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거인 ‘임프린트’의 힘
  • 차형석 기자 (cha@sisapress.com)
  • 승인 2006.12.08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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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진지식하우스, ‘가장 주목되는 출판사’로 꼽혀…신뢰도는 ‘돌베개’ 1위

 
질문부터 보자. ‘(규모와 무관하게) 올해 가장 주목할 만한 출판사는 어디라고 생각하십니까(복수 응답)’. 편집 책임자들이 꼽은 출판사는 웅진지식하우스(10명), 위즈덤하우스(9명), 토네이도(9명), 다산북스(9명), 휴머니스트(7명) 순이었다. 이들 출판사는 기획·마케팅 시스템이 남다르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웅진지식하우스가 대표적이다. 이 출판사가 가장 주목할 만한 출판사로 꼽힌 것은 올해 <경제학 콘서트> <여자 경제학> <스페인 너는 자유다> 등 이곳에서 낸 책들이 여러 권 베스트셀러가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른바 임프린트 제도에 대한 편집자들의 관심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임프린트는 전문 편집자에게 독자 브랜드를 주고, 경영 책임을 맡기는 제도이다. 웅진지식하우스의 경우, 웅진씽크빅 단행본 출판 부문의 내부 임프린트이다. 웅진지식하우스의 직원 수는 17명. 인문교양·문학출판·실용·무크팀 등 4개 팀으로 나뉘어 콘텐츠 개발을 담당한다. 책임편집제로 각 에디터들은 마케팅 기획, 홍보, 디렉팅, 개발을 총괄하는 프로듀서 역할을 한다. 마케팅 조직은 단행본 출판 부문에서 단일 조직으로 총괄해 내·외부 임프린트를 관리한다.

웅진지식하우스라는 브랜드를 사용한 것은 지난해 초. 그전에는 ‘웅진출판’ ‘웅진닷컴’ 이름으로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등 대형 화제작을 냈지만, 모회사의 아동물 전집 출판 이미지가 워낙 강해 단행본 출판사로서의 이미지는 약했다. 그러던 것이 올해 출간 종수도 늘어나고, 출간한 책들이 베스트셀러에 진입하면서 짧은 기간 동안에 단행본 출판사 이미지를 굳혔다는 것이 이수미 웅진지식하우스 대표의 설명이다.

웅진지식하우스가 올해 출간한 책은 80종. 지난해 50종에서 30종 가량 늘어났고, 1년 매출액도 50억원에서 80억원으로 증가했다. 웅진지식하우스는 2007년에는 ‘100종 출간 100억 매출’을 목표로 문학·인문·교양 분야 단행본 임프린트로 브랜드를 강화하고, 스테디셀러가 될 수 있는 시리즈물 개발에 주력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웅진의 내·외부 임프린트사를 재정비한다. 외국소설을 출간했던 임프린트 ‘노블 마인’을 웅진지식하우스와 합치고, 웅진지식하우스 내 실용팀, 무크팀은 독립 임프린트로 분리하는 식이다.

‘시스템 혁신’ 위즈덤하우스 높은 순위

이밖에 위즈덤하우스와 휴머니스트도 독자적인 운영 시스템 때문에 더 주목을 받은 것으로 해석된다. 이들 출판사는 각각 ‘분사제’와 ‘책임 편집장 제도’를 특징으로 하고 있다.

다산북스와 토네이도는 올해 경제·경영 출판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다산북스는 자회사 다산초당을 통해 역사 교양서 시장에서 선전했다. 올해 1월에 설립한 토네이도는 지금껏 낸 9종 가운데 4종이 베스트셀러에 진입해 4할 이상 타율을 기록했다.

이번 설문 조사에서 눈여겨볼 또 다른 항목은 ‘가장 신뢰하는 출판사’를 묻는 질문에 대한 응답이다. 올해는 <마시멜로 이야기> 대리번역 사건, <인생수업> 표지 저작권 논란, 사재기 파문 등으로 출판계가 ‘신뢰의 위기’에 휩싸인 해이기 때문이다. 이는 동전의 양면처럼, 마케팅이 부각되면서 나타난 비정상적 현상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출판사의 신뢰도에 대한 답변 결과는 더더욱 의미가 깊다.

편집 책임자가 꼽은 가장 신뢰하는 출판사는 돌베개(11명) 사계절(8명) 창비(7명) 휴머니스트(6명) 민음사(5명) 순이다. 휴머니스트를 제외하고는 역사와 전통이 깊은 출판사들이다.

인문·사회과학 출판사 편집자들의 전폭적 지지를 받은 돌베개는 1979년에 창립했다. 장준하 선생의 항일 수기집 <돌베개>에서 이름을 따왔고, 창립자는 이해찬 의원이다. 번역자로 인연을 맺었다가 편집자·편집장으로 일했던 한철희 대표는 돌베개를 크게 1기, 2기로 구분했다. 1980~1990년대 초반에는 사회과학 출판 운동의 성격이 강했다. <전태일 평전> <다시쓰는 한국현대사 1·2·3>가 이 시기의 대표작이다. 1990년에 들어오면서, 인문학으로 시선을 확장한 것이 2기 돌베개이다. 한국의 역사와 문화 등 한국적 인문학의 저변을 넓히는 시도를 많이 했다.

 
돌베개 1기 때나 2기 때나 변함없는 것은 국내 필진이 쓴 서적이 중심이고, 번역서 비중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이다. 사실 번역서를 많이 내면 금세 종수를 늘리고, 출판사 규모를 확장하기 쉽다. 하지만 돌베개는 천천히, 꼼꼼히, 단단하게 책을 만든다. 우리 문화나 전통 문화에 해박하고 글도 잘 쓰는 국내 필진이 많지 않고, 이런 책일수록 특성상 도판이 많이 들어가 편집자들의 품이 많이 들 수밖에 없다. 저자와 편집자 사이에서 수차례 원고가 오가면서, 원고는 점점 단단해진다. 신뢰는 이런 우직함에서 나온다.

사계절, 창비, 민음사는 출판 명가들은 과거의 저력이 여전히 빛을 내고 있는 경우다. 사계절은 최근 아동·청소년 분야에서 양서들을 펴내고 있다. 문학·지식인 담론의 주요 거점인 창비에 대한 신뢰는 여전하다. 민음사는 사이언스북스, 비룡소 등 분야별로 안정적 자회사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휴머니스트 같은 경우는 주목할 만한 출판사와 신뢰도가 높은 출판사, 두 설문 결과에 모두 명단이 올랐다. 편집 책임자들이 휴머니스트가 도입한 분야별 책임 편집장 제도에 대해 기획력과 신뢰도 면에서 ‘성공적’이라고 평가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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