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후보' 위해 줄줄이 탈당하나
  • 김지수(자유 기고가) ()
  • 승인 2007.01.30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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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안, 염동연, 창당 → 후보 단일화 '깜짝 쇼' 노려

 

김지수 (자유 기고가)

 
열린우리당을 탈당한 이계안 의원이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그는 지난 1월24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과 (대선 후보) 경선 참여 문제를 협의했다”라고 실토한 것이다. 열린우리당을 탈당해 신당 창당을 모색하는 가운데, 신당 대선 후보로 나설 계획인 그가 정 전 총장과 후보 경선 참여 문제를 협의했다는 데서 여권의 대선 구도의 일각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열린우리당 다수 세력이 신당을 창당하면 이의원과 정 전 총장 등을 오픈 프라이머리에 출연시켜 흥행을 도모하겠다는 얘기다.
열린우리당 해체로 12월 대선 구도가 열린우리당-한나라당 양강 체제로 치러질 가능성은 극히 희박해졌다. 열린우리당 소속 의원들의 탈당 사태가 시작됨으로써 열린우리당의 분할 구도가 어떻게 바뀔지 아직은 불투명하지만 일단 지금의 진용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집권당 분열은 당연히 복수의 대선 후보가 출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열린우리당 잔존 세력은 그들대로, 통합신당파는 또 그들대로 대선에 후보를 내세우려 할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 노무현 대통령 직계 부대와 열린우리당 이탈파가 경쟁하는 상황이 오지 않는다고 장담하기 어렵다.


노대통령 직계가 ‘선도 탈당’한 까닭


그렇다고 이것이 여권 후보가 최종까지 복수 난립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의원의 발언에 담긴 함의에서 그것이 읽힌다. 그에 따르면 열린우리당이 해체되겠지만, 여권은 통합신당이라는 간판 아래 재집결해 통합신당 후보를 사실상의 여권 후보로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통합신당이 탈당 세력 다수를 규합하는 데 성공하고, 시민단체 등으로부터 외부 수혈이 이루어지면 신당 후보의 힘이 발휘될 수 있다는 계산이다. 선거 속성상 투표일이 가까워질수록 후보 단일화 기운이 왕성해진다는 것은 2002년 노무현·정몽준 후보의 사례에서 경험했다. 노대통령의 후계자가 출마하고, 이계안 의원이나 정운찬 전 총장 가운데 한 사람이 후보로 나온다면 본인 의지와 관계없이 이들을 단일화하려는 압박은 거세지기 마련이다. ‘정운찬’을 끌어들인 이의원 발언의 진의가 여기 담겨 있다. 그렇게 되면? 열린우리당이라는 참혹한 기억은 사라지고 ‘2002년 노무현’ 같은 깜짝 쇼도 가능하다고 여기는 듯하다.

 
이의원의 발언을 염두에 두면서 열린우리당 염동연 의원의 탈당을 함께 눈여겨보아야 한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의 직계다. 노대통령과 정치적 인연으로 연결되는 소수의 측근이다. 그런 염의원이 노대통령으로부터 ‘지역주의 회귀’라고 비난받는 통합신당 대열에 합류했다. 열린우리당 탈당도 그의 입에서 가장 먼저 나왔다. 또 그의 노선은 이계안 의원과도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 노대통령 직계가 ‘선도 탈당’의 깃발을 들었을까. 염의원의 측근은 ‘여권 대선 후보 조정’이 염의원을 기다리고 있다는 의미라고 말한다. 노대통령과 교감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정권 재창출이라는 사활이 걸린 문제의 해법을 염의원이 만들어낸다면 노대통령으로서도 반대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노대통령과 거리를 둔 제3 지대에 머무르면서 열린우리당 색깔을 희석시킨 뒤 결정적 순간에 노무현·정몽준 단일화와 같은 에이스 카드를 뽑아들 가능성을 말한다. 열린우리당 해체는 집합을 위한 이산의 모양새로 나타날지 모른다. 말하자면 ‘기획 탈당’이다.
물론 정운찬 전 총장은 이계안 의원 발언을 일단 부인했다. 그는 범여권의 추가 영입 제의가 있었냐는 질문에 “모른다”라고 말했다. ‘아니다’가 아니라 ‘모른다’이다. 뉘앙스에 차이가 있다. 정 전 총장으로서는 지금의 열린우리당 후보에는 관심이 없을 것이다. 난파선에 뛰어오를 사람이 절대로 아니기도 하다. 그러나 이의원이 찾아온 사실을 시인한 것으로 보아 이의원의 신당 창당 계획을 들었을 것이고, 이의원의 오픈 프라이머리 구상을 접했을 가능성이 높다. 통합신당이라면 열린우리당과는 전혀 다른 얘기일 수도 있다. 아무튼 정 전 총장은 시간이 갈수록 대통령 선거의 변수에서 상수로 떠오를 가능성이 커졌다.


후보군에서 멀어지는 김근태·정동영


여권 분열 및 대선 후보 조정과 관련해 열린우리당 핵심 간부는 이런 말을 했다. “어차피 다시 만날 사람들이고 우리가 죽게 내버려두지도 않을 것이다.” 탈당은 하지만 언젠가 다시 만날 것을 믿고 또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경쟁력 있는 여권 단일 후보를 만들기 위한 고도의 파워 게임이 시작된 느낌이다.
열린우리당 안에서 김근태·정동영 후보 가능성을 말하는 소리가 사라졌다. 심지어 통합신당의 전제가 두 사람의 2선 후퇴라고 단언하는 사람들도 있다. 두 사람이 생존하기 위해 열린우리당을 해체하지만 자신들의 정치적 장래를 희생하지 않을 수 없는 딱한 처지로 내몰리고 있다. 그래서 두 사람이 열린우리당 해체를 주장하면서도 선뜻 탈당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가능하다. 노대통령이 열린우리당을 포기한다면 엄동설한에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되고, 이미 확보한 기득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계산할지 모른다. 그러나 노대통령이 양보한다 해도 두 사람을 통일부장관과 보건복지부장관에 기용한 것을 ‘실패한 인사’라는 식으로 규정한 노대통령이 이 두 사람에게 좋은 일을 시켜줄 가능성은 작다. 노대통령이 연두 회견에서 “신당하겠다는 사람과도 협상하겠다” “대통령 당적 정리(탈당)가 조건이라면 당을 나가는 게 좋은 일 아니겠느냐”라고는 했지만 ‘열린우리당을 중심으로’라는 전제를 달았다. 노대통령을 쫓아내는 대선 후보가 열린우리당 후보로 등극하기는 어려운 일 아닐까?
범여권이 정 전 총장 같은 흥행성 있는 인물을 동원하고 후보 단일화라는 깜짝 쇼를 준비하는 동안 한나라당은 이미 받아놓은 ‘밥상 타령’으로 지샐 공산이 크다.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선두를 질주하는 이명박 전 시장과 이를 추격하는 박근혜 전 대표의 경쟁이 시선을 외부로 돌릴 여유를 빼앗고 있다. 일부가 여권의 막판 뒤집기에 대비하자는 범보수 연합을 주장하지만 이·박 두 사람은 자기의 유·불리를 계산하는 데만 분주하다. 이러다 1997년 김대중·김종필·박태준의 이른바 DJP 연합과, 2002년 노무현·정몽준 연합에 궤멸당한 이회창씨의 전철을 밟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도 없다.
결국 2007년 대선은 누가 더 변신을 잘하고 국민 눈을 속이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가능성이 없지 않다. 국민들이 ‘속는다’는 기분이 들지 않도록 하면서 정교하게 기만하는 쪽이 2002년처럼 승리할지 모른다. 그것을 막을 수 있는 주체는 국민들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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