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얼음' 위로 햇볕 깃들이나
  • 홍현익(세종연구소 수석 연구위원) (sisa@sisapress.com)
  • 승인 2007.01.23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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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미 베를린 회담으로 새 '물꼬'...BDA 문제 해결되면 6자회담 진전 가능성

홍현익 (세종연구소 수석 연구위원)

 
미국 내에서 방코델타아시아 은행(BDA) 금융 제재에 대한 조사 종결 및 선별적인 제재 해제 가능성이 보도되는 가운데 6자회담의 북한·미국 수석대표인 김계관 부상과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가 지난 1월16일부터 베를린에서 ‘회기간 회동’을 가져 6자회담에서의 가시적 진전이 기대되고 있다. 방코델타아시아(BDA) 문제에 대한 북·미 실무회담 개최 직후 6자회담도 개최될 것이고 북한과 미국의 좀더 유연한 태도가 순조롭게 이어질 때, 제5차 6자회담 3단계 회의에서 어느 정도의 합의가 이루어질 수 있는가를 전망해본다.
먼저 지난해 12월18~22일 베이징에서 개최된 제5차 6자회담 2단계 회의를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회담에서 가시적 성과가 도출되지 않고 ‘가장 이른 기회에’ 재개한다는 의장성명만 남긴 채 휴회하자 6자회담 무용론마저 제기되기도 했으나, 사실 내용 면에서는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 무엇보다 그간 부시 행정부가 계속 거부해왔던 북·미 양자 회담이 비록 의제가 BDA 금융 제재로 국한되었지만 실무 회담 형태로 열렸다. 회담 전 부시 대통령은 북한의 선 핵포기라는 조건을 달았지만 한국전쟁 종전 문서 서명을 위해 김정일 위원장과 동석할 수 있음을 시사하기도 했다.
힐 차관보는 6자회담 사상 처음으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미국 제안을 9·19 공동성명 이행 방안에 대한 ‘패키지 딜’ 형태로 내놓았다. 핵폐기를 위한 동결-신고(보고)-검증-폐기 4단계 과정과 상응 조처의 내용을 순서대로 묶어 북한측에 설명했다. 동결 단계로서 북한이 원자로 가동을 중지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을 허용하면 서면화된 체제 안전보장이나 종전협정 서명 등 주로 북한의 안전보장 조처를 제공할 것이며, 신고 단계에 가면 에너지 등 경제적 지원이나 식량 등 인도적 지원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미국은 동결 단계에서도 인도적 지원이나 에너지 등 경제적 지원까지 논의할 수 있지만 이는 추후 구성될 워킹그룹에서 다루자고 제안했다.
이에 대해 북한은 미국의 제안이 전격적이고 상당히 복합적인 데다 김계관 부상이 협상 타결 권한을 부여받지 않았기 때문에, 휴회 및 제안 검토 후 회담 재개를 요청했다. 또한 북한은 동결 단계에서 미국이 공약한 서면 안전보장과 함께 BDA 동결 계좌의 해제 및 경제적 실익 보장을 요구했고, 보고 단계로 진입하려면 상응 조처로 경수로 제공과 그것이 완공될 때까지의 대체 에너지 공급을 주장했다. 동시에 북핵 폐기는 결국 북·미 관계 정상화와 교환되어야 하므로 조속한 시기에 수교 협상도 개시되어야 한다고 했다. 또한 현재처럼 미국의 대북 위협과 압박이 가해지고 있는 상황에서는 최소한의 체제 보위용으로 핵무기를 가지고 있어야 하므로 이는 논의의 대상으로 삼을 수 없고, 미국의 적대시 정책이 종식되어 신뢰가 보장되고 북한이 핵 위협을 느끼지 않을 때에야 비로소 핵무기 폐기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핵폐기 ‘보고’ 단계까지 갈까


 
이처럼 북·미 간 견해 차는 아직 상당하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장애물은 역시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의 상징인 금융 제재이다. 물론 미국 재무부는 BDA 문제가 핵 문제와 별개이고 대북 금융 제재는 협상의 대상이 아닌 법률 문제라고 계속 주장하고 있지만, 힐 차관보를 비롯한 국무부의 입장은 이제는 서류 검토를 종결해 BDA 문제를 정리해가면서 비핵화에 전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향후 6자회담에서 진전이 있을 가능성이 열리고 있다. 또한 베를린은 그간 미사일 협상 등 많은 북·미 회담에서 성과를 낸 곳이고, 이번 회담이 북한측 요청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6자회담 재개는 물론이고 9·19 공동성명의 초기 이행 단계에 대한 합의를 위한 어느 정도의 진전이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있다. 더구나 그간 집요하게 북·미 양자회담을 거부해오다가 지난 2단계 회의에 가서야 겨우 북·미 간 금융 실무회담이 ‘6자회담의 틀 속’에서 개최되었는데, 이제 6자회담의 틀을 벗어난 데다 중국의 중재도 없이 북·미 양자회담이 개최된 것은 미국의 유연해진 태도를 재확인해준다는 점에서 향후 전망을 밝게 해준다.
따라서 북·미 금융 실무회의를 거쳐 2월 중순 이전에 제5차 6자회담 3단계 회의가 재개될 것으로 전망되며 9·19 공동성명의 초기 이행 단계에 대한 합의도 도출될 가능성이 커졌다. 6자회담 재개에 즈음해 북한의 추후 불법 금융행위 재발 방지 약속과 함께 미국의 BDA 동결 계좌 중 선별 해제 용인 입장이 발표되어 마카오 당국이 이에 따른 조처를 할 것으로 기대되고, 6자회담이 재개되면 북한의 핵 활동 동결과 이를 감시할 IAEA 사찰단 입국 허용에 대해 미국의 대북 안전보장 서면 약속, 약간의 인도주의적 지원 그리고 워킹그룹 구성 정도의 합의가 이루어질 것으로 예견된다. 그 직후 한국 정부는 그간 중단해온 식량과 비료 지원을 재개할 것이다.
문제는 과연 초기 이행 단계를 넘어 북한이 핵 물질·시설 및 프로그램을 IAEA에 보고하는 단계까지 합의가 이루어질 것이냐에 있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 미국이 제시한 것에다 몇 가지 ‘선물’을 추가할 필요가 있다. 즉 신포 경수로 건설 재개 합의와 그것이 완공될 때까지의 대체 에너지 등 경제적 지원 및 북·미 관계 정상화 협상 개시 등이 있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보고’ 단계까지 6자회담이 진전을 이룰 것이냐의 여부는 여전히 부시 행정부의 태도와 정책에 달려 있다.
그런데 최근 유연해진 부시 행정부의 정책적 변화는 이라크 문제의 중요성과 시급성이 더해지고 이란의 핵 개발 의지가 좀더 명확해지고 있을 뿐 아니라 미국 민주당의 의회 장악과 럼스펠드 국방장관 및 존 볼턴 유엔대사 등 네오콘의 퇴조, 그리고 전임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 제임스 베이커 같은 현실주의자들의 영향력이 강화된 데 기인한 것이다. 그렇지만 아직 딕 체니 부통령, 로버트 조지프 국무부 군축담당 차관, 잭 크라우치 백악관 국가안보 부보좌관 등 유력 네오콘들이 현직에 남아 있고, 마지막 네오콘으로 간주되는 부시 대통령이 건재한 이상 과연 미국이 동시 행동과 상호 위협 감소라는 두 가지 원칙에 의거해 북핵 문제를 일단락 지으려 할 것인지는 미지수이다.
한편 북한은 유엔 안보리, 미국과 일본의 경제 제재뿐 아니라 중국의 강력한 압박과 한국 정부의 쌀·비료 지원 중단 등으로 고통받고 있으므로 이러한 역경과 난관을 헤쳐나가려 하는 데다 부시 행정부가 그간 계속 회피해온 양자회담까지 개최하는 등 전향적 입장을 보이므로 일단 적극적으로 협상에 나서고 있지만,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적대시 정책에 근본적인 변화가 있다고 판단하기까지는 기회주의적 태도를 이어갈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도 부시 행정부가 북핵 문제를 우선적으로 해결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느냐가 6자회담과 북핵 문제의 향방을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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