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야 혹은 중대선거구제의 꿈
  • 김행 편집위원 ()
  • 승인 2007.01.19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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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대통령, 개헌 실패하면 선택할 가능성...한나라당 분열, 정계 개편 저지 등 겨냥

"참 대통령”이라고 한마디로 일갈한 박근혜 전 대표의 촌철살인. 노무현 대통령은 이에 “나쁜 대통령은 자기를 위해 개헌하는 대통령”이라고 맞받아쳤다. 그렇다면 이제 국민에게 물어볼 차례다. 때 맞추어 실시된 각 언론사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노대통령의 ‘4년 연임제 개헌 카드’에 70% 가까이 반대했다. 대다수 국민이 ‘4년 연임제 개헌’의 필요성 자체에는 동감함에도 불구하고 그렇다. 이는 혹시 ‘정략적 의도가 낀 정치적 노림수’로 보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대통령이 탈당은 생각 않고 있다”라고 한 이병완 대통령 비서실장의 말은 무엇인가. 진정성을 인정받고 싶다면 열린우리당 탈당 및 중립 내각 구성이 먼저 아닐까.

 
개헌 카드는 결국 여론의 역풍을 맞았다. 자칫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날지도 모를 분위기다. 정치권에서도 외면하는 기류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즉각 찬성’ 입장을 밝혔던 열린우리당의 반응조차 시시각각 변했다. 이상민 의원은 “5년 단임제와 잦은 선거 때문에 국정 운영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는 노대통령의 주장은 시험 성적 나쁜 학생이 필기구를 탓하는 억지나 다름없다”라며 반대 활동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천정배 의원도 “한나라당이 반대하면 어차피 안 된다”라는 입장이고, 양형일 의원도 “노대통령의 진정성이 받아들여지거나 여당이 일사불란하게 동력이 되어줄 상황이 아니다”라고 제동을 걸었다.
게다가 통합신당 추진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까지 겹치면서 열린우리당은 “개헌과 전당대회(통합신당 추진)라는 두 트랙을 함께 돌리겠다”는 입장을 정했다. 개헌 관철에 총력을 기울이는 청와대의 모습과는 다른 것이다. 당 관계자는 “개헌과 통합신당이 제로섬은 아닌 만큼 당은 청와대측 대응에 따른 여론 추이를 지켜보며 차분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 상황이 얽히기 시작하자 노대통령은 다급해졌다. 1월11일 긴급 기자간담회를 통해 “개헌안 처리를 전제로 열린우리당 탈당을 고려할 수 있다”라며 또 다른 승부수를 던졌다. ‘임기 단축’도 하지 않을 것이고, ‘중대선거구제 개편 가능성’에 대해서도 ‘설득이 어렵다’며 협상 가능성을 배제했다.  
그런데도 개헌을 제안한 노대통령의 진정성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은 왜일까. CBS가 1월11일 긴급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국민 65.8%가 “대통령이 탈당해도 임기 내 개헌이 어려울 것이다”라고 한 것이 답이 될까. 국민들의 눈은 정확했다. 대통령이 개헌을 발의한다 해도 제적의원 3분의 2가 찬성해야 하는 국회 의결에서 개헌 저지선을 확보한 한나라당이 반대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1백39명의 여당 의원 전원이 찬성한다 해도 61석이 부족하다. 따라서 ‘개헌안 처리를 전제로 한 탈당’이 힘을 받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빤한 게임인데도 불구하고 노대통령이 집념을 보이니 저의가 의심스러운 것이다. 게다가 개헌안 발의가 무산되고 나면, 그렇지 않아도 10%대의 지지율에 머물러 있는 노대통령은 거의 정치적 사망 선고를 받을 수도 있다. 이 얼마나 위험한 게임인가. 그렇다면 노대통령은 자살골을 넣은 것인가. 개헌론만 보면 그렇게 보여진다. 실패가 예상되는 ‘불완전한 카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대통령의 ‘다음 수’에 주목하게 되는 것이다. 도대체 그가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임기 말까지 정국 주도권은 분명하게 쥐고 간다:

어도 한 가지 의도만은 분명하게 집힌다. 지지율은 바닥이지만, 판을 흔들어 ‘정국 주도권’을 계속해서 잡겠다는 속셈이다. 즉 ‘레임덕은 못 견디겠다’는 처절한 몸부림이다. 그가 누구인가. 자신이 반드시 주인공이어야만 하는 스타일이다. 국회 ‘청문회 스타’로 떠오를 때부터 그의 행동은 돌출적이었다. 그 돌출은 때론 노무현만의 풋풋한 매력이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그 뒷맛이 씁쓸한 이유는 무엇인가. 김수현 작 <사랑과 야망>이라는 드라마에 ‘미자’라는 주인공이 나온다. 엉겁결에 여배우가 되어 일역 스타의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세월 앞에 잔인하게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이 여배우의 운명. 그녀는 자신의 능력 부족과 시대의 흐름을 거부한 채, 과거의 영광에 얽매여 세상과 싸우다가 알코올 중독에 빠져들고 만다. 그러나 노대통령은 다르다. 그는 타고난 승부사다. 끝까지 좌절하지 않고 어떻게든 주인공으로 남고 싶은 것이다. 연초 “합법적 권력을 마지막 날까지 행사하겠다”라고 예고했듯이.
노대통령은 일단 전언론과 정치권 그리고 국민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데 성공했다. 역시 그는 정치판을 뒤엎는 ‘환국(換局)의 고수’임에 틀림없다. 문병호 의원 말마따나 “여권에서 정치권에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사람은 노대통령밖에 없다”라는 사실을 새삼 확인시켜준 것이다.
개헌론이 갖는 파괴력은 그 크기와 상관없이 정치권 모두를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다. 당장 지지층은 결집하고 반대 세력은 날을 세웠다. ‘선제 탈당론’으로 흔들리던 열린우리당은 ‘개헌 찬성’으로 일단 뭉쳤다. 이른바 여당발 정계 개편에 ‘꼼짝 마’라며 쐐기를 박은 것이다. 통합신당파와 고건 신당도 정치 일정에 차질을 빚게 되었다. 반면 한나라당과 한나라당의 ‘빅 3’인 이명박 전 시장, 박근혜 전 대표, 손학규 전 지사는 ‘개헌 논의’ 자체를 공식적으로 거부했다. 노대통령이 1월11일 ‘4년 대통령 연임’ 안을 설명하기 위해 마련한 오찬 회동에도 야 4당은 불참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결과적으로 정치권을 ‘개헌 세력’ 대 ‘반개헌 세력’으로 가르는 전선 구축에 성공한 것이다.
그렇다면 당분간 주도권을 노대통령이 쥘 수도 있다.
쭦한나라당 경선 깨려면 5월까지는 개헌 시나리오 끝내야:노대통령은 “너무 늦지 않은 시기에 헌법이 부여한 개헌발의권을 행사하겠다”라고 했다. 이병완 비서실장의 추가 설명에 따르면 “적어도 상반기 안에…. 4, 5월 이전에 끝나면 부담이 없다”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2월께 발의해 5월께 국민투표를 하겠다는 뜻이다. 6월로 예정된 한나라당의 경선보다 한 달 빨리 끝내겠다는 것이다. 이 ‘급박한’ 일정에 바로 노대통령의 노림수가 담겨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한나라당을 흔들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방식을 염두에 둔다는 얘기일까.
노대통령의 계산법을 추적해보자. 먼저 노대통령은 여론 정지 작업부터 할 것이다. 물론, 당장의 여론은 불리하다. 그러나 일단 개헌 논의가 국회로 넘어가면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다. 노대통령은 급한 대로 ‘4년 연임’이라는 ‘원 포인트 개헌’만 주장했지만, 일단 물꼬가 터지면 원 포인트 개헌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정·부통령제 개헌, 중대선거구제 변경에서부터 영토 조항에 이르기까지 온갖 논란이 불거질 것이다.
2~3개월간 국회는 시끄러울 것이며, 언론과 여론은 갈리고, 정치권은 ‘개헌 찬성 세력’ 대 ‘개헌 반대 세력’으로 나뉘고, 국민은 선택을 종용받을 것이다. 노대통령은 필요하다면 여론 분열이 최고조에 이를 때 ‘진성성’을 보인다며, 돌연 탈당 카드를 내놓을 수도 있다. 이 시점에서 여론이 노대통령에게 유리하게 돌아갈지, 불리하게 돌아갈지는 누구도 장담하기 어렵다. 만약 순풍이 분다면 한나라당은 ‘대권에 눈이 먼 반개혁 세력’으로 낙인찍힘과 동시에 분열할 수도 있을 것이며, 역풍이 분다면 범여권은 노대통령과의 결별을 준비할 것이다. 노대통령이 노리는 것은 한나라당의 분열과 여권발 정계 개편의 저지가 아닐까. 

중대선거구제로의 개편 카드도 나올 수 있다:

 
개헌 발의 실패에 대해 대통령 직 하야라는 정공법으로 승부수를 띄울 수도 있지만, 여론의 부담이 만만치 않은 것도 사실이다. 이때 꺼낼 수 있는 것이 바로 ‘중대선거구제 개편’이라는 깜짝 카드다.
‘지역 감정 해소’라는 명분을 앞세울 수 있다. 공직자 선거법은 국회 발의에 실패해도 대통령이 직접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다. 헌법 제72조는 대통령이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는 외교, 국방, 통일 기타 국가 안위에 관한 주요 정책을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
어찌 보면 노대통령에게는 하야 카드보다 중대선거구제 카드가 더 실리를 챙길 수 있을지 모른다. 만약 올 12월 대선에서 정권이 바뀐다면, 2008년 4월에 치러지는 총선에서는 현재의 소선거구제로는 완패할 것이 거의 분명하기 때문이다. 대선 전망이 불투명한 여당 의원들은 중대선거구제를 선호할 것이 뻔하다. 여당발 통합신당 창당론도 따지고 보면 호남에서만이라도 살아보겠다는 호남 출신 의원들의 ‘도로 민주당’이라는 계산 때문 아니었는가. 그래서 개헌 실패 후 중대선거구제 개편을 들고 나와, ‘이것마저 안 되면, 대통령 직을 그만둘 수도 있다’라며 배수진을 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설사 임기와 연계하지 않더라도 대통령의 발의로 여야가 ‘중대선거구제’를 놓고 전국을 돌며 선거 운동을 하게 되면 상황은 복잡해진다. 우선 여당은 ‘지역 감정 극복 세력’이 되고 한나라당은 ‘지역 감정에 편승하려는 세력’으로 나뉘어 전선 구축이 되는 것이다. 명분에서 한나라당이 밀리는 형국이다. 게다가 전국이 선거판이 되면 여당발 정계 개편도, 한나라당의 후보 경선도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더욱 중요한 것은 중대선거구제 개편에 성공한다면, 영남권에 주로 포진되어 있는 친노 세력이 살아남을 수도 있게 된다는 사실이다. 친노 세력의 생존은 정권 교체시 정치 보복으로부터도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다. 

개헌론, 하야론과 맞물려야 파괴력 커진다:

 
한나라당을 분열시킬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카드는 바로 ‘하야 카드’다. ‘개헌 카드’와 ‘하야 카드’라는 두 카드가 완벽하게 맞물려야만 노대통령의 생각대로 정치권이 작동하게 되는 것이다. 이미 과거에도 여러 차례 ‘조기 하야’의 군불을 때던 노대통령이다. 노대통령이 갑자기 하야하게 되면 헌법 제68조에 의해 무조건 60일 이내에 대선을 치러야 한다. 한나라당이 대선 후보를 선출하기 전이다. 이렇게 되면 한나라당의 경선은 무산되고 ‘빅 3’는 모두 출마할 수밖에 없다. 지난 1987년 대선 시나리오가 그대로 재연되는 셈이다. 당시 노태우 후보가 ‘직선제 개헌’을 전격 수용함으로써 양김은 분열되고, 결국 ‘1노 3김’으로 치러진 선거에서 노태우 후보는 권좌를 차지했다.
이번 ‘4년 연임제 개헌’도 개헌 자체는 성공하지 못하겠지만, 노대통령이 대통령 직을 하야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대선 구도는 여야 간 대결 구도가 아닌 후보 간 다자 대결 구도로 바뀔 수 있다. 즉, 오히려 범여권은 단일 후보를 내고, 한나라당은 3명 또는 그 이상을 출마시키는 상황이 올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현재의 여론조사 수치는 의미가 없어진다. 여권이 정권 재창출을 할지도 모르는 길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래서 ‘개헌 카드’의 완벽한 짝은 ‘하야 카드’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노대통령이 개헌 카드를 임기와 연계시키지 않겠다고 했으니, 믿어볼 일이다. 
갑자기 등장한 노대통령의 ‘4년 연임 개헌 논의’로 온 국민이 진을 뺐다. 그러나 노대통령으로서는 ‘위험’을 감수한 것이다. 더 큰 ‘보상’을 위해서이다. 그것이 정국 주도권이든, 중대선거구제로의 개편이든, 하야를 통한 한나라당 분열이든. 그런데 어느 시나리오도 성공할 가능성이 그리 커 보이지 않는다. 그냥, 나라만 시끄러울 것 같다.
노대통령이 ‘좋은 대통령’이고, 원 포인트 개헌도 진정성이 있기를 바라는 것은 많은 국민의 바람이 아닐까?  

 


김행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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