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자로가 '문화 효자' 되었네
  • 홍선희 편집위원 ()
  • 승인 2007.02.12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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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 공방, 영화사, 출판사 들어서...독창적 문화, 예술의 거리로 진화

 
서울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에서 내려 3번 출구(옛 국립박물관 방향)로 나오면 효자로가 펼쳐진다. 경복궁의 높다란 돌담과 차도 양쪽의 가로수가 고풍스럽다. 수십 년간 인적이 드물었던 이 거리가 최근 화랑·영화사·출판사·공방 등이 들어서면서 긴 잠에서 깨어나고 있다.
효자로에서 가장 큰 빌딩이라 할 수 있는 옛 ‘열린책’에는 지난해 가을 시네마서비스가 입주했다. 이 건물의 설계자인 건축가 황두진씨 자신도 근처에 사무실을 두고 있다.
“예전에는 출퇴근 시간이 아니면 행인이라고는 경호원들뿐이었는데, 영화사가 이사 온 후 사람들의 왕래가 늘고 있다”라고 미술 카페 ‘FAN’의 이명진 사장은 말한다. 이 카페에서는 화랑이나 주변 디자인 사무실을 방문했던 손님들과 카페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대학생들이 미술 서적을 뒤적거리며 여유를 즐긴다.
평일 낮 12시30분께 영추문 건너편에서 넥타이 차림의 40대 남자 두 명이 갤러리 ‘브레인팩토리’ 쇼윈도 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그중 회사원이라는 한 사람은 “전시회가 열리면 자주 와 보는데 솔직히 무슨 메시지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라고 토로한다.
근처의 ‘갤러리팩토리’는 삼청동에서 옮겨와 새 둥지를 틀었다. 2월21일부터 이곳에서 뉴욕의 무용가 겸 비디오 작가인 딘 모스의 비디오아트 전시회가 열린다. 딘 모스는 세계적 대안 공간인 ‘더키친’의 예술감독이다.
효자로를 걷다 보면 세월이 멈추어버린 듯한 낡은 2층 타일 건물에 걸린 ‘예술현장 통의동’ ‘쿤스트독 국제 창작 스튜디오’라고 적힌 플래카드들과 심심찮게 맞닥뜨리게 된다. 운영 주체인 쿤스트독은 화가·비평가·작가들이 모인 그룹으로 재건축 예정인 3개의 건물(2층 타일 건물, 그 옆의 세련된 크림색 2층 양옥, 양옥 뒤의 허름한 한옥)에 맞추어 12명의 작가를 선정해, 지난해 9월1일부터 6개월 동안 작업장을 제공하고 있다. 이 터에는 국악 전용 소규모 음악당이 들어설 예정이라는 말이 돌았으나 아직까지는 불분명한 상태이다. 작가들은 여기에 머무르며 <골목길 프로젝트> 등 공공 미술 작품과 세미나 등으로 주민·미술인들과의 소통을 시도한다.
 
알록달록 색칠된 정부청사 어린이집을 지나면 디자이너 김혜경씨의 ‘씨씨킴 스튜디오’가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개관 토털 디자이너를 맡았던 그녀는 1987년부터 이 거리를 지켜오고 있다.
더 올라가 분수대를 지나 무궁화 동산에 이르면 엄마 손을 잡은 어린이나 장기를 두는 노인들이 간혹 눈에 띈다. 덩그러니 서 있는 3층짜리 새 건물이 예쁘다. 건물 외벽 상부에 ‘The Art Bridge’라는 글씨가 장식되어 있고, 사기로 구운 다양한 컬러와 스타일의 구두가 1층 외벽 한 면을 장식하고 있다. 김정범씨의 설치 미술 <레드 도어 II>이다. 가진화랑·카페모스·한국문화포럼 등이 이 건물을 쓰고 있다.
버스 정류장 앞 갸름한 2층 노출 콘크리트 건물은 건축가 우경국씨가 사무실 겸 자택으로 쓰던 ‘여운헌’이다. 이곳에서는 북 디자인 사무실인 수류산방중심이 부착한 나무 관련 책 포스터와 푸르메재단의 로고가 찍힌 블라인드가 시선을 끈다.
사진 전문 미술관인 ‘대림미술관’은 일찌감치 2002년 5월 삼청동에서 이곳으로 이사 왔다. 프랑스 건축가 뱅상 코르뉴가 설계한 이 미술관에서는 토요일 오후에 종종 재즈 음악회가 열려 장르를 넘어 관객을 불러들인다.


개성 있는 문화 관광 코스 될 듯


 
터줏대감 격인 ‘진화랑’ 내부와 그 뒷길도 어슬렁거릴 만하다. 형설출판사·포토스튜디오원·와인바 등 아기자기하면서도 나름으로 독특한 디자인을 드러내는 2, 3층 건물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행복한 마음> <May Good> <커피와 책> 등 간판 다자인과 상호도 정겨운 풍경이다.
효자로가 업무 지역이라면 한 블록 뒤 옥인동·누상동·통인동 등은 거주 지역이다. 건축가 김원씨와 조계순씨, 시인 신현림씨, 황소자리출판사 대표 지평님씨 등이 산다. 김원씨는 요절 시인 이상이 20년간 살던 한옥이 4년 전 헐릴 위기에 놓이자 김수근 문화재단을 설득해 어렵게 매입했다.
그는 이 집을 원상 복원하고 근처 부지도 확보해 시민을 위한 문학 공간을 만들고자 한다.
마른 꽃으로 그림을 그리는 작가 백은하씨는 이렇게 말한다. “이 동네 건물들은 저마다 이야기가 있는 듯하다. 원룸 건물 디자인도 개성적이고 실용적이다. 간간이 보이는 한옥이 정취를 더해준다. 새로운 건물에 대한 디자인 심의가 있어야 한다.” 삼청동에서 살다가 지난해 이사 온 백씨는 이 지역이 우리나라의 대표적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 잡기를 소망한다.
인사동·대학로·삼청동 등 문화 콘텐츠를 내장하고 외지인들을 향해 손짓했던 서울 도심의 몇몇 지역들이 종국에는 소비에 치우친 상업 지역으로 변해버려 본말이 전도됨을 겪었다.
다행히 효자로는 아직까지는 조촐하지만 깔끔하다. 예술인들이 자연스럽게 지역의 독창성을 형성해가고 있다. 행정적 지원과 더불어 난개발을 막을 수 있다면 이곳이야말로 진정한 문화 관광 코스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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