐다”라고 말했다.

학원에 다니면서 논술 실력을 다진 김용수씨조차 논술 실력은 한두 달 코스로 길러지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독서하고 생각하면서 생기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내가 학원에서 얻은 것은 논술 요령이 아니라 좋은 책을 꾸준하게 읽는 습관이었다. 책을 정독하는 것이 좋지만, 정독하다 보면 지겨워서 책을 놓아버리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이라면 술술 읽되 여러 번 반복해서 읽는 방법이 나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화여대 김지영씨(초등교육 1년)는 학교가 인정하는 논술 우등생이다. 김씨가 논술 우등생이 된 비결은 풍부한 독서량에 있다. 그녀는 논술 학원은 구경도 하지 못했다. 중학교 국어 교사인 김씨의 어머니는 그녀를 논술 학원에 보내는 대신 다양한 책을 읽게 했다. 어머니 덕에 어릴 적부터 독서의 재미에 빠져들 수 있었던 김씨는 고등학교 때부터는 스스로 책을 골라 읽기 시작했다. 신문을 보다 영화평이나 서평을 읽으면 반드시 가서 보거나 사서 읽고, 수업 시간에 선생님께서 지나가는 말로 인용한 책이 있으면 반드시 기억했다 사서 읽곤 했다. <프라하의 봄> 영화평을 읽다 원전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직접 서점에 가서 구입해 읽는 식이었다. 김씨는 “논술을 쓰는 기술은 한 달만 연습하면 충분하다. 그러나 내용을 채우는 실력은 단기간에 습득할 수 없다. 논리적이고 충분한 내용이 담긴 글을 쓰려면 다양한 책을 꾸준하게 읽지 않고서는 어려운 일이다”라고 말했다. 김씨는 책에서 감명 깊거나 좋은 대목이 있으면 반드시 책갈피로 표시해두었다 반복해서 다시 꺼내 읽곤 하는데, 논거가 풍부한 논술을 쓰는 데 도움이 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연세대 논술 시험에서 최상위권 점수를 받은 한동훈씨(인문계열 1년) 역시 논술 학원 무용론을 주장한다. 그도 수능 시험이 끝나고 논술 학원에 한 달 정도 다녀보았다. 논술 학원에서 해준 첨삭 지도는 글쓰기 기술을 연마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특히 산문만 써 버릇하던 그의 문체를 논술 형태로 바꾸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러나 생각을 정리하고 내용을 채우는 데 도움이 된 것은 논술 학원 교육이 아니라 평소 습관이었다. 한씨는 관심 분야가 생기면 파고드는 성격이다. 책과 인터넷 서핑을 통해 그 분야 역사에서부터 최신 정보까지 섭렵해야 직성이 풀렸다. 음악에 관심이 많던 고등학교 시절에는 음악 관련 사이트를 직접 운영하면서 음악 리뷰를 쓰곤 했고, 컴퓨터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는 컴퓨터 관련 서적과 인터넷 정보들을 찾아 습득했다. 한동훈씨도 “진짜 논술 실력은 단기간에 길러지지 않는다. 독서와 자기 생각을 정리하는 훈련을 꾸준하게 하지 않으면 아무리 탁월한 글쓰기 요령을 배워도 좋은 논술을 쓰기 어렵다”라고 조언했다.

이들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논술에는 왕도가 없다. 다양한 책을 많이 읽고, 늘 생각하는 훈련을 하는 것만이 논술 실력을 다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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