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죽이고 절망 키우는 대한민국 교육은 미쳤다
  • 정락인 편집위원 ()
  • 승인 2007.02.12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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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육은 붕괴하고 사교육 폭탄에 가정 경제는 망가지고 교육 정책은 우왕좌왕하니...

 
서울 강남구 대치동은 ‘대한민국 사교육 1번지’로 통한다. 대치동 학원가에는 무려 1천 개가 넘는 학원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가히 대한민국 학원가의 축소판이라고 할 만하다.
지하철 출구 어느 방향으로 나가도 건물에 꽉꽉 들어찬 학원과 마주친다. 그중 1번 출구로 나가면 6층 건물이 눈에 확 들어온다. 건물 전체가 학원 간판들로 뒤덮여 있다. ○○보습학원, ○○○논술교실, ○○○학습 클리닉 등 무려 10개의 학원이 자리하고 있다. 대치동 학원가 건물이 대부분 비슷하다. 대치역에서 도곡역 사이의 도로 주변 건물들도 마찬가지다.
대치동 학원가는 연중 불황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더욱이 방학 시즌은 최대 대목이다. 전국에서 모여든 ‘방학 유학생’으로 넘쳐난다. 부산에서 온 윤서영양(15)도 방학 유학생 중 한 명이다. 윤양은 지난해 12월 겨울방학과 동시에 서울로 올라와 대치동 고모집에서 하숙 아닌 하숙 생활을 하고 있다. ‘대치동에 오면 성적이 쑥쑥 오른다’는 명성을 좇아서 왔다. 윤양은 영어와 논술에 중점을 두고 있다.
오전에는 독서실에서 예습을 하고 오후에 두 시간 동안 영어 그룹 과외를 받는다. 그룹 과외는 다섯 명이 받는데 한 달 과외비로 2백50만원을 주고 있다. 과외 선생은 대치동 학원가에서는 꽤 이름이 알려진 유명 강사라고 한다. 저녁에는 수학 전문학원에서 수학 과목을 집중 수강한다. 수강료는 한 달에 60만원. 윤양의 한 달 과외비는 생활비 등 잡비를 포함해 4백여 만원에 달한다. 중견기업 부장급 월급에 해당하는 돈이다. 윤양의 어머니는 사교육비를 벌기 위해 식당에 나간 지 오래라고 한다. 사교육이 낳은 신풍속도다.
대치동에는 ‘귀신 같은 족집게 강사’들이 많은 것으로 소문이 나 있다. 그래서인지 특A급 ‘유명 강사’들의 한 달 개인 과외비는 부르는 것이 값이다. 고급 오피스텔에서 과외 선생이 상주하면서 학생들에게 집중 교육을 시킨다. 한 달 4회 수업에 1인당 100만원은 기본이다. 여기서는 학생이 과외 선생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선생이 학생을 선택하는 것이 불문율처럼 되어 있다. 대치동은 또 ‘부자들의 학원’으로 통한다. 웬만한 벌이로는 대치동 입성을 꿈도 꾸지 못한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대한민국 교육은 ‘밑 빠진 독에 돈 붓기’


 

최근 논술 열풍이 불면서 대치동은 더욱 경쟁이 심해지고 있다. 특히 각 대학들이 수시와 정시 모집에서 논술 비중을 강화하면서 논술 학원이 우후죽순 늘어났다. 논술 학원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떠오르면서 언론사들도 경쟁하듯 논술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유력 언론사인 J사, H사 등은 아예 논술아카데미를 차렸다. 기자들은 앞다투어 대치동 학원으로 몰려가고 있다. 기자 출신이 차린 논술 학원도 성업 중이다. 이것이 2007년 대한민국 사교육 1번지의 현주소다. 이렇듯 대치동은 사교육이 공교육을 앞지르는 교육 특구이다.
사교육비는 대치동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사교육과의 전쟁 중’이라고 할 정도로 사교육비 문제는 심각하다. 새 학기가 되면서 사교육 폭탄이 곳곳에 떨어지고 있다.
여기에다 ‘대학 등록금 1천만원 시대’ ‘70만원대 교복 등장’ 따위 소식을 접한 학부모들은 한숨만 내쉴 뿐이다. ‘소 팔아서 대학 보낸다’는 말도 이젠 옛말이 되었다. 현재 농촌 우시장에서 거래되고 있는 6백kg짜리 소 한 마리 가격은 약 4백20만원. 지난해 4년제 사립대학 중 연간 등록금이 가장 비쌌던 곳은 포천중문의과대학 의학계열로 1천55만2천원이었다. 소 세 마리를 팔아야 간신히 한 명의 대학 등록금을 댈 수 있다.
각 대학이 최근 몇 년간 등록금을 연평균 7~8% 올려온 것을 감안하면 내년에는 거의 모든 의·약학 계열과 일부 공학계열도 1천만원대에 진입할 것으로 보인다.
전북 고창에서 농사를 짓는 김학술씨(62)는 요즘 하루하루 한숨만 쏟아낸다. 서울 소재 사립대학에 다니는 두 아들의 등록금을 마련할 길이 막막해서다. 김씨는 다른 사람의 논농사를 대신 해주고 소작료를 받는 일명 ‘소작농’이다. 그나마 사고로 인해 한쪽 다리가 불편해져서 소작을 늘릴 수도 없다. 둘째 아들에게 휴학을 권유해볼 생각이지만 아직까지 말을 못하고 있다.
중·고생 자녀들이 있는 학부모들도 마음이 편치 못하다. 학부모 단체들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 것이 ‘돈 먹는 하마’를 키우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밑 빠진 독에 돈 붓기’라는 말도 나온다. 실제 중·고교에 입학하는 자녀들에게 들어가는 준교육비(기초 교육비라고도 불린다)는 1인당 100여 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여기에 학원비 등 순수 사교육비를 합치면 2배가 된다.
‘70만원 교복’에 학부모들이 분노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등 학부모 단체들은 ‘교복 거품 빼기 운동’을 전개하겠다고 선언했다. 교복 거품 빼기는 시민단체가 주도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분위기다. 교복 직거래 장터나 교복 물려주기 행사 등도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사교육비의 현실’은 학부모들을 참담하게 만들고 있다. 아이들은 태어나서 말을 하기 시작하면 곧바로 사교육에 내몰린다. 사교육비를 마련하느라 학부모들의 등골이 휘지만 사교육을 안 시킬 수도 없다. 사교육비를 감당하지 못한 중년 주부들이 너도나도 취업 전선으로 나가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초등학생과 중학생 자녀를 둔 대전시 도마동의 최경자씨(39)는 “돈 없으면 아이들이 왕따당하는 게 학교의 현실이다. 수학여행도 돈에 따라 가고 있다. 무조건 돈이 최고인 세상이다. 남편 벌이로는 한계가 있으니 돈을 벌지 않을 수 없다”라고 토로했다.

 

지난해 열린우리당 안민석 의원이 서울·경기·대구·대전·부산 지역 고등학교를 대상으로 수학여행 실태를 조사한 결과, 2005년에는 7백38개교 가운데 28개교가 ‘분리 수학여행’을 다녀왔으며, 올해는 6백35개교 가운데 39개교가 분리 수학여행을 다녀왔거나 계획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수학여행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뚜렷하다.
그렇다면 도대체 학원비 등 순수 사교육비는 얼마나 되는 것일까. 지난해 10월 국정감사 자료 하나가 눈길을 끈 적이 있었다. 국회 교육위원회 이주호 의원(한나라당)이 전국 초·중·고등학교 학생·학부모·교사 4만2천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일명 ‘사교육비 보고서’다.


사실상 거의 모든 학생이 사교육받아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가정이 지출하는 월간 사교육비는 전국 평균 33만원, 학급별로는 초등생이 26만4천원, 중학생 32만1천원, 고등학생 43만7천원으로 집계되었다. 지역별로도 큰 차이를 보였다. 서울이 43만9천원으로 가장 높았고, 인천이 24만6천원으로 가장 낮았다. 직업별 월평균 사교육비는 교수가 52만원으로 가장 높았고, 농·임·어업 종사자가 21만1천원을 지출하고 있어 사교육비에도 양극화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사교육을 받는 이유에 대해서는 대다수의 학생과 학부모가 ‘수업이 어렵고 혼자 하기 힘들다’는 이유를 들었다.
 
이의원은 “초·중·고생이 많이 이용하는 학습지나 인터넷과 EBS 방송 강의 등을 제외한 것을 감안하면 대부분의 학생이 사교육을 받는다고 볼 수 있다. 사교육의 원인에 대해 교사들은 공교육의 부실이 사교육의 원인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사교육 논란은 입시 위주의 교육이 바뀌지 않는 한 계속될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교육은 말 그대로 ‘입시 교육’이다. 입시 지옥이라는 말도 여기서 나왔다. 상급 학교 진학이 지옥으로 표현될 만큼 우리 교육은 기형적인 모양을 하고 있다. 학교나 학부모들은 학생이나 자녀가 명문대에 진학하는 것을 최대 영광으로 안다. 출세의 등용문으로 믿는다. 모두 뿌리 깊은 대학 체제의 서열화에서 비롯한 인식이다.
이렇듯 자녀에 대한 학부모들의 과잉 기대와 출세 지향적인 사고방식은 가계의 부담을 초래했다. 또 과도한 사교육비는 가정 불화의 원인이 되거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장애물이 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학부모들은 사교육을 절대로 포기할 수 없다고 말한다. 심지어 ‘밥을 굶을지라도 아이들 학원은 보낸다’라고 말할 정도다.
이렇다 보니 너도나도 사교육의 진원지인 학원으로 내몰리고 있다. 현행 입시 위주 교육이 바뀌지 않는 한 우리 교육의 미래는 희망보다는 절망에 가깝다. 사교육비의 부담은 학부모들의 허리를 더욱 휘게 만들고 있다.
 
경기도 성남의 한 고교에 재직 중인 김영재 교사(39)는 “내 자식이 일류 대학을 나와 출세하기를 바라는 학부모들의 욕심이 계속되는 한 사교육은 학부모의 발목을 잡는 부메랑이 된다”라고 말했다. 김교사는 공교육이 기대에 못 미치는 것이 현실이지만 사교육의 해법은 결국 공교육에서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도 사교육의 해법을 공교육에서 찾는다. 공교육을 내실화함으로써 사교육이 설 자리를 자연스럽게 없애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학교 수업의 내실화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하지만 학부모들은 ‘공교육’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을 보이고 있다. 아직 공교육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연세대 경영학과 한준상 교수는 “우리나라 교육의 큰 틀은 공교육과 사교육으로 짜여 있다. 그런데 우리 교육 정책이 걸어온 길을 보면 공교육은 항상 피해자이고 사교육은 늘 피의자로 지목되어왔다. 공교육을 우선 순위에 둬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런 과보호가 오히려 공교육을 허약하게 만들지 않았는지 반성해야 할 때다”라고 강조했다.
그동안 정부는 정부대로 사교육을 추방하기 위해 여러 대책을 내놓았다. 사교육비 경감 대책을 발표하기도 했다. 지난해 말에는 범부처 차원의 ‘사교육대책추진단’까지 꾸렸다. 하지만 효과는 전혀 없었다. 오히려 학원들은 편법으로 수강료를 올리고 물가 상승을 부추겼다. 결국 공교육은 불신의 대상이 되고 사교육은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주범이 되었다.
이렇게 교육이 흔들리는 데는 백년대계를 설계하지 못한 정부의 교육 정책에 책임이 크다. 시류에 따라 우왕좌왕하는 교육 정책은 여기서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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