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귀신 잡는 귀신’이다
  • 문정우 대기자 (mjw21@sisapress.com)
  • 승인 2006.11.13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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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우의 현장 속으로] 유령처럼 나타나 소리 없이 불법 어로 행위를 일삼는 중국 어선을 족집게처럼 찾아내 목숨 걸고 나포하는 305함 승조원들은 든든한 ‘바다 지킴이’였다.

 
제주도와 흑산도 해역에 3년째 물고기 떼가 몰려오고 있다. 어민들이 ‘고기를 잡으러 간다’고 하지 않고 ‘가지러 간다’고 할 정도이다. 여름에는 오징어와 꽃게가, 요즘은 조기가 ‘겁나게’ 많이 잡힌다. 온 나라가 경기가 죽었다고 울상이지만 목포와 흑산도 일대 선주와 상인들은 입이 귀에 걸렸다. 일당 20만원을 줘도 유자망에 걸린 조기를 따는 일손을 구하기 힘들 정도이다.

이 해역에 요즘 들어 왜 갑자기 물고기 떼가 몰려드는지 그 이유는 사실 아무도 모른다. 기후 변화 때문이라기도 하고, 꾸준히 연근해 불법 어업을 단속하고 어선 척수를 줄인 효과가 요즘 나타나고 있다고 보기도 한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 예전에는 이 해역에 수천 척씩 몰려와 치어까지 싹쓸이하던 중국 어선들이 몸조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동남아 국가들은 중국 어선들을 방치했다가 연근해 어장이 산호초까지 초토화되는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지금 이 해역에서는 우리 해경과, 불법 조업을 하거나 조업량을 속이려는 중국 어선 사이에 밤새도록 숨바꼭질이 벌어지고 있다. 중국 산둥 성의 어업 전진기지인 시다오(石島) 사람들에게 ‘피도 눈물도 없는 배’로 악명 높은 목포 해양경찰서 소속 305함에 탑승해 11월1일부터 2박3일간 취재했다. 수상한 낌새를 채고 추적하는 데 귀신이 따로 없었다.  


 
인천 74척, 태안 41척, 군산 16척, 목포 1백62척, 제주 1백12척. 올해 들어(10월31일 현재) 우리 해경이 서남 해역에서 나포한 불법 어로 중국 어선 숫자이다. 그런데 이 중에서 3백t급인 305함이 혼자 나포한 배가 74척이다. 해경 배 가운데는 1천t급이나 3천t급도 적지 않으므로 305함이 거둔 실적은 믿기 어려울 정도이다. 중국 어민들이 먼빛에서 305함을 보기만 해도 치를 떤다는 말이 이해가 간다.

11월1일 오후 3시 조금 지나 홍도에 정박해 있던 305함에 오르자 쑥스럽게도 30여 명의 승조원이 모두 나와 환영을 해준다. 김문홍 함장(49·경감)이 “일단 배에 오르면 모두가 가족같이 지내는 게 우리 함의 전통이다”라고 설명했다. 그의 얼굴을 대하자마자 대뜸 “3백t밖에 안 나가는 305함이 그토록 많은 중국 어선을 잡아들일 수 있었던 비결은 도대체 무엇이냐”라고 물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305함은 우선 성능이 우수하다. 2000년 9월 한진중공업이 만든 305함에는 흔들림 방지 장치인 ART(Anti Rolling Tank)가 달려 있다. 이 장치 덕분에 파도를 잘 타 웬만큼 파고가 높아도 갑판에서 크레인으로 단정(고무보트)을 내려 기습적으로 요원들을 중국 어선에 들여보내기가 용이하다. 모선 최대 속도가 시속 30마일(1마일은 1.85km), 단정 최고 속도는 시속 35마일에 달하는 것도 강점이다. 김문홍 함장은 “오랫동안 중국 어선을 검문·검색해오면서 쌓은 요원들의 노하우는 함에 머무르면서 천천히 지켜보라”고 말했다.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한국 어선이 중국 연안에 가서 조업을 더 많이 했으나 1980년대 중반부터는 전세가 역전되어 우리 연안의 어족 자원 고갈과 어민 피해가 심각해졌다. 그래서 1989년부터 협상을 시작해 2001년 발효한 것이 한·중 어업협정이다. 이 협정에 따라 양국은 자국의 배타적경제수역(EEZ) 안에서는 상대국의 어종·어획량·조업 조건 등을 통제할 수 있게 되었는데 305함의 주 임무가 바로 그것이다.

305함은 한국 해양수산부의 허가를 받지 않은 중국 어선이 우리 EEZ 안에서 조업을 하는지, 허가받은 배라도 할당받은 어획량과 조업 조건을 지키는지 감시한다. 305함이 나포한 중국 어선 74척 중 21척은 무허가 어선이었다. 무허가 어선은 잡은 고기를 모두 빼앗기고 5천만원의 벌금을 물어야 풀려난다. 두 척이 한 조인 쌍끌이 어선이나, 4~5척이 다니는 선망이 무허가 조업을 하다 적발되면 모두 1억~2억5천만원의 벌금을 물어야 하는 것이다. 중국 어민으로서는 어마어마한 액수여서 나포하려면 무기를 들고 결사적으로 저항하기 일쑤이다. 무허가 조업은 요즘 많이 줄어드는 추세이다. 허가는 받았으되 어획량 따위를 속이면 5백만~1천만원의 벌금을 문다.

밤이 되자 305함은 중국 어선들 사이로 스며들어 갔다. 육안으로 보면 수평선에 드물게 불빛이 걸려 있을 뿐이지만 해경 알파 레이더로 보면 이 해역에서 수백 척의 어선이 조업 중임을 알 수 있다. 305함 조타실 요원들은 레이더 불빛 가운데서 중국 어선을 귀신처럼 집어냈다. 그리고 하나 둘 타깃을 정했다.
요즘 중국 어선들이 가장 많이 하는 반칙은 어획량 줄이기이다. 우리 EEZ 안에서 조업하는 중국 어선들에게는 1년간의 쿼터량이 정해져 있다. 그런데 요즘같이 고기가 많이 잡힐 때는 하루에도 1년치를 모두 잡는 수가 있다. 그런 경우에는 어획량을 속이고 싶은 유혹을 떨치기 어렵다.

삼각파도 덮치는데 낙엽 같은 ‘단정’ 타고 추격

중국 어선들은 매일같이 한국 해양수산부가 일련번호를 매겨 나누어준 조업 일지를 쓴다. 그물을 던지고 끌어 올린 시간과 어획고를 그때그때 정확하게 기입해야 한다. 하지만 중국 어선들은 조업 일지에 아예 어획량을 적지 않거나 조금만 적어놓았다가 적발되지 않으면 EEZ 밖에 대기하고 있는 운반선에 그대로 넘겨버린다. 해경이 검문할라치면 재빨리 조업 일지 수치를 써넣거나 고친다.

 
중국 어선이 눈치 못 채도록 조용히 접근해 순식간에 배에 뛰어올라 조업 일지를 확보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작전의 성패가 달렸다. 수상한 기미가 보이는 중국 어선을 발견하면 305함은 등화관제를 철저히 하고 접근하기 시작한다. 중국 어민들은 천문항해에 능해 대개 눈이 좋기 때문에 오늘같이 달 밝은 밤에는 불리하다. 충분히 접근했다 싶으면 단정을 내려 가까이 다가가 요원들을 투입한다. 전기 충격기·가스총·3단봉으로 완전 무장한 요원들은 조타실에 들어가 통신 시설부터 장악한 뒤 조업 일지를 확보한다. 통신 시설을 장악하지 않으면 주변에 있는 같은 선단에 알려 배들이 몰려와 요원들이 위험해질 수도 있다. 김문홍 함장은 “단정을 보내 덮치는 것은 남지나 해적들이 즐겨 쓰는 수법이다”라며 웃는다.

저녁 8시가 조금 못 되어 타깃 19와 타깃 21이 EEZ선 바깥쪽으로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너무 많은 고기를 잡아 고민인 중국 어선들이 종종 보이는 움직임이다. 북서풍이 강하게 불고 있다. 단정을 중국 어선의 북서쪽에 내려놓아야 순풍을 타고 조용히 접근할 수 있다. 305함은 중국 어선을 가운데 두고 크게 돌아 북서쪽으로 향했다.

“눈치 챈 것 같나?” 함장이 묻자 문규선 항해장은 “모르는 것 같습니다”라고 조용히 답한다. 계기판 불빛만이 반짝이는 조타실에는 긴장감이 흘렀다. “단정, 스탠바이.” 함장이 무전기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파고가 너무 높았다. 3m 이상이었다. 이런 날씨에 크레인으로 단정을 내려놓기란 위험천만한 일이다. 파도에 단정이 가랑잎처럼 흔들리고 그 안에 탄 요원 여섯 명도 위태롭게 비틀댔다. 이윽고 단정이 타깃 19를 향해 출발했다. 같은 선단인 듯 타깃 19와 타깃 21은 어느덧 나란히 항해하고 있었다. 단정은 타깃 21이 눈치 못 채도록 타깃 21에서는 안 보이는 쪽으로 타깃 19에 접근했다.

 
함장이 가진 무전기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여기는 단정. 타깃 19 무사히 장악했다. 그런데 선장이 기절한 것 같다.” 함장은 “선장을 보살피고 조업 일지를 본 다음 위법 사항이 있는지 파악하라”고 지시했다. 한밤중에 망망대해에서 갑자기 배에 시커먼 괴한들이 뛰어들었으니 기절할 법도 하다. 실제로 기가 약한 중국 선원 가운데는 까무러치는 사람도 드물지 않다고 한다. 물론 뭔가 감추거나 시간을 끌려고 기절하는 척하는 경우도 많다. 이번이 어떤 경우인지는 쉽게 확인되지 않았다.

갑자기 타깃 21이 항로를 바꿔 달아나기 시작했다. 함장은 무전기로 단정 팀장에게 타깃 19에 요원 두 명만 남겨놓고 타깃 21을 추격하라고 지시했다. 305함도 급히 타깃 21을 뒤쫓기 시작했다. 단정이 맞바람을 받으며 달리느라 바나나보트처럼 일어섰다. 뒤에서 삼각파도가 덮쳐와 아슬아슬한 순간이 이어졌다. 바람과 파도와 싸우다 단정은 타깃을 놓쳐버리고 말았다. 305함을 타깃으로 착각해 따라왔던 것이다. 숨 가쁘게 무전 교신이 오간 뒤 단정은 간신히 타깃 21에 따라붙었다. 잠시 뒤 단정은 타깃 21을 장악했다는 소식을 무전기를 통해 전해왔다.

타깃 19와 타깃 21은 모두 20t급 중국 유자망 어선이었다. 모두 수상한 동태를 보였으나 허가받은 어선이었고 조업 일지도 깨끗했다. 배를 장악하는 데 너무 시간을 끌었는지도 모른다. 타깃 21이 왜 필사적으로 도망치려 했는지도 밝혀내지 못했다. 통역을 맡은 김경동 경장이 “철수하겠다”라고 알려왔다. 단정 요원들은 한 시간 가깝게 거친 바다에서 고생했지만 소득이 없었다. 모선에 돌아온 단정 팀장이 바람과 파도가 모두 심해 더 이상 단정을 내리는 것은 무리라고 보고했다. 요원들은 “빤스까지 젖었다”라고 투덜댔다. 귀신 잡는 배라도 안 풀릴 때가 있는 법이다.

 
아침 6시 바람과 파도가 잦아들자 다시 작전이 시작되었다. 이번 타깃은 쌍타선. 우리말로는 쌍끌이선, 즉 투척식 저인망 어선이다. 본래 박명(薄明)에는 중국 어선들의 경계심이 풀어져 월척이 많이 잡힌다고 한다. 식당 겸 출동대기실의 식탁에 엎드려 잠시 눈을 붙이고 있던 단정 요원들이 조용히 출동했다. 잠시 후 단정은 모선에 “조업 일지가 불량하다”라는 소식을 전했다. 2백t급 대물을 낚은 것이다.

배 두 척의 선장과 선원 한 명씩, 모두 네 명을 305함에 압송했다. 각 배에 요원 두 명씩 남아 흑산도항으로 유도했다. 중국 어선에 남은 요원들에게는 김밥과 생수, 초코파이가 전달되었다. 305함은 시속 10마일 정도로 흑산도항으로 향했고 중국 어선 두 척이 뒤를 따랐다. 2004년 305함 자신이 세웠던 연간 74척 나포 기록을 깨는 순간이었다.

선장은 죄가 없다며 버텼다. 단순 실수라는 것이었다. 통역인 김경동 경장과 형사 출신인 문규선 항해장이 조사를 맡았다. 김경장은 달래고 문항해장은 소리를 질러댔다. 4시간 가까운 승강이 끝에 선장이 백기를 들었다. 조업 일지 부실 기재를 인정할 테니 빨리만 풀려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중국 어선들은 벌금을 못 내 몇 달씩 흑산도항에 묶여 있는 일이 잦았다. 하지만 요즘은 잡히기가 무섭게 한국 중개업자를 통해 해경 계좌에 벌금 담보금을 입금하고 총알같이 다시 고기를 잡으러 나간다. 305함 요원들은 중국이 무섭게 변하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낀다고 말한다.
한번은 어선 가운데서 재벌급에 속하는 선망을 나포한 일이 있는데, 한국의 큰 조선회사 사장이 직접 전화를 걸어 돈은 얼마든지 입금할 테니 빨리 선장을 풀어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압송된 선장이 한국 회사에 막대한 양의 배를 주문한 선주이기도 했던 것이다.

김경장과 문항해장은 중국 어선 선장이 혐의를 인정할 때까지 아침도 거른 채 담배만 피워댔다. 305함은 이날 밤 쌍타선 두 척을 더 나포해 자기 기록을 또 한번 깼다.  

 
찢어진 단정 타고

바다를 수호했다

305함 요원들은 거친 바다에서 위험스럽기 짝이 없는 작전을 수행하지만 지닌 장비는 민망스러운 수준이다. 중국 불법 어선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단정은 지은 지 9년이나 되는 고물. 펑크 난 튜브를 발로 막아가며 쓰다가 지난해에야 튜브와 엔진을 교체했다.
단정을 타고 거친 파도를 헤치다 보면 바닷물을 뒤집어쓰기 일쑤이다. 하지만 그에 대비한 장비는 지급되지 않았다. 사비를 털어 우비를 사서 입고, 무전기에는 비닐을 씌웠다(사진). 무전기는 모선과 3마일 이상 떨어지면 불통되기 일쑤이다. 달도 없는 칠흑 같은 밤이면 단정 요원들은 바다에서 고립될까 봐 불안에 떤다. 겨울이 오면 장비가 부실해 겪는 고통은 더욱 커진다.

 
북한 상선 호위도

중요 임무 되었네

305함은 4박5일간의 이번 작전 기간에 모두 북한 상선 세 척을 호위했다. 제주 해역에서 인계받아 군산까지 호위한 뒤 인계하거나 그 반대로 하거나 하는 식이었다. 관할 해역이 50마일 정도 되기 때문에 북한 상선을 근접해 호위하려면 꼬박 6시간 이상을 따라다녀야 한다.
북한 선박은 해군 작전사령부나 공군 작전사령부가 레이더를 통해 24시간 감시하기 때문에 굳이 해경 경비정이 근접 호위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북한 핵실험 이후 국정감사에서 야당 의원들이 우리 영해를 통과하는 북한 상선을 왜 근접 감시하지 않느냐고 다그치는 바람에 일선의 해경들만 피곤해졌다. 만약 우리나라가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에 참여하게 된다면 해경은 북한 상선을 검문·검색하는 고역을 맡아야 할지도 모른다.
사실 북한 상선 중에 대양으로 가는 것은 거의 없다. 대부분 쌀이나 시멘트 등을 싣고 원산이나 함흥 쪽으로 가는 것들이다. 육상 교통수단이 시원치 않아 시간이 걸리더라도 배로 나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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