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는 '왕', 대학원생은 '신하'
  • 정락인 편집위원 ()
  • 승인 2007.03.05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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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점, 학위, 취업 위해 맹목적 충성...표절, 논문 대필, 인건비 착취 수두룩

 
새학기가 되면서 대학 캠퍼스에 활기가 넘친다. 강의실에는 학생들이 빼곡히 들어차 강의에 열중한다. 대학마다 신규 임용된 교수들이 학생들과 첫인사를 나눈다.
하지만 일부 대학은 신규 채용한 교수들 문제 때문에 시끄럽다. 교수 채용 과정에서 드러난 제자와 후배 챙기기, 출신 학교별 파벌 싸움, 금품 수수 따위 문제가 불거졌다. 이를 두고 일부 교수들은 대학 사회에 만연한 암초에 걸렸다고 말한다. 마치 대학 사회 전체가 그런 것처럼 오도될까 봐 전전긍긍한다. 이번 기회에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안동대에서는 체육학과 교수 2명을 뽑는 과정이 문제가 되었다. 채용된 교수들이 전공 분야가 다르거나 심사위원과 같은 대학 선후배였다고 한다. 응모자의 아버지가 심사위원의 스승인 것으로 알려졌다. ‘밀고 끌어주기’와 ‘뒤 봐주기’의 전형이라는 지적이다.
대구대와 영남외국어대에서는 교수를 채용하면서 금품을 수수한 것으로 밝혀져 교수 2명이 구속되었다. 교수 채용과 관련한 잡음은 대구·경북 지역만의 문제는 아니다. 우리나라의 대학 사회에 뿌리 깊이 박혀 있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학연이나 지연, 금품을 제공하지 않으면 교수 임용은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다.
학연과 지연을 통한 교수 채용은 학과 내에 보이지 않는 서열을 만들기 마련이다. ‘끼리끼리식’ 파벌도 생긴다. 특정 대학 출신이 학과를 독점하면서 생기는 병폐는 크다. 학문의 비판이 사라지면서 그만큼 학문 발전도 저해된다.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문제는 대학 사회에서 줄서기와 인맥 쌓기가 자연스럽고, 당연시되고 있다는 점이다.
보통 줄서기는 대학원 과정에서 시작되기 마련이다. 우수한 학점과 학위를 받으려면 지도교수에게 우선 잘 보일 필요가 있다. 그만큼 지도교수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지도교수와 학생이 주종 관계로 전락하는 이유다. 지도교수가 한 번 정해지면 바꾸기가 쉽지 않다. 설령 바꾸려고 해도 교수들이 받아주지 않는 것이 법칙처럼 되어 있다. 대학원생들 사이에서는 지도교수를 바꾸는 것을 ‘스스로 무덤을 파는 짓’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학위를 받기가 어려워질뿐더러 대학 강단에 서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한다는 것이다.
지방 국립대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신 아무개씨(여·28)는 “대학원생의 졸업 여부는 전적으로 지도교수에게 달려 있다. 지도교수와 반목이 생기면 졸업 논문을 심사받을 기회조차 없어진다. 교수의 말 한마디에 졸업 여부가 달려 있다”라고 토로했다.
특히 이공계 대학원은 더 심하다. 이공계라는 특수성 때문에 지도교수와 갈라서면 학위를 따도 전공 분야에서 일하는 것이 쉽지 않다. 대학 강단에 서는 기회도 주어지지 않는 게 현실이다. 설령 강의를 맡고 있어도 대폭 줄어들기 마련이다. ‘보따리 장사’라고 불리는 시간강사 자리라도 차지하려면 지도교수의 추천서와 도장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홍원식 원광디지털대 초빙교수는 한 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대학원생들을 ‘학문 시장의 노예들’이라고 표현했다. 대학 사회의 서열화, 교수와 학생 간의 주종 관계, 파벌주의를 빗대서 한 말이다.
제자의 논문을 몰래 따다 쓰는 표절, 제자들이 논문을 작성하고 교수는 논문에 이름만 올리는 논문 대필, 제자들의 논문에 전혀 기여하지 않았으면서 저자로 이름을 올리는 저자 끼워넣기, 정부 산하나 학술단체 등의 연구 용역을 진행하고 제자들의 인건비를 착취하는 용역 인건비 착취 등이 있다. 논문 표절 의혹으로 최근 불명예 퇴진한 이필상 전 고려대 총장도 여기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처럼 대학 교수들이 표절이나 대필, 저자 끼워넣기 등의 유혹에 쉽게 빠져드는 것은 교수들의 실적 평가 때문이다. 매년 대학에서 실시되는 실적 평가에서 기준에 미달되면 최악의 경우 퇴출이라는 불명예를 안아야 한다. 반대로 실적이 좋을 경우 승진이나 성과급 등에서 유리하다.
일부 교수는 ‘학위 장사’를 하다가 물의를 빚은 일도 있다. 개인적 친분이 있는 정·재계 인사들의 논문을 석·박사 과정의 제자들에게 대필시킨 뒤 돈을 받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금품과 향응이 오가기도 한다. 대학원생들에게 지도교수의 잔심부름, 자녀 과외, 집안 허드렛일, 친인척에게 보험 가입 등을 시키기도 한다.
반면 일부 대학원생들은 이러한 현실을 악용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지도교수의 비위를 맞추면서 함량 미달의 논문으로 학위를 받아간다는 지적이다. ㄷ여대 오 아무개 교수는 “교수 사회가 변해야 하는 건 사실이다. 대학원생들의 문제도 많다. 데이터 조작·짜깁기·표절 등으로 치장한 논문을 제출하면서 금품을 제공하려는 경우도 있다. 교수뿐만 아니라 학생들도 함께 변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지도교수에게 밉보이면 매장당해


 
대학 사회가 파벌과 연고로 얽힌 상황에서 상호 비판은 일종의 금기가 되었다. 때문에 대학 사회에서 비판과 토론은 점차 위축되고 있다. 교수에게 ‘찍히면’ 바로 임용 탈락 등 불이익이 생기기 때문이다. ‘임금님 귀가 당나귀 귀’일지라도 ‘절대 침묵’이라는 카르텔이 형성되어 있다.
판사에게 석궁을 쏜 김명호 전 성균관대 교수 사건의 이면에는 재임용 탈락이 있었다. 김 전 교수와 구명 운동을 벌이는 동료 교수·학생들은 학문의 권위에 도전한 괘씸죄에 걸렸다고 주장한다. 본고사 입시를 지적함으로써 문제를 낸 교수에게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었고, 그로 인해 축출이라는 보복을 받았다는 것이다. ‘실패한 학문적 쿠데타’라는 말까지 나오기도 했다. 
원로 교수의 친일 행적을 언급했다가 재임용에 탈락했던 서울대 미대 김민수 교수, 서울대 교수의 표절 의혹을 제기한 뒤 박사과정을 포기한 이명원씨 등도 학문적 성역에 도전했다가 불이익을 받은 사례로 꼽힌다.
대학 사회의 서열화는 군대보다 엄격하다고 한다. 단순한 예우 차원을 넘는다. 후배 교수는 선배 교수를, 학생은 스승을 하늘처럼 떠받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불이익이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서열과 실력은 완전 별개라는 것이다. 
<대학이 망해야 나라가 산다> 저자인 국민대 법과대학 김동훈 교수는 ‘업적에 관계없이 밥그릇 수를 많이 채운 선임자를 선배로서 잘 모셔야 한다. 교수회의 석상에서도 서열 순으로 의자를 배치해야 한다. 교수들은 자기를 끌어준 교수의 하늘 같은 은혜를 마음 깊이 새기고 봉양해야 한다. 선배 교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은 배은망덕 정도가 아니라 패륜이라고 평가받는다’고 적었다.
물론 대학 사회가 각종 비리와 부정의 온상은 아니다. 스승과 제자가 손 맞잡고 학문에 열중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다만 대학 사회에 깊게 뿌리내린 악순환은 끊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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