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남녀의 특별한 ‘금빛 이야기’
  • 주진우 기자 (ace@sisapress.com)
  • 승인 2006.11.27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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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보는 아시안게임/세단뛰기 김덕현·수영 박태환 등 주목…‘종합 2위’ 수성이 목표

 
12월1일 카타르 도하에서 제 15회 하계 아시안게임의 막이 오른다. 우리나라의 금메달 목표는 73개다. 사격과 태권도에서 각각 일곱 개, 레슬링 다섯 개, 볼링과 요트에서 각각 네 개, 유도에서 세 개의 금을 노린다. 이번에도 은근과 끈기 그리고 투지를 필요로 하는 투기 종목을 집중 공략해서 종합 2위를 지킨다는 전략이다.

한국은 스포츠에 관해서만은 아시아에서 2위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올림픽에서든 아시안게임에서든. 하지만 지형이 바뀌기 시작했다. 2년 전 아테네올림픽에서 우리나라는 종합 9위를 차지했다. 금메달 9, 은메달 12, 동메달 9. 선전했다. 전통적인 메달밭 태권도·양궁 등에서 금메달을 일구었다. 그러나 여기에 한국 스포츠의 치명적 약점이 존재한다. 특기 종목을 제외하고는 메달이 없다는 점이다. 특히 기초 종목인 육상·수영·체조에서는 단 하나의 금메달도 없었다. 체조에서 은메달과 동메달을 하나씩 땄을 뿐이다. 반면 중국과 일본은 기초 종목에서 금메달만 각 10개와 여섯 개를 거머쥐었다.

한국이 반드시 넘어야 할 벽인 일본의 도약은 눈부시다. 일본은 1992년 바르셀로나에서 금메달 네 개,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에서 금메달 일곱 개,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금메달 다섯 개를 획득하는데 그쳤다. 한국에 비해 순위도 한참 처졌다. 그러나 일본은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16개의 금메달을 따내 종합 5위를 차지했다. 특히 일본의 기타지마 고스케는 아테네올림픽 수영 2관왕에 올랐다. 체육의 과학화와 엘리트 체육에 집중 투자했기 때문이다. 일본은 이번 대회에서 육상과 수영에서 메달을 싹쓸이해, 한국을 추월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김덕현, 마의 17m 넘어 금메달 유력

 
한국은 몇몇 강세 종목에서 특출한 선수에게 의존한다. 그 선수가 은퇴할 경우 바로 약세 종목으로 바뀌고 만다. 따라서 1번 종목 육상의 중요성이 크다. 육상은 모든 스포츠의 기본이다. 육상이 부실하면 다른 종목에도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육상의 기록 부진이 투자 저하로 이어졌다. 육상을 잘하면 축구나 야구 등 인기 종목으로 빠져나가버렸다. 선수의 고갈은 기록을 뒷걸음치게 만드는 악순환으로 연결되었다.
남자 100m 한국 최고 기록은 10초34. 벌써 27년째 잠자고 있다. 한국이 육상에서 아시아 신기록을 가지고 있는 종목은 현재 하나도 없다. 올해 열린 그리스 아테네 육상월드컵에는 단 한 명의 선수도 출전하지 못했다. 한때 올림픽을 제패하며 강국 반열에 오른 마라톤도 하향세여서 아시안게임 메달권 진입이 어려운 상황이다. 한국 육상의 현주소를 그대로 말해주는 대목이다.

그러나 한국 육상에도 희망은 있다. 남자 세단뛰기 김덕현(21·조선대). 육상에 걸려 있는 금메달은 모두 45개(남 23, 여 22)인데 그는 가장 확실한 금메달감이다. 다만 그가 체계적으로 길러진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뚝’ 떨어진 선수라는 것이 아쉽기는 하다.
전국체전 최우수선수 김덕현은 지난 9월 김천 전국체전에서 마의 17m 벽을 넘었다. 17m는 세계적 선수를 입증하는 표식과도 같다. 아시아에서 그보다 멀리 뛰는 선수는 리양시(중국) 한 명밖에 없다. 격차는 5㎝. 그러나 충분히 추월이 가능한 상황이다.

김덕현은 지난해 9월 제16회 인천 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에서 16m78cm를 뛰어 한국 기록을 세웠다. 그 뒤 한국 기록을 1년에 세 번이나 갈아치웠다. 최근 1년 사이 30㎝ 가까운 기록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 희망적이다. 박영준 코치는 “도움닫기에 속도가 붙은 것이 기록이 좋아지는 동력인 것 같다”라고 말했다. 김덕현은 “내가 생각해도 놀랄 정도로 기록이 늘고 있다. 아시안게임에서도 신기록을 세울 것 같다. 착지까지 잘 된다면 17m20㎝까지도 가능하다”라고 말했다.

소년 시절 김덕현은 깡마른 학생이었다. 멀리뛰기를 하던 김덕현은 헬스클럽에서 역기 하나 제대로 들지 못할 정도로 근력이 없었다고 한다. 시력도 나빠 항상 안경을 끼고 있었다. 김덕현은 아시안게임에서 안경을 써야 할지 렌즈를 껴야 할지 아직도 고민이다.
창던지기의 박재명(25·태백시청)도 당당한 금메달 후보다. 그는 2004년 한국 신기록(83m99cm)을 작성한 뒤 슬럼프에 빠졌지만, 최근 기량을 회복했다. 우승권인 80m에 거의 근접한 상태다.

마라토너 김이용, 아시안게임 5연패에 도전

‘오뚝이 마라토너’ 김이용(32·국민체육진흥공단)은 마라톤 인생을 걸고 마지막 도전에 나선다. 김이용은 1999년 로테르담 마라톤 대회에서 역대 국내 2위 기록인 2시간7분49초를 기록해 황영조·이봉주의 뒤를 잇는 한국 마라톤의 대들보로 꼽혔다. 그러나 소속 팀과의 갈등으로 2000년 시드니올림픽 출전이 좌절되면서 시련이 시작되었다. 또 군에 입대하며 방황을 거듭했다. 하지만 올해 초 도쿄 국제마라톤대회에서 2시간11분28초로 5위에 올라 재기에 성공했다. 지난 4월에는 전주마라톤대회 우승으로 2006 도하 아시안게임 출전 티켓을 따냈다. 아시안게임 5연패를 노리는 한국 마라톤의 부활이 그의 두 발에 달려 있다.
‘황영조의 후계자’로 불리는 전은회(18·배문고)는 5천m와 1만m에서 반란을 노린다. 육상 남자부에서 고교생이 아시안게임 대표로 뽑힌 것은 처음이다.

 
육상과 더불어 아마추어 양대 기초 종목으로 꼽히는 것이 수영이다. 수영에는 가장 많은 금메달(51개)이 걸려 있다. 이번 대회에서 한국 수영은 할 말이 있다. ‘한국 수영의 희망’ 박태환(17·경기고) 때문이다. 박태환은 2006년 범태평양수영대회 남자 자유형 2백m 은메달에 이어 자유형 4백m와 1천5백m에서 연달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수영이 세계 대회에서 수확한 최초의 메달이었다.

수영 박태환, 발바닥 사마귀가 최대 변수?

박태환은 최근 1년간 체육과학연구원이 제안한 근력 프로그램을 소화하면서 더욱 강해졌다. 송홍선 박사는 “박태환이 레이스 막판에 폭발적인 스퍼트를 할 수 있도록 근육량을 늘리는 데 주력했다”라고 말했다.
박태환은 어려서 천식을 앓았다. 천식 치료를 위해 시작한 운동이 수영이었다. 지난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는 부정 출발로 실격되었다. 아픔을 딛고 박태환은 아시아 수영의 대들보로 자라났다. 자유형 2백m, 4백m 1천5백m 부분에서 올해 작성한 기록만 보면 아시아에는 박태환의 적수가 없다. 대한수영연맹의 우원기 코치는 “중국 장린이 기록상으로 태환이와 겨룰 만하다. 그러나 최근 태환이가 그를 꺾은 적이 있어서 자신감이 있다”라고 말했다. 박태환은 “세계 기록 보유자인 헤켓과 겨뤄보고 싶다. 아시아 선수를 경쟁자로 생각해본 적은 없다”라고 말했다.

박태환의 적은 발바닥에 자리하고 있다. 바로 사마귀다. 5백원짜리 동전만한 사마귀가 박태환을 괴롭힌다. 박태환이 물속에서 턴 동작을 할 때마다 바늘로 찌르는 듯 그를 괴롭힌다. 하지만 하루에 네다섯 시간씩 물속에서 살고 있어 사마귀는 나을 기미가 없다.
당일 컨디션에 따라 박태환은 금메달 세 개도 가능하다. 박태환이 3관왕을 이룬다면 1982년 뉴델리대회 때 최윤희 선수 이후 최초의 수영 3관왕이 된다. 박태환을 제외하고는 메달권에 근접한 선수가 없다. 한국 수영의 현주소다.

이번 대회에서 한국의 전통적인 메달 밭을 제외하고는, 펜싱과 승마를 눈여겨볼 만하다. 한국의 실력은 아시아를 넘어 세계 수준에 다가서 있다.
남현희(25·서울시청)는 한국 여자 펜싱의 간판스타다. 그녀는 올 초 맘고생을 심하게 했다. 성형수술을 하면서 대표팀 훈련을 소홀히 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선수 자격정지 2년. 선수 생명이 끝날 뻔한 위기였다. 우리나라의 후진적인 체육 행정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선수의 기량이 떨어지면 대표팀에서 탈락시키면 되는 일이다. 다행히 국가대표 자격정지 6개월로 징계가 완화되어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남현희는 금메달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남현희는 “다 내 잘못이었다. 열심히 노력해서 아껴주신 분들에게 보답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남현희는 펜싱 선수로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몸을 가졌다. 키 1m55cm. 팔과 다리도 짧다. 하지만 노력 하나로 신체의 핸디캡을 극복했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8강에 진입해 이름을 알렸다. 2005년 라이프치히 세계선수권대회 여자 플뢰레에서 한국 펜싱 사상 첫 금메달을 따냈다. 2006년 토리노 세계선수권대회 개인전에서는 5위에 그쳤지만, 단체전 동메달이라는 값진 성과를 일구었다.

 
남현희는 이번 아시안게임 여자 플뢰레 개인전과 단체전 2관왕을 목표로 하고 있다. 대표팀 김영호 코치는 “남현희는 키가 작지만 스피드가 뛰어나다. 더욱이 많이 생각하는 선수여서 판단이 정확하다”라고 말했다. 김코치가 남현희의 유일한 적수로 꼽는 선수는 대표팀 동료인 서미정(26·강원도청)이다. 펜싱 강국 중국 선수들도 남현희와는 기량 차가 확연하다고 한다.

남현희가 8년 동안 사귀어온 펜싱 남자 사브르의 원우영(25·서울메트로)과 동반 금메달을 딸 수 있을지도 주목된다. 원우영은 2006년 세계선수권대회 남자 사브르 개인전에서 동메달을 차지한 강자다. 아시아에서는 마땅한 적수가 없다고 한다. 둘은 국가대표 상비군 시절부터 사귀어온 비공식 태릉선수촌 커플이다.
승마 마장마술의 서정균(40·충남체육회)은 올해 마흔 살이다. 열다섯 살 때 고삐를 잡기 시작했으니 무려 25년 경력이다. 아시안게임만 해도 1986년부터 이번이 벌써 다섯 번째다. 햇수로 20년째. 서정균은 “힘이 남아 있고 기술도 완성기에 접어들었다. 지금이 나의 전성기다. 선수 생활을 앞으로도 계속할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승마 서정균, 금메달 두 개 딸까

 
서정균은 이번 대회에서 아시안게임 최다 금메달에 도전한다. 현재 그가 수집한 금메달은 모두 다섯 개. 한국의 아시안게임 개인 최다 금메달 기록은 양궁의 양창훈이 가지고 있는 여섯 개다.
서정균은 마장마술 개인전과 단체전에서 두 개의 금메달 획득이 유력하다. 지난 대회 개인전 금메달리스트 서정균,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3남 김동선 등이 출전하는 단체전에서는 한국팀이 금메달을 딸 가능성이 크다. 최다 금메달 기록 경신 여부는 역시 개인전에서 갈릴 전망이다. 서정균은 지난 16일 카타르 도하에 입성해 말의 컨디션 회복에 주력하고 있다. 서정균은 “개인전은 별로 욕심이 없다. 최다 금메달 같은 것은 신경쓰지 않는다. 일본을 꺾고 단체전 금메달을 따는 것이 목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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