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이면 다냐” 꿈 꺾인 약자들의 울분
  • 정희상 전문기자 (hschung@sisapress.com)
  • 승인 2006.11.17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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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은 제890호에 게재한 ‘삼성에게 이렇게 당했다’ 기사에 이어 두 번째로 현대차계열사와 LG텔레콤, 포스코의 불공정 행위에 의해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중소기업들의 사례와 분쟁 실상을 추적했다.

 
‘대기업의 아름다운 카펫 아래는 중소기업의 피가 흐른다’. 김대중 정부 시절 산업자원부 장관을 지낸 김영호 중소기업시대포럼 공동대표는 한국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불공정 실상을 이렇게 표현했다. 아닌게 아니라 한달 여 동안 <시사저널>이 집중 추적 취재를 벌인 결과 대기업과 거래하다 일방적인 횡포로 회사가 문을 닫고 길거리로 나앉은 중소기업 사장들은 부지기수였다. 대기업에 억울한 일을 당해도 70%이상이 후환이 두려워 묻어두고 지나가는 현실에서 ‘길거리로 나선 사장님들’의 피해 호소 사례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시사저널>은 지난 890호에 보도한 ‘삼성그룹에 의한 중소기업 잔혹사’에 이어 이번에는 나머지 대기업들의 중소기업에 대한 횡포와 분쟁 실태를 조명한다(편집자주).

1. 현대자동차그룹에 맞서다 병원에 실려간 칠순 여성 중소기업인 이인애씨의 기막힌 사연

 
11월8일 이른 새벽 경기도 분당 서현동에 자리한 박정인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 사택 앞에서는 정신산업 이인애 대표(71)가 119 구급차에 실려 근처 병원으로 후송됐다. 이날 그녀는 현대정공 사장 시절의 박부회장과 맺은 계약으로 인해 회사가 망했다며 박부회장 출근 시간인 6시경에 맞춰 일인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박부회장의 출근 차량이 나오자 그룹 계열사 로템에서 이아무개 총무부장 지휘아래 투입한 여성 용역 경비원 4명이 그녀를 애워싼 채 강제로 끌고갔다. 분당 재생병원으로 긴급 후송된 이씨는 X레이 촬영 결과 1번 척추 뼈가 내려앉은 것으로 나타났다. 병원측에서는 MRI를 촬영한 뒤 척추 뼈 함몰이 사건 전에 일어난 것 같다고 이씨에게 전했지만 이씨가 그런 병력이 전혀 없다고 항의하자 1주일이 지난 현재까지 다른 정밀 검사를 계속 실시하고 있다.

입원 가료중인 이인애씨는 “‘끌어내’하는 총무부장 지시가 떨어지자 용역경비원 4명이 달려들어 숨도 못쉬게 압박한 뒤 10여미터를 끌고가서 놓아버려 허리를 다쳤다”라고 주장했다.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한 분당경찰서 서현 파출소 경찰관은 가해 여성 4명의 신원을 확인한 뒤 병원으로 가서 피해자 이인애씨에게 “용역경비 여성들이 로템 총무부장의 지시로 벌인 일이라고 하니 진단서를 떼서 가해자들을 고소하라”고 통보하고 돌아갔다. 그러나 경찰은 아직까지 사건 접수조차 하지 않고 있다. 담당 경찰관은 “할머니가 고소할테니 돌아가라고 해서 기다리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날 불상사에 책임이 있는 로템측 관계자는 “여성 용역 경비원들이 차도로 뛰어들려는 시위 할머니를 보호하려는 과정에서 거칠게 저항하는 할머니를 상대로 작용과 반작용이 있었을 뿐 할머니가 말하는 폭력은 전혀 없었다”라고 주장한 뒤 “병원과 경찰에서 진단 및 조사결과가 나오면 그에 따른 합당한 책임을 지겠다”라고 말했다.

이날 대기업 경영 수뇌부와 몰락한 중소기업 여사장 사이에 비극적 충돌이 일어나게 된 뿌리는 6년 전 양측이 계약을 맺은 사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34년간 중소기업 정신산업을 운영해온 이인애씨는 인천 남동공단에 공장을 두고 삼성 대우 등 대기업에 중장비 기계부품을 납품하며 종업원 70여명을 거느린 알짜 중소기업인이었다. 정신산업은 1996년 중소기업청으로부터 유망중소기업으로 지정되었고, 1998년에는 남동구청장으로부터 우수기업인상을 받을만큼 잘 나가고 있었다.

이런 이씨의 사업 인생에 먹구름이 낀 때는 1999년 6월 현대 정공과 만나면서부터였다. 이인애 대표는 그해 7월 현대정공(현대모비스의 전신) 박정인 대표와 오스트리아에 수출할 화물열차에 장착하는 리프팅장치 하도급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 협상 과정에서 정신산업이 현대정공측의 요구단가가 지나치게 낮아 난색을 표하자 현대는 ‘추가로 300유닛의 물량을 발주해준다’는 내용의 계약 내용(계약서 14조)을 넣어주는 조건으로 우선 계약을 성사시켰다. 계약 이후 현대정공의 철도차량 사업부문이 한국철도차량(KOROS)으로 넘어가면서 납품은 이곳으로 이뤄졌다.

그러나 정신산업이 부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허점이 곳곳에 드러났다. 우선 최초게약자인 현대정공측은 계약서에 사인한 뒤 정신산업에 법정 계약금조차 주지 않고 일을 시켰다. 또 발주자가 제공한 도면에 하자가 있어 생산품을 폐기하고 새로 만들거나 고치는 과정에서 막대한 추가 비용도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현대정공측 현장 책임자와 대리인은 설계변경 대가로 정신산업으로부터 1억5천만원의 어음을 끊어간 뒤 개인적으로 착복하기도 한 것으로 밝혀졌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도면 하자로 인한 추가 비용은 나중에 정산해주겠다는 계약을 믿고 이씨는 빚을 얻어가며 물건을 생산해 계약 1년만에 납품을 끝냈다. 계약 물품 대금만도 최초 계약 당시 32억여원의 갑절이 해당하는 54억원의 비용이 투입됐다고 한다.

 그러나 현대정공이 정신산업에 총 납품대금으로 지급해준 금액은 29억3천만원. 그나마 이 금액도 제때 결재받지 못해 정신산업은 2000년 8월 부도 처리됐다. 하루아침에 1천여평 규모의 남동공단 공장과 서울 구로동 7층 사옥, 송파구 다가구 주택 등 약 200억원대에 이르던 이씨의 재산은 채권자들에 의해 경매로 사라졌다.

부도 후 혼란 수습과정에서 만신창이가 된 이인애 사장은 현대를 상대로 납품 대금을 제대로 결재해달라고 줄기차게 요구했다. 우선 현대정공 직원과 대리인이 설계변경 대금이라며 받아 착복한 1억5천만원부터 돌려달라고 요구하자 현대측에서는 이씨를 오히려 ‘명예훼손죄’로 고소했다. 검찰에서 이씨는 무혐의처분을 받았지만 설계변경비 명목으로 뇌물을 챙긴 이들은 허위 서류를 제출해 수사기관을 농락하는 수법으로 교묘히 법망을 빠져나간 것으로 확인됐다.

이 소송을 계기로 법도 결국 재벌 편이라고 생각한 이씨는 각계에 진정서를 내는 한편 납품 대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아 중소기업을 망하게 만든 책임을 지라며 현대자동차그룹 경영 수뇌부를 상대로 지난 1년여 동안 일인시위를 벌여왔다. 비가오나 눈이오나 최초 계약 당사자였던 박정인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 집 앞과 사옥 앞에서 시위를 벌이며 납품 대금 결재를 요구하자 박부회장은 마침내 지난 8월 이씨를 만나 문제를 해결해주겠다고 약속했다.

현대정공에서 철도사업을 이어받아 맡고 있는 현대차그룹 계열사 로템과 이씨 사이의 협상은 처음에는 순조로웠다. 박부회장의 지시를 받은 로템측은 정신산업의 근거서류를 토대로 실제 공사대금 확인 작업에 들어가 지난 9월 말까지 총 금액이 51억7천만원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이씨에게 관련 정산 서류를 뽑아줬다. 1차 계약서 당시 약정 대금 32억원을 뺀 24억여원을 못받았다는 점을 서류를 근거로 양측이 검증해 확인한 것이다. 그러나 이인애씨는 최초 계약 당시 추가 물량 300유닛 납품 분 24억원과 현대정공측 인사들이 뇌물로 가져간 1억5천만원 등을 합쳐 총 54억3천만원이 실제 정산받아야 될 대금이라고 맞섰다. 결국 서로의 입장차가 좁혀지지 않는 가운데 로템측은 지난 10월 초 돌연 태도를 바꿔 이씨에게 6억5천만원을 현금으로 줄테니 끝내자고 제안했다. 분을 참지 못한 이인애씨는 다시 박정인 부회장을 상대로 1인시위에 돌입했고 그 와중에 분당 자택앞 불상사가 벌어진 것이다.

이런 사태 전개에 대해 현대차그룹 로템 담당자는 “법적으로는 추가 납품대금을 주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검토를 끝냈지만 연로한 할머니라는 점을 감안해 도의적으로 여생이나 편히 살라고 6억5천만원을 제시했는데 무리하게 50억원을 꼭 받아야겠다며 박차고 나가는 바람에 일이 이지경이 되었다”라고 말했다. 이인애씨의 정산 요구가 완강하자 로템에서 대한중재상사원에 채무부존재확인을 청구했다고 한다.

현재 10여일째 분당 재생병원에 입원해 합병증을 호소하는 이인애씨는 “이것이 오늘날 대기업과 중소기업 상생이냐”며 오열했다. 대중소기업상생협회 조성구 회장은 “정신산업과 현대측의 분쟁이 대기업 횡포의 전형이라고 보고 공정위와 법정으로 끌고 가 대응하기로 했다”라고 말했다.

2. LG텔레콤에 특허 강탈당한 서오텔레콤 김성수 사장의 투쟁기록

 
20여년 동안 기술 하나로 중소기업을 일궈온 정보통신 분야 전문 벤처기업 서오텔레콤(사장 김성수)은 대기업 LG텔레콤이 특허를 도용해갔다며 3년 째 특허 분쟁을 벌이고 있다. 서울 송파 석촌동에 자리한 서오텔레콤 사장실에는 손때묻은 특허 분쟁 관련 서류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김성수 사장이 LG와 악연을 맺은 때는 20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김사장은 위급상황에서 핸드폰에 장착한 비상 버튼을 2~3초간 누르면 입력해둔 긴급 연락처로 구조를 요청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진 이른바 ‘이머전시콜’개념을 최초로 고안한 뒤 특허를 출원했다. 이 특허에는 핸드폰 폴더를 열지 않고도 주머니 속에서 비상버튼을 누를 수 있는 기능, 배터리 전원이 꺼졌을 때도 비상 생명 전원으로 작동하는 기능 등을 포함해 14가지 핵심 기술을 담고 있었다.

“발신자 표시만으로도 1년에 4천억원의 수익이 생기는데 우리가 개발한 이머전시 특허 기술의 수익모델도 줄잡아 연간 4백억 원대는 될 것으로 분석하고 대기업과 접촉하기 시작했다”. 특허 출원 뒤 김사장이 LG전자통신연구소장을 만나 기술 사용을 제안하자 ‘훌륭한 아이디어이지만 실용화하기에는 시기가 이르다’라는 답변을 들었다. 대신 LG정보통신과 상의해 답변을 줄테니 모든 자료를 넘겨달라는 요청에 특허기술 자료 일체를 넘겨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별다른 소식이 없는 가운데 2003년 김사장의 특허는 등록허가가 나왔다. 김사장이 다시 LG텔레콤과 LG정보통신의 문을 두드리고 자료를 제공했지만 별 반응이 없었다.

그러나 이듬해인 2004년 김사장은 텔레비전 광고를 보다 깜짝 놀랐다. LG정보통신에서 ‘위급상황에서 버튼 하나로 동시 3인에게 연락을’이라는 구호 아래 알라딘이라는 핸드폰을 출시해 대대적 광고를 내보내기 시작한 것이다. 직감적으로 자기가 제공한 특허 기술을 도용해갔다고 판단한 김성수 사장은 LG텔레콤을 특허 침해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이에 맞서 LG텔레콤측에서는 김사장의 특허에 대해 무효심판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당시만 해도 김사장은 특허청이 중소기업의 기술에 손을 들어줄 것이라고 철썩같이 믿었다고 한다. 그러나 1심에서 특허청은 6개 항목은 서오텔레콤의 손을, 나머지 6개 항목에 대해서는 LG텔레콤의 손을 들어주었다. 특허심판원이 김사장의 특허를 사실상 쓸모없게 만드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검찰도 이를 근거로 LG텔레콤의 특허침해 소송에서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김사장은 이에 불복해 이 사건은 현재 대검에 계류돼 있다.

특허심판원은 이 특허 분쟁 판결 과정에서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일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김사장측에게 패소를 안긴 6개 항의 항목에 대해 특허청은 판결 전 의견서를 내도록 했다. 김사장과 변리사는 특허청 주문에 따라 각종 증거를 갖춰 특허청에 의견서를 꼼꼼하게 써냈다. 그러나 이 사건 판정을 맡은 대전 특허 심판원은 서울 심판원에 계류되어 있던 김사장의 의견서를 받아보지도 않고 임의로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에 대해 김사장은 “특허청조차도 증거가 도착하기 전에 서둘러 대기업 편들기 결정을 내려버리는 현실에서 중소기업이 설 땅은 어디인가”라고 항변했다. 결국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인 이 분쟁은 비로소 모든 증거를 토대로 한 객관적인 판정 절차를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1심에서 LG측은 김사장의 특허에 기술의 진보성이 없다는 논리를 폈지만 2004년 LG는 이분야에 대한 자기네 특허를 내면서 김사장이 2001년 출원한 특허 내용 3건과 일치하는 기술 2가지를 출원함으로써 ‘기술의 진보성’을 사실상 인정한 것으로 드러났다.
LG텔레콤은 특허 도용 의혹으로 분쟁에 휘말린 뒤 인기리에 판매하던 알라딘 단말기를 생산 중단시킨 상태이다. 중소기업 특허 강탈 의혹에 대해 LG텔레콤 측에서는 “서오텔레콤이 낸 특허에서 핵심 8가지 항목은 별로 기술의 진보가 없는 것이라고 본다. 모든 시시비비는 대법원에서 가려질 것이니 그 결과에 따르겠다”라고 말했다.

김성수 사장은 LG텔레콤의 특허 강탈 의혹을 규명해나가는 과정에서 대기업이 중소기업 특허를 강탈해가는 숨은 전략을 발견했다. 2005년 3월30일 LG전자의 특허전략 세미나에서 해당 기업 특허 담당 부장이 주제 발표한 녹음 테이프에는 다음과 같은 수법이 적나라하게 담겨 있었다. ‘중소기업과 개인 발명가들이 기술과 아이디어를 들고 찾아오면 그 기술이 좋다는 내식을 하지 마라, 중소기업과 특허 분쟁이 발생하면 즉시 특허권리무효심판청구를 해놓고 시간끌기 작전으로 몰고가라, 시간을 끌면서 의견서를 많이 제출하도록 하는 것도 작전이다, 특허 분쟁을 하는 기업의 특허를 못쓰게 만들어라’. 이로 미뤄보면 웬만한 한국 대기업은 중소기업의 특허를 이런 비열하고 부도덕한 방법으로 강탈하는 데 혈안이 돼 있다는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이같은 고발과 싸움을 통해 중소기업 특허 지키기의 대부를 자임하게 된 김성수 사장은 이렇게 포부를 밝혔다. “내가 지난 3년간 겪은 특허 분쟁 노하우를 활용해 대학과 중소기업 관련 행사장을 돌며 중소기업의 대기업 대응 전략 특강을 다니려고 한다”.

3. 포스코 납품업체 (주)오성 정성훈 사장의 피해사례

전남 곡성군 석곡면 석곡농공단지에서 18년째 포스코 광양제철과 하청관계를 맺어온 중소기업 (주)오성의 정성훈 사장은 요즘 하루가 멀다하고 서울을 오르내린다. 공정거래위원회와 여야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대기업 포스코로부터 입은 불공정 거래 피해로 회사가 부도난 데 대한 억울함을 신원하기 위해서다.

1989년 거래를 튼 이래 10년 동안 광양제철에 납품하는 제품마다 품질 좋다는 평을 받으며 원청업자와 끈끈한 관계를 맺어온 정사장과 광양제철 사이의 우의에 금이 가기 시작한 때는 1998년 3월. 당시 광양제철소 냉연부에서는 철판을 감을 때 가운데 지주 대롱으로 사용하는 페이퍼 슬리브 신제품을 정사장에게 개발해달라고 의뢰했다. 심혈을 기울여 정사장이 신제품 개발에 성공하고 특허까지 출원하자 냉연부 담당자는 1999년 11월 ‘월 1만개~1만5천개를 납품할 수 있는 양산체제를 갖춰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평소 거래 과정에서 포스코 현장 책임자의 발언은 신뢰의 보증수표라고 할만큼 책임감있는 기업이라 여겨온 정사장이었기에 요구사항대로 설비를 모두 갖춘 후 약속한 물량 납품을 받아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오성이 개발해준 제품을 사용해 냉연부의 크레임을 해결하고 난 뒤부터 포스코 현장의 입장은 달라져 있었다.

 
당초 자회사인 포철기연에서 납품받던 철판 슬리브를  페이퍼 슬리브로 대체하려던 계획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으니 좀 기다리면서 대량 양산 체제부터 갖추라는 답변이었다. 정사장은 그의 말을 믿고서 2000년 5월까지 11억원의 빚을 내 석곡농공단지에 공장 시설을 갖추고 제품 생산에 들어갔다. 그러나 물건은 넘쳐 공장 창고에 가득 차도 포스코에서는 도시 납품을 받아가지 않았다. 결국 자금난으로 견디기 힘들어진 정사장은 당시 한수양 광양제철소장(현재 포스코건설 사장)을 찾아가 사정을 하소연했다. 자초지종을 듣고 난 한소장은 “포스코 직원이 개발을 시키고 원가및 품질 면에서 우수하다고 인정한 뒤 공장까지 지으라고 했으니 중소기업 어려운 사정을 감안해 물건을 써주라”라고 아래에 지시했다. 한소장의 지시에 따라 냉연공장에서는 테스트 과정을 거쳐 오성의 페이퍼 슬리브를 일부 납품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매월 1만5천개의 생산 공장 설비에 비해서는 턱없는 물량이었다. 2001년 4월부터 1년 동안은 월 350개, 2002년 8월부터는 월1200개씩만 소화해준 것이다. 줄곧 약속한 대로 납품 물량을 증대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별 진척이 없다가 2002년 8월 들어 포스코측은 ‘물량을 늘여줄테니 단가를 15% 낮추라’고 요구했고 정사장은 별수 없이 이를 들어주었다. 그러나 단가만 인하했지 물량 증대는 해주지 않았다. 결국 피말리는 나날을 견디다 못한 정사장은 2004년 7월 부도 위기에 처해 포스코 감사실에 조사를 의뢰했다. 감사실에서는 “직원의 업무적 잘못은 발견할 수 없었지만 앞으로 잘 거래해 보라”라는 요지의 답변을 보내왔다고 한다. 감사가 끝나자 당시 조아무개 냉연부장과 이아무개 기술개발그룹장은 지금까지 중소기업을 힘들게 만든 점을 사과하고 잘해보자고 한 후 또다시 테스트를 하겠다고 나왔다. 그러나 포스코 실무자들은 형식적인 제품 테스트 절차를 밟다가 결국 ‘철강 시황 악화 및 생산공정 부하’등 포스코 내부 사정을 이유로 테스트를 사실상 종결했다. 견디다 못한 정사장은 이아무개 냉연부장을 상대로 물량을 적게 가져가려면 단가라도 다시 인상해달라고 요구했다. 이부장은 정사장이 등록한 특허를 제출해주면 이를 근거로 단가를 인상해주겠다고 제안했다고 한다.

오성의 특허등록 사양을 제출받은 이부장은 이를 단가 인상 근거로 활용하는 대신 내용을 복사해 특허 번호만 삭제한 채 ‘포스코자재규격서’로 둔갑시켰다. 극심한 배신감을 느낀 오성 정사장은 지난해 11월 포스코 윤석만 부사장(현 대표이사)을 찾아가 면담했다. 이 자리에서 윤 부사장은 “포스코 직원이 불은 질러놓고 (오성이 잘못되는 것을) 묵인 내지 방치했구만. 이 건으로 포스코가 실수한 것은 두가지인데 우선 만개 이상 수요가 있다고 말한 것과 생산한 제품의 적용 시기를 7년째 딜레이시킨 것이구만. 내가 상세하게 파악해서 조치를 취하겠다”라는 요지로 정사장을 달랜 후 돌려보냈다.

그러나 윤부사장의 약속대로 조사 후 합당한 조치를 기대하던 오성의 정사장에게 날벼락같은 일들만 닥쳤다.  면담 당시 이번 사태에 초기부터 책임이 있다고 윤부사장에게 알려준 최아무개씨와 황아무개씨는 모두 계열사 사장과 임원으로 영전해갔다. 또 지난해 11월 말 포스코는 오성의 정사장이 제출한 특허장을 ‘포스코자재규격서’로 둔갑시킨 뒤, 오성이 어렵게 개발해 7년간 생산해온 페이퍼슬리브를 공개경쟁입찰에 부쳐버렸다. 2005년 12월22일 결국 포스코는 S사를 이 제품 납품업자로 선정했고 결국 8년째 매달려온 오성은 부도를 내고 말았다. “말로는 윤리경영을 강조하고 세계 최고임을 자랑하는 포스코가 이면에서 이렇게 중소기업을 죽일 줄은 몰랐다”. 올들어 정사장은 포스코의 7년간의 행위를 공정위에 신고하는 한편, 냉연공장 현장 책임자 등 6명의 포스코 직원들을 사기 등의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그러나 공정위에서는 역시 대기업 포스코 편이었다. 최근 공정위 담당자는 민주당 이승희 의원실에서 국감 자료를 요구하자 정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포스코 같은 대기업은 이길 수 없으니 아예 이길 생각을 마라, 그 배경에는 막강한 자금으로 국회와 청와대 언론에 로비를 하는 힘이 작용하고 있다”는 요지로 발언하며 정사장을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 취급했다. 결국 공정위 사무관의 이런 발언을 낱낱이 녹음한 정사장은 테이프를 국회 이승희 의원에게 넘겼고, 이의원은 지난 10월16일 공정위 상대 국감장에서 테이프를 틀며 공정위의 저자세를 질타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사태 전개에 대해 포스코 측에서는 무척 당혹스럽다는 반응을 보이면서도 내부적으로 조사한 결과 계약서 등 뚜렷하게 책임을 물을만한 요인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8년간 진행되어온 ‘중소기업 고사’ 사건이었던만큼 관련자들이 많이 교체된 데다 모두 자기가 유리한 방향으로 진술을 한 결과인 것이다. 이에 대해 부도난 오성의 정사장은 자신이 이 사태에 책임있는 포스코 관련자들과 지난 수년간 만나면서 기록해둔 대화 녹취록 수천페이지를 갖고 있다며 이를 토대로 공정한 조사를 다시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포스코측에서는 “중소기업 상생에 비교적 앞장서온 포스코 기업 이미지에 이번 사건이 큰 타격을 미치지 않을까 염려된다. 오성 정사장이 근거 테이프들을 가지고 있다면 이를 넘겨받아 문제를 대승적으로 해결하고 현장의 잘못된 관행을 점검해 기업 이미지에 맞게 고치기를 원한다”라고 밝혔다.

4. KT의 불공정거래로 부도피해를 호소하는 텔컴전자의 사연

 
유선 문자메시지 전화기를 국내 최초로 개발한 벤처기업 텔컴전자(오춘택 대표)는 KT의 불공정 거래 행위로 회사가 문을 닫게 되었다며 줄기차게 국회와 공정거래위원회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2001년 4월 자본금 5억원에 16명의 직원으로 출발한 텔컴전자는 휴대폰 문자메시지 기술 보급에 착안해 유선전화도 저렴한 가격대의 문자메시지 기술을 개발하면 중소기업 창업아이템으로 성공할 수 있다고 보고 기술 개발에 매달려 제품화에 성공했다. 이 기술을 일단 이탈리아에 수출해 호평을 받은 오춘택 대표는 국내 유선전화 업계의 시장 지배적 사업자인 KT측에 기술자료와 이탈리아 수출 현황 정보를 제공하고 적용해달라고 요청했다. KT 중앙연구소측은 텔컴전자의 기술과 아이디어를 반기며 같이 손잡고 연구를 진척시켜 국내에 보급해보자고 화답했다. 오대표는 “KT와 협력해 이 분야 기술을 국내 표준으로 선정받으면 시장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으리라 보고 연구 개발에 적극 협조했다”라고 말했다.

공조 끝에 KT는 유선 문자메시지 기술을 국내에 서비스하기로 했고, 2002년 4월 텔컴전자에서는 이 기술을 적용한 ‘리빙넷’이라는 단말기 공급권을 땄다. 당시 텔컴전자를 담당하던 KT 직원은 오춘택 대표에게 전화기 4만대를 준비하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계약서를 써달라고 했지만 KT측은 사내판매와 위탁대리점 판매를 통해 소화할 테니 그냥 서둘러 공급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KT에서는 텔컴전자측이 생산해 공급하는 단말기에 ‘KT 리빙넷’이라는 로고까지 붙여달라 요구했지만 납기일이 급해 전화기 박스에만 그 로고를 달았다.
그러나 오대표가 생산했다는 단말기 4만대는 의외로 KT 사내 판매가 부진했다. KT는 직원 상대 판매분 850대와 고객사은잔치 판매분 650대를 합쳐 총 2150대만 납품받아간 채 끝이었다. 이렇게 되자 26억원의 제조 원가를 들인 텔컴전자는 부도 위기에 처해 대책 마련을 호소했다. KT측은 상품을 바꿔서라도 이 기술을 계속 활용할 생각이니 참고 기다리며 새로운 상품을 개발해 제안하라고 오대표를 달랬다고 한다.

이후 2003년 KT는 텔컴전자가 제안한 기술로 ‘ANN전화기’를 선보여 역시 텔컴전자에 단말기 특판 공급권을 주었다. 손실보상 차원에서 당시 공급권을 받았다는 오대표는 첫해 30만대 공급 요구를 받았지만 물량 소화가 가능한 8만대를 만들어 6만대를 공급했다. 오대표가 제안한 기술이 시장에서 빛을 보는 순간이었지만 정작 텔컴전자는 2만대의 재고가 쌓여 원가도 건지지 못했다는 것. 인기를 끌던 이 전화기에 대해 KT는 2004년 들어서도 특판을 실시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KT가 공개입찰에 부쳐 기술 동업자인 텔컴전자를 탈락시키고 삼성전자와 LG전자, 그리고 아프로텍사를 납품업체로 선정했다. 결국 20억원대의 피해를 입은 텔컴전자와 외주업체는 하루아침에 도산하고 말았다. 텔컴전자가 처음 KT에 제안한 아이디어와 아이템은 시장에서 성공했으나 정작 KT의 협력자였던 텔컴전자는 망한 셈이다. 벤처기업의 아이디어를 보호해주기는 커녕 제공자를 부도로 내몬 KT의 처사에 실망한 오대표는 KT가 이 사업 과정에서 네차례에 걸쳐 공정거래법을 위반했다며 공정위에 제소했다. 그러나 공정위는 심사불개시 및 심의 절차를 종료하는 방식으로 KT측의 손을 들어주었다. 

오대표는 “KT와 같은 시장 지배적 사업자가 기술과 아이디어를 제공한 중소기업을 이렇게 도산시키는 방식으로 영업하는 데도 정부가 이를 방치하는 실정에서 벤처기업이 설 땅은 어디냐”라고 항변했다. 오대표는 대중소기업상생협회에 자신의 억울함을 하소연했고, 지난 10월 텔컴전자 사태도 국회 국정감사에서 대기업 불공정 사례로 도마에 올랐다.

텔컴전자의 부도 사태와 불공정 하도급 주장에 대해 KT측은 “KT는 단말기 4만대를 만들라고 계약서를 써준 일이 없다. 사전 수요예측을 잘못한 텔컴전자에 부도의 원인이 있었다”라고 책임을 떠넘겼다. 또 최초 유선문자메시지 전화기 아이디어 제공자이자 기술협력자였던 텔컴전자를 탈락시킨 이유에 대해서는 “납기 지연이라든지 품질 하자로 인해 반품이 생겨 불가피하게 취한 조치였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KT같은 벤처기업의 기술과 아이디어를 이용해 시장을 선점한 뒤 협력자를 내치는 영업 방식은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경영윤리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피할 길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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