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만 되면 미칠 노릇이네
  • 신영수 (<베이징 저널> 발행인) ()
  • 승인 2007.02.26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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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동이로 태어난 중국 젊은 부부들, 누구 집으로 귀성할지 놓고 ‘전쟁’

 
13억 중국인들은 지난 2월18일 연중 최대 전통 명절인 설을 지냈다. 중국에서는 양력 1월1일을 위엔단(元旦), 음력 정월 초하루를 춘졔(春節=설)라고 아예 다른 말로 부른다. 우리네처럼 양력설이니 음력설이니 하며 혼동할 염려가 없다. 중국 당국은 국민들이 가장 중시하는 설 명절을 즐겁게 보낼 수 있도록 7일간의 연휴를 제도적으로 ‘보장’해주고 있다. 원래 춘졔의 법정 공휴일은 3일간이지만, 앞 주의 주말 2일을 쉬지 않고 근무하는 대신 한 주간 7일의 연휴를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거기에는 물론 노동절(5월1일) 및 국경절(10월1일)과 함께 3대 명절 모두 인위적으로 7일간의 연휴를 만들어, 국민 소비가 진작되고 경제성장률이 조금이라도 더 올라가기를 기대하는  중국 당국의 정치적 의도도 깔려 있다.
중국인들이 설에서 전통적으로 가장 중요한 의미를 두는 것은 온 가족이 함께 하는 ‘단란’이다. 그래서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다 하더라도, 설 명절에는 반드시 고향을 찾아가는 귀성이 중국인들의 오랜 풍습이다. 중국인들의 이런 풍습은 오늘날에도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 여전히 설 명절에는 당연히 고향을 찾아가야 하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중국인들 머리에 박혀 있다. 올 설에는 연 21억명의 중국인들이 고향에 갔다가 다시 일터 혹은 학교로 돌아오는 귀성 대이동을 연출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이 숫자는 지난해보다 1억2천만명이 증가한 것이라고 한다.
올해는 시댁으로, 내년에는 처가로
그렇지만 세상이 바뀌면서 이런 풍습이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커다란 짐이 되고 있다. 이제는 설 명절 때 부모님을 찾아뵙는 것이 예삿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갓 결혼한 쑨치제 씨와 우융화 씨는 이번 설을 맞아 7일간의 연휴 동안 무려 4천km를 여행해 3개 도시를 순회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베이징 대학 동급생인 두 사람은 졸업 후 똑같이 중국 남부의 하이난(海南)성에 있는 회사에 취직했다.
두 사람은 지난해 설을 따로따로 보냈다. 둘 다 집안에서 외동 자녀이기 때문에 각자 자기 집으로 설을 쇠러 돌아갔던 것이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결혼식을 올리고 나자 올해부터는 사정이 달라지고 말았다. 중국인들은 음력 섣달 그믐날 밤, 즉 제야(除夜=중국에서는 除夕)에 일가족이 함께 모이는 것을 무엇보다도 중시한다. 문제는 바로 이들 젊은 부부가 설 전야를 어느 집안에서 보내야 하느냐는 것이다.
“우리는 결혼 전에 이 문제를 의논했다. 그래서 우리 둘은 물론 부모들과도 합의를 했다.” 올해 26세인 쑨 씨의 말이다. 합의에 따라 두 사람은 올해 제야를 중국 동부 푸젠(福建)성에 있는 아내의 고향에서 지내고, 설 다음날인 2월19일 쩌장(浙江)성으로 옮겨가 남편 쑨 씨의 고향집에서 나머지 연휴 기간을 보내기로 했다. 이들은 내년에도 똑같은 형태로 설 귀성을 되풀이할 계획이다. 순서만 바꿔 이번에는 쩌장의 쑨 씨 고향집을 먼저 찾아가게 된다. 이런 설 ‘귀향 작전’을 자신의 부모님이 받아들여주는 것이 여간 다행스럽지 않다고 쑨 씨는 말한다. 하지만 중국의 어느 부모나 쑨 씨의 경우처럼 이해가 깊은 것은 아니다.
 칭화(淸華) 대학의 인터넷 포럼에서 아다 장이라는 아이디로 자신을 소개한 28세의 여성 공무원은 사정이 좀 다르다. ‘제 남편의 할머니와 제 할머니가 둘 다 편찮으신데, 모두 우리가 설에 고향에 돌아오기를 바라시
 
니, 저는 어떡하면 좋아요?’라고 하소연하는 장 씨. 그녀는 남편이 자기 고향으로 가는 것을 고집하는 바람에 그동안 몇 차례나 다퉜다고 한다.
이 문제를 둘러싼 토론에 네티즌 약 100명이 참가했는데, 대다수가 장 씨가 산시(陝西)성의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의견을 보였다. 그러나 그녀는 결국 자기 부모님을 실망시키는 쪽을 택했다. 남편의 할머니가 더 편찮으셨기 때문이다. ‘그이의 부모님이 계속 나를 고향에 데려오도록 남편에게 요구했어요. 그래서 저도 이런 문제로 남편의 감정을 상하게 만들고 우리 결혼에 손상을 주고 싶지 않았어요.’ 더욱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는 장 씨의 설명이다. 중국의 다른 부부들도 똑같은 문제를 놓고 어려움에 부딪힌다. 그 결과 많은 아내들이 설 연휴를 남편과 떨어져 지내는 것이 보통이다. 양쪽 집안에서 부부가 함께 오기를 고집하고 어느 쪽도 양보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도 설 명절은 남편 집안에서 지내는 것이 관례처럼 되어 있기는 하다. 실제 199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중국 가정들은 제야를 최소한 한 자녀와 지낼 수 있었다.
그러나 ‘한 가구 한 자녀 갖기’ 가족계획이 실시된 이후 출생한 ‘외동 자녀’ 세대가 가정을 갖게 되면서 상황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아들이든 딸이든 하나밖에 없는 자녀가 가족 단란을 생명으로 하는 설 명절에 오지 못한다는 것은 부모에게는 무엇보다도 견딜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한국과 같은 ‘역귀성’ 많지 않아
중국이 인구 폭등을 막기 위해 한 자녀만 낳기를 권장하는 가족계획 정책을 실시한 것은 1970년대 말이다. 이 정책으로 중국은 지금까지 4억명 이상의 인구를 감소시켰다고 한다.
그때부터 중국의 가족 규모가 줄어들었다. 1982년 평균 4.4명이었던 가족 수가 1990년 4명으로 줄었고, 지금은 3.6명으로 내려갔다. 베이징과 상하이의 부부 10쌍 중 7쌍은 오는 2035년까지 ‘외동 자녀’일 것으로 추산된다. 설 명절을 어느 쪽 집안에서 지내느냐를 둘러싼 문제는 자기 중심적인 가정 교육을 받은 중국 ‘외동 자녀’ 세대의 친인척 관계 처리 능력 부족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베이징 대학 사회학과의 샤쉬에롼 교수는 ‘외동 자녀’ 부부들이 서로 관용으로 대하고 각자의 집안에 갈 때도 배우자의 가족들과 친밀하게 지내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효도’를 실천해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융화 씨는 자기네 부부가 오는 2009년 새 아파트로 이사 가면 설 명절 때 양쪽 부모들을 하이난으로 초청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그녀는 이것이 이상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벌써부터 걱정하고 있다. 그들의 부모가 고향을 떠나 친척 및 친구들과 멀리 떨어져 명절을 보내는 것이 재미없다고 여길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오빠나 여동생이 있다면 설 명절을 좀더 즐겁게 지낼 수 있을 것이라며 “우린 아이를 둘 갖기로 결정했어요”라고 말한다. 중국 법률은 ‘외동 자녀’ 부부에 대해 자녀를 둘 이상 가질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설 명절 때 ‘역(逆)귀성’ 인구가 해가 갈수록 늘어난다지만, 중국의 노인 세대 중에서 그런 ‘과세(過歲)’를 탐탁하게 여길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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