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덮인 산길에 시가 '주르르'
  • 정락인 편집위원 ()
  • 승인 2007.01.19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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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매표서, '시인마을'로 문패 바꿔... 등산객에게 시집도 대여

 
눈덮인 북한산 허리에 시가 맴돈다. 대남문을 오르는 등산객들의 손에는 시집이 한 권씩  들려 있다. 산중턱을 오르다 보니 등산객들이 속살을 드러낸 바위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시를 읊는 정겨운 모습도 눈에 띈다.
새해부터 북한산 들머리에 ‘시인마을’이 생기면서 산행 풍속도가 달라지고 있다. 산 입구에서 등산객을 가로막던 매표소가 ‘시인마을’로 문패를 바꿔 달았다. 단순히 문패만 바뀐 것이 아니다. 시인마을에는 아늑한 정취와 시심을 돋우는 시들이 가득하다.
입장료만 챙겼던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생각을 크게 바꿔 시집을 들고 등산객에게 정초부터 새로운 서비스를 시작했다.
북한산 시인마을에는 우리의 옛시조부터 현대시 시인에 이르기까지 100여 시인의 시 5백 편을 가려 뽑아 비치했다. 총 10권의 시집을 발간할 계획을 세우고 그 가운데 예쁜 시집 5권을 먼저 펴냈다. 나머지 5권은 현재 제작 중이다.
고은·도종환·김지하·신경림·김용택 등 대표적인 현대 시인들의 작품이 모두 망라되어 있다. 나머지 다섯 권은 황진이·김삿갓·한용운 등 조선시대와 근·현대 시인들의 작품들을 적절히 배합해 2월 중에 발간해 비치할 계획이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시인마을 점차 늘려가겠다”


시집에 실린 시는 시인 도종환·안도현, 문학평론가 박수현 씨에게 자문해 민족문학작가회의 시분과위원회가 선정했으며 ‘시인마을’이라는 현판은 김지하 시인이 직접 썼다. 시인마을에서는 등산객이 산행 중 시를 읽을 수 있도록 시집을 빌려주기도 한다. 책은 돌아가는 길에 반납하면 된다.
북한산에 오르는 등산객의 발걸음은 넘실거리듯 가벼웠다. 입에서는 벌써부터 옹알옹알 시어들이 튀어나온다. 공원 입구에서 입장료를 내지 않으려고 매표소의 눈치를 보던 등산객도 사라졌다. 더불어 몰래 만들어지던 거미줄 같은 샛길도 눈에 덮여 자취가 사라졌다.
북한산 시인마을에서 만난 등산객 정세민씨는 “눈 덮인 겨울 산에서 시를 음미할 수 있다니 새롭다. 앞으로 자연과 사람이 어우러지는 ‘생명의 숲’이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전국 국립공원을 점차적으로 국민에게 되돌려줄 참이다. 이번에는 우선 1백88곳 가운데 69곳의 입장료를 폐지하고 매표소를 시인마을로 바꾸었다.
국립공원관리공단 박화강 이사장은 “국립공원이 좀더 친숙하게 등산객들에게 다가서도록 하겠다. 바람소리, 들꽃 향기, 솔 내음이 나는 국립공원의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시 한 편을 만나는 즐거움을 체험했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정락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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