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환 전 민주당 최고위원은 지난 2003년 민주당이 분당하는 과정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 쪽에 합류하지 않고 민주당에 고집스럽게 남아 있었다. 열린우리당에 합류하면 ‘5년 여당’, 잔류하면 ‘야당’, 가면 ‘당선’, 남으면 ‘낙선’이 뻔했던 상황에서도 일관되게 ‘반노 반한’의 목소리를 냈다. 그는 무척 외로운 싸움이었지만 자신을 지키고 ‘반노’를 완주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열린우리당의 탈당 도미노 사태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충분히 예견되었던 일이다. 사필귀정 아닌가. 이 행태는 민주당 분당의 역순 과정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고, 3년 동안의 정치적 실험에 대한 총결산이다. 거슬러 가보자. 노대통령의 당선이 어디서부터 시작됐었나? ‘민주당+노무현의 승리’였다. 그러나 그는 당선 후 ‘민주당의 승리가 아닌, 노무현의 승리’라고 했다. 민주당 분당의 명분은 정치 개혁과 지역주의 타파였지만, 실질적으로는 영남의 정치 세력을 의도적으로 내세우려고 했던 신지역주의의 결과다. 또한 뺄셈 정치의 결과다. 이게 지금 열린우리당의 파탄과 침몰을 가져온 것이다. 모든 정세 분석의 오류는 현실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온다. 민주당의 분당과 열린우리당의 창당은 ‘탄핵’이 없었다면 이미 3년 전에 심판받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작금의 열린우리당 연속 탈당 사태가 나타내는 의미는 무엇이라고 보나?
비단 열린우리당과 노무현의 참혹한 패배의 결과를 넘어 지난 20년 가까운 기간에 발전해왔던 민주 개혁 세력의 몰락과 시민운동 세력을 약화시킨 결과를 가져왔다. 이런 정치 행위에 대해서는 역사의 심판이 있어야 한다. 분당 당시 노대통령을 따라가지 않았던 정치인들까지도 내몰리는 심각한 좌절을 초래했다.
노대통령은 여전히 정권 재창출이 가능하다고 하는데?
미몽이다. 그는 자신을 중심으로 한 정치 세력의 정치적 부활이 가능하다고 보는 것 같은데 불가능한 얘기다. 이미 국민들은 노대통령과 열린우리당에 대한 심판을 끝냈다. 국민들은 어떤 얘기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정개 개편의 뚜렷한 방향과 대안도 없다.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탈당 러시는 ‘희망의 선택’이 아닌 ‘절망의 선택’이다.
탈당 러시가 계속될 것으로 보는가?
현역 의원들은 탈당하지 않고서는 다음 총선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노대통령과 열린우리당에 대한 심판’이라는 한마디로 끝난다. 탈색이 시급한 만큼 탈당은 이어질 것이다.
천정배 의원이 선도 탈당한 데 대해서는?
국회의원 임기 4년 동안 여당 의원이 집권당을 두 번 탈당하고, 집권당을 두 번 만드는 희대의 정치적 전례를 만들고 있다. 기네스북에 오를 일이다. 창당 주역이 당을 와해시키는 자가당착에 빠졌다. 논리적으로 설득이 안 되고 감동과 명분도 없다. 천의원은 노대통령과 열린우리당에 대한 국민적 분노를 이해한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본인이 특권을 누려왔기 때문에 충격이 더 클 것이고, 이 극적인 변신으로 두고두고 구설에 오를 것이다. 호남의 차기 주자도 무망할 것이다.
정동영 의원은?
처해 있는 상황과 갖고 있는 인간관계, 당내 세력도 달라 나름의 계산을 할 것이다.
김근태 의장은 당에 남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한데.
그가 당에 남아 ‘질서 있는 신당 창당’을 주장하는 것은 리모델링하자는 소리인데, 더 웃기는 얘기다. 수리해 쓸 수 있다면 왜 탈당 사태가 일어나겠는가. 열린우리당이라는 거푸집에라도 안주하겠다는 것인데, 그렇게 해서는 역사의 어떤 변화도 만들어낼 수 없다. 그는 시대정신이 ‘반 한나라당’이 아닌 ‘반 노무현’에 있다는 것을 간과해 마지막 기회도 놓쳤다.
이번 탈당 사태를 ‘기획 탈당’ ‘위장 이혼’으로 보는 시각도 있는데.
사실이 아닐 것으로 본다. 이는 지나친 정치공학적 상상력이다. 현재 열린우리당은 그만큼의 여유와 전술, 전략적 판단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향후 정계 개편 방향을 어떻게 전망하는가?
두 가지가 가능하다. 첫째는 탈당 세력이 새롭게 개혁된 민주당에 흡수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제3 지대에 모여 신당을 만드는 것이다. 관건은 민주당이 얼마나 변할 수 있느냐다. 민주당은 개혁에 실패함으로써 희망을 주고 책임을 지는 정당으로 자리 매김하지 못했다. 즉, 생존에는 성공했으나 전국 정당으로 성장하는 데는 실패했다. 고건 전 총리는 통합신당을 만드는 작업까지는 갈 수도 있었는데 도중에 주저앉았다. 현재 그나마 힘은 열린우리당에, 명분은 민주당에 남아 있다. 현실적으로는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신당을 만들어봐야 ‘도로 열린우리당’이다. 일단 제3 지대에 모였다가 민주당과 결합하는 길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렇게 하더라도 대선에서 한나라당에 대적할 만한 세력이 될지는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여권의 정권 재창출은 난망하다는 말인가?
오히려 한나라당 내부 분열로 기회가 올 수도 있다. 지금 한나라당 지지율은 반사이익이다. 거품이 걷히고 난 후 한나라당의 수구 보수적 행태가 다시 드러나면 국민들은 새로운 견제·비판 세력을 만들 것이다. 단, 그 시기가 대선 전일지 후일지는 두고 봐야 한다.
통합신당이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보는가?
대원칙은 ‘반노 반한’이다. 이 기치를 유지하고 ‘반노 반한’을 일관되게 주장해온 인사들로 지도부를 구성하지 않으면 이번 대선은 없다. ‘질서 있는 통합신당론’은 친노 반한의 정계 개편론인데 이는 망하는 길이다. 열린우리당의 ‘비노 반한’ 세력과 민주당의 ‘반노 반한’ 세력이 통합해야 한다. 고통스러운 것은 그 중심에 있어야 할 세력 역시 자기 개혁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결국 국민들이 만들어낼 것이다. 역사는 인물을 세우는 과정이 아닌가. 지난 4년간의 정치적 행보로 국민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고 새로운 인물이 부상할 것이다.
역시 ‘외부 선장’이 있어야 한다는 말인가?
외부 인사는 새로운 지도력을 상상할 수는 있지만, 현실성이 없다. 결국 정치권 안에서 길러져야 한다. 자연스럽게 경쟁과 경선을 통해 부각될 것이다.
통합신당에서 자신의 역할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통합신당을 앞두고 민주당 개혁에 마지막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반노 반한 정계 개편’에 민주당의 역할은 부분적이든 전면적이든 있을 수밖에 없다. ‘반노’가 바닷물이라면 ‘반한’은 시냇물이다. 1차적으로 민주당을 개혁하고 2차적으로 통합신당을 만들고 3차로 오픈 프라이머리를 하면 경선에도 도전할 생각이다. 새로운 주자가 나타나는 것은 두 달이면 충분하다. 통합과 단결, 즉 덧셈의 정치를 하겠다. 노대통령은 ‘정치는 덧셈이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준 타산지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