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함으로 무장한 다정다감 '훈남'
  • 이철규(수원대 교수, 행정학) ()
  • 승인 2007.01.30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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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 손학규 지사/불의에는 '대쪽'...경청의 리더십 갖춰

이철규 (수원대 교수·행정학)

 
잘 웃는다. 키도 훤칠하고 얼굴도 잘생겼다. 학창 시절 공부도 잘했고, 말도 조리 있게 한다. 그의 신언서판을 보면서 나는 이따금 하느님이 반드시 공평하지는 않다는 생각을 한다. 한 사람을 너무 편애하신 것은 아닐까. 그러나 모든 사람이 나만 같지는 않은 듯하다. 그의 이러한 외양을 달리 보는 사람들도 있으니 말이다. 무게감이 없다느니, 리더십이 약해 보인다느니, 범생이 스타일이라느니….
2002년 5월 경기도지사 선거를 앞두고 그는 과천 어느 고등학교를 방문했다. 선생님들과 교육 문제를 의논하기 위해서였다. 오후 5시부터 9시까지 꼬박 네 시간 동안 그는 선생님들이 말하는 불만과 애로에 귀를 기울였다. 받아 적던 수첩 한 권이 다 날아갔다.


아픈 직원 집까지 찾아가


“정말 감사합니다. 이렇게 하고 싶은 얘기를 다 해본 적이 없습니다. 속이 후련합니다. 답변은 안 해주셔도 좋습니다.” 한 여선생님의 울먹이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좋은 기업에서 위대한 기업으로(Good to Great)>의 저자 짐 콜린스는 말한다. “좋은 회사를 위대한 회사로 만든다는 것은 모든 사람이 당신의 비전에 따르도록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기회, 진실이 들리는 기회를 많이 만드는 것이다.” 손학규는 들을 줄 아는 사람이다. 경청의 리더십을 갖춘 사람이다.
그는 정이 많은 사람이다. 요즘에는 가는 말이 ‘거칠어야’ 오는 말이 곱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웃는 얼굴에다 침 뱉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각박해진 것이다. 그러나 손학규는 어느 장례식장을 가든 제일 늦은 시간까지 자리를 지킨다. 결혼식장에 훌쩍 들러 얼굴이나 내밀고 오는 법이 없다. 직원이 아프거나 힘들어하면 그의 집까지 찾아간다. 그가 민심을 찾아 100일 동안, 전국의 구석구석 1백54곳이나 되는 마을을 휘돈 것도 그의 이런 정이 만들어낸 작품이 아닐까. 잔정이 많아 큰일을 그르칠 수 있다는 비판도 있지만 그의 이 구수한 인간 냄새가 좋지 않은가.
그가 마냥 웃기만 잘 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의 별명은 의외로 ‘쌈꾼’이다. 사실 손학규의 삶은 치열함 그 자체였다. 젊은 시절을 독재와의 싸움으로 일관했다. 시대 정신을 온몸으로 껴안고 행동했다. 고3 때 이미 굴욕적인 한·일협정 반대 시위에 참가했다. 대학 생활은 데모, 고문, 단식, 수배, 투옥의 연속이었다. 무기정학도 두 번이나 당했다. 법대의 조영래, 상대의 김근태와 함께 서울대 운동권 삼총사로 불렸다. 1973년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노동 운동과 빈민 운동이 그의 본업이 되었다. 구로공단에서 막일도 하고, 합정동 철공소에서 용접일도 했다. 대한민국 고위 공직자 중에서 용접 기술을 가진 이는 아마 그가 유일할 것이다.
1980년 ‘민주화의 봄’이 찾아왔다. 손학규는 “빈 머리를 채우고 싶다”라는 말을 남긴 채 홀연히 영국으로 떠났다. 투쟁으로 굳어진 머리와 만학의 어려움 속에서 그는 옥스퍼드 대학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아냈다. 세계를 보는 안목의 변화, 성장과 분배에 대한 재인식, 그리고 보수와 진보를 뛰어넘는 가치 체계가 그에게 새롭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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