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제이유에 켕기는 것 있나
  • 정희상 전문기자 (hschung@sisapress.com)
  • 승인 2006.12.04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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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비 리스트 공개에서 수사 과정까지 제이유그룹 로비 의혹 사건을 집중 보도해온 《시사저널》의 ‘9개월 추적기’를 공개한다.

 

정상명 검찰총장이 직접 나서 강도 높은 수사 방침을 표명하면서 제이유 그룹의 정관계 로비 의혹은 이제 전 국민적인 관심사로 떠올랐다. 정 총장은 11월 28일 기자회견을 열어 ‘34만명의 피해자’ ‘단군이래 최대의 사기사건’등 수식어를 동원해가며 그동안 동부지검이 수사해온 이 사건에 대해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듯 철저한 수사를 펼치겠다고 공언했다.

지난 8개월간 제이유 그룹 사기 피해 사건과 배후의 정관계 로비 및 유착 의혹을 집중 추적하며 10여 차례에 걸쳐 연쇄 보도해온 《시사저널》로서는 ‘이제 와서 왜 저러나...’라는 한가닥 의문을 지우기 힘든 급작스런 사태 전개였다. ‘정관계 로비 리스트’나 ‘단군 이래 최대 사기사건’등의 용어는 이미 8개월 전부터 수차례에 걸쳐 《시사저널》이 제이유 관련 기사와 제목에서 표현한 단어와 판박이였기 때문이다. 또 요즘 국내 대부분의 언론이 11월 말부터 연일 대서특필한 제이유 관련 기사들은 그동안 《시사저널》이 추적해 연쇄 보도한 기사를 인용하거나 확대해 전개해 나가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때늦은 감은 있지만 검찰 총수까지 나서서 이 사건의 성격을 규정하며 비로소 철저한 수사를 다짐했다는 것은 국가적으로 천만 다행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소비생활공유마케팅을 기치로 내걸고 2002년 이후 연간 2조원대의 서민 투자자금을 끌어모으며 일약 국내 다단계 업계의 선두주자로 나선 제이유그룹의 급성장 배경에는 그룹 회장 주수도씨의 독특한 마케팅 기법과 이를 홍보해주는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보호막이 작용하고 있었다.

《시사저널》이 주수도씨의 사기 마케팅이 사회악적 범죄요소를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지하고 이를 추적해 폭로한 때는 지난 4월 중순이었다. 당시 제이유사업 피해자들로부터 제이유 35만 피해자가 원금만 쳐도 2조6천억원의 피해를 입고 자살, 이혼, 존속 살인, 가정파괴 등 각종 사회악의 소굴에서 신음하고 있다는 제보를 받고 이를 취재해 기사화했다. 첫 보도가 나간 뒤인 4월 말 한 제보자로부터 국가정보원이 내사해 작성한 제이유 사태 정보보고 문건과 정관계 로비리스트를 입수했다. 국정원에서는 제이유 사태의 심각성을 예견하고 1년 전부터 이를 경고하는 공식 문서를 만들어 대검과 청와대 등에 이첩했으나 신속히 수사하지 않았다고도 했다.

국정원 문건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제이유 주수도 회장이 지난 3년간 수많은 국민을 현혹해 수조원대 매출을 올린 뒤 여기서 2천억원을 비자금으로 조성해 정관계 인사들에게 1백억원을 뿌렸고, 핵심 로비스트로 H해외담당 고문이 자리잡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어 청와대 검찰 경찰 여야 정치권 언론계 시민단체 등의 인사를 상대로 부인이나 형제 등 가족을 회원으로 가입시켜 일반 회원들로부터 거둬들인 돈을 밑천으로 특혜 수당을 지급해 방패막이로 사용하고 있다는 요지였다. 4월 하순 이 문건을 중개인으로부터 최초로 입수한 기자는 사실 확인 작업에 들어간 후 5월 초 ‘제이유 정관계 로비 명단 150명의 진실’에 관한 첫보도를 내보냈다. 이무렵 한나라당 권영세 의원도 시사저널이 입수한 내용과 같은 국정원 문건을 공개했다. 권의원은 국회 정보위 질의과정에서 국정원장으로부터 그 문건이 국정원 작성 문건이 맞다는 점을 확인한 후 공개한 것이다. 

시사저널은 당시 최초로 정관계 로비 리스트가 있다는 사실과 그 숫자가 최소 150여명이라는 점을 상세히 보도했다. 최하 5백만원에서 최대 3억원까지 지급된 것으로 적시된 로비 리스트에는 경찰 간부 44명, 공정위 6명, 법원 판사 및 검사 8명, 지방 군수 2명, 언론사 1곳 등이었다. 그러나 이 자료는 국정원 원문 로비리스트에서 검경 수사기관 종사자 중심으로 발췌한 것이었다. 로비리스트 원문 명단을 수소문해 파악한 결과 정치권은 여야를 합쳐 40여명, 경찰 60여명, 법조계 10여명, 언론계 간부 20여명 등이었고 로비 자금은 최하 5백에서 최대 6억원까지 였다. 또 특혜성 의심을 받는 제이유 회원은 청와대 민정, 시민사회 비서실, 경호실 등에 근무하는 직원 7~8명의 부인과 친인척 등 수십명에 이른다는 주장도 있었다.


국정원 문건 최초 입수해 보도

이 문건과 로비 리스트에 대해 제이유측은 국정원의 음모설을 주장하며 극구 부인했다. 국정원 보고서내용의 4대 의혹에 대해서는 제이유측의 해명은 겉으로는 회사 내부의 권력 암투를 시사하고 있었다. 즉 제이유측은 주수도 회장의 핵심 측근이 2004년 초반까지는 김영호 상품담당 이사였지만 그가 경영 부실을 초래한 책임이 있어 그해 하반기 H 해외담당 고문으로 주씨의 신임을 받게 되면서 이에 반발한 김영호 이사가 허무맹랑한 소문을 퍼뜨려 제이유가 무너지는 단초를 제공했다는 주장이었다. 곧바로 김영호 전 이사를 만난 결과 그의 주장은 반대였다. 제이유그룹은 내부적으로 붕괴되는 길을 걷게 되는 데는 H씨와 주수도의 만남이 작용했다는 주장이었다. H씨는 국정원 문건에 대해 펄쩍 뛰면서 정대화 변호사를 시사저널로 보내 사실과 다르다고 경위를 해명했다.

정관계 각 분야별 숫자를 포함한 150여명의 제이유 로비리스트 존재가 《시사저널》에 처음으로 보도되자 정치권과 언론계 등에서 문의전화가 빗발쳤다. 경찰과 검찰 관계자, 여야 정당에서는 저마다 명단을 달라고 부탁해왔다. 특히 정치권과 검찰이 가장 민감했다. 여야 관계자들은 저마다 상대당 소속 의원 가운데 누가 얼마를 받은 것으로 기록되어있는지 문의하는 경우가 많았다. 정치권은 또 로비 리스트와 별개로 주회장이 2004년 동부지검 내사 당시 측근을 통해 여당 당직자 o씨를 통해 100억원을 살포해 내사 중단 압력을 넣었다는 대목에 대해 진위와 파장에 큰 관심을 기울였다. 당사자로 지목되는 열린우리당의 o 의원은 “황당하다, 제이유에서 시도해보려고 했는지 모르지만 실제 아무 요청도 못받았다”라고 말했다. 또다른 여당 o 의원은 “운동 단체 회장을 맡을 때 주수도 회장으로부터 광고 협찬비 명목으로 몇천만원을 받았을 뿐 100억 주장은 어불성설이다”라고 말했다. 주수도회장은 고문변호사를 통해 “O 의원이 한 스포츠 협회장을 맡아 행사할 때 플레카드 값에 보태라고 내가 100만원을 준 적이 있는데 이 돈이 100억으로 와전된 것 같다”라고 주장했다.

경찰 측에서는 로비 리스트에 경찰 가장 많아 자체 감찰 조사를 벌였다며 “대부분 돈받은 사실을 부인하거나 일부 집기류와 행사 후원금을 받았을 뿐 로비 자금을 받은 사람은 극히 드문 것으로 나타났다”라고 해명했다. 당시 경찰은 시사저널이 공개한 로비 리스트에 경찰이 숫자는 많지만 적시된 로비 자금이 수백만원에서 1천만원선으로 다른 권력기관의 수천만원에서 억대 로비자금보다는 총액규모가 작다며 수사가 공정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까지만 해도 동부지검의 주수도씨에 대한 수사는 이렇다 할 진전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4월과 5월 하루가 멀다하고 제이유 그룹의 12개 계열사를 검찰이 압수수색이 했지만 주씨는 버젓이 회사에 출근하면서 검찰 수사 대응을 진두지휘했다. 취재 결과 수사 초기 검찰을 상대로 한 주수도 회장의 힘은 막강했다. 검찰의 수사 내용과 방향, 압수수색 계획은 실시간으로 주회장에게 정보가 흘러들어가고 있었다. 당시 제이유 고위 관계자는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와 “내일 검찰에서 압수하러 온다고 통보를 해줘서 상위사업자들이 본사로 불려와 모든 자료를 치우거나 폐기했다. 나는 주회장 화상회의 테이프를 없애는 역할을 맡았다”라고 전해왔다. 주회장의 한 고문변호사에게 확인한 결과 그는 검찰의 일일 수사 내용과 다음 수사 방향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하고 있었다. 기자가 ‘검찰과 짜고 치는 수사인가’라고 묻자 그는 “그냥 동부지검에 들어가서 개인적으로 알아낸 얘기다”라고 말했다.


“주수도씨, 검찰 수사 정보 속속들이 알아”

특히 주수도씨 변호인단의 역할은 막강했다. 2002년 구속된 주수도씨를 빼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전 인천지검장 제갈융우 변호사를 필두로 전 대구지검장 김영진 변호사, 2002년 주씨 구속 당시 서울중앙지검 주임검사였던 박혁 변호사 등이 주씨 주위에 포진해 검찰 수사를 방어하고 있었다. 386 운동권 출신 정대화 변호사도 2004년부터 주수도씨와 H씨의 고문변호사로 제이유 경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주씨는 또 송광수 전 검찰총장에게도 이미 4월부터 거액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변호인단에 영입해 검찰의 칼을 무디게 하고 있었다.

이런 사태 전개를 지켜본 기자는 ‘다단계 공화국’이라는 특집기사를 통해 제이유 주수도 회장을 구속하지 않고 불법 영업을 방치함으로써 피해를 계속 확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내보냈다. 초기 검찰 수사가 겉돌고 있는 가운데 끔찍한 제이유 사업 피해는 그칠 날이 없었다. 5월16일 밤에는 부산 화명동에서 주택 담보대출로 제이유 사업에 투자한 한 현직 여교사가 수당을 못받고 고민에 빠져 이 사실을 남편에게 털어놓았다가 남편이 홧김에 뭇매를 때리는 바람에 사망한 사고가 발생했다. 이보다 며칠 앞선 5월12일에는 한 제이유 피해자가 사제 권총을 들고 주수도 회장이 머물던 제이유 본사에 쳐들어가 윤덕환 상임위원장을 향해 총을 발사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다행히 총알은 빗나갔지만 총성을 들은 주민 신고로 인근 강남경찰서 소속 지구대 경찰관들이 들이닥쳤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경찰은 제이유측 말만 듣고 총기도 회수하지 않은 채 그냥 돌아가 사건을 덮어버렸다. 중앙 언론에는 이런 내용이 제대로 보도조차 되지 않고 있었다. 검찰 수사 와중에서도 ‘제이유의 힘’은 이렇게 막강했다.

 이런 내용을 취재해 주수도씨 구속 촉구 기사를 내보내자 주수도씨 측으로부터 인터뷰를 하자는 연락이 왔다. 6월 1일과 10일 두 차례에 걸쳐 압구정동 본사 사옥에서 주수도 회장을 단독 인터뷰한 기자는 그에게 ‘엄청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책임을 지라’는 요지로 사기 피해와 정관계 로비에 대해 도전 인터뷰를 했다. 주씨는 시종일관 국정원과 암웨이 음모론을 펴며 연간 2조원대 매출을 올리며 40대 재벌급으로 성장한 자기가 사기를 치려는 의도로 사업을 폈겠느냐고 항변했다. 또 정관계 로비는 사실무근이라고 주장하며 잇따른 《시사저널》의 폭로 기사로 인해 자기가 검찰에 구속되면 더 많은 피해자가 양산될 것이라며 보도 자제를 요구했다. 그는 검찰이 부르면 언제든지 당당하게 들어가 조사를 받을 것이라며 비자금이 한푼이라도 발견되면 자기 팔을 잘라보이겠다는 식으로 호언장담했다.

6월1일 첫 인터뷰에서 주수도씨는 자신이 살기 위한 방편으로 검찰에 갖다 바칠 희생양을 찾고 있었다. 2002년부터 2004년 10월까지 주회장 밑에서 상품담당 이사를 했던 김영호씨를 구속하면 자신은 피해자를 구제하며 사업을 계속 벌일 수 있을 것이라고 본 것이다. 주씨는 인터뷰 말미에 기자에게 김영호 전 이사의 비리를 제보해줄테니 기사를 써서 검찰이 구속하게끔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기자는 김씨의 비리 증거를 주면 일단 제보는 받겠지만, 경영 총책임자가 먼저 당당하게 검찰 수사에 응한 뒤 자기 임직원에게 책임지울 비위가 있다면 검찰에 배임죄로 고소하는게 순리 아니냐고 따져물었다.

주수도씨는 결국 6월 중순 김영호씨를 구속시키는 데 성공했다. 주씨는 이 과정에서 김영호 전 이사가 납품업자로부터 5억원의 뒷돈을 받았다는 내용으로 검찰에 고소를 하게끔 하는 대가로 고소인 납품업자에게 5천만원의 뒷돈을 건넨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러나 휘하에 부리던 임원을 구속시키면 자기는 빠져나갈 수 있으리라던 주씨의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사실상 주수도씨가 ‘작업’을 해다 검찰에 바친 김영호 전 이사를 구속시킨 동부지검은 이후 김씨를 40여일간 동부지검 청사에 상주시키다시피 하면서 줄기차게 제이유 그룹의 비리를 파헤쳐 주수씨가 꼼짝 못할 범죄 혐의를 입증할 작업에 착수했다. 김씨는 이후 보석으로 풀려나 현재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고 있다. 한마디로 주수도씨는 자기 무덤을 스스로 팠던 셈이다.  

 6월19일, 동부지검에서 뒤늦게 주수도 회장에게 체포영장을 발부하자 그는 도주하는 길을 택했다. 그러나 검찰은 제이유 로비 의혹의 열쇄를 쥐고 있는 상위사업자 김금순씨(로비 자금 조성책)를 제외한 김명준 제이유 비서실장(로비 내역 전모를 파악하고 있는 인물), 홍경식 전산실장(전산 조작을 통해 특혜 수당 지급 내역을 관리한 역할)에 대해서는 별다른 조처를 취하지 않음으로써 이들 세사람은 지금도 법망을 피해 도피 중이다. 주회장은 7월28일 경기도의 한 은신처에서 검찰에 체포됐다.


로비 의혹 수사는 뒤늦게 발동 걸려

한편 이무렵 경찰청 사이버수사대에서는 또다른 방향의 수사를 벌이고 있었다. 4월 하순 국정원 문건을 입수한 뒤 기자에게 넘긴 중개인이 로비 리스트에 거론된 몇몇 경찰관과 판사, 검사, 공정거래위원회 직원 이름을 영문 이니셜을 달고 ‘뇌물’을 받은 것으로 한 인터넷 언론에 보도했는데 대법원 공보실과 제이유 그룹 등에서 그를 경찰에 형사 고소했던 것. 이 사건은 경찰청 사이버 수사대에서 맡았다. 결국 《시사저널》에 국정원 문건과 정관계 로비 리스트, 관련 국정원 관계자 신원사항 등을 제보해준 이 중개인은 경찰의 수배를 받고 사이버수사대의 수사에 응했다. 이 과정에서 국정원 문건 제보 관련자가 드러나면서 경찰청은 국정원에 직원을 수사하겠다며 출석 요구서를 보내는 방법으로 압박해 들어갔다. 경찰 간부 이름이 가장 많이 거론된 제이유 정보보고 문건에 대해 경찰의 이런 압박은 사건 본질 흐리기로 비쳤다. 제이유의 한 간부는 기자에게 “검찰 수사과정에서 경찰 간부들만 집중적으로 드러날 것에 대비해 경찰에서는 비밀리에 제이유에 찾아와 검찰에 로비한 내역을 조사하고 있다”라고 귀띔하기도 했다. 

제이유 사건에 대한 동부지검 형사 6부의 수사는 크게 두 팀에서 진행하고 있었다. 한 팀에서는 2천여 명의 제이유 사업 피해자들이 주수도씨를 고소한 내용을 바탕으로 불법 다단계 영업, 즉 사기 횡령 배임 행위 수사에 집중했고, 다른 팀에서는 주수도씨의 정관계 로비 의혹을 담당하고 있었다. 제이유의 불법 영업혐의에 대한 수사는 비교적 철저했다. 그러나 당초 동부지검은 정관계 로비에 대한 수사 의지가 별로 없었다. 담당 차장검사는 6월하순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검찰이 벌이는 수사는 제이유의 불법영업행위에 초점을 맞출 뿐 현재로서는 정관계 로비에 대해 수사할 계획이 없다’라고 밝히기까지 했다.

2002년 주수도씨를 불법 다단계 영업 혐의로 구속했던 서울 중앙지검 검사 한명이 이번에는 동부지검에서 제이유 정관계 로비 수사를 담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 이 검사를 지휘하며 주씨 구속을 주도했던 수석검사는 변호사로 나온 뒤 이번에는 거꾸로 주씨 변호를 맡아 동부지검의 옛 후배 검사 방에 드나드는 장면이 목격되기도 했다. 초기에 주씨를 충분히 체포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도피를 막지 못한 검찰의 수사 태도를 지켜본 기자는 7월부터 정관계 로비 리스트에 거명된 인사들과 로비리스트로 지목되는 제이유 내부 인사들을 직접 접촉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주수도씨가 ‘형님’으로 모시며 의형제를 맺었던 한 사업자를 만나 주씨가 벌여온 사업 인생 전체의 스토리를 확보할 수 있었다. 한마디로 주씨에게 ‘뭉텅이 금품 로비’를 빼면 불법으로 점철된 그의 사업은 애초 불가능했다는 주장이었다.

2002년 주씨가 검찰에 구속됐을 당시 수사 과정에서 주씨의 부탁을 받고 대신 죄를 뒤집어썼던 한 인사도 만났다. 그를 통해 주씨가 수사기관으로부터 미리 정보를 제공받아 내사에 대비하기 위해 제이유 사업장이 있는 지역의 수사기관은 항상 먼저 찾아가 일상적으로 관리해온 수법도 파악했다. 공직자과 각계 명사들에게는 돈뭉치를 안기거나 자문위원으로 위촉하고, 회원에 가입시켜 특혜를 주는 방식을 사업의 기초로 알고 실천해왔다는 것이다. 정치권 로비 심부름은 비서실 김00씨, 검경 상대 로비는 경찰 간부 출신 제이유 정00감사, 간부 이00씨, 또다른 간부 이00씨라는 점도 파악했다.  기자는 이 내용을 제보한 관계자들에게 검찰에도 제보해 수사를 도우라고 권유했고, 이들은 검찰을 찾아가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고 알려왔다.

수소문 끝에 돈 로비 심부름 역할을 한 것으로 지목되는 제이유 내부 관계자들을 만난 결과 정치인 돈심부름 의혹을 받는 김00씨는 “말해줄 수 없다”고 취재를 거절했다. 수사기관에 대한 로비를 맡은 것으로 지목된 또다른 이00씨는 “제이유에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경찰 선후배들에게 찾아가 부탁한 일을 맡은 것은 사실이지만 돈을 주지는 않았다”라고  주장했다.

주수도씨와 H씨는 로비 혐의를 끝까지 부인하고 있지만 제이유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이들은 한결같이 주수도-정생균(현재 중국 지사장)-H로 연결되는 제이유 경영의 축이 제이유 사업 피해 및 정관계 로비의 핵심이라고 입을 모았다. 기자는 이렇게 취재한 모든 내용을 8월14일 ‘악취 진동할 주수도 게이트’라는 제목의 《시사저널》커버스토리로 보도해 정관계 로비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그러나 정관계 로비 수사에 대한 이렇다 할 진전 소식은 없었다. 기자는 그간 취재한 세부 내용을 제보하겠다며 수사팀에 수차례 면담을 요청했지만 검찰은 완강하게 거부했다. 정관계 로비 의혹 수사가 답보 상태를 보이는 가운데 국정원 일각에서는 볼멘 소리가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국정원을 담당하는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국내 담당 차장과 김승규 국정원장을 상대로 '부당한 압력‘을 넣고 있다는 불만이었다. 요지는 국정원 문건을 《시사저널》 등에 흘린 내부 관계자를 찾아내 국정원직원법 위반 혐의로 처리하라고 요구한다는 것이다. 난감한 국정원 수뇌부는 ’연말 정기 인사 때 처리를 하겠다‘라고 물러섰지만 국정원 일선 직원들은 상당히 격앙된 분위기였다. 그도 그럴 것이 ’바다이야기‘ 사태가 터지자 노무현 대통령은 “도둑을 맞으려면 개도 짖지 않더라”라며 정보기관과 언론 등이 사전 경고 기능을 하지 않았다는 식으로 책임을 전가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일선 국정원 직원들은 바다이야기 사태 때도 사전 경고성 정보보고 문건을 올린 것은 물론, 제이유 사태에 대해서도 문건을 작성해 알린 국정원의 대응이야말로 국가와 사회의 안정을 위해 본연의 기능을 수행했다고 자부하던 터였다.

9월 들어서면서 국정원 문건에 적시된 제이유 그룹의 비자금 조성과 정관계 로비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가 활기를 띠는 조짐을 보였다. 검찰이 H 고문에 대한 계좌 추척과 압수수색을 벌이고, 그를 소환 조사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사실은 한씨가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와 “정기자가 쓴 ‘악취진동할 제이유게이트 터지나’ 기사 때문에 검찰이 나를 뒤지고 난리가 났다. 고소할 생각이다. 생사람 잡지 마라”라고 원망과 위협을 해오면서 알게 됐다. 일각에서는 동부지검 수뇌부와 대검이 교류를 하면서 청와대 일부 인사들이 보여온 제이유 수사 방향 견제 분위기를 돌파하기로 했다는 소식도 전해주었다. 제이유 사건 처리에 대한 권력기관들 내부의 미묘한 신경전과 기류를 다각도로 감지한 《시사저널》은 10월 들어 ‘정관계 로비 수사, 인력부족에 경찰, 청와대, 국정원 신경전 겹쳐 검찰 부담 두 배’라는 제목의 후속 기사를 다시 내보내며 동부지검의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H 고문의 로비 혐의는 빠져 있어

사기 횡령 배임 등 불법 영업 혐의에 대한 주수도씨의 재판은 8월 말에 시작돼 10월 이후에는 매주 한차례씩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기자는 매번 재판정에 참석하거나 사람을 보내는 방식으로 법정 증거로 제출된 새로운 사실들을 후속보도 하는가 하면 주씨가 옥중경영을 벌이는 실태를 낱낱이 추적했다. 엄청난 피해를 몰고 온 소비생활공유마케팅이라는 그의 ‘작품’이 사기가 아니라는 것을 재판정에 보여주기 위해 아직도 그를 따르는 제이유 사업자들을 감옥으로 면회 오게 하는 수법으로 ‘불스홀딩스’라는 업체를 경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주씨 구속 이후에도 피해의 악순환 고리가 계속된다는 점을 고발하자 그를 대리해 경영을 하고 있는 사업자 일부가 기자를 찾아와 주회장의 로비 인맥과 숨겨진 비리 등을 추가로 제보했다. 수사의 화살이 자기네에게 모이는 것을 막아보려는 고육책이었다. 집요한 문제 제기성 보도에 대해 검찰 고위 간부 출신 주씨의 한 고문변호사는 “악업을 조심하라”라고 기자에게 협박성 경고를 하기도 했다. 

10월 중순부터 검찰의 정관계 로비 수사는 청와대 이재순 사정비서관을 정면으로 겨냥하고 있었다. 이 같은 사실은 검찰 조사를 받고 나온 전직 제이유의 한 간부가 기자를 찾아와 하소연하면서 알게 됐다. 이비서관과 돈거래를 한 혐의로 지목된 제이유 납품업자 강정화씨는 “이재순 비서는 내 형부와 친구라서 내가 평소 형 형하며 따르는 사이다. 97년에 재순이형 부인과 분당 오피스텔을 분양받았다가 시공사가 부도나는 바람에 2004년에야 준공돼 내가 1년간 재순이형 오피스텔을 임대해 쓰다가 작년에 1억7천만원에 산 것인데 내가 제이유 납품업자이다 보니 구입 자금이 제이유로부터 받은 물품대금에서 나왔는데 그걸 검찰이 의심했다. 이미 8월에 재순이형이 대검에 불려가 조사를 받고 해명된 사건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녀는 이비서관의 어머니와 누나, 매형이 제이유 회원이고, 남동생은 제이유 납품업자였다는 점은 인정했다.

11월 들어 또 다른 제이유 내부 관계자는 대검 자문위원을 맡은 한 대학교수에게 주수도씨가 검찰 로비 명목으로 2억원을 건넸다고 제보했다. 그는 기자에게 제보한 이런 내용을 동부지검에 찾아가 진술해 정관계 로비 수사에 착수하도록 협조하기도 했다. 기자는 이런 내용들을 곧바로 기사로 쓸 경우 검찰의 계좌 추적 및 압수수색  방침을 사전에 알려줘 결과적으로 수사에 방해가 될 것을 우려해 구체적인 취재 내용은 철저히 보도를 자제했다.

수사를 시작한지 6개월간 잠잠하던 제이유 정관계 로비 의혹 사건은 11월26일 검찰 브리핑으로 ‘빅뱅’을 일으켰다. 모든 언론은 지난 8개월간 시사저널이 외로이 추적해온 제이유 정관계 로비 의혹과 국정원 문건, 정관계 로비 리스트 등을 인용하거나 확대해 연일 대서특필했다.

그러나 이 사건을 오랫동안 추적해온 《시사저널》입장에서는 지금까지 검찰이 공개한 수사 내용에 뭔가 석연찮은 점이 많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국정원 문건에 ‘1백억원대 비자금 정관계 살포’ 혐의자로 명시된 H 고문이 2004년 말 이후 제이유 그룹에서 실권을 쥔 뒤 벌였다는 로비 혐의는 하나도 없다. ‘제이유 로비’로 포장된 정승호 총경의 수뢰와 전직 치안감 3명이 한씨와 부적절한 돈거래를 했다는 내용은 따지고 보면 한씨가 제이유 에서 실권을 쥐기 전 개인 사업을 벌이면서 자기 사업 투자에 끌어들인 인연들이다. 물론 한씨가 대금을 갚은 시기는 제이유에 들어와 있을 때이기는 하다. 정관계 로비 의혹의 핵심을 비킨 채 변죽만 울린 수사 내용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또 검찰이 흘린 이재순 사정비서관 친인척의 제이유 회원 활동도 실제로는 H 고문이 제이유 그룹에서 중용되던 2005년 이후가 아니라 2003년 이비서관이 검사로 재직하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와 관련된 인물은 한씨가 아니라 당시 제이유 납품업자였던 강정화씨와 상품담당 이사였던 김영호씨이다. 이 두 사람에 대해 검찰은 배임 혐의로 불구속 기소한 상태다.

결국 2004년 가을을 기점으로 제이유 주수도 회장 아래서 핵심 실세 역할을 했던 H씨에 대해 일고 있는 정관계 로비 의혹 수사는 지금부터라도 철저하게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아니나 다를까 변죽만 울린 검찰 수사 내용이 빅뱅을 일으키자 성동구치소에 수감 중인 주수도 회장은 11월27일자로 기자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긴급 서신을 보내왔다.

“국정원 4대 의혹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내용이 지금 희안하게 언론에 짜깁기되어 대서특필되고 있습니다. 권력을 쥔 측과 부딪치는 것이 이렇게 허무하게 진실이 묻혀버린다면... 과연 이 땅에 진실이 존재하며 양심과 정의가 남아있는지, 정기자가 무엇이든 물어보면 있는 그대로 솔직히 답변드리겠습니다”.

이번만은 주수도씨가 말하는 진실과 정의가 사회 통념상 보편타당한 그것과 일치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검찰 총장까지 나서서 제이유 사태의 진실을 제대로 파헤치겠다고 국민에게 공언한 이상 주수도씨는 그 답을 언론 대신 검찰에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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