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카우보이 행세 그만둬”
  • 조홍래 (자유 기고가) ()
  • 승인 2007.02.26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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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대통령 ‘뮌헨 발언’으로 미·러 냉전 부활 조짐

 
미국과 러시아 간에 냉전이 재연될 조짐이 나타났다. 냉전은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와 1991년 소련 블록의 해체로 막을 내렸다. 냉전은 베를린 장벽 붕괴 현장인 독일에서 사망했다. 그 냉전이 이번에는 독일 뮌헨에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대미 공격으로 소생할 움직임을 보였다. 베를린이 뮌헨으로 자리만 바꾸었을 뿐 냉전이 상징하는 역사의 반복이 거푸 독일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은 흥미롭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2월10일 제43차 뮌헨 국제안보회의에서 냉전의 부활을 예고하는 포문을 열었다. 미국이 유일 초강대국의 지위를 악용해 이라크·아프가니스탄·북한 등 세계 도처에서 러시아의 의사를 묻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카우보이 행세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세계 문제에서 미국의 독주를 꼬집는 장황한 리스트를 열거했다. 미국측이 나토를 발트 해까지 확대하고 옛 소련 위성국들을 전복한 세력들을 지원한 조처가 푸틴의 심기를 가장 자극했다.
“나토 확대는 동맹의 현대화와는 무관한 것이며 따라서 나토 확대가 누구를 겨냥한 것인지 답하라”고 그는 핏대를 올렸다. 그의 분통은 7년 재임 중에 나온 대미 비난 발언 강도에서 가장 강력했다.   
게이츠의 ‘도전’과 푸틴의 ‘응전’
푸틴이 열변을 토한 회담장에 동석한 메르켈 독일 총리·로버트 게이츠 미국 국방장관·미국 의회 대표단은 질린 표정이었다. 이들의 존재는 안중에도 없는 듯 푸틴의 비난은 마침내 직접 미국을 겨냥했다. 하나의 힘, 하나의 군사력, 하나의 주권, 하나의 의사가 세계사를 좌우하는 ‘단일 체제’가 폭주하는 세상이 되었다고 주장한 것이다. 연설의 초점은 주로 통제를 받지 않고 임의로 사용되는 미국의 군사력에 집중되었고 이를 ‘일방적이며 불법’이라고 규정했다.
다음날 연단에 선 게이츠 미국 국방장관은 “냉전은 한 번으로 족하다”라는 말로 푸틴의 긴 연설을 일축했다. 그의 발언은 절제되고 조심스러웠으나 때때로 가시가 돋쳤다. 게이츠는 연설 도중 푸틴의 이름을 단 한번 언급하면서 비교적 덜 자극적인 어휘를 사용했으나 할 말은 했다. 전세계가 테러와의 전쟁에 몰두하고 있는 줄 잘 아는 러시아가 테러 관련 세력에 무기를 대주고 에너지 자원을 정치 무기화하는 심중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러시아는 여전히 미국의 파트너이며 푸틴의 모스크바 방문 초청을 수락한다고 능청을 떨었다.
뮌헨에서의 설전은 푸틴이 먼저 시작했으나 냉전 논쟁의 불씨를 처음 지핀 쪽은 게이츠였다. 그는 뮌헨 소동이 있기 며칠 전 미국 하원 위원회에서 푸틴을 자극하는 말을 했다. 러시아가 미국에 잠재적 위협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러시아가 중국·이란·북한 같은 나라와 연대한 채 꿍꿍이를 벌이고 있어 도대체 어디를 지향하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 게이츠의 암시였다. 러시아 외무부가 발끈하고 나섰다. 이 발언이 미국 외교 정책의 일단을 반영하는지 해명하라고 요구했다. 러시아 관리들은 특히 부시 대통령이 ‘악의 축’으로 규정한 국가들과 러시아를 동류로 보는 듯한 게이츠의 발언에 강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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