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더 이상 BDA에 볼일 없다”
  • 신호철 기자 (eco@sisapress.com)
  • 승인 2006.11.27 09:1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마카오 현지 취재/지하 환전업자 “친북 실력자 통해 이미 ‘동결 자금’ 회수해갔다”

 

“한국에서 오셨다고요? 마카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11월16일 중국 특별행정구 마카오 시내 한복판에 자리 잡은 방코델타아시아(이하 BDA) 본사 1층에서, 델타아시아금융그룹 마케팅팀장 찰스 나이 씨가 취재진을 반갑게 맞이했다. BDA라는 은행 이름이 연일 한국 언론과 외신에 오르내리고 있던 민감한 시기였지만, 찰스 나이 씨는 이국에서 온 기자를 향해 여유 있는 미소을 잃지 않았다.

그러나 찰스 나이 씨는 북한 관련 계좌 취재를 위해 왔다고 말을 꺼내자 “우리 은행에 관한 일반적인 내용이라면 도와줄 수 있지만 북한 계좌와 관련한 문제는 현시점에서 어떤 답변도 할 수 없다”라고 답을 피했다. 그는 ‘현시점’이라는 말을 몇 차례 강조했다.

BDA는 한국인들에게 북한 관련 뉴스가 나올 때 마다 꼭 들어야 하는 이름이다. 지난 10월9일 북한 핵실험 발표 이후 BDA는 더욱 주목을 끌고 있다. 북한이 핵실험을 한 이유가 이 은행에 묶여 있는 북한 자산을 찾기 위해서라는 분석 때문이다. 북한이 6자회담 복귀 조건으로 BDA 계좌 동결 해제를 내걸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11월 하순, 북한 고위 당국자가 BDA 계좌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고 발언(<시사저널> 제892호 참조)하면서 동결 해제 진위 여부를 둘러싸고 중국·미국·한국·마카오 정부 사이에 한 차례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BDA에 묶인 북한 자금은 약 2천4백만 달러(2백40억원)로 국가 자금치고는  많은 편이 아니지만, 상징적 의미가 크다. BDA 사태를 보며 다른 은행들도 덩달아 북한과 거래를 끊었기 때문이다. <시사저널>은 6자 회담을 앞둔 상황에서 BDA계좌 실체를 알기 위해 마카오 현지를 방문 취재했다.

BDA 본사를 가다

BDA는 마카오에 거점을 둔 지역 은행이다. 서울 종로구만한 마카오 바닥에서 BDA 본사를 찾기 위해 시민들에게 물어보았지만 웬일인지 아는 사람이 드물었다. BDA 은행은 마카오 내 아홉 곳에 지점을 갖고 있는데, 흔히 한국 방송 뉴스에서 배경 화면으로 등장하는 곳은 캄포 지점이다. 이곳을 BDA 본사로 아는 마카오 시민이 많았다. 지점 창구는 보통 은행처럼 예금 손님을 받고 있었다. 캄포 지점의 수위는 “여기가 BDA 본사다”라고 말했지만 캄포 지점 간부는 본사가 따로 있다고 말했다.

 

캄포 지점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는 라르고 드 세인트 아고스티뇨 언덕에 오르니 마치 르네상스 시대 건물을 연상시키는 고풍스러운 5층 베이지색 건물이 나타났다. 입구에 <SEDE-BANCO DELTA ASIA>라고 적혀 있었다. SEDE는 포르투갈어로 본부라는 뜻이다. 마카오는 1999년까지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다.

이곳에서 만난 델타아시아금융그룹 마케팅 팀장 찰스 나이 씨는 완곡히 인터뷰를 거절하면서 은행의 공식 견해가 담긴 문건을 건넸다. 문건은 올해 2월16일 작성된 것이었다. 그는 “지금도 문건 내용은 그대로 유효하다. 이 내용은 우리 은행 법률 자문 회사인 헬러 에르만에서 만든 것이다. 더 궁금한 점이 있으면 헬러 에르만 홍콩 법인에 물어보라”고 말했다. 그러나 헬러 에르만 홍콩 법인의 제시카 리 변호사는 역시 똑같은 과정으로 답변을 피했다. 리 변호사에게 BDA 북한 동결 계좌가 해제되었다는 북한 고위 당국자의 발언이 있다고 강조하자 “마카오 금융 당국이 그 발언을 부정했다”라고 말했다. 10월21일 마카오 통화기구의 헨리에타 라우 은행감독국 부국장은 “북한 계좌가 여전히 동결되어 있다”라고 말했다.

인터뷰는 거절당했지만...

BDA측이 외부 인터뷰를 조심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지난해 9월 말 BDA는 북한과 거래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부도가 날 뻔했기 때문이다. 미국 재무부 금융범죄단속국은 2005년 9월15일 BDA를 ‘우선적인 돈세탁 우려 대상’으로 지정했다. 북한이 마약·위조지폐·가짜 담배 등으로 번 돈을 관리하고 돈 세탁하는 창구라는 것이다. 금융범죄단속국은 BDA를 블랙 리스트에 올렸다.

미국 당국의 발표가 나오자 마카오 금융가는 ‘뒤집어졌다’. 9월16일 마카오 시민들은 돈을 인출하러 새벽부터 BDA 지점 앞에서 장사진을 이루었다. 마카오 주민  런푸릉 할머니(68)는 “나도 그때 몇 시간 줄을 섰다. 은행이 곧 망한다고 해서 겁이 났다”라고 말했다. 9월16일 은행 문을 열자마자 6시간 동안 4천만 홍콩달러(HK)가 빠져나갔다. 부도 위기에 처하자 마카오 정부가 개입해 보증을 서면서 겨우 사태가 진정되엇다. 런푸릉 할머니는 돈을 찾았고 이후에는 BDA에 예금을 맡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마카오 정부는 BDA에 관선 이사를 파견해 법정 경영하고 있다.

 

도대체 BDA 북한 자금 계좌는 풀린 것인가 아닌가? 마카오 현지에는 제3의 시나리오가 퍼져 있었다. 기자가 BDA를 방문했을 때 마침 마카오는 한인 롤링(도박 중개) 조직 간의 칼부림으로 한 교민이 죽은 사건이 이슈로 떠올랐다. 취재진은  롤링 조직원들을 취재하면서 중국인과 한국인을 포함한 환치기·돈세탁 관련 일을 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한국 교민도 있었지만 마카오 시민도 있었다. 그중 마카오 금융가 뒷거래에 대해 사정을 잘 아는 한 마카오인으로부터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이미 북한 당국은 마카오에서 돈을 거의 다 회수해 더 이상 BDA에 볼일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왜 그리 사람들이 BDA에 집착하는지 모르겠다. 이미 북한은 관심이 없는데”라고 말했다. 서류상 북한 돈은 BDA에 남아 있는 것처럼 되어 있지만 실질적으로 이미 마카오 실력자를 통해 예금 담보 대출 형식으로 돈을 가져갔다는 것이다.

이 주장을 입증할 만한 근거는 없지만 설득력이 있는 몇 가지 정황은 있다. 우선 BDA에 묶인 돈이 우리 돈으로 겨우 2백억원 남짓에 불과하다(북한이 동결 해제를 목말라 하는 계좌는 사실 BDA가 아니라 싱가포르나 오스트리아,스위스 은행 계좌를 말한다.)  현금이 넘쳐나는 마카오 실력자라면 충분히 융통 가능한 자금이다. 두 번째 정황은 스탠리 호의 존재다. 마카오 카지노 도박왕 스탠리 호는 친북 인사로 분류되며 평양에 직접 카지노장을 세우기도 했다.

북한은 왜 BDA를 거래 은행으로 택했나

스탠리 호는 2년 전까지만 해도 마카오 최대 도박장이었던 리스보아 카지노의 소유주였다. 이 카지노장 안에 방코델타아시아의 지점이 자리 잡고 있다. 11월20일 기자가 이 지점을 방문해 “카드로 돈을 뽑고 싶다”라고 하자 직원은 “우리는 카드 거래 안 합니다. 옆 차이나 뱅크로 가세요”라고 말했다. 창구에는 도박을 하려는 듯 현금을 찾아가는 손님들이 보였다. 이런 괴소문에 대해 한국 정부 관계자는 “그런 소문을 듣기는 했지만 확인된 것이 없다”라고 말했다.

 

북한이 하필 BDA를 거래 은행으로 택한 이유는 과거에는 이 은행이 꽤 유명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델타아시아보험, 델타아시아연구소, 델타이시아증권 등 델타아시아 그룹 12개 계열사 중 하나인 BDA는 지난 20년 동안 북한과 친밀한 관계를 가져왔다. 지금은 마카오에 중국·홍콩을 비롯한 외국계 은행이 많이 입점해 있지만, 1999년 이전만 해도 마카오에 은행이 많지 않았다. BDA는 마카오 2대 은행 중 하나다.

과거 항상은행이라고 불렸던 BDA는 델타아시아그룹의 핵심 기업이다. 1935년 홍콩과 마카오에 가게가 생긴 것을 효시로 1962년 지금과 같은 규모가 되었다. 법정관리 전까지 회장은 스탠리 호의 아우 총 킷 씨였다. 1970년대에 전성기를 보내 독일의 <다스 캐피탈>이 1977년 가장 성공한 홍콩 은행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2004년 총 자산이 42억 홍콩달러에 이르렀다.

북한, 마카오에 돌아오지 않을 듯

북한이 금융 거래 장소로 마카오 지역을 택한 이유는 1999년까지 포르투갈령이었던 마카오 당국과 북한의 친분 관계가 깊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마카오는 한국 공안 당국의 집중 감시 지역이 되었다. 정보 당국에 따르면 KAL기 폭파범으로 알려진 김현희가 1986년 머무르며 교육받은 곳도 마카오이다.

 

과연 BDA 북한 동결 계좌가 해제되었는지, 아니면 다른 변칙적인 수단으로 돈이 넘어갔는지 확실히 파악하기는 힘들다. 마카오를 관리하는 홍콩 주재 북한 영사관측은 <시사저널>이 취재 요청을 하자 “아무것도 말해줄 수 없습니다. 죄송합니다”라며 전화를 끊었다. 한 가지 확실한 점은 BDA 사태 때문에 더 이상 북한이 마카오에서 활동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설사 BDA 계좌 동결 해제가 공식 발표되더라도 더 이상 북한이 마카오에 돌아올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