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스타 코끝도 못 건드리는가
  • 소종섭 기자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6.11.20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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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은행 헐값 매각 의혹 사건, ‘진실 규명·단죄’ 사실상 물 건너가
 
지난 11월16일 오후 2시30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730호. 기자들에게 브리핑을 시작하는 채동욱 대검 수사기획관의 표정은 어두웠다. 이날 아침 서울중앙지방법원 민병훈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대검 중수부에서 청구한 유회원 론스타코리아 대표와 정헌주 허드슨어드바이저코리아 대표의 구속영장을 기각했기 때문이다.
검찰은 특히 유씨에 대해 서울지검에서 무혐의 처리했던 2년 전 국회 위증죄까지 추가하는 등 그를 구속하기 위해 안간힘을 기울였다. 하루 전인 11월15일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된 데 이은 충격파가 하루 종일 검찰에 휘몰아쳤다.

유대표와 변 전 국장은 외환은행 헐값 매각 의혹의 실타래를 풀기 위해서는 반드시 구속해야 하는 핵심 인물이라고 검찰이 지목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법원에 의해 구속영장이 기각됨으로써 외환은행 헐값 매각 의혹과 관련한 검찰 수사는 사실상 동력을 잃었다.

채기획관은 이날 법원에 대해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책임을 전가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라고 했지만, “해석은 자유다”라며 굳이 법원과의 갈등을 부인하지도 않았다. 어투는 차분했지만, 속은 부글부글 끓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채기획관이 말을 잇는 동안 브리핑룸에는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변양호씨는 외환은행 매각과 관련해 핵심적이고 주도적으로 역할을 한 사람이다. 이강원 전 외환은행장은 겉으로 내세운 사람에 불과하다. 유회원씨는 일종의 인수팀장이었다. 스티븐 리가 도망가 있는 상황에서 그는 론스타의 국내 1인자다. 그런데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이들에 대한 영장을 기각하면 어떻게 수사를 하느냐. 이제 말로 대응하지 않겠다. 최선을 다하되 결정적 의혹에 대한 수사가 미진하더라도 더 이상 수사를 진행하기가 어렵다고 판단되면 종결하겠다.”

 
채기획관의 언급은 검찰 전반의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다. 최근 검찰 주변에는 온갖 소문이 나돌았다. ‘왜 법원이 영장을 자꾸 기각하느냐’라는 것이 주된 화제였다. 뚜렷한 근거는 없었지만, “법원이 무언가 다른 사정이 있는 것 아니냐”라는 추측이 이어졌다. 이용훈 대법원장과 관련된 확인되지 않은 얘기들도 서초동 주변에 나돌았다. 한 검사는 “최근 법원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다. 다른 배경이 있는 것 같다. 이와 관련해 일부 언론에서도 취재하는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검찰은 겉뿐만 아니라 속에서 오히려 더 깊게 법원과 갈등하고 있었다.

검찰, 머지않아 중간 수사 결과 발표할 듯

채기획관의 토로는 ‘론스타 수사’로 불린 외환은행 헐값 매각 의혹 수사가 사실상 현 수준에서 끝낼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음을 의미한다. “(유회원씨의 경우) 법원 요구에 따라 상당 부분 새로운 혐의를 추가해서 청구했다. 기존 영장과 다르다”라고까지 한 영장이 기각되었으니, 검찰로서는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게 된 것이다. “수사 일정을 전면 조정하겠다”라는 것으로 볼 때 검찰은 조만간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할 듯하다. 유·변 씨는 불구속 기소하고, 체포영장이 발부된 엘리스 쇼트 론스타 부회장, 마이클 톰슨 론스타 이사 등은 기소 중지할 가능성이 높다.

지금까지 외환은행 헐값 매각 의혹과 관련한 검찰 수사는 크게 두 줄기로 진행되었다. 하나는 외환은행 매각 의혹과 관련한 부분이고, 다른 하나는 외환카드 주가를 조작한 부분이다. 이 가운데 외환은행 매각 의혹과 관련한 수사는 사실상 벽에 부닥쳤다. 검찰은 변양호 전 재경부 금융정책국장을 고리로 보고 수사해왔는데, 의혹을 밝혀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검찰은 변 전 국장이 현대·기아차 비자금 사건에 연루되어 구속된 지난 6월부터 외환은행 매각과 관련해 그를 조사해왔다. 소환 조사한 것만 10여 차례가 넘는다. 하지만 “내가 한 일 가운데 가장 잘한 일이 외환은행을 매각한 것이다”라며 소신을 굽히지 않는 그를 꺾지 못했다. 변씨는 검찰에서 “스티븐 리와 만나 도와주겠다고 말한 적이 있으나, 특별한 의미가 없는 말이었다. 당시 긴박한 상황에서 찾아오는 투자자들에게 다 그렇게 말했을 뿐이다”라고 진술했다.

 
검찰은 변씨를 구속하기 위해 지인들의 계좌까지 샅샅이 훑었으나 수뢰한 부분을 찾아내지 못했다. 검찰은 그가 재경부를 퇴직한 뒤 창업한 보고펀드에 외환은행이 4백억원을 투자한 것과 외환은행이 론스타에 매각된 것이 관련성이 있다고 보고 있으나, 뚜렷한 증거를 확보하지는 못했다.

“헐값 매각 주도한 ‘막후 디자이너’ 있다”

서초동 주변에서는 검찰이 지난 11월15일 구속한 하종선 현대해상화재보험 대표에 대한 수사에 기대를 걸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및 조세범처벌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었다. 변호사로 있던 2003년 6월, 론스타로부터 “외환은행 인수 자격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부탁과 함께 1백5만 달러(당시 돈으로 12억여 원)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는 영장실질심사에서 “63만 달러는 아예 받은 적이 없고, 42만 달러는 자문료 명목으로 받았다”라며 혐의를 부인했다.

하씨와 변씨는 고교·대학 동기 동창으로 친한 사이다. 하씨가 현대차 상임법률고문으로 있을 때 고위 임원의 부인이 론스타코리아 전 대표인 스티븐 리의 인척이었다. 하씨는 이런 관계로 스티븐 리와 알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론스타와 변 전 국장 사이에 고리 역할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던 셈이다. 하씨는 변씨가 보고펀드를 창업한 뒤 외환은행 고위 관계자와 만나 “보고펀드에 투자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하씨가 받았다는 12억여 원의 용처와 관련해 “수사 중이다”라고 했지만, 한 수사 관계자에 따르면 이미 계좌 추적을 끝냈다. 하씨의 존재가 최근에야 드러났지만, 검찰은 이미 수사 초기부터 그를 주목하고 추적했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12억여 원 가운데 특별히 문제되는 돈은 없는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 말대로라면 하씨에 대한 조사에서도 큰 성과를 얻기는 어려워 보인다.

 
하·변 씨에 대한 조사에서 새로운 것을 건져내지 못하면 진작부터 거론되었던 ‘외환은행 매각을 둘러싼 의혹의 실체’는 영원히 미스터리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당시 재경부나 청와대 관련자들은 검찰 조사에서 “변 전 국장이 그렇게 하자고 해서 했다”라고 책임을 미룬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 사건을 잘 아는 사람들은 실무자 차원을 넘어서 ‘막후 디자이너’가 있다는 의혹을 거두지 않고 있다. 대주주가 수출입은행 등 정부 기관이었고, 사모펀드인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할 수 있었던 것은 ‘배경’이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검찰은 아직 이헌재 전 부총리는 조사하지 않았으나, 당시 청와대 정책수석이었던 권오규 경제부총리와 김진표 당시 경제부총리, 이정재 당시 금융감독위원장 등 고위 관료들을 참고인으로 불러 조사했다. 그러나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386들이 론스타 사건으로 이헌재 공격?

외환은행 매각과 관련한 정·관계 연루 의혹이 미궁 속으로 들어가는 것과 달리 검찰은 외환카드 주가 조작 부분에서는 나름의 성과를 올렸다. 법원이 엘리스 쇼트 론스타 부회장, 마이클 톰슨 론스타 법률자문 이사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한 것이 상징적이다. 법원은 “피의자들이 체포 영장에 명시된 죄를 범했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고, 피의자들의 기소가 가능할 정도로 수사가 진척되어 있다고 판단된다”라고 영장을 발부한 이유를 밝혔다.

검찰은 론스타가 2003년 11월17일부터 7일간 외환카드 감자설이 퍼지면서 주가가 폭락하자 싼값에 주식을 사들여 소액주주들에게 2백29억원의 손실을 입혔다고 보고 있다. 의도적으로 감자설을 퍼뜨려 주가를 떨어뜨리는 식으로 주가를 조작했다는 것이다.

 
외환카드 주가 조작 사건은 지난 10월17일 검찰이 씨티글로벌마켓증권을 느닷없이 압수 수색한 뒤 불거졌다. 이 회사는 외환은행 재정자문사였던 살로먼 스미스바니를 합병·매수했다. 압수 수색에서 검찰은 살로먼 스미스바니측과 론스타- 외환은행- 금융당국-김앤장 관계자들이 주고받은 다량의 e메일을 확보했다. 이들 e메일을 분석하다가 론스타 고위 관계자들이 주가를 조작한 혐의를 포착한 것이다.

변양호 전 국장이 외환은행 이달원 부행장이나 스티븐 리와 나눈 얘기, 하종선 대표와 김형민 외환은행 부행장이 나눈 얘기 등이 검찰이 압수 수색하는 과정에서 다 확보되었다. 한 관계자는 “나도 기억하지 못하는 얘기들이 적혀 있었다”라고 말했다. 혐의를 입증할 수 있다고 자신하는 검찰은 이와 관련해 론스타 쇼트 부회장· 톰슨 이사에 대해 최대한 미국측에 빨리 범죄인 인도 요청을 할 생각이다. 그러나 범죄인 인도 요청이 받아들여진다고 해도 인도까지는 빨라야 2~3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온 국민의 관심 속에 이루어졌던 외환은행 매각 의혹 사건에 대한 수사 결과가 신통치 않을 것으로 전망되면서 검찰의 고민도 커지고 있다. 주가 조작 사건에서 거둔 성과를 내세우고 법원의 영장 기각을 공격하면서 나름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정작 국민들의 관심사인 ‘헐값 매각 의혹’과 관련해서는 몇 개월간 수사했음에도 실체를 밝혀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검 중수부가 전력을 기울인 수사이기 때문에 검찰로서는 앞으로 특단의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상황에 몰렸다.

이런 가운데 이 사건 수사가 어떤 후폭풍을 불러올지 주목된다. 론스타측에서는 “외교 문제로 비화할 수 있다”라고 큰소리치고 있다. 론스타는 부시 미국 대통령의 고향인 텍사스를 기반으로 설립되었고, 미국 연기금·사립학교 재단 등이 투자자로 참여하고 있다. 이 사건 관련자들 사이에서는 ‘386 공격론’이 나오고 있다. “현 정권 386들이 말을 잘 듣지 않은 이헌재 전 부총리 등을 론스타 사건으로 공격하고 있다”라는 것이다. 물론 근거는 없다.

외환은행 매각 의혹 사건, ‘의혹’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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