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도 대기업 편이었다”
  • 유명옥(서오텔레콤 김성수 사장 부인) ()
  • 승인 2006.11.17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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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 벤처기업인 부인이 쓴 ‘나와 남편의 6년 투쟁기’

 
나는 중소 벤처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남편을 둔 평범한 가정의 주부로서 회사 임직원 및 남편의 어려움과 억울함을 곁에서 지켜보다 더는 바라볼 수 없어 이렇게 글을 쓴다.

남편은 20년 전 대기업에서 근무할 당시 두 군데의 중전기 부품 생산업체에 파견 기술 지도를 해오면서 국내에서 생산되고 있는 제품들이 외국 수입 제품에 비해 너무 낙후되었다며 갈등을 해오다가 마침내 조그만 회사를 설립했다. 전량 수입에 의존해오던 원자력발전 설비의 핵심 부품 1백40여 아이템을 우수한 품질과 성능으로 국산화 개발에 성공(수천억원의 수입 대체 효과)하면서 남편이 원하던 중전기 산업 발전에 크게 기여했으며, 그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산업 훈·포장 등 많은 공로패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대기업인 LG텔레콤과의 특허 분쟁 소송에 휘말려 연구실이 아닌 정책 토론장이나 법정을 드나들면서 생산성 없는 자료 수집과 소송 준비로 밤을 새우고 있다. 개인은 물론 국가적으로도 얼마나 큰 손실인가.

중소기업인의 아내들은 가슴 졸이며 살아가고 있다. 나는 가장 가까이에서 지금 LG와 소송 중인 이 기술이 생겨나게 된 동기나 아이디어, 실험 과정, 특허 취득 과정, 그리고 LG텔레콤을 오가며 진행되던 모든 과정을 정확하게 지켜본 산증인이다. 모든 기술이 그렇듯 발명이 되고 개발이 되면 별것 아닌 것 같고 조금만 전문 지식이 있으면 누구나 다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그 기술이 생겨날 당시(6년 전)에는 아무도 생각을 하지 못했고 예측도 하지 못했다. 많은 실험과 시행착오를 겪으며 산고와 같은 고통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 원천 기술을 가지고 전문가들이 모방하고 응용하기는 쉽다. 더욱이 하루가 멀다 하고 기술이 빠르게 진화하는 요즈음에는 원천 기술보다 더 좋은 기술로 개발하여 활용성이 뛰어난 기술과 제품으로 진보를 하는 경우도 있다.

중소기업 기업 죽이면 국가 경쟁력도 상실

남편이 상고서를 대법원에 접수하는 날 나도 그곳에 따라갔었다. 정문에 큰 글씨로 ‘자유·평등·정의’라고 써 있는 걸 보았다. 나는 이번 사건을 죽 지켜보면서 만인을 위해 존재한다는 법이 만인 앞에 평등하지도, 정의롭지도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아이러니하게 다른 곳도 아닌 대법원에서, 또 법 앞에서 뼈저리게 실감했다. 옳고 그름으로 결론이 지어지는 게 아니라 힘 있는 어떤 쪽으로 표시 안 나게 서서히 만들어져가고 있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물론 대법원 판결만은 정의가 살아 있다는 것을 꼭 보여주실 줄 믿고 희망을 걸어본다.

힘있고, 권력 있고, 조직력 있는 대기업의 횡포 앞에서 누가 대신 해줄 수도 없는 일이기에 다른 사업이나 기술 개발은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서서히 목을 졸라오는 이 무서운 전쟁에 시달리고 있다. 상대편에서 제시해오는 의견서에 첨부된 각국의 자료들을 번역하고 분석해 우리의 기술과 구별이 되는 이유를 스스로 해명하고 반박을 해야 한다. 우리가 선임했던 변호사도 변리사도 결정적인 순간에 몸을 사리는 현실 앞에 천해고도에 홀로 서 있는 남편이 너무 안쓰럽고 불쌍하다. 남편은 착하고 순진한 엔지니어이다. 자신의 입지가 불리해져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변리사 처지를 이해해야 한다며 하룻밤을 꼬박 새우며 고민하는 남편을 지켜보았다. 몇 년 전 LG연구소를 다녀와서 이 기술이 채택되면 무료로 사회에 기탁하겠노라고 말하던 남편이었다. 꼭 이래야만 했는지, 꼭 여기까지 와야 했는지 LG 사장님에게 묻고 싶다.
그 착한 사람을 꼭 이렇게 대법원까지 가게 해야 했는가? 참고하여 협조 하겠노라고 해서 아낌없이 내어준 자료를 가지고 분석해 항소하는 대기업의 처사 앞에서 순진한 남편은 며칠 동안 말을 할 수 없었다.

이 일을 겪으면서 우리 부부는 단밥과 단잠을 못 먹고 잠도 못 자고 있다.
머리도 많이 빠지고 얼굴에 웃음기가 사라졌다. 남을 진흙 속에 빠뜨리려면 자신도 진흙탕 물을 뒤집어써야 하는 법이다. 무조건 특허를 피할 것만이 아니라 제품을 만들기 전에 한번 타협이라도, 아니 한번 만나 보기라도 하시지 그랬나 아쉬움이 크다.

나는 우수 중소기업들이 반짝반짝 빛나는 금광이라고 생각한다. 금광석을 캐내어 다듬고 정제하여 경제성 있는 금괴를 만들어내는 것이 대기업들의 힘이자 의무라고 생각한다.소모적인 우리끼리의 전쟁은 이제 그만하고 좋은 기술들을 모두 모아서 글로벌 시대에 맞는, 그야말로 국가 경쟁력을 갖는 명품을 만들어서 세계 속에 우뚝 서는 ‘기술 한국’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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