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짓는 집, 집이 키우는 인간
  • 도종환(시인) ()
  • 승인 2006.11.24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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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할머니는 겨울이면 무를 썰어 말리셨다 / 해 좋을 땐 마당에 마루에 소쿠리 가득 / 궂은날엔 방 안 가득 무 향내가 났다 / 우리도 따순 데를 골라 호박씨를 늘어놓았다 / 실겅엔 주렁주렁 메주 뜨는 냄새 쿰쿰하고 / 윗목에선 콩나물이 쑥쑥 자라고 / 아랫목 술독엔 향기로운 술이 익어가고 있었다 / 설을 앞두고 어머니는 조청에 버무린 / 쌀 콩 깨 강정을 한 방 가득 펼쳤다 / 문풍지엔 바람 쌩쌩 불고 문고리는 쩍쩍 얼고 / 아궁이엔 지긋한 장작불 / 등이 뜨거워 자반처럼 이리저리 몸을 뒤집으며 / 우리는 노릇노릇 토실토실 익어갔다 / 그런 온돌방에서 여물게 자란 아이들은 / 어느 먼 날 장마처럼 젖은 생을 만나도 / 아침 나팔꽃처럼 금세 활짝 피어나곤 한다”

 조향미 시인의 ‘온돌방’이란 시의 한 부분이다. 아궁이 가득 장작불을 땐 방에서 자반처럼 이리저리 뒹굴며 토실토실 익어가던 우리의 어린 시절이 그림처럼 떠오르는 시이다. 이 시는 우리의 어린 시절에 대한 향수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햇볕과 비와 바람이 함께 있고 사람이 더불어 모여 사는 이런 게 집이라는 걸 알려준다. 자연과 사람이 모여 섞이며 함께 뒹구는 집에서 자라야 “장마처럼 젖은 생을 만나도 / 아침 나팔꽃처럼 금세 활짝 피어나”는 인간으로 자랄 수 있다는 것이다.

 홍용희 교수의 지적처럼 “공간은 단순한 삶의 처소가 아니라 삶을 생성시키는 활동 주체다. 공간의 작용을 따라 우리들의 생활 양식은 물론 사고 체계까지도 형성, 관리, 규정되어진다. 우리들은 새로운 공간에서 새롭게 길들여지고, 이에 따라 새로운 감성, 취향, 욕망, 의식, 능력들을 가지게 되면서 새로운 인간형으로 바뀌는 것이다.”

집을 투기 대상으로만 본 대가 반드시 치를 것

 집은 말할 것도 없다. 집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집에서 사느냐가 그 집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생활 방식과 가치 체계를 형성한다. 사람이 집을 짓지만 집이 그 안에서 인간을 인간으로 자라게 하는 것이다. 우리의 삶이 그 안에서 생성되고 그 안에서 사고 체계가 형성된다. 우리가 집과 세상과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가 하는 것이 그대로 가족에게 전달되고 자식들에게 스며든다.

 근대화라는 것이 공간적으로 보면 도시화였고 도시화는 새로운 건물로 모습을 바꾸어갔으며, 그에 따라 근대적 주거 공간도 아파트로 바뀌었다. 아파트와 도시 건축으로 바뀐 공간 안에서 우리의 사고와 행동 양식도 새롭게 바뀌었고 거기서 새로운 인간형이 만들어져왔다. 새로운 세대가 나타날 때마다 기성세대는 경악하지만 그 인간형들은 우리가 만든 공간 안에서 자라난 인간들이다.

 “삶의 일상성 속에서 부지불식 간에 생성하고 변형하는 새로운 공간의 지형은 곧 새로운 삶의 문화적 지형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서울의 경우만 보더라도 압구정동, 롯데월드, 삼성동 무역회관, 강남역 뉴욕제과 앞, 테헤란로 등은 제각기 후기 산업사회의 징후, 독점자본, 한국 자본주의의 욕망 구조 등등으로 집약되는 의미 형성을 뿜어내고 있으며, 그로 인해 오렌지족, 감귤족 등의 새로운 종족을 탄생시키기에 이른다”라고 홍교수는 말한다.

 최근처럼 이렇게 집을 투자하고 관리해야 할 재산의 관점으로만 바라보고 투기 열망과 박탈감의 한 표상으로 집을 바라보기 시작하면 거기서는 어떤 인간이 생성될까? 그들은 사람도 그런 교환 가치의 관점으로만 보게 되고 자연히 그와 그 가족들은 시장형 인간, 투기형 인간으로 성장할 것이다. 천민자본주의가 몸에 밴 인간은 그의 가족도 부모도 지극히 자본주의적 관점으로 바라보게 될 것이다. 그들은 살다가“장마처럼 젖은 생을 만나”면 자본의 논리로만 해결하려 할 것이다. 자기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이 부모이든 아내와 남편이든 돈이나 시장의 원리로 처리하는 방법을 찾으려 할 것이고, 철저히 자본주의 운용 원리에 지배당하는 방식으로 처리할 것이다. 복지나 평등이나 인간다운 삶을 미워하는 보수주의 시장경제 원리로 집을 바라본 대가를 치러야 할 날이 반드시 찾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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