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 사라지는 한, 일 연극 무대
  • 이윤택(극장 연출가) ()
  • 승인 2007.03.05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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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환, 초청 공연 넘어 질제적 협력 작업 확대...합작 연극 <에에자나이카> 한국 공연도

 
칸영화제에서 수상한 일본 영화감독 이마무라 쇼헤이의 작품 <에에자나이카>가 일본 연극으로 만들어져 우리나라에 온다. 일본 극단의 1980년도 작품이지만, 연출가가 재일교포 김수진씨이고 음악에는 근래 작곡가 원일이 중심이 되어 결성한 한국의 음악극 집단 바람곶이 참가한다. 이런 식의 한·일 공연예술계의 협력 작업은 이제 일반화된 느낌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기념해 제작된 <강 건너 저편>은 한국 작가(김명화)와 일본 작가(히라타 오리자)의 공동 집필에 한국 연출가(이병훈)와 일본 연출가(히라타 오리자) 공동 연출로 구성되었고, 배우 또한 한국의 원로배우 백성희 선생이 일본 배우들과 함께 참여하기도 했다. 이 작품은 일본 아사히 연극상을 수상해 일본 연극계에서 작품성을 인정받았으며, 한국 공연에서도 관객들의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다. 이후 일본의 정상급 연출가인 오타 쇼고·노다 히데키 등이 내한해 자신의 희곡 작품을 한국 배우들과 작업하는 기회를 가졌고, 올해는 한국의 중견 연출가 손진책씨가 지금 일본에서 <맥베스>를 연출하고 있다. 이 작품은 일본 신국립극장 제작으로 공연될 예정이다. 


1992년 <세월이 좋다>로 최초 협력 공연


 
이제 한·일 간 연극 교류는 서로의 작품을 교환·초청하는 단계에 그치지 않고, 희곡·배우·연출·무대예술 전 분야에 걸친 실제적인 협력 작업으로 발전해가고 있다. 이런 현상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일단, 한국과 일본의 공연예술이 대등한 수준과 조건을 갖추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한국 연극은 1920년대 이후 일본의 신극과 신파극을 수용하면서 일본 연극의 변방 연극으로 치부되어왔다. 일본 연극의 미학적 개념과 기준이 그대로 한국 연극에 적용되었고, 상대적으로 왜색이라는 혐의를 받으면서 모종의 일본 연극 콤플렉스에 빠져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한국 연극이 일본 연극의 영향권에서 벗어나면서 독자적인 첫걸음을 걷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에 이르러  극단 자유의 <무엇이 될꼬 하니>(김정옥 연출)가 일본에서 공연되면서부터이다. 구미에서 수입된 일본 연극 문법과 전혀 다른 연극이 일본 연극계에 소개되면서 일본 연극은 그들과 다른 한국 연극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오태석 작·연출 <춘풍의 처>가  스즈키 타다시가 주재하는 토가 연극제에 참가하면서 본격화되었다. 1990년 필자가 주재하는 연희단거리패의 <오구>가 1990년 도쿄국제연극제에 초청되었고, 동시에 <산씻김>이 타이니 알리스 소극장 페스티벌에 참가했다. 이후 1992년 일본측의 기획으로 한·일 협력 작업의 길이 열렸는데, 필자의 희곡 <불의 가면>이 일본 극단 타이오 제작, 스즈키 겐지 연출로 도쿄에서 공연되었고, 이 작업에 연희단거리패 배우 배미향이 참가했다. 이와 동시에  일본 극작가 기시다 리오의 <세월이 좋다>를 필자가 연출하고, 배우 또한 일본 배우 4명과 한국 연희단거리패 배우 2명이 참여했다. 의상과 무대미술은 한국측이, 음악은 일본측이 담당했고 타이니 알리스가 제작을 맡았다. 최초의 한·일 협력 공연 <세월이 좋다>는 1992년 도쿄·오사카·니가타 공연을 거쳐 1993년 아사히홀 재공연과 미국 순회 공연을 거쳤고, 1994년 1월 혜화동 연극실험실 개관 작품으로 국내 공연이 이루어졌다.


협력에서 다시 자유경쟁 시대로


 
이 최초의 협력 작업은 신기하게도 일본과 한국 양측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 일본의 원로 연극평론가 오자사와 젊은 평론가 니시도 고진 등이 평론을 썼고, 한국 공연에서도 평론가 이미원 교수는 아시아적인 종합성이 드러난 좋은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필자가 ‘신기하게도’라는 표현을 쓴 것은 당시 한·일 간의 민족 감정과 ‘왜색’이라는 말로 표현되었던 일본 문화 혐오증이 엄연하게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990년대 이후 한국과 일본의 연극은 정치적 혹은 국가적으로 굴곡진 세월과 무관하게 양국의 교류 및 협력 관계를 유지해왔다. 한·일 간 초청 공연은 일반화되었고, 한국과 일본의 극작가·연출가·배우·무대예술가들의 왕래가 잦아졌다. 일본의 스즈키 타다시와 한국의 김의경 선생 등이 제안한 베세토 연극제가 한·중·일 연극의 만남을 주도했고, 임영웅 선생이 주도적으로 길을 연 한·일 연출가 세미나도 한몫을 했다. 일본 연극을 배우러 와세다 대학과 니혼 대학 등에 유학을 가는 학생도 늘었고, 일본의 기획자가 한국에 상주하면서 한·일 연극 교류의 길을 열기도 했다. 일본 신주쿠 양산박의 여배우 김구미자씨는 한국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는데 특히 신주쿠 양산박은 <인어전설>이 한강변 텐트 극장에서 공연되면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신주쿠 양산박 극단 대표 김수진씨는 연출과 연기를 겸하면서 꾸준히 한국 공연의 길을 열어왔다. <인어전설> 이후  가라 주로의 일련의 작품들을 한국에 소개했고, 올해에는 일본 연극 <에에자나이카>의 연출자로 대학로 한가운데에 위치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 입성한다.
이제 한·일 양국 간의 교류와 협력 관계에는 별스러운 장애 요인이 없어졌다. 김광보·박근형·양정웅 등 한국의 젊은 연출가 또한 스스럼없이 일본을 왕래한다. 양정웅은 지난해 스즈키 타다시가 주재하는 시즈오카에서 일본의 연출가 미야기 사토시와 공동 연출 작업을 한 바 있다. 일본의 평론가 니시도 고진 교수는 지난해 <한국 연극으로의 여행>이라는 평론집을 출간하면서 그동안의 한·일 연극 교류사를 기록으로 남겼다.
그러나 한·일 양국 간 공연예술 교류에 장애 요인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근래 일본의 뮤지컬 극단 사계가 <라이온 킹>을 들고 상륙했을 때, 한국 뮤지컬계에서 거세게 반발하면서 양국 사이에 갈등을 드러냈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라이온 킹>이 야기한 갈등은 민족적 혹은 문화적 혐오증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 듯하다. 지금 <라이온 킹>은 별다른 거부감 없이 공연이 진행되고 있고, 한국 관객들은 일본 뮤지컬이라는 선입견 없이 표를 사고 있기 때문이다. <라이온 킹>의 갈등은 결국 문화산업적 갈등이었던 것이고, 이런 문화산업적 갈등은 이미 일본 소설·영화·음반이 자유롭게 수입되면서 양국이 경쟁 관계로 돌입한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이제 한·일 간의 연극 교류는 상호 교류와 협력의 차원을 넘어서 자유로운 경쟁과 문화산업적 수지 타산에 의해 움직이는 시대가 되고 있음을 예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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