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가 사는 '여기'를 돌아보라
  • 조인숙(다리건축 대표) ()
  • 승인 2007.03.12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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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고장의 고유한 과거 문화를 모르면서 그곳의 문화를 계획하고 앞서가는 문화 정책을 펼치겠다고 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문화는 사법·외무·언론 고시 준비하듯 어느 날 갑자기 내 것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그 자리(도시나 지역)에서 축적된 체험을 통해 몸에 녹아든다. 그래서 어느 한 지역의 문화정책만은 그 지역에서 태어나서 오랫동안 문화의식을 가지고 살아온 사람이 관여해야 한다고 본다.
전국 여러 곳에서 주민과 함께 생각하고 만들어가는 문화마을을 구현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을 들여다보면 안타깝게도 본래 사는 곳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했고 평시에 즐기던 것이 아닌 남이 가진 무엇이 선진화된 것이 문화라고 여긴다. 늘 해오던 것은 토속 혹은 민속일 뿐이고 선진국의 풍속습관을 흉내 내거나 따라가는 것이 문화라고 여기는 이유는 서구에서 연구되고 정의된 용어가 여과 없이 유입되어 삶의 활동조차도 서구 중심의 개념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문명과 문화를 혼동하며 ‘문화’라면 파리나 뉴욕, 런던 등의 도시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모방해서 주체자가 아닌 향유하는 입장에서의 행위로 받아들인다. 문명은 원시라는 것에 대응하여 발전되고 세련된 삶의 양태를 뜻하고, 문화는 정신적·지적인 발전을 뜻하는 것이라 한다.
고유의 역사를 지닌 한국민은 정체성을 가지고 삶을 영위하며 나름의 정신적·지적 발전을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문화라면 밖을 기웃거린다.
서울시가 관광객 1천2백만 명을 유치할 문화도시를 만들겠다고 한창인데, 나는 찬란했던 과거가 새삼스럽게 그립다. 내다버릴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우리 것이 아름답다 예찬하며 한국 소나무로 지은 한옥에서 살겠단다.
서울말, 서울음식, 서울의 가옥 및 서울의 도시구조를 보존했더라면 하고 후회한다. 서울에서만 보고, 듣고, 느낄 수 있고, 구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제대로 남아 있으며, 역사 문화의 보고(寶庫) 서울에 사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는 사람들이 도대체 몇이나 되는가! 서울 사람으로서 자부심을 느끼는 이들이 과연 서울에만 있는 것들의 소중함을 아는가!
돌이켜보니 1970년대 말부터 주변 사람들이 전국의 문화유적을 답사하고 박물관 등을 섭렵하며 내 것을 찾아서 다녔다. 전라도·경상도·강원도로 멀리멀리 답사를 다녔다. 전국을 다니면서도 자신들이 자라온 서울은 지나쳤다.


골목길 구석구석에 문화가 넘치는 뉴욕


20여 년 전 세계여성건축사연맹(UIFA)이 개최하는 회의에 참석하려고 방문한 워싱턴에서 충격을 받았다. 아메리칸 뮤지엄·내셔널 뮤지엄·자연사 박물관 등 종류도 다양한 뮤지엄 몰과 그곳을 방문한 인산인해의 관광객에 놀랐다. 숙소는 조지타운 도보관광 지도에도 나와 있는 문화재급 저택이었다. 역사가 불과 200년인 미국의 수도가 각종 문명을 수용하고 남의 것도 내 것처럼 보존하여 당당하게 문화도시 역할을 하는데 우리는 문화유산이 풍부함에도 알리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약이 올랐다.
이듬해 문화도시 뉴욕으로 공부하러 갔다. 맨해튼의 남단 볼링그린에서부터 북쪽의 할렘까지 건물 하나하나, 골목길 구석구석을 섭렵하며 걷던 ‘뉴욕의 건축’ 과목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 두 도시의 경험을 바탕으로 1991년 시도했던 것이 내가 있는 자리에서 내 것을 찾자는‘서울 찾기(Walking Tour Seoul)’였다. 정형화된 뉴욕 거리보다 훨씬 콘텐츠가 많고 자연스러움이 살아 있는 골목을 걷는 모임은 호응이 좋았다.
2007년 3월부터 한국어와 영어로 다시 시작하는 ‘서울을 걷는다’ 프로그램을 통해 나는 이 자리에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역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것을 다시 힘주어 말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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