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지붕 5세대’의 건강 대합창
  • 안은주 기자 (anjoo@sisapress.com)
  • 승인 2006.11.24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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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핏줄 이은 ‘5대 가족’, 전국에 26가족 건강 관리·예의 범절·화목한 분위기도 ‘대물림’
 
누구나 대대손손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삶을 꿈꾸게 마련이다. 그러나 인생의 갖은 복병을 만나면 꿈은 꿈으로만 그치기 십상인데, 실제로 꿈을 이룬 가족들이 있다. 1세대 부모 이하 수직으로 5대가 살아, 대대손손 건강하고 화목하게 사는 가족이 전국에 26가족이나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대한의사협회와 한국노바티스가 진행한 ‘5대 가족 찾기’ 캠페인을 통해서였다. 한국에서 5대 가족의 존재가 대거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인터뷰 기사 참조).

다세대 자손들은 고조할머니와 증조할머니가 살아 계시다는 이유만으로 ‘든든하다’고 느낀다. 할머니들의 건강한 삶을 보면서 ‘건강과 행복’을 한꺼번에 얻는 비법을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다고도 한다. 이 가족들의 삶을 통해 대대손손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비결을 엿본다.

5대 가족 가운데 가족 관계가 가장 화목하고 교류가 활발한 가족으로 꼽힌 홍옥순(93)씨네 가족. 이 가족들은 충남 서산 해미에 1, 2세대를 위한 전원주택을 지었다. 뾰족지붕 모양인 이층집 마당에는 큼직한 정자가 있고, 온 가족이 힘을 모아 만들었다는 물레방아와 연못까지 어우러져 있다. 마당 가장자리는 나무와 텃밭으로 꾸몄다. 소, 돼지, 염소 등을 키우는 축사도 자그맣게 자리잡았다.

이 가족들이 고향도 아닌 서산 해미에 전원주택을 마련한 가장 큰 이유는 1, 2세대의 건강 때문이었다. 서울에서는 어른들이 특별히 할 일도 없고, 집 안에만 계시다 보니 기력이 점점 더 약해지는 것 같아 자식들이 지혜를 모았다. 덕분에 홍옥순씨네 가족들은 특별한 일이 없는 휴일마다 5대가 해미에서 모인다. 이 집 식구들에게 주말은 ‘할머니 댁 가는 날’이다. 4, 5세대 역시 워낙 어릴 때부터 익숙한 가족모임이어서 특별히 가르치거나 억지로 시키지 않아도 서로 불편한 것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해미에 집을 마련한 뒤 홍옥순씨네 가족들은 더 행복해졌다. 1세대인 홍옥순씨나 2세대인 그의 아들 선광채씨(74) 내외는 시골생활을 하면서 건강이 훨씬 좋아졌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무리가 되지 않을 정도로 농사일을 하고, 저녁에 일찍 잠자리에 드는 규칙적인 생활을 하면서 몸과 마음이 전보다 더 건강해진 것이다.

 
자식들은 1, 2대가 텃밭에서 가꾼 농산물을 얻어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무공해로 재배한 식재료를 모두 공수해주니 3세대부터는 사다 먹는 것이 거의 없을 정도다. 3대 셋째 며느리 최명화씨는 “시금치, 갓, 달래, 도라지, 취나물…. 해미 텃밭에서는 계절마다 나는 게 다르다. 우리 가족들은 굳이 비싼 유기농을 일부러 찾지 않아도 믿을 수 있는 부모님표 야채를 제철에 먹기 때문에 모두 건강하다”라고 말했다.

초겨울 행사인 김장도 온 가족들이 모여 함께 한다. 1, 2대가 가꾼 배추와 무로 김장을 5백 포기쯤 담근다. 배추 나르고, 씻고, 양념 젓는 것처럼 힘이 많이 드는 일은 남자들이 많이 도와주기 때문에 여자들도 그다지 힘들지 않다고 한다. 2대 선광채씨는 “힘들 건 없다. 일이야 몸에 부담이 가지 않을 정도로 그때그때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된다. 부지런해야 몸도 건강하고 밥도 잘 먹지 않나. 농사일은 힘닿는 데까지, 여든이나 아gms까지는 할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이번에 확인된 5대 가족 가운데 자손 수가 가장 많은 이는 유주손씨(98)다. 그녀로부터 시작된 자손의 수만 1백44명이나 된다. 이렇게 많은 후손을 거느리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유씨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을 만큼 건강하다. 90세 초반에 병원에서 정기검진을 받은 적이 있는데, 심장박동이 젊은 사람 못지않게 강하고 활발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담당의사가 ‘의사 생활을 하면서 이런 사람은 처음 본다’며 혀를 내둘렀을 정도였다. 특히 유씨는 아직까지 허리가 꼿꼿하다. 잘 때 빼고는 구부정하거나 쪼그리고 앉아 있는 법이 없을 정도로 평소 자세를 꼿꼿하게 유지한 덕이다.

유씨의 건강 비결은 평생을 공기 좋고 물 좋은 시골(해발 450m 청정지역인 경남 거창군)에서 소박하게 살아온 생활습관에 있다. 유씨는 일찍 일어나고 일찍 잠자는 시계추 같은 일상으로 평생을 살았고, 시골 논밭에서 직접 키운 식재료를 이용한 자급자족 식단으로 식사했다. 봄, 여름, 가을에는 계절 먹거리가 주변에 널렸으니 그것을 이용하여 밥상을 채우고, 겨울에는 김치, 된장, 무말랭이 등 저장식 위주로 먹는다. 유씨의 식사량과 식사 시간은 늘 일정하다. 간식을 먹으면 다음 끼니엔 먹은 만큼 밥을 덜고 적게 먹는다. 유씨를 모시는 2세대 큰 아들네 식사 시간은 한 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지켜진다. 아무리 급한 농사일을 하다가도 정오만 되면 일손을 딱 놓고 집에 돌아와 어머니와 함께 식사를 할 정도다.

유주손씨는 슬하에 8남매를 키우다 보니 젊은 시절부터 많이 움직일 수밖에 없었고, 게으름을 피울 겨를이 없었다. 농사뿐 아니라 계절마다 온 골짜기를 돌며 나물을 뜯으러 다니는 등 동네에서 소문이 자자할 정도로 부지런했다. 유씨는 불과 3~4년 전까지도 텃밭에서 무와 배추를 재배했다. 힘에 부쳐 그만둔 뒤에도 콩에서 돌을 가리거나 고추 말리는 일, 채소 다듬는 일 등을 하면서 잠시도 쉬지 않는다. ‘숟가락 들 힘만 있어도 일을 하는’ 성품인 것이다.

 
유씨의 취미이자 특기는 화투치기. 특히 숫자 맞춰서 설명하는 패 뜨기 같은 것은 50대인 막내아들보다 훨씬 빠르고 잘한다. 순식간에 숫자를 더하고 빼고 짝을 맞추는 화투를 통해 머리 쓰는 일 또한 게을리 하지 않았던 것이다. 각종 제사 뿐 아니라 5세대 손자들까지 이름이며 생일, 가정사 등을 집안에서 가장 잘 꿰고 있는 사람도 그녀다.

대인관계에 있어서도 적극적이다. 2대 김팔교씨는 “온 마을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는 것은 물론이고, 도회지에 있는 아들 집에 머물 때도 동네 경로당에 가서 누구하고나 이야기도 잘하고 화투도 치는 등 친화력을 갖고 계시다”라고 말했다. 또 유주손씨는 외모도 신경 쓰고 가꾸는 편이다. 특히 액세서리를 너무 좋아해 시내 백화점이나 시장의 액세서리 매장에 가면 발을 떼지 않을 정도다. 이리저리 보고 만지고 착용해 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른다고 한다.

1세대 할머니의 생활 습관을 보고 자란 후손들 역시 모두 건강하다. 유씨의 장녀 김정문씨(79)는 지금까지 큰 병 한번 앓아본 적이 없고, 거동에 전혀 무리가 없다. 차녀 김정남(77)씨도 아들이 일하는 곳을 왔다 갔다 하면서 가계 일을 돕기까지 한다.

유씨 자손들은 유씨로부터 생활습관만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어른을 대하는 태도와 같은 예절 교육도 함께 배운다. 유씨네 가족들은 장유유서가 확실하다. 1년에 한 번 정도 뵈는 웃어른에게는 땅에 엎드려서 큰절을 하고, 명절 때 한복을 갖춰 입고 유건까지 쓰고 제사를 모시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

1백44명의 가족을 뭉치게 하는 단결력의 구심은 단연 유주손씨다. 김팔교 씨의 아들은 “어려서부터 어른이 된 지금까지 아버지, 어머니가 할머니를 대하는 한결 같은 태도와 예를 보면서 내가 효도해야 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부모가 살아 있는 교과서였던 것이다.

아무리 건강해도 아흔이 넘은 나이에 홀로 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안팔분씨(92)는 함께 살자는 자식들의 애원을 뿌리치고, 지금까지도 혼자 생활한다. ‘내 힘으로 살 수 있는데 무엇하러 자식들 신세 지느냐’는 것이다. 안씨는 직접 뒷산에 올라가 약수를 떠다 밥을 짓고 빨래와 청소를 한다. 혼자 먹는 밥이어도 식사량과 식사 시간은 정확하게 지킨다. 뿐만 아니라 텃밭을 가꾸며 상추나 배추, 무를 직접 재배해 이웃에 사는 자식과 손주들에게 갖다 준다.

안씨가 홀로 사는 삶을 고집하자 2대 허찬씨(75) 역시 아들 내외랑 살다 분가를 시켰다. 수년 동안 2, 3대가 함께 살았는데, 3대 허완씨(53)가 며느리를 보자 ‘너희도 이제 시부모가 되었으니 독립하라’며 내보낸 것이다. 안씨가 활동적인 덕에 자식들도 그 문화를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2대인 허찬씨는 요즘도 컴퓨터나 노래를 배우러 문화센터에 다닌다.

 
각 세대가 흩어져 살아도 안씨를 중심으로 해 가족들이 자주 모이는 편이다. 한두 달에 한 번씩은 온 가족이 모인다. 가족들이 모이는 날이면 여느 개그 프로보다 더 재미있는 풍경이 연출된다. 안씨를 비롯한 어른들이 워낙 우스개 소리를 잘해 자식들은 배꼽 잡고 웃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른다고 한다.

안씨네 자손들이 1대 할머니로부터 배운 것은 건강관리 비법만이 아니다. 할머니 덕에 이 가족들은 ‘콩 한 조각도 나눠 먹는’ 가족이 된지 오래다. 안씨는 빵 10개가 들어와도 집집마다 하나씩 나눠주곤 한다. 그래서 때때로 유통기한이 지난 물건을 받아들기도 하지만, 자식들은 안씨의 마음에 더 감동받는다고 한다. 허찬씨의 손녀 허수정씨는 “내가 결혼할 때 증조할머니께서 신문지로 꽁꽁 싼 뭔가를 선물로 주셨다. 풀어보니 요즘에는 잘 쓰지도 않는, 오래 전 유행하던 스테인레스 티스푼이었다. 내가 시집갈 때 주려고 십수 년동안 아껴두셨던 것이다. 그런 증조할머니를 보면서 우리가 어떻게 가족 사랑을 배우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윤금씨(95)네 가족은 ‘5대 가족 찾기’ 행사에서 가장 튼튼한 가족으로 꼽혔다. 1, 2대 모두 거동이 자유롭고, 5대 직계 모두 현재 병력이 없기 때문이다. 가족들 모두 매년 꾸준하게 건강 검진을 받을 정도로 건강관리도 각별하게 한다. 1대 윤금씨로부터 보고 배운 덕이다.

자손들은 윤금씨가 건강한 가장 큰 이유를 낙천적인 성격 덕이라고 꼽는다. 윤씨의 증손녀인 4대 박경진씨는 “우리 가족에게 증조할머니는 천사로 통한다. 화내시는 것을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라고 말했다. 낙천적인 성격이어서 아무리 나쁜 일이 생겨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풀어간다는 것이다. 덕분에 가족들도 모두 낙천적인 성격으로 바뀌었다. 세대별로 나눠 1년에 두 차례씩 가족 여행을 하고, 식구들끼리 모이면 노래자랑을 하는 것이 이 집안의 문화다. 그래서 ‘아무리 내성적인 사람이라도 우리 가족이 되면 5년 만에 활달해지고, 아무리 노래를 못하는 사람도 가수가 된다’는 것이 윤씨네 가족들의 이야기다.

박경진씨는 “증조할머니는 새로운 식구가 태어날 때마다 일일이 찾아 가 축하해 주신다. 그 많은 손주들의 이름을 다 기억하시고 생일 같은 기념일을 챙겨주신다. 증조할머니가 그렇게 하기 때문에 가족 모두가 할머니처럼 서로를 아껴주고 챙겨준다. 증조할머니로부터 배운 낙천적인 성격과 가족끼리 서로 도와주고 아껴주는 가족 문화가 우리 가족 모두를 건강하게 만들어 준 것 같다”라고 말했다.

5대 가족에게 있어 1, 2세대의 건강한 삶은 여러 형태로 대물림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1, 2세대의 자연에 순응한 소박한 삶과 건강한 식습관은 대대손손 무병장수로 대물림되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가정과 가족의 역할은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유전’되어 화목한 가족을 이루게 하고 있다. 5대 가족들이 큰 병 없이 건강하고 화목하게 사는 것은 바로 윗대로부터 내려오는 ‘대물림’ 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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