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의 제국’에도 해가 지는가
  • 런던 · 박근영 (자유기고가) ()
  • 승인 2007.01.02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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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일간지들 판매 부수 계속 감소…부록 발행에 덤핑까지 생존 안간힘

 

 
“DVD 때문에 신문을 샀다. <알라딘> <신데렐라> <미녀와 야수> 등 11편을 모았다.” 런던에 사는 조너선 마이어(43) 씨의 말이다. <데일리 메일>은 지난해 12월5일부터 신문을 구매하는 모든 독자에게 매일 무료 어린이 만화 영화 DVD를 주고 있다. 한 부에 45펜스(약 9백원)라는 신문 가격을 고려하면 파격적인 이벤트다.

<가디언>은 영화 DVD·선물 포장지·동물 스티커·월차트 등을, <인디펜던트>는 별자리 도표와 해·달·별이 그려진 포스터를 부록으로 주고 있다. <데일리 텔레그래프>는 DVD와 퍼즐 가이드북에 이어 다음날 신문을 할인해 주는 쿠폰까지 제공한다.

요즘 영국 신문들이 마치 한국 여성지처럼 부록 경쟁을 벌이는 이유는 판매 부수 감소 때문이다. 영국인들은 전통적으로 신문 읽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신문 시장의 위기는 ‘신문의 천국‘이라던 영국도 피해갈 수 없다.
미디어 리서치 전문가 짐 빌턴씨는 <가디언>에 기고한 글에서 “신문들이 새 독자를 유혹하고, 잡아두기 위해 시각적 부록을 사용한다”라고 말했다. <가디언> 마케팅부 린지 씨는 “지난 5월에 처음으로 교육용 월차트 시리즈를 제공했다. 독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라고 말했다. <인디펜던트>는 6월에 미술 포스터 시리즈를 기획해 <가디언>과 같은 효과를 얻었다. 반면 <데일리 메일>은 지난 7월 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를 학습할 수 있는 CD 18장을 부록으로 내걸었으나 오히려 신문 판매량이 감소했다.
다양한 부록에도 불구하고 제값에 팔리는 신문은 줄고 있다. ABC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에서 지난달 정가에 팔린 신문은 전체 판매량의 88%에 불과하다. 1년 전과 비교해도 9% 낮아진 수치다.

<가디언>은 ‘덤핑’이 횡행하면서 방식도 유형화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일반 소매 시장에서 가격을 낮춰 판매하는 것이 가장 보편적 방법이다. ABC의 집계에 따르면 <더 선>은 지난달 36%의 신문을 정가보다 낮게 판매했다. ‘선불 예약’ 방식도 성행이다. <텔레그래프>는 주중 신문의 37%, 일요 신문의 50%가 미리 큰 폭의 할인을 받고 장기간 정기 구독을 신청한 독자에게 팔린다. 이렇게 제공된 신문은 비행기·호텔·기차·레저센터 등에서 무료로 볼 수 있다. <가디언>은 이 때문에 ‘영국의 호텔에서는 <인디펜던스>, 기차에서는 <더 타임스>를 자주 만난다’라고 설명했다.

ABC는 영국에서 지난달 팔린 전체 신문 부수가 1년 전에 비해 5%나 줄었다고 발표했다.
영국 신문 시장은 크게 여섯 종류로 분류된다. 먼저 발행 횟수와 시기에 따라 주중 신문과 일요 신문으로 나누고, 이를 다시 각각 대중 신문·중간 신문·고급 신문으로 분류한다. 최근 신문 판매량의 감소세는 주중보다는 주말 신문, 중간 신문과 고급 신문보다는 대중 신문에서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일요판 대중 신문은 가장 큰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뉴스 오브 더 월드> <선데이 미러> <더 피플> <선데이 메일> <데일리 스타 선데이>는 지난해에 비해 8.3%나 판매량이 감소했다.
주중판 대중 신문 시장은 전년 대비 5%의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주중 신문 시장에서 가장 많은 독자를 확보하고 있는 <더 선>의 하락세가 미치는 영향은 크다. <더 선>은 지난해 10월에 1974년 1월 이후 가장 저조한 판매실적을 보였다고 발표했다. 11월에는 이보다 더 떨어진 수치를 보였다. 미디어 전문지 <프레스 가제트>는 “<더 선>의 판매량이 9월에 진행한 DVD 무료 증정 행사가 끝난 이후 감소세로 돌아섰다”라고 분석했다.

무료 신문 증가하면서 독자 빼앗겨

미디어 전문가들은 신문의 이같은 판매량 감소의 원인을 무료 신문의 확산에서 찾고 있다. 출근길 런던 지하철에서는 대다수 승객이 <메트로>를 읽는다. 오후에는 런던 시내 곳곳에서  <런던 라이트>와 <더 런던 페이퍼>를 무료로 나눠준다. 무료 신문 사이의 경쟁이 가속되면서 이들의 발행 부수가 증가한 대신 대중 신문의 입지가 줄어든 것이다. <런던 라이트>가 무료 신문 시장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경쟁사인 <더 런던 페이퍼>가 지난달부터 부수를 늘리면서, 주중 석간 신문 <이브닝 스탠더드>의 판매 실적이 전년 대비 21.37%나 줄어든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일요판 고급 신문 시장은 가장 큰 점유율을 보이고 있는 <선데이 타임스>가 가격을 인상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선데이 타임스>는 지난해 1월 신문 가격을 1.6파운드에서 1.8파운드로 인상한 것에 이어 지난 9월에는 영국 신문 시장에서 처음으로 2파운드짜리 신문이 되었다. 그 결과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7.63%의 독자를 잃었다. 가격 상승 이후 두 달 연속 7년 만의 최저치를 경신하고 있는 셈이다.
ABC에 등록된 유료 신문 중 2006년에 비해 판매량이 증가한 것은 주중 시장에서는 <파이낸셜 타임스>, 일요 시장에서는 <선데이 메일> <옵서버>에 불과하다.

판매 감소로 인한 수익 감소에도 불구하고 가열되고 있는 부록과 덤핑 경쟁으로 각 신문사의 재정적 부담은 커지고 있다. <가디언>은 “이같은 프로모션은 많은 돈을 빨리 잃을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도박과 비슷하다”라고 경고했다. 실제로 <데일리 텔레그래프>는 2006년 1천2백만 파운드의 적자 위기에 처해 있다. 이 신문사의 2005년 이익은 3천3백만 파운드였다.

각 신문사는 재정적 부담을 회사 내부 인력을 줄이는 것으로 메우고 있다. <프레스 가제트>는 <선데이 익스프레스>가 정규직 기자를 16명으로 줄이려 한다고 밝혔다. 이는 80년대 후반 80여 명의 기자를 고용했던 것과 대비되는 상황이다. <데일리 텔레그래프>의 기자들은 회사에서 54명을 추가로 감원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파업을 하겠다는 성명을 지난달 발표했다. 이 신문사는 지난해 1월에 이미 90명의 직원을 해고했었다.
영국 신문 시장의 부록과 덤핑 전쟁은 새해를 맞아 잠시 주춤할 것으로 예상된다. ABC의 집계에 따르면 전통적으로 크리스마스 휴가가 끝나는 1월은 신문 판매량이 증가하는 추세를 보인다. 지난해 1월에도 전년 12월과 비교해 판매량이 7% 늘었다. <가디언>은 이를 ‘12월에 왕성했던 광고 전략이 효과를 거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꾸준히 늘고 있는 각 신문사의 감원, 감봉 움직임과 함께 영국 신문 시장의 위기는 점점 깊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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