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가면 인류가 잃어버린 보물이 있다
  • 문정우 대기자 (mjw21@sisapress.com)
  • 승인 2006.12.04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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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우의 현장 속으로]전세계 생태학자와 환경운동 활동가가 주목하는DMZ의 대자연은 경이롭고 신비하며 아름다웠다.

 
인간 사이의 적개심과 긴장이 지나쳐 오히려 정적이 깃들인 곳. 심심치 않게 국제 사회를 뒤흔드는 한반도란 A급 태풍의 눈과 같은 곳. 대자연의 경이가 분단의 한과 설움을 조금이나마 보상해주는 곳. 그곳은 바로 비무장지대(DMZ)이다. 휴전선 남방한계선과 북방한계선 사이 폭 4km(남과 북이 모두 정전협정을 위반해 실제로는 대부분 그보다 훨씬 좁다)로 한반도의 동서를 가로지르는 이 가느다란 띠와 그 주변을 전세계의 생태학자와 환경보호 활동가들은 주목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우리가, 혹은 전세계가 지난 50년 사이에 잃어버리고 만 것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11월17일부터 11월23일까지 5박6일간 환경운동연합 해양습지팀(팀장 김경원)의 DMZ 생태 조사 활동을 동행 취재했다. 거기에는 우리가 가지 않은 길이 있었다.

 
한강 하구, 중부 내륙 평원, 동부 산간 지대. DMZ 생태계는 크게 이렇게 3구간으로 나눈다.
한강 하구는 쉽게 말해 한강과 서해가 만나는 곳이다. 바다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 이곳은 염분 농도가 0.5~30% 사이인 기수역이다. 해양 생물의 70%가 이 기수역에서 산란을 한다고 한다. 이곳은 숭어나 참게 따위의 회유성 어류나 갑각류의 영토이다. 또한 기수역에는 그곳에서만 자라는 독특한 식물군이 있다. 예전에는 서울 마포까지 기수역 생태의 특징을 보였으나 김포대교 근처 신곡수중보와 잠실대교 부근에 잠실수중보가 생긴 뒤부터 기수역은 훨씬 줄어들었다. 밀물이 되면 한강물이 신곡수중보를 너끈히 넘나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바닷물은 비중이 무거워 결코 신곡수중보의 문턱을 넘지 못한다.

이번 DMZ 생태 조사는 경기도 파주시의 오두산 전망대 뒤쪽 군부대 초소를 통과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본래는 저어새의 영토인 서해안의 무인도들과 강화의 북쪽과 남쪽 갯벌에서 시작해야 하지만 지금은 아쉽게도 여름 철새인 저어새를 보기는 힘들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환경 단체가 생태 조사를 하려고 오두산 전망대 초소를 통과하겠으니 허가해달라고 요청하면 군에서는 통 무슨 소리인지 이해를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하지만 요즘은 군도 환경에 많이 눈을 떠 조사가 훨씬 수월해졌다.

오두산 전망대 뒤쪽으로 돌아가니 철조망 너머 한강 하구가 발밑에 펼쳐진다. 남쪽과 북쪽의 강변이 모두 그림처럼 아름답다. 이곳에서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 물의 삼거리를 이루고 있다. 김경원 팀장이 “이곳은 보석 같은 곳이다. 우리나라 4대강 중에서 하구가 둑으로 막히지 않아 기수역이 자연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유일한 곳이다”라고 설명한다. 하구가 4대강 못지않게 잘 발달했던 만경강-동진강 하구 역시 새만금 방조제를 이음으로써 최후를 맞고 말았다.

서해에 황해라는 또 다른 이름을 선사한 중국의 황허(黃河)는 벌써 몇 년째 서해로 물 한 방울 못 흘려보내는 형편이다. 상류에서의 관개 확대와 공업용, 가정용 취수의 급증이 원인이다. 산둥성의 광활한 기수역은 모두 쓰레기장이 되어버렸음은 물론이다. 황해로 흘러드는 또 다른 대하인 창장(長江) 하구 역시 수질 오염과 산샤 댐 건설로 마지막 숨을 헐떡대는 실정이다. 북한의 강들도 삼림의 남벌과 그로 인한 갈수, 환경 오염으로 모두 황폐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강 하구는 서해에 사는 물고기들이 산란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터전이 된 셈이다. 그리고 시베리아나 몽골에서 남쪽으로 이동하는 철새들에게 온전하게 남아 있는 마지막 경유지이기도 하다.

 
오두산 전망대에서 철책을 따라 동쪽으로 이동하자 교하 물골, 성동습지가 나타난다. 이곳은 고양시에서 한강으로 흘러드는 곡릉천 하구 습지와 더불어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물게 기수역 식물들이 번성하는 곳이다. 또한 저어새, 재두루미와 함께 한강 하구의 3대 깃대종으로 불리는 개리의 영토이다. 깃대종이란 한 지역 생태계의 건강을 측정할 수 있는 대표 동식물 종을 말한다.

몸 길이가 80cm 남짓인 개리는 거위의 조상이라고 불릴 만큼 거위와 생김생김이 꼭 닮았다. 이놈은 구멍 뚫기 선수이다. 강변의 펄을 30cm 이상 파내 그 안에 목을 들이 밀고 먹이를 찾는다. 멀리서 보면 영락없이 ‘목 없는 새’이다. 주로 기수역에서만 자라는 세모고랭이, 새섬매자기 풀의 덩이 뿌리를 따먹는다. 식성이 이렇다 보니 동북아시아의 기수역 축소와 더불어 개체 수도 함께 줄어들어 이제 전세계에 1천5백여 마리밖에 남지 않은 희귀조이다.

교하 물골과 성동습지에서는 개리가 수십 마리씩 무리지어 열심히 먹이 활동을 하고 있었다. 바로 옆 자유로에서는 차들이 쌩쌩 달리고 있는데도 이들은 태평스럽게 구멍에 고개를 처박고 있다. 강변에는 이들이 뚫어놓은 구멍 자리가 가득하다. 고양이나 파주 시민 가운데 지척에서 세계적 희귀조가 먹이 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희귀조의 안식처, 개발 광풍에 휩쓸려

정부는 이곳 습지들을 환경보호구역으로 정했지만 이곳이 정말 보호될지는 의문이다. 습지를 이루는 강과 주변 평야들은 마구 파헤쳐지도록 방치한 채 습지만 보호하겠다는 것은 전형적인 탁상의 발상이다.
이곳은 수도권에서는 마지막 남은 노른자위 땅이어서 투기의 광풍에 휩쓸린 지 오래다. 우리나라가 앞으로 20년간은 쓸 골재가 쌓여 있다고 해서 건설업계에서는 벌써부터 군침을 삼키고 있는 곳이다. 남북의 긴장이 더욱 완화되면 이곳에서는 새만금과는 비교도 안 될 큰 싸움이 벌어질 것이라고 환경운동 활동가들은 예측한다. 개리에게는 불길한 소식뿐이다.

한강 하구에 기수역이 있다면 철원평야에는 소리가 있다. 11월19일 새벽 6시 철원평야의 토교저수지 근처로 다가가자 이곳에서 밤을 지내는 쇠기러기와 청둥오리가 울부짖는 소리가 요란하다. 김경원 팀장이 주말에 합류한 가족 단위 생태 여행 팀에게 열심히 설명하고 있다.
“인간의 오감 중에서 그나마 쓸 만한 게 귀라고 합니다. 눈을 감고 손으로 귀를 부채처럼 만들어 새들의 소

 
리에 귀 기울여보세요. 이곳은 인간이 만드는 소리가 없어서 정말 잘 들립니다.”
여명이 밝아오자 추위 속에서 거의 동면 상태에 있던 박새나 노랑텃멧새 따위 산새도 울부짖기 시작했다. 귀를 기울이니 정말 작은 새들의 소리까지 또렷이 구분해서 들린다. 이윽고 해가 뜨고 둑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이 앉거나 누워 키를 낮춰주자 쇠기러기들은 일제히 날아 올라 사람들의 머리 위 불과 5~6m 위로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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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원평야 한가운데는 아이스크림 고지가 있다. 한국전쟁 때 너무나 많은 포탄을 퍼부어 산 정상의 바위가 녹아내리는 것을 보고 미군 병사가 붙였다는 이름이다. 고지에 오르자 비로소 이곳에 왜 수만 발의 포탄이 떨어져야 했었는지 알 수 있다. 궁예가 새로운 나라를 세웠을 정도로 드넓은 철원평야가 발아래 있다. 이곳은 두루미의 영토다.

키가 1백50cm나 되는 두루미는 전세계적으로 15종이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두루미·재두루미·흑두루미가 월동을 한다. 특히 전세계적으로 1천5백 마리밖에 남아 있지 않은 두루미는 우리나라에서는 철원에서만 볼 수 있다. 또한 두루미·재두루미·흑두루미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곳은 전세계에서 오직 철원평야 한 군데뿐이다.

 
아이스크림 고지 주변에서는 수백 마리의 두루미들이 흩어져 논에 떨어진 알곡을 열심히 주워먹고 있다. 콤바인으로 탈곡하면 알곡의 3~5%는 논에 떨어진다고 한다. 그것이 두루미의 소중한 양식이 되는 것이다. 두루미란 이름은 울음소리를 본떠 지었다. 4km 밖에서도 선명하게 들린다는 두루미 울음소리는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을 정도로 아름답다. 두루미 소리는 끝까지 맑고 투명한 데 반해 재두루미의 울음소리 끝은 미묘하게 갈라진다.

우리나라 강 중에서는 거의 이곳 임진강에만 남아 있는 여울. 그 여울이 질러대는 함성과 두루미 울음이 어울어지는 하모니는 이곳에서만 되찾을 수 있는, 우리가 잃어버린 소중한 것 중의 하나이다.
두루미는 철원 사람들에게 자연이 선사하는 즐거움을 일깨워준 듯하다. 이곳으로 날아드는 수천 마리의 독수리를 먹여 살리는 곳이 바로 철원이다. 하지만 아침에는 새들에게 모이를 뿌려주고 밤에는 멧돼지와 같은 야생동물에게 총을 쏘는 이들 또한 바로 이곳 사람들이다. 개발의 물결은 이곳에서도 넘실댄다. 철원 시내에는 한 집 건너 부동산이다. 부동산 상호 중 가장 많은 것이 ‘원주민 부동산’이다. 이곳 주민들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개발 이익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산양을 보러 가는 길은 험했다. 설악산에서 오랫동안 산양을 관찰해온 환경운동 활동가 박그림씨가 동행했다. 강원도 양구군 사천리 초소에서 전망대까지는 무려 2천6백 계단. 하룻 밤에도 두 세 번씩 오르내리다 보면 제대할 무렵에는 무릎이 다 망가진다고 이곳의 병사들과 간부들이 하소연한다. 올라가는 길에 까마귀와 독수리가 공중전을 벌이는 것을 목격했다. 까마귀 두 마리가 등 뒤로 날아올라 쪼아대자 덩지가 몇 배나 더 큰 독수리가 황급히 도망치고 만다.

 
조사단은 이곳 고진동 초소 철책선 너머에서 최소한 일곱 마리의 산양을 필드 스코프(망원경)를 통해 확인했다. 박그림씨는 “설악산에서는 1년 동안 온 산을 뒤지고 다녀도 산양 그림자를 구경하기 어렵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너무나 쉽게 산양이 뛰노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산양들 가운데는 ‘묵상의 대가’라는 별명에 걸맞게 몇 시간씩 꼼짝 앉고 앉아서 되새김질을 하고 있는 놈들도 있었다.

뒤통수를 스쳐가는 새 울음소리만 들어도 무슨 소리인지 신통하게 맞혀내는 김인철씨의 스코프에는 진기한 장면이 잡혔다. 노랑부리때까치가 개구리를 잡아 나무에 걸어놓고 찢어 먹는 모습이었다. 하긴 지금이야 신기하다고 법석을 떨지만 예전에는 집 근처에서도 얼마든지 볼 수 있던 광경이 아닌가.
둑이 없는 하구와 거기로 흘러드는 작은 지류들, 한없는 고요함, 새와 짐승의 울부짖는 소리, 논 가운데의 작은 뚬벙들. 예전에는 하찮게 여겼지만 생물종의 다양성을 유지하기 위해선 없어선 안 될 것이라고 밝혀진 그 모든 것들이 DMZ 안에는 고스란히 있었다. 아무도 돌보지 않은 덕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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