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오는 '신북풍' 대선 판도가 요동친다
  • 김행 편집위원 ()
  • 승인 2007.03.12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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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정상회담 가능성이 커지고 평화 체제를 향한 미국과 북한의 움직임이 빨라지면서 정치권에 격랑이 일고 있다. 이에 따라 진보 세력과 보수 세력의 피 말리는 정권 쟁탈전에 현직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 위원장이

 
2007년 대선판이 아연 긴장 상태에 빠졌다. ‘신북풍(新北風)’이 몰려오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과 미국, 북한과 일본, 그리고 남북한 관계가 빠른 물살을 타고 급변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4월14일을 시한으로 한 북핵 초기 조처가 성사될 경우 향후 예정된 굵직한 사건들이 서로 연쇄반응을 일으키며 북·미 그리고 남북 간 정상회담을 향해 치달을 가능성이 있다.
이같은 대형 신북풍 이벤트는 시기적으로 대선이 임박한 10월, 11월께 정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미 정가에서는 11월쯤 유엔에서 김정일 위원장과 부시 미국 대통령이 평화협정에 최종 사인을 하게 될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정설로 굳어가고 있다. 외교 소식통들에 따르면 노무현 대통령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게 모종의 특별 역할을 주문했다는 설도 있다고 한다. 
신북풍의 갖가지 이벤트들은 현실적 비중과 속도감에서 역대 선거 때마다 불어왔던 북풍과는 그 의미가 확연히 다르다. 북한이 세계를 향해 위협했던 핵무기와 관련 시설을 폐기하기까지 큰 수레바퀴가 아주 순조롭게 굴러간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우선 초기 조처, 핵 동결과 사찰관의 입북 이행이 4월14일까지 이루어지고, 이어 크리스토퍼 힐 미국 국무차관보의 방북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후 6개국 외교장관 회담과 협정 당사국인 남북한, 미국·중국의 장관 회담이 곧바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가시권에 든 남북한, 북·미 정상회담


 
이즈음에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의 평양 방문도 성사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그 다음의 수순은 바로 남북 정상회담이며, 이 정도 분위기에서 남북 정상회담은 전혀 이례적인 일이 아니다. 현재 이 스케줄에 대해 외교가에서도 이례적으로 빠른 속도라고 입을 모은다. 무엇보다 북한이 매우 적극적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김정일 정권이 정당성 확보와 정치 불안 요소의 제거, 최악의 경제 상황으로부터의 탈출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뛰고 있다는 얘기다. 만약 남북 간에 이어 북·미 간 정상회담이 성사된다면 이는 노무현 정권의 차원을 넘어 한반도의 운명이 바뀌고, 나아가 세계 평화의 질서가 바뀌는 역사적 사건이 될 것이다.
북한은 핵시설 전체를 다시 쓸 수 없게 만드는 불능화 조처를 올해 안에 취할 가능성이 있다. 이런 맥락 속에 한반도 평화협정은 자연스럽게 성사될 것이다. 평화협정은 휴전협정을 대체할 정전협정이 된다. 휴전협정 당사자는 북한과 미국이다. 그래서 평화협정 서명을 위한 김정일-부시 회담은 피할 수 없다는 말이다. 북한 핵 폐기 초기 조처로부터 북·미 간 평화협정 체결에 이르는 일련의 사건들은 하나같이 초대형 사건들이다. 지난 50년간 한반도에서 벌어졌던 북한 관련 사건들과 비교하면 한 건 한 건이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킬 중대성을 지닌다. 그런 어마어마한 사건들이 앞으로 불과 7~8개월 내에 연쇄적으로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노무현 정권이 이같은 일련의 초대형 이벤트에 성공하면 한반도와 지구촌에는 분단과 냉전의 구조가 깨지고 새로운 질서가 자리 잡을 수 있다. 다시 말해 실질적인 종전(終戰) 선언의 의미를 가지게 될 것이다. 남북한 관계도 형식적으로는 ‘2국가 2체제’이지만 내용적으로는 통일 국가로 거듭날 것이다. 경제적으로도 파급 효과는 막대하다.
북한 요인에 의해 항상 발목을 잡혀왔던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사라지고 대한민국의 국가 신용도가 극적으로 상향 조정될 것이다. 미국과 일본, 서방 국가로부터 막대한 자금이 북한에 투자될 것이다. 골드만삭스가 한국이 2050년이면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8만1천 달러로 일본·독일 등을 누르고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부국이 될 것이라고 예측한 것이 맞아떨어질 가능성이 눈앞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노무현 대통령은 한·미 FTA 협정 성공과 대한민국의 평화협정을 이끌어낸, 그래서 대한민국의 ‘제2의 도약’을 마련한 ‘성공한 대통령’으로 자리매김하게 될지 모른다. 
이 시나리오가 현실화되면 2007년 대선의 양상은 당연히 바뀌게 될 것이다. 대선 구도는 ‘부패하고 무능한 좌파 정권에 대한 국민적 퇴출 명령’이 아닌, ‘평화 세력’인 현 여권 세력과 ‘전쟁 세력’인 한나라당이 싸우는 구도로 바뀌게 된다.


 
‘이해찬 방북’은 노대통령의 묘수인가


이해찬 전 국무총리의 방북이 갖는 비중과 의미도 여기에 있다. 한나라당 나경원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이 전 총리의 방북으로 좌파 정권 연장을 위한 퍼즐 맞추기가 본격 시작됐다. 대선용 정상회담으로 민족의 운명마저 파탄내려 하고 있다”라고 비난했다. 정형근 최고위원도 “이해찬-안희정 라인처럼 비밀리에 쉬쉬하면서 정상회담을 위한 대북 접촉을 하는 것은 국민이 용납도, 동의하지도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미 타이밍을 놓치고 있다. 한반도에서 평화협정 타결이라는 목표를 향해 거대한 수레바퀴는 이미 구르기 시작했다. 남북한 당국과 주변 열강이 모두 나선 상황에서 역사적 항로의 도도한 물길을 열기 시작했다. 좀처럼 브레이크가 걸릴 것 같지는 않다. 남북 관계에 정통한 장성민 전 의원은 “북한이 결단한다면 대선이 임박한 10월이나 11월에 남한의 보수 정권 생성을 막기 위해 판도를 뒤엎는 수단으로 정상회담을 활용할 수도 있다”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신북풍’은 진보 세력의 입장에서 보수 정권으로의 정권 이양을 막을 수 있는 최고의 카드이다.
이 와중에 희한한 점도 있다. 진보 세력과 보수 세력 사이의 피 터지는 정권 쟁탈전에 현직 대통령, 전직 대통령, 심지어 북한의 김정일까지 나서고 있는 상황이 그렇다. 노대통령은 그렇다 치고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종필 전 총리 등 3김씨까지 특정 후보 지지를 위해 신발끈을 조여 매고 있는 형국이다. 후보만 바뀌었지 마치 3김의 대리전이 펼쳐지지 않나 하는 느낌마저 준다. 더구나 북한은 아예 “대통령 선거에서 한나라당을 쓸어버리자”고 선동하고 있다. 북한 당국은 어떤 식으로든 자신에게 유리한 구도를 만들기 위해 남한 대선에 영향을 미칠 궁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최대한 얻어낼 것을 얻어내겠다는 계산이다.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대북 특사’인지 아닌지는 논란거리조차 되지 못한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노대통령의 ‘대선 개입’ 의사는 분명하다. “대통령은 정치인이므로 정치적 중립을 지킬 의무가 없다”라는 발언이 그 시발이다. 대통령은 정무직 공무원으로 정당 가입 등 정치 활동은 할 수 있지만 선거법 제9조는 ‘공무원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라고 선거 중립을 의무화했다. 노대통령의 경우 정당 활동 등은 허용되지만 특정 후보를 밀거나 공격하는 행위를 할 수 없음을 뜻한다.
그런데 노대통령이 열린우리당을 탈당했다. 곡절은 있었지만 스스로 걸어 나갔다. 정치 활동의 권리를 포기한 것이다. 자진 탈당 형식을 취했지만 사실상 노대통령과 동행하기 싫다는 열린우리당으로부터 ‘떠밀려’ 나왔다. 그래서 타의에 의해 정치 활동을 속박당할 수밖에 없다. 이리 보나 저리 보나 선거 중립을 반드시 지켜야 하는 처지다.
그러나 노대통령의 선거 개입은 여야 대선 후보에 대한 품평에서부터 출발한다. 그 표현이 아슬아슬하다. 지난 1월16일에는 “실물 경제 좀 안다고 경제를 잘하는 게 아니다”라고 했다. ‘경제 대통령’을 표방한 한나라당 이명박 전 서울시장을 겨냥한 말이다.
게다가 노대통령의 교육 정책과 경제 정책을 사사건건 물고 늘어진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까지 타깃에 포함되었다는 분석도 나왔다. 2월28일에는 “한반도 운하가 현실에 맞느냐”고도 했다. 지금까지 현직 대통령이 야당 대선 주자의 특정 공약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다는 것을 상기한다면 매우 도발적이다. 또  “차기 대통령은 정치를 잘 아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라는 3월1일 발언도 노대통령의 심중에 누군가가 있다는 해석을 받기에 충분했다.
노대통령의 대선 주자 공격이 이 전 시장 한 사람에게 집중되는 인상이지만 사실 그 대상은 폭이 넓다. “역사가 퇴행하는 게 아닌지 고민스럽다”라는 말은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를 향하고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 21세기에 정권을 추구한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듯한 뉘앙스다. 앞서 김근태·정동영 전 의장에 대해서도 ‘장관에 임명해 욕만 실컷 먹었다’는 식으로 쏘아붙였다. 노대통령의 마음에 들지 않는 여야 후보에 대한 ‘저격’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은 느낌이다. 이미 고건 전 총리는 그 유탄에 쓰러졌다.
노대통령으로서는 남북 정상회담과 대통령 연임제 개헌과 같은 ‘무기’가 있는 한 대선에서 무조건 이길 자신이 있다고 믿을지 모른다. 노대통령은 신북풍이 몰아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3월8일 ‘4년 연임제 개헌안 시안’을 발표했다. 노대통령이 여야 후보를 무차별 가격하는 것은 선거 막판 판세를 뒤집을 후보가 마음에 있다는 얘기와도 통한다. ‘대북 특사’가 아니라고 부인하지만 노대통령의 ‘정치 특보’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돌연 방북한 것은 노대통령다운 묘수가 준비되고 있다는 신호이다.
벌써부터 이 전 총리를 ‘노대통령의 대선 주자 중 한 사람’으로 등극시키기 위한 포석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신북풍을 평화로 포장된 개혁 세력의 재집권 전략으로 십분 활용할 것이다. 게다가 개헌 카드로 야당의 대선 주자들까지 발목을 잡겠다는 속셈을 분명하게 드러냈다. 나아가 현 대선 주자들이 차기 정부에서 개헌하겠다고 약속해줄 경우에는 발의 유보를 검토하겠다고 옥죄었다. 그의 정치적 승부욕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신구 여권의 선거 기획자로 나선 DJ


김대중 전 대통령은 사실상 열린우리당과 탈당파를 위한 신구 여권의 선거 기획자이자 후견인으로 나섰다. 2월28일 천정배 의원 등 탈당파들이 동교동으로 찾아오자 “단일한 통합 정당을 만들거나, 최소한 선거 연합을 이뤄내 대통령 후보를 내세우는 데 기여해야 할 것”이라고 훈수했다. 범여권이 지리멸렬한 상황에서 스스로 호남을 업고 통합의 후견인 역할을 자임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을 낳기에 충분하다. ‘단일한 통합 정당’과 ‘선거 연합을 통한 단일 대통령 후보’는 한나라당을 견제하는 여러 세력 간의 결집을 촉구한 것이기도 하다. “정치 개입을 일절 하지 않을 것”이라는 본인의 다짐은 간 곳이 없다. 사실 지난해 말 목포를 방문해 역 광장에서 <목포의 눈물>을 부를 때 이미 그의 ‘정치 활동 포기’ 약속은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DJ로서는 한나라당 집권이 자신의 업적에 대한 파괴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다. 북한 핵실험 직후 한나라당이 금강산 관광 중지와 개성공단 사업 중지 등 햇볕 정책 폐기를 요구하자 전국을, 특히 호남을 순회하며 햇볕 정책을 몸으로 사수했던 그다. 한나라당이 정권을 통째로 인수하는 상황을 방치하기 어려운 이유가 그것이다.  DJ가 대선 전에 평양을 방문하기 위해 애쓰는 것도 연관이 있다.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평양으로 떠나기 직전 동교동을 방문했던 사실이 눈길을 끄는 이유는 DJ가 북한 카드를 2000년 국회의원 총선에 사용한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총선 직전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그로서는 개혁 세력 재집권을 위해 북한 카드를 활용하는 노하우를 전수할 생각이 있었는지 모른다.
여기까지는 국내 상황으로 치자. 문제는 북한 김정일이다. 최근 북한 선전 매체들은 “한나라당을 쓸어버리자” “한나라당을 매장하자” “보수 세력을 뿌리 뽑자”라고 아우성이다. 북한 매체들이 김정일 위원장 허락 없이 이런 논조를 내세우기는 어렵다. 북한과 김위원장 입장에서는 한나라당의 ‘상호주의’에 입각한 대북 정책이 마음에 들 리 없다. 쌀과 비료를 주면 국군 포로와 납북자 문제 해결을 들고 나올 것이 뻔한데 “납북자나 국군 포로는 없다”라고 주장해온 북한 처지에서 골치가 아플 것이 뻔하다. 노무현 대통령이 북한 핵무기를 ‘방어용’으로, 그리고 ‘이해한다’는 식으로 감싼 반면, 한나라당은 ‘무조건 폐기’를 들고 나올 것이다. 노대통령은 “대북 지원은 마셜 플랜과 같은 것으로 다 줘도 남는 장사”라고 말하기도 했다.
남한 대선과 관련해 김정일 위원장은 빠른 계산을 하고 있다. 남북 정상회담에 합의해주는 것이 남한 개혁 세력의 재집권에 도움이 될지, 아니면 역효과가 날지 주판알을 튀기고 있을 것이다. 남북 정상회담에 응할 경우 얼마나 많은 쌀과 비료, 그리고 달러와 물자를 얻어낼지도 꼽아볼 것이다. 미국을 상대로 한 몇 번의 핵 시위로 중유와 미·북 수교 협상이라는 엄청난 선물을 챙긴 북한이고 김정일 위원장이다.
김위원장은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고 남한의 대선 분위기가 평화 세력 대 분단 고착 또는 전쟁 세력과의 대결 구도로 갈리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할 것이다. 열린우리당 장영달 원내대표가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한반도에서 전쟁 난다”라고 주장한 것과 통한다. 남북 평화 체제에 합의하면 군비 감축과 병력 감축으로 이어질 것이다. 대선을 앞두고 남한 국민 모두 ‘평화 무드’에 들떠 진보·친북 후보에게 무더기 표를 던지는 장면을 상상할지 모른다. 참여정부의 실패로 인해 고개를 떨군 진보·친북 세력들의 재기는 시간 문제라고 판단할 수 있는 김위원장이다.
더구나 현재 북한은 미국과 빠른 수교를 원한다고 공개적으로 의사를 밝힐 만큼 적극적이다. 3월7일 (현지 시각) 뉴욕에서 힐 차관보와 회담을 마친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도 “조미(북·미) 관계 정상화를 포함, 여러 의견을 나눴고 건설적이고 진지했다”라고 말해 정상회담 제안을 시사했다. 김위원장이 2007년 대선의 변수가 아닌 상수로 등장한 셈이다.  


 
YS·JP·한나라당도 뭉치나


현재까지 여론조사에서는 한나라당이 우세하다. 아직까지는 보수 진영의 기세가 높다. 주말이면 서울시청 앞 광장이나 서울역 광장에서 열리는 진보·보수 집회 참가자의 규모를 비교하는 것조차 무색할 정도이다. 보수 쪽이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여간해서는 행동에 나서지 않던 보수 세력이 진보 시위대를 공격하는, 상상하기 어려운 장면도 연출되고 있다. 더구나 진보 쪽은 지금 좌충우돌이다. 노대통령이 진보를 공격하고 진보가 다시 노대통령과 거리를 두는 등 자중지란의 모습도 보인다.
그러나 이런 비교 우위가 언제까지 갈지는 미지수다. 대선까지 이어진다고 보는 것은 순진하고 낭만적이다. 우선 보수 세력에게는 수단이 없다. 노대통령과 김대중+김정일 3인의 정치적 오퍼레이션을 정치권 전체가 긴장 속에서 숨죽여 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성사만 된다면, 남북 정상회담의 여파와 한반도 평화협정의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임을 감지하기 때문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3월13일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출판기념 행사에 참석한다. YS 비서관들은 YS가 이 전시장 지지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고 전한다. 한나라당 후보 가운데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가 민주계 출신인데도 불구하고 YS가 손 전 지사가 아니라 이 전 시장을 지지한다는 것은 그의 성향이 ‘보수’임을 드러내는 행동이다. 게다가 그는 늘 DJ와 대척 관계에 있다. 또한 YS는 참여정부를 좌파 정권이라고 비난하고 좌파 재집권을 저지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따라서 그의 선택은 이상할 것이 없다. 이 전 시장은 지난 2월14일, 김영삼 전 대통령을 비밀리에 만났다. 그때 이미 YS가 언질을 주었다는 분석이 세를 얻고 있다. YS의 지지 선언이 최근 후보 검증 소란으로 지지세가 한풀 꺾인 이 전 시장에게 어떤 보탬이 될지 주목된다.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는 아직 아리송하다. 얼마 전 이한동 전 총리 등을 만나 “나라를 구하고, 국민들의 선택을 위해 나서겠다”라고 했다는 말이 들린다. “비용도 스스로 마련하겠다”라고 말했다는 전언이다. 인연으로 보면 그는 박 전 대표를 돕는 것이 자연스럽다. JP에게 박 전 대표는 처조카인 데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다. 박 전 대표의 대통령 당선을 위해 앞장선다고 해서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 그러나 JP는 아직 박 전 대표에게 방점을 찍은 단계는 아니다. 분명한 것은 한나라당 후보 쪽이라는 것뿐이다. 필자는 얼마 전 JP의 딸 김예리씨를 만났다. 그녀는 필자에게 “한나라당 후보 중 누가 승산이 있는지 부친이 알고 싶어한다”라고 말했다. 그의 영향력이 여전하다고 말하기는 어려우나 그가 이번 대선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어함은 분명하다.
문제는 한나라당의 위기가 YS·JP 두 정치 원로의 협력 정도로 해결되기 어렵다는 데 있다. 노대통령은 현직이고 이들 두 사람은 전직이다. 같은 전직이라도 DJ와 비교해 영향력에서 떨어진다. 노대통령은 사실 ‘정치 9단’을 뛰어넘는 정치력을 갖추고 있다. 이제는 미국도 한나라당에 위안이 되지 못한다. 이라크 수렁에 빠진 부시 대통령이 북한 카드를 앞세워 지지율을 바닥으로부터 반등시킬 계산을 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한반도에서 나아가 국제적으로도 냉전 세력은 한나라당만 남는 꼴이 된다. 이래서야 한나라당 집권을 상상하기 어렵다.


한나라당, 북한 문제 못 풀면 큰 위기 봉착


한나라당도 대선 전 남북 정상회담에는 반대하지만 이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분위기다. 한반도 해빙이라는 격랑을 거스르기 곤란하다는 판단에서다. 당혹스럽고 아찔할 수밖에 없다. ‘대선을 앞둔 미국 정부는 한국에 전쟁만 안 나면 된다며 한국 상황을 그저 미봉하겠다는 의지가 분명히 있다’라고 믿었던 미국의 배신을 비판하는 신세가 된 것이 오늘의 한나라당이다. 한나라당 김정훈 정보위원장은 “한나라당도 북한과 대화하고, 북한도 한나라당과 대화해야 한다”라고 뒤늦게 주장하고 나섰다. “북한은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관계가 더 악화될 것으로 보는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고 본다” “한나라당이 집권한다고 북한이 어디로 가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한민족끼리 머리를 맞대고 서로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라는 주장까지 나온다.
한나라당은 일단 다수 세력의 지원을 받고 있다. 여권 후보가 지리멸렬한 지금 추세라면 12월 대선은 하나마나다. 현 시점에서 한나라당은 차기 정권에 가장 근접해 있다. 정당 지지도는 50% 안팎이고 3명의 주자에 대한 지지율은 합해서 70%를 상회한다. 정권 탈환은 시간 문제로 보인다. 집권 세력은 사분오열이다. 이해찬 전 총리, 한명숙 전 총리와 유시민 보건복지부장관이 ‘노대통령의 유력한 대선 주자’로 평가받는 것부터가 그렇다. 집권은커녕 내년 4월 국회의원 총선에서의 원내 진출이 최대 목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런 계산은 한반도를 둘러싼 평화협정을 향한 거대한 수레바퀴가 굴러가면서 영 틀어질 개연성이 높아지고 있다. 북한 문제에 대한 자세 확립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한나라당의 대선 가도는 난관에 봉착할 가능성이 높다. 한나라당은 또 한 차례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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