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유행’ 공포, 다시 고개 드는가
  • 오윤현 기자 (noma@sisapress.com)
  • 승인 2006.12.04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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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 전문가들 경고 잇따라…H5N1 바이러스 변이 계속되면 최악 재앙 올 수도

 
2004년 3월, 경기도 양평에서 조류 독감이 마지막으로 발견된 뒤 기자는 관련 자료를 거의 다 폐기했다. 그와 함께 국내 전문가들이 주의 깊게 언급한 발언들도 하나 둘 잊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김우주 교수(고려대 의대 구로병원·감염내과)의 “조류 독감이 대유행할 가능성이 크다”라는 말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 뒤 세계보건기구(WHO) 등에서 조류 독감 확산을 경고하는 메시지가 나왔지만, 기자는 그 ‘사이렌’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다만, 지난 10월 전세계에 조류 독감이 유행하는 상황을 보면서, 국내에 조류 독감 바이러스가 ‘다시 활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만큼 지난 2년8개월 동안 한국은 조류 독감으로부터 안전했다.

그러나 지난 11월22일, 전북 익산에서 조류 독감 바이러스의 존재가 다시 확인되면서 상황은 뒤바뀌었다. 기자는 다시 자료를 챙기고, 전문가들의 말과 글에 이목을 집중했다. 그 결과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다. 바로 ‘조류 독감 대유행 임박’이라는 발언이다. 국내외 많은 전문가가 그 말을 반복해서 꺼내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가을, 동남아·유럽·아프리카 등지에서 조류 독감이 동시 다발적으로 발생하면서 경고음은 더 강력해졌다. “팬데믹(대륙 간 전염병)이 발생할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커졌다”라는 발언도 그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사람과 사람 간의 감염이 확인되지도 않은 상황이었다.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에서 사람 간의 감염이 의심되는 환자가 발견되었으나, 사실 확인이 불가능했다. 그러나 그 뒤 베트남에서 H5N1 바이러스로 인한 조류 독감이 ‘집오리→오빠→두 명의 여동생’에게 전이된 사실이 밝혀진 뒤 전문가들은 경악했다.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이제 전문가들 사이에 이견은 사라졌다. 그들은 “미래에 인플루엔자 대유행 사태가 발생할 것이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라고 입을 모았다.    

대유행이 일어나려면 몇 가지 발생 조건이 딱 맞아떨어져야 한다. 김우주 교수에 따르면, 우선, 새로운 독감 바이러스가 출현해야 한다. 그리고 사람 중에 감염자가 발생해야 하고, 확산 능력이 뛰어나 사람과 사람 간에 쉽게 전염되어야 한다. 네 번째로는 지역과 지역 간에 빨리 확산되어야 한다. 20세기 들어 이같은 발생 조건을 모두 갖춘 대유행은 네댓 차례 발생했었다. 1918년 스페인독감(H1N1), 1957년 아시아독감(H2N2), 1968년 홍콩독감(H3N2), 1977년 러시아독감(H1N1) 등이 그것이다.

이들 대유행에 따른 사망자 수는 들쭉날쭉한데, 스페인독감이 가장 많아서 무려 5천여 만명이 희생되었다. 홍콩독감과 아시아독감은 그보다는 적지만 50만~1백만 명을 사망케 했다. 독특하게도 러시아독감만은 사망자 수가 그리 많지 않았는데, 이유가 있었다. 1950년대 유행했던 바이러스와 거의 동일한 바이러스여서, 이미 사람들 몸에 그 바이러스에 대한 항체가 있었던 것이다.

그 외에도 대유행으로 진화하지는 않았지만, 몇 차례 발생 조짐은 있었다. 9년 남짓 위세를 떨치고 있는 H5N1 바이러스. 이 바이러스가 1997년 홍콩에 나타났을 때 감염학자들은 아연실색했다. 그 위력이 워낙 막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닭 1백50만 마리를 도살함으로써 가까스로 대유행의 위험을 피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아직 H5N1 바이러스 토착화 안 돼

1998~1999년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는데, 무대는 중국과 홍콩이었다. 주연은 이름이 생소한 H9N2 바이러스. 1998년 남중국에서 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이 아홉 명이나 보고되었다. 그 다음해에는 홍콩에서 추가로 2명이 더 확인되었다. H9N2 바이러스는 새로운 바이러스였으나, 다행히 사람과 사람 간에 전이가 안 되어 어느 순간 자취를 감추었다. 2003년에는 네덜란드에서 H7N7 바이러스가 발견되었는데, 가금류 농장에서 일한 사람들의 눈에 결막염을 일으킬 만큼 위력이 있었다. 그러나 가금류를 도살하고 환자들을 적절히 치료한 덕에 대유행을 미리 차단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대유행으로부터 안전할까. 답은 ‘세계 어느 나라도 안전하지 않다’이다. 국내에서도 H5N1 바이러스의 인체 감염 가능성이 엿보인 사례가 있었다. 2003년 조류 독감 발병 위험이 있는 가금류를 도살하는데 참여한 아홉 명의 사람에게서 H5N1 바이러스 항체가 발견된 것이다. 이는 그 바이러스가 인체 내에 들어왔다 나갔음을 뜻한다. 다행히 아무 사고 없이 넘어가기는 했지만, 도살 작업에 참여한 인부들이 허투루 일을 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잘 보여준 사례이다. 오랫동안 조류 독감을 연구해온 서상희 교수(충남대·수의학)는 “사라진 줄 알았던 H5N1 바이러스가 다시 나타났다. 이는 그 바이러스가 어디에서 왔든, 대유행 발생 위험이 우리나라에도 상존해 있다는 의미다”라고 말했다.

대유행을 걱정하는 감염학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H5N1 바이러스의 돌연변이이다(위 상자 기사 참조). 이 바이러스는 2006년 11월까지 2백58명을 감염시켜, 그중 1백54명을 사망케 했다(치사율 59%). 이 바이러스가 변이를 거듭해서 사람과 사람 간에 쉽게 감염이 되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 일부 전문가는 5천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H1N1 바이러스보다 몇 배 더 강력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미 H5N1 바이러스는 몇 번의 변이를 거쳐 조류에서 가금류나 돼지로, 가금류나 돼지에서 인체로, 인체에서 인체로 침투하는 데 성공했다. 이제 남은 것은 어쩌면 빠른 전염을 위한 변이밖에 없는지 모른다. 

다행히 한국에서는 지금까지 H5N1 바이러스가 토착화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그렇다고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 태풍을 예보하고 대처하듯, 조류 독감도 그럴 필요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충고다. 서상희 교수는 “주요 지역마다 조류 독감을 탐지하고, 연구하는 기관을 설치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그만한 조기 발견법과 예방법이 없다는 말이다.  

 
더 놀라운 것은 독감 바이러스의 크기다. 공 모양의 이 바이러스 입자는 지름이 0.1마이크로미터에 불과한데, 그 크기로 벌써 수천만 마리 이상의 가금류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그런데 독감 바이러스를 분류하는 H1은 뭐고 H5는 뭘까. 또 N1은 뭐고 N2는 뭘까. 해답은 바이러스의 입자 표면에 있다. 그곳을 보면 헤마글루티닌(HA:적혈구 응집소)이란 단백질과 뉴라민산 분해 효소(NA)가 다닥다닥 붙어 있다. 두 단백질은 흡착과 융합 등을 통해 바이러스 입자가 숙주 세포에 쉽게 침투하도록 돕는다.

이 단백질들은 독특하게도 유형에 따라 H1, H2… H15, N1, N2… N9로 나뉜다. 그러니까 H5N1 바이러스는 바로 바이러스 입자 표면에 H5 단백질과 N1 단백질이 있음을 뜻다. 따라서 이론적으로 독감 바이러스는 모두 1백35(15×9)가지가 존재할 수 있다. 전문가들이 다음에는 어떤 독감 바이러스가 출현할지 예측을 잘 못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변이가 워낙 다양해 어떤 식으로 조합될지 쉽게 가늠이 안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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