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위기론’이 퍼지고 있다
  • 고재열 기자 (scoop@sisapress.com)
  • 승인 2006.11.17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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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율·당내 세력 경쟁에서 이명박에게 밀려…“지금 반등 못하면 대권 없다”

 
“오빠가 먼저 하이소.” 요즘 정치권에 회자하는 문구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대구 서문시장을 방문했을 때 지지자들이 했다는 이 말이 이 전 시장의 지지율이 높아지면서 정치권에서 새롭게 환기되고 있는 것이다.
여론조사에서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두 자릿수 차이 이상으로 앞서나가면서 박근혜 전 대표 진영에는 비상이 걸렸다. ‘이명박 대세론’의 조짐까지 나오자 박 전 대표의 발걸음이 분주해졌다. 최연희 의원의 여기자 성추행 사건으로 중단되었던 언론사 편집국장과의 식사 자리도 다시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한나라당 중진인 ㄱ의원은 박 전 대표의 전화를 받고 두 번 놀랐다. 반(反)박으로 분류되는 자신에게 전화한 것에 놀랐고 박 전 대표의 태도에 놀랐다. 그는 “자존심 강한 박근혜 전 대표가 ‘아무 때나 의원님 편하실 때 시간 내달라. 한번 만나 뵙고 싶다’라고 말하더라. 이런 저자세는 박 전 대표가 다급해졌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당내 세력 경쟁에서도 이 전 시장 진영에 밀리는 모습이 감지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박 전 대표와 가까운 중진 의원으로 호남 지역에서 영향력이 큰 김덕룡 의원이 이방호 의원에게 공격받는 것과 최근 자신의 보좌관을 박 전 대표 캠프에 보내 지원한 김용갑 의원이 새로 임명된 인명진 윤리위원장으로부터 징계받는 것이다.

이명박, PK·TK·호남 지역 ‘잠식’

한 한나라당 관계자는 “지금 한나라당 안에서 벌어지는 거의 모든 갈등은 친이명박계와 친박근혜계의 세력 싸움과 연결되어 있다. 그런데 아무도 김덕룡 의원이나 김용갑 의원을 편들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박 전 대표의 세력이 약화되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라고 말했다. 최근 박 전 대표 손을 들어준 사람으로는 서울시장 경선 과정에서 이명박 전 시장과 척을 진 홍준표 의원이 유일하다.

당내 세력 판도가 이 전 시장 쪽으로 기울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는 바로 오픈 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제) 논의다. 오픈 프라이머리를 선호한 것으로 알려졌던 이 전 시장이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경선 방식은 상관없다”라고 발언한 이후 한나라당 안에서 이 논의는 ‘식은 감자’가 되어버렸다.

 
그런데 ‘식은 감자’를 다시 데워서 ‘뜨거운 감자’로 만든 사람 역시 대표적인 친이명박계 중진으로 분류되는 이재오 의원이었다. 이의원은 “오픈 프라이머리 도입 반대가 당론은 아니다”라고 제동을 걸고 논쟁에 불씨를 당겼다. 당 안에서는 이의원이 오픈 프라이머리를 계속 유효한 카드로 쓰려 하는 이 전 시장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준 것으로 받아들였다. 곧바로 당내에 이심(李心)을 전달하고 있는 정두언 의원은 “국민 80%가 찬성하는 오픈 프라이머리를 막으면 이상한 정당이다. 대선 승리가 목표이지 경선 방식을 지키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라며 불을 지폈다. 강재섭 대표 등이 나서서 진화에 나섰지만 불길은 무서운 속도로 한나라당을 덮쳤다.

오픈 프라이머리 논의와 관련해 주목할 부분은 뉴라이트 그룹의 반응이다. 대체적으로 뉴라이트 그룹에서는 오픈 프라이머리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지금의 경선 방식보다 오픈 프라이머리로 후보를 결정할 경우 당 밖 세력인 자신들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정치적 공간이 커지기 때문이다.

오픈 프라이머리 논의로 친이명박계와 친박근혜계 정면 충돌

그러나 원외 당원협의회 운영위원장들은 이와 정반대 생각이다. 대선 경선에서 자신들의 영향력이 줄어든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명박 캠프의 한 관계자는 “오픈 프라이머리가 한나라당 내 세력 판도를 확인할 수 있는 가늠자가 될 것이다. 오픈 프라이머리라는 ‘대마’를 놓고 구세력과 신세력이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재오 의원이 논의를 시작한 이후 소장파 의원 모임인 수요모임의 원희룡 의원, 초선 의원 모임인 초지일관의 진영 의원, 경선 중립을 표방한 희망모임의 공성진 의원 등 소장 중도파 의원들의 오픈 프라이머리 지지 발언이 줄을 이었다.

뉴라이트 그룹을 흡수하는 데 우위를 점한 이명박 캠프에서는 지역 조직 재정비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금까지 지역 조직은 지난 전당대회를 통해 조직을 정비한 박 전 대표측이 다소 우위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이 역시 지역 비주류들이 ‘이명박 후광 효과’를 업고 권토중래하면서 변화를 보이고 있다.

부산의 경우 지난 지방선거에서 허남식 시장과 겨루었던 권철현 의원을 중심으로 친이명박 그룹이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권철현 의원과 가까운 이성권 의원은 이 전 시장의 일본 방문을 수행하기도 했다. 경남의 경우 김학송·김용갑 의원 등 박 전 대표와 가까운 세력과 이방호·권경석 의원 등 이 전 시장과 가까운 세력이 백중세를 이루고 있다는 평가다.

박근혜 전 대표의 텃밭인 TK 지역에서도 경합이 치열한 가운데, 이 전 시장은 친형인 이상득 의원의 도움을 받아 동부 지역을 중심으로 세를 넓혀가고 있다. 호남에서도 이전까지 맹주를 자임했던 김덕룡 의원의 힘이 빠진 것을 계기로 교두보 마련을 꾀하고 있다. 박 전 대표가 확실하게 우위를 점하고 있는 곳은 행정수도 이전 문제로 이 전 시장과 악연이 있는 충청권뿐이다.

추석, 북한 핵실험, 내륙운하 발표가 지지율 하락 원인

박근혜 전 대표 진영에서는 박 전 대표 지지율이 빠진 이유로 추석과 북한 핵실험, 그리고 이 전 시장의 내륙운하 구상 발표를 꼽는다. 추석 때 친척끼리 모여서 불경기를 탓하면서 CEO 출신인 이 전 시장이 반사 이익을 보고, 북한 핵실험으로 여성 지도자에 대한 원초적인 불신이 자극되고, 내륙운하 발표로 이 전 시장의 정책 역량이 평가받았다는 것이다.

특히 이 전 시장의 내륙운하 구상에 대해 박 전 대표의 대처가 전략적이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 한나라당 의원은 “내륙운하를 주장해서 얻을 표는 있지만 막아서 얻을 표는 없다. 오히려 표를 잃게 된다. 결과적으로 이 전 시장의 내륙운하 계획만 선전해준 꼴이 되었다”라고 평가했다. 박 전 대표 진영에서는 최근 가장 큰 이슈로 부상한 부동산 문제도 건설회사를 경영했던 이 전 시장에게 호재가 되지 않을지 염려하고 있다.

 
박 전 대표가 이처럼 수세에 몰린 또 다른 이유로는 당 대표직을 그만둔 이후 적극적인 정책개발보다 당내 세력 확장에만 주안점을 두었던 것이 꼽힌다. 그동안 박 전 대표는 서청원·최병렬·홍사덕 전 의원 등 당의 원로 정치인들로부터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해 애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 전 대표가 연사로 나선 지난 11월2일 서초포럼에는 스물다섯 명의 현역 의원이 참석하기도 했다. 한 한나라당 의원은 “성을 쌓는 자는 망하고 길을 내는 자는 흥하게 되어 있다. 지금 줄 세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박근혜 전 대표는 자신만의 리더십을 보여주는 것이 더 다급하다”라고 말했다.

정책 개발보다 당내 세력 확장에 힘써와

아니나 다를까. 무리한 세 확장은 자승자박이 되어 부담을 주고 있다. 수해 지역 골프로 물의를 빚은 홍문종 전 의원과 성추행 혐의로 기소된 최연희 의원, 공천 헌금 문제로 시끄러운 박성범 의원 등 물의를 일으킨 사람들을 위해 한나라당 지도부가 당원협의회 운영위원장 자리를 비워둔 것이 최근 밝혀져 파문이 되었다. 공교롭게도 모두 박 전 대표와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정치인들이다. 때문에 ‘구태 정치’의 사슬을 끊는 것도 박 전 대표에게 중요한 과제이다.

박 전 대표 진영에서는 최근의 지지율 변화가 고건 전 총리 쪽에서 빠진 지지율이 이명박 전 시장 쪽으로 붙으면서 나타난 변화로 해석하고 있다. 박 전 대표의 지지율 변화 자체는 미미하다는 것이다. 한나라당 후보이면 누가 나와도 이길 수 있기 때문에 박 전 대표를 내세워 안전하게 이겨야 한다는 것이 참모들의 주장이다. 이들은 여권의 정계 개편 등으로 인해 이 전 시장 지지율에는 부침이 있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이 전 시장 진영에서는 이를 다르게 받아들이고 있다. 이 전 시장은 전체적으로 지지 계층의 외연을 확대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전 시장은 박 전 대표 지지자를 흡수할 수 있어도 박 전 대표는 이 전 시장 지지자를 흡수하기가 쉽지 않다고 주장한다. 내년 대선은 결국 여권의 단일 후보와 한나라당 후보가 벌이는 박빙의 싸움이 될 텐데, 이를 위해서는 본선 경쟁력이 있는 이 전 시장이 경선에 이겨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정치권에서는 박 전 대표가 연말까지 반등의 계기를 마련하지 못하면 위기에 직면할 것으로 보고 있다. 연말연시에 시행되는 각종 언론사 여론조사에서도 지금과 같은 차이가 나거나 지금보다 차이가 더 벌어진다면 한나라당 속성상 이 전 시장 쪽으로 급격한 쏠림 현상이 나타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박 전 대표가 한 달 안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뾰족한 수가 없다는 것이 박 전 대표 진영의 딜레마다. ‘정권 창출 원천 기술’로 꼽히는 비전 제시 능력과 콘텐츠 보유 면에서 여전히 이 전 시장에게 열세라는 것이다. 한 캠프 관계자는 “캠프 기능이 비서 기능에 너무 집중되어 있다. 정책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이제 더 이상 대한민국, 애국심만 부르짖어서는 답이 안 나온다”라고 말했다.

'박정희 향수' '안보 지도자' '여성 리더십' 코드로 반전 노려

박 전 대표 진영에서 ‘이명박 대세론’을 잠재우기 위해 사용할 마법의 호리병은 크게 세 가지다. ‘박정희 향수’ ‘안보 지도자’ ‘여성 리더십’이 그것이다. 지난 11월14일 박정희 전 대통령의 89세 생일에 맞춰 열린 숭모제에 참석한 박 전 대표는 박정희 향수로 침체된 분위기를 반전시키려 시도했다. 이날 박 대표는 “선친의 꿈을 이루는 것이 여생의 전부다. 선진 강국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겠다”라며 포부를 밝혔다.

중국 공산당 초청으로 중국을 방문하는 박 전 대표는 새마을운동을 비롯해 박정희 정부의 경제개발 정책에 대해서 강연할 예정이다. 중국 방문에서 박 전 대표는 북한 핵실험 이후 불거진 한반도 문제를 중국 지도자들과 토론하며 안보 문제 해결 역량을 가진 지도자라는 점도 부각할 계획이다.

여성이라는 핸디캡을 극복하는 것도 미룰 수 없는 시급한 숙제다. 대처 수상처럼 강한 여성상을 정립해 ‘여성 지도자 시기상조론’을 잠재운다는 것이 박 전 대표 진영의 복안이다. 독일의 메르켈 총리나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처럼 미래형 여성 지도자상을 벤치마킹하는 것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제 연말까지 남겨진 시간은 한 달 남짓, 박근혜 전 대표는 마의 10% 차이를 극복하고 이명박 전 시장을 붙들 수 있을까? 박 전 대표가 ‘아버지의 이름으로’ 여성이라는 핸디캡을 극복하고 안보 문제를 해결할 적임자임을 국민에게 설득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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