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의 예술 ‘물 먹는 벽’
  • 나건(홍익대 교수·국제디자인트렌드센터 센터장) ()
  • 승인 2006.11.27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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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일본 이낙스 사, 습도 조절 기능 갖춘 첨단 타일 내놓아…디자인 살린 ‘모자이크 패턴’도 개발
 
우리의 전통 가옥인 한옥은 한반도의 기후 특징인 더위와 추위를 동시에 효과적으로 해결하는, 조상의 지혜가 엿보이는 독특한 주거 형식이다. 즉, 난방을 위한 온돌과 냉방을 위한 마루가 균형을 이루고 있다. 특히 서민들의 한옥은 실용성을 중시해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흙, 돌, 짚, 나무 등을 사용했다. 지붕은 볏짚으로 이은 초가지붕을 얹었다. 초가지붕은 추운 겨울에는 보온성이 좋고, 여름에는 뜨거운 태양열을 차단해주며, 비가 잘 스며들지 않으면서도 매년 구하기 쉬운 재료이다. 짚과 황토를 섞어 벽을 만들어서 실내의 습도를 자동적으로 조절했다. 주변의 습도에 따라서 습기를 흡수하거나 배출하여 적당한 습도를 유지해주어 숨쉬는 재료라고 하는 황토로 친환경 집을 지어 웰빙 생활을 즐기는 사람들도 많이 늘어났다. 또한 찜질방에서도 황토방은 대단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황토는 중국·한국·일본 등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이다. 주변에 흔하기 때문에 그 가치를 간과했던 황토 같은 소재를 발굴해 최신의 기술과 디자인을 더함으로써 세계적인 재료 또는 더 나아가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혁신적 제품을 개발하는 것이 최근 국제적 트렌드 가운데 하나이다.
이낙스(INAX) 사는 1924년 위생 도기 및 타일 제조업체로 출발하여 현재는 주거 환경의 전분야로 사업을 확장한 일본의 대표적 회사이다. 이 회사는 지난해 4월에 차가운 욕실 바닥을 걸을 때 느끼는 불쾌함을 줄일 수 있도록 한 ‘서모 타일(Thermo Tile)’이라는 제품을 출시해 소비자들의 인기를 끌었다. 지금까지 타일은 도자기와 같은 것으로서 욕실의 바닥과 벽면만을 위한 위생적인 소재였다. 그러나 이처럼 전통적 소재인 타일도 첨단 기술을 적용해 새로운 소재를 찾아내고 이 소재에 디자인을 활용하게 되면 혁신적 제품이 될 수 있다는 교과적인 성공 사례를 이낙스 사가 보여주었다.

전통 소재와 첨단 기술이 만나면…

최근 이 회사가 전통 소재에 최첨단 기술을 융합해 기능성과 심미성을 조화시킨 최신 타일을 개발했다. 바로 호흡하는 내장재인 ‘에코카라트(Ecocarat)’이다. 이 제품은 ‘앨러페인(Allophane)’이라는 천연 점토 광물 등 미세한 구멍이 있는 원료를 고온으로 구워 만들었다. 완성된 제품에는 적당한 크기로 디자인된 구멍이 있어서 황토처럼 습도가 높을 때는 습기를 흡수하여 품고 있다가, 습도가 낮아지면 품었던 습기를 방출함으로써 습도를 조절해준다고 한다. 또한 화장실, 담배, 애완동물, 쓰레기 등의 불쾌한 냄새도 없애주고 새집증후군의 주범인 유해 화학물질도 제거해주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오늘의 소비자들은 기능적 가치만으로는 절대 만족하지 않는다. 기능적 가치는 기본이고, 감성적 가치를 더 추구한다. 자연의 감촉에 가까운 질감과 다양한 색상, 그리고 아름다운 디자인을 통해 소비자의 감성적 가치를 극대화했다. 최근 국내의 가전업체들도 예술가 또는 패션 디자이너와 함께 작업해 감성적 가치가 높은 제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냉장고와 에어컨 같은 가전제품이 더 이상 기능만이 아닌 인테리어의 중요한 요소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낙스 사는 일본 국내외의 유명한 건축가와 디자이너 등 20명의 창의적 작가들의 힘을 빌려 무려 50종류나 되는 모자이크 타일 패턴을 개발했다.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 특유의 자유로운 발상을 최대한 활용한 결과이다. 이들 모자이크 패턴은 욕실이나 대형 목욕탕의 벽에 사용하는 타일이 아닌 침실과 거실 등에 한 점의 작품처럼 걸릴 수 있도록 만들어져 타일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다(그림 참조). 이들 제품으로 인해 ‘벽만 바라보는 사람’이라는 표현도 예술적 가치를 아는 긍정적 의미로 사용될 수 있을 것 같다.
이처럼 흔한 전통 소재와 공학, 그리고 디자인이 만남으로써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이 자주 연출된다. 트렌드를 읽는 것은 어려운 일이고, 이를 만드는 것은 더욱 힘든 일이다. 그러나 가장 어려운 일은 그 트렌드를 실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 톰 피터스가 내한하여 가진 세미나에서 한 말이 떠오른다. “진정한 혁신을 원하면 자신과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들을 고용하라.” 그리고 “실행하라,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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