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창, 이명박 손 들어줄까?
  • 고재열 기자 (scoop@sisapress.com)
  • 승인 2006.11.24 18:3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회창-이명박 연대설이 제기되고 있다

 
‘창의 귀환’에 여의도 정가가 시끄럽다. 돌아온 이회창 전 총재의 역할을 놓고 ‘킹이냐 킹메이커냐’에 대해 설왕설래 중인데, 킹이 아닌 킹메이커로 나설 것이라는 쪽으로 의견이 점차 모아지고 있다. 여전히 만만치 않은 ‘반창 감정’ 때문에 킹을 먼저 자처하고 나서면 자칫 킹메이커 노릇도 못할 수 있지만, 킹메이커로 나서면 적절한 역할을 찾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다 유력 주자들이 낙마하면 ‘대권 삼수’까지도 꾀할 수 있다.

지난 2002년 대선 당시 교수 자문단을 이끌었고 오래 전부터 이 전 총재의 정계 복귀를 주장했던 한나라당 공성진 의원은 “이 전 총재가 직접 정치 현장에 개입하기보다는 합리적 논거와 정책 방향으로 ‘킹 메이킹’에 나설 것이다. 내년 3~4월 정도면 (지지 후보가) 드러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 전 총재는 누구를 킹으로 만들 생각일까? 당분간은 한나라당 ‘빅3’와 등거리를 유지하며 결정적 순간에 캐스팅보트를 행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당 내부에서는 이 전 총재가 이미 한쪽으로 기운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시계열(시간의 흐름에 따라 일정한 간격으로 관측해 기록된 자료) 분석을 통해 이 전 총재가 지금까지 걸어온 방향을 보면 앞으로 나아갈 방향도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언론에 드러난 이 전 총재의 정계 복귀 기점은 지난 11월20일 창원 강연이었다. “좌파 정권이 다시 집권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내가 할 일이다”라며 그는 사실상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 11월30일 연세대 강연, 12월5일 ‘한나라포럼’ 강연 등 줄지어 강연 일정을 잡아놓은 것 역시 이런 정치적 해석을 뒷받침했다.

이번 창원 강연이 특별히 정치적으로 해석되었던 것은 맥락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노무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오찬으로 정치 원로들의 영향력이 커진 상황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의 회동이 발표되어 화제를 모았다. 여론의 반발로 YS-JP 회동이 무산된 후 자연스럽게 관심은 이 전 총재에게 옮겨졌다. 그의 역할이 DJ의 역할과 대립각을 형성하면서 주목받게 된 것이다.

그러나 당 관계자들은 이 전 총재의 정치활동 재개 시점이 이보다 빨랐다고 보고 있다. 지난 10월19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동국포럼 주최 조찬 강연에서도 이 전 총재는 “나라가 위태로울 때 무슨 일이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라며 정계 복귀를 강력하게 시사했었다.

당 관계자들은 이 전 총재의 실질적 정계 복귀가 지난 5·31 지방선거였다고 해석한다. 당시 지방선거가 공식 선거운동 과정에 돌입하자마자 이 전 총재는 고향인 충남 예산을 방문해 이완구 충남도지사 후보의 거리 유세 현장을 찾은 것을 비롯해 최승우 예산군수 후보와 이종건 홍성군수 후보의 사무실을 잇달아 방문했다. 5월21일에는 박성효 대전시장 후보 사무소를 방문하는 등 숨가쁜 일정을 소화했다.

5-31 지방선거에서부터 사실상 정치 행보 시작

하지만 이 전 총재의 이런 활발한 정치 행보는 언론의 이목을 전혀 끌지 못했다. 5월20일 박근혜 전 대표가 지충호씨에게 면도칼 테러를 당하면서 모든 언론의 관심이 박 전 대표에게 집중되었기 때문이다. 이 전 총재측에서는 서울을 비롯해 대구·부산·경남·경북 등 광역단체장 출마 후보자의 사무실을 두루 찾을 예정이었지만 언론이 무관심하자 행보를 멈추었다.

지난 7월26일 재·보선에서도 이 전 총재가 움직일 가능성이 있었다. 이 전 총재의 최측근인 이흥주 특보가 송파 갑 재·보선에 출마하려고 했었기 때문이다. 지원 유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이 전 총재 역시 정계 복귀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공천은 맹형규 전 의원에게 돌아갔다. 이에 대해 한 한나라당 의원은 “이흥주 특보를 공천하지 않는 것을 보면서 박근혜 전 대표가 이회창 전 총재를 완전히 버렸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의기소침해진 이 전 총재를 위로하러 찾은 사람은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었다. 이 전 시장은 추석 직전인 9월29일 이 전 총재의 용산구 서빙고동 자택을 방문했다. 이날 만남은 이 전 시장의 요청에 따라 이루어졌는데 배석자 없이 대화가 진행되어 이 전 시장이 경선 과정에서 이 전 총재의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해 찾은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제기되었다.

이회창-이명박 연대의 알리바이를 강화하는 또 하나의 사건은 이 전 시장과 가까운 이재오 최고위원의 말이었다. 이최고위원은 10월22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 전 총재는 사실상 정계 복귀를 한 것 아니냐. 그의 대선 실패 경험이 도움이 된다면 환영해야지 비난할 일은 아니다”라며 이 전 총재의 정계 복귀에 대한 사실상의 ‘환영사’를 했다. 이최고위원은 이 전 총재의 발탁으로 사무부총장과 원내총무를 역임했기 때문에 관계가 돈독하다.

이 전 시장 진영의 이런 환대와 달리 박근혜 전 대표 쪽에서는 이 전 총재의 정계 복귀를 경계했다. 이 전 총재의 최근 움직임에 대해 박 전 대표는 “예전에 나에게 했던 말이 있기 때문에 자신의 말을 번복하지 않을 것으로 안다”라고 말하며 부정적 의견을 내비쳤다.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 역시 “킹메이커 역할도 불필요하다”라며 이 전 총재의 복귀를 평가 절하했다.

이회창 전 총재와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정치적 이해관계 일치

이 전 대표 쪽에서만 환대하고 다른 주자들이 이 전 총재를 박대하는 것에 대해 당 관계자들은 이 전 시장의 이해관계가 이 전 총재와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이 전 총재를 지지하면서 충청권 유권자의 불만을 달래며 보수적인 한나라당 지지자들을 포용하고 ‘이명박 불안론’을 잠재우는 데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충남 예산군에 선영을 두고 있는 이 전 총재는 충청권에서 영향력이 센 편이다. 행정수도 이전 반대라는 ‘원죄’ 때문에 충청권이 아킬레스건인 이 전 시장으로서는 이 전 총재의 후광이 절실한 형편이다. 이 전 총재를 통해 TK(대구·경북) 지역 주류 정서를 자극할 수 있다는 점도 플러스 효과로 꼽힌다.

 
이 전 총재의 지지는 이 전 시장이 보수적인 한나라당 지지자들을 공략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지층이 한나라당 지지층과 겹쳐서 진보적인 발언을 하지 못하는 고건 전 총리처럼 이 전 시장 역시 지지층이 열린우리당 지지층과 중복되어 보수적인 발언을 하기가 자유롭지 않다. 따라서 보수적인 이 전 총재가 배후를 받쳐주면 이 전 시장과 찰떡궁합이 된다는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이 전 총재가 이 전 시장에게 크게 도움이 될 부분으로 그가 실패의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꼽는다. 이 전 시장 캠프에서 가장 큰 과제는 ‘이명박은 약점이 많아서 안 된다’는 ‘이명박 불안론’을 잠재우는 것이다. 여당의 대선 공세를 두 번이나 경험한 이 전 총재가 이를 막아준다면 경선 과정에서 당원을 설득하는 데 훨씬 효과적일 것이라고 보고 있다.

박근혜 전 대표에게는 이회창 카드 불필요

흥미로운 점은 이 전 총재가 갖는 이 세 가지 이점이 박 전 대표에게는 그다지 절실하지 않다는 것이다. 박정희·육영수 향수가 짙은 충청권은 TK 지역과 함께 박 전 대표가 지역적 기반으로 삼는 곳이다. 보수적인 이 전 총재의 성향이나 안정감도 박 전 대표에게는 이미 있는 것이라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여성지도자로서 카리스마를 가릴 수 있다는 점에서 부정적이기도 하다.

캠프의 진용을 꾸리는 데서도 이 전 총재에 대한 견해 차이가 확연하다. 최병렬·서청원·홍사덕 전 의원 등 원로 그룹의 지지를 이끌어내고 있는 박 전 대표 진영에서는 이 전 총재에게 내줄 자리가 마땅치 않다. 이 전 총재가 당에 상임고문 등으로 합류할 경우, 전당대회에서 도움을 주어 우호 관계를 맺고 있는 강재섭 대표의 리더십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조심스럽다.

반면 당 원로 그룹의 지지가 취약한 이 전 시장측에서는 이 전 총재의 도움이 절실하다. 이 전 시장을 돕고 있는 이상득 국회부의장이나 이재오 최고위원과 역할이 충돌하지 않기 때문에 이 전 총재의 합류가 전혀 부담이 되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당에서는 자연스럽게 ‘이-이’ 연대가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전 총재가 결국 이 전 시장의 손을 들어줄 것이라고 판단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지금까지의 정황이 그런 것일 뿐, 새롭게 상황이 바뀌면 다른 판단을 할 수도 있어서이다. ‘차떼기’ 등 이 전 총재에 대한 부정적 기억들이 환기되어 ‘반창 감정’이 거세지면 역할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를 수도 있다. 이런 외부 조건을 극복하고 과연 이 전 총재가 킹메이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