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운동의 새 출발을 기대한다
  • 문병호(언론인) ()
  • 승인 2007.03.05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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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실련·흥사단 등 4개 단체가 최근 ‘NGO 사회적 책임운동 준비위원회’를 결성했다는 보도는 한 시대의 막이 내리고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는 의미 있는 변화의 하나로 읽힌다.
1987년 이후 우리 사회에서 NGO(비정부 조직) 영역은 말 그대로 급성장했다.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단체와 수많은 활동가들의 노력이 여러 분야에서 적지 않은 성과를 낸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현 상황은 ‘시민단체의 정치·사회적 영향력은 커졌지만 사회적 비판 고조와 지지 기반의 감소라는 위기에 봉착해 있다’는 것이 준비위측의 자가 진단이다.
왜일까. “다양화·다원화하고 있는 사회의 흐름을 무시한 채 비타협적이고 일방주의적인 운동 방식을 고수하면서 스스로 정파적 편향성을 드러냈고 이것이 바로 시민단체의 고립으로 이어졌다”라는 분석이다.
분석 그대로, 언제부터인가 시민들은 NGO 활동가들에 대한 존경과 신뢰를 거두어들이기 시작했다.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반, 이름에서도 새로운 감각이 느껴지는 많은 NGO 단체들이 등장하던 초기로 돌아가보자.


10여 년 전의 헌신적 자세·열정 되살려야


열악한 여건에 개인적 희생을 감수하면서 기성 질서와 제도의 문제에 천착해 공공의 이익을 지키고 키우겠다고 나서는 그들의 헌신적인 자세는 도덕적 권위를 가질 만했다. 그들의 주장 또한 일단은 신선하게 들려 관심을 끌 수 있었다.
10여 년의 거리를 둔 지금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누구도 시민운동가들이 일반 시민들보다 더 도덕적이라거나 양심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의 주장에 진지하게 귀 기울이는 사람도 거의 없어졌다. 그들 주장의 많은 부분은 진부해졌거나 현실성이 작은 것으로 인식되어졌다.
어느 대학연구소의 사회집단 신뢰도 조사에서 2003년, 2004년 연속 1위에 올랐던 한 단체가 2005년 조사에서는 5위로 4계단이나 떨어졌다는 보고는 상황을 압축해 보여준다.
이런 점에서 볼 때 4개 단체의 ‘책임운동’ 움직임은 위기의식의 자연스러운 발로일 것이다.
시민 없는 시민운동, 시민 동원형의 일방통행식 활동, 외부에 대한 요구와는 사뭇 다른 느슨한 내부 윤리, 정치권을 뺨치는 패거리 문화, 시민운동의 문제점은 안팎의 시각이 거의 일치한다.
그중에서도 핵심을 꼽는다면 무엇일까.
다름 아닌 NGO의 본령을 지켜가는 일이라고 본다. 우리 사회에서 NGO 활동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기 시작한 계기는 2000년 총선시민연대가 벌인 낙선 운동이었다. 이후 정권에서 시민운동가들이 이런저런 명분과 계기로 정치권이나 정부 기구에 진출하면서 본래의 순수했던 이미지가 빠르게 훼손되었다. 특히 현 정부 들어 수많은 위원회 등에 정권과 코드가 맞는 인사들이 경쟁이나 하듯 입성하자 NGO는 ‘정권의 2중대’ ‘새로운 엽관제의 통로’로까지 인식되었다.
냉철한 자기 반성과 내부 혁신을 통해 시민운동은 다시 태어나고 새 출발해야 한다.
의회·정당·정부·법원 등 제도권의 기구가 정상으로 작동하고 원활히 기능하는 이른바 선진국에서 정치적 성향을 띤 단체보다 봉사 활동에 주력하는 ‘NPO’ 단체들이 시민운동의 주류를 이루는 흐름을 읽어야 한다.
논란이 있지만 우리 사회의 민주화도 일정한 단계에 올라섰다. 무엇보다 시민의식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정치적 야망을 위해 몸담은 운동가라면 이쯤에서 정치권으로 옮길 것을 권한다. 대선·총선을 앞두고 마침 정계 개편 바람이 불고 있지 않은가.
순수한 사람들이 남아 정직과 겸손, 포용의 자세로 NGO 본령의 활동을 통해 세계에 유례없는 한국 사회의 특별한 전통을 이어가기를 기대한다. 4개 단체의 ‘사회책임 현장 및 행동규범’이 새 출발의 신호탄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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