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권, 금배지 향해 "줄을 서시오"
  • 김행 편집위원 ()
  • 승인 2007.03.19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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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유력 주자 '줄 세우기'+의원 '줄 서기' 극성....현재는 이명박 전 시장 '우세'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국회의원들이 가장 곤란해하는 질문은 “집권이 중요한가, 금배지가 중요한가”이다. 거의 모두가 “집권이 목표”라고 대답한다. 하지만 속내가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정권을 잡은들 자신의 금배지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허망하다. 그럴 경우 차라리 정권 창출 대열에서 이탈하는 ‘정치 상인’들이 바로 국회의원이다. 역대 대선에서 수없이 보아왔던 상황이다.
한나라당 유력 대선 주자의 소속 의원 ‘줄 세우기’와 소속 의원들의 ‘줄 서기’가 볼썽사납다. 유력 후보의 당선 가능성을 가늠하면서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현역 의원들의 모습은 마치 초원의 하이에나와 흡사하다. 이들은 이명박-박근혜 두 사람이 대선 정국을 주도하고, 둘 중 한 명이 정권을 잡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그래서 자신의 정치 생명줄을 틀어쥘 ‘주군’을 찾아 헤매는 것이다. 물론 소속 의원들의 줄 서기는 유력 후보측의 권유에 따른 측면이 크다. 캠프에 합류시켜 대세를 굳히고, 이들을 통해 대의원 표를 확보하려는 양 캠프의 압박도 없지 않다. 제18대 총선은 대통령 선거 4개월 뒤인 2008년 4월에 치러진다. 차기 대통령의 기세가 욱일승천하는 시기이다. 당선 직후의 대통령은 대권을 앞세워 당권을 휘두르며 국회의원 공천에 전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


친박근혜 의원들, 이명박 캠프 합류 늘어


사정이 이러한 만큼 한나라당 소속 의원들의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다. 소속 의원의 절반이 넘는 70여 명이 초선이다. 누가 유력하다고 하면 자다가도 뛰어나가야 할 처지이다. 대선 후보 간 스타일 차이가 있지만 이 전 시장이나 박 전 대표 모두 ‘디사이시브’하기는 마찬가지다. 이 전 시장은 기업인이었을 때, 또 서울시장이었을 때 논공행상이 분명했다. 따라서 그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줄 서기’에 대한 보상과 응징이 분명할 것이라는 소문이 자자하다. ‘현역 의원 80% 공천 탈락설’도 나돈다. 최근 친박근혜 의원들이 이탈해 이 전 시장 쪽 캠프로 속속 합류하는 모습이 눈에 띄는 이유도 여기서 찾는다. 박 전 대표도 내공이 만만치 않은 인물이다. 대낮에 괴한에게 칼을 맞고도 흔들리지 않았던 그녀다. 집권할 경우 최소 50%가량의 공천 탈락을 예상한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제대로’ 줄 서지 않으면 어느 손에 의해 정치 생명이 끊어질지 모르는 ‘칼날 위 걷기’ 같은 상황인 것이다.
지난 3월13일 대선 출정식을 방불할 정도로 치러진 이 전 시장의 출판기념회에는 소속 의원의 절반인 62명이 참석했다. 최근 비슷한 모임을 가진 박 전 대표의 토론회에는 34명이 참석했다. 이 전 시장의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의원들의 수는 박 전 대표 신년하례회에 참석했던 46명보다 16명이 많고, 출판기념회 전날 있었던 친박근혜 계열의 토론회에 참석한 34명보다는 30명 가까이 많은 수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친박’이 줄고 ‘친이’가 증가하는 추세다. 이것이 바로 여론조사 1위 후보의 위세다. 박 전 대표측 캠프는 걱정스러운 분위기다. 그동안 ‘친박’ 또는 ‘중립’을 표방해왔다고 여겨졌던 일부 의원이 이 전 시장 쪽 행사에 대거 참석했기 때문이다. 지난 2월 이 전 시장의 정책간담회에는 소속 의원 52명이 참석했었다. 불과 한 달도 안 되어 이 전 시장측 행사 참석 의원 수가 10명이나 늘어난 것이다. 대부분 중립이었거나 ‘친박’으로 분류되던 의원들이다.


박 전 대표측, 이 전 시장측 물량 공세 의심


 
박 전 대표측은 이 전 시장의 세몰이가 그의 막강한 재력과 관계가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중앙당 경선준비위가 이 전 시장이 선호하는 ‘7월 경선-20만명 선거인단’을 중앙당에 건의한 배경에도 이 전 시장의 입김이 작용했다고 믿고 있다. 박 전 대표가 “한나라당이 구태로 돌아가는 것을 좌시하지 않겠다”라고 쐐기를 박은 것은 이 전 시장측의 물량 공세에 대한 견제이자 경고이다.
현재로서는 세몰이 경쟁에서 일단 이 전 시장이 박 전 대표에게 판정승을 거두고 있다. 이 전 시장의 40%대 지지율이 유지되는 한, 그리고 박 전 대표를 더블스코어로 리드하는 한 이같은 쏠림 현상은 계속될 것이다. 외양으로 보면 1992년 김영삼 민자당 대표가 허주(김윤환)를 앞세워 질풍과 같이 밀어붙였던 모습과 흡사하다. 소속 의원의 약 80%를 줄 세운 YS는 결국 대권 장악에 성공했다. 그리고는 총선 공천에서 내부의 적군들을 무자비하게 잘라냈다. 이 전 시장의 출정식에서 그런 YS가 이 전 시장과 나란히 걸어들어간 광경은 묘한 연상을 일으킨다.
대세론이 꼭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다. 이회창 전 총재는 2002년 대선 때 한나라당 소속 의원 거의 전원을 줄 세우는 데 성공했다. 노무현 후보에게 실망한 민주당 탈당파들까지 그의 수하로 몰려들었다. 당시 탈당파들이 이인제 의원을 ‘자민련’으로 교통 정리하는 촌극까지 벌여야 했을 정도이다. 그러나 오히려 ‘대세론’을 역겨워하는 국민 감정만 자극한 꼴이 되었다. 견제 심리 발동으로 이 전 총재는 낙선하고 말았다.
이 전 시장측은 “세 과시를 위해 인원을 동원해 유력한 차기 대선 주자가 혼탁한 선거를 부추긴다”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실제로 출판기념회에는 똑같은 회사의 버스 유리창에 ‘영등포구’ ‘구로구’ ‘금천구’ ‘양천구’ ‘관악구’ 같은 명칭이 적혀 있었다.
손학규 전 지사는 “소속 의원뿐만 아니라 지방의회, 자치단체장에게까지 줄 세우기 압력이 가해지고 있다”라며 두 사람을 싸잡아 공격하고 나섰다. “줄 세우기, 세몰이, 패거리 정치와 같은 구태 정치로는 결코 대선에서 이길 수 없다”라는 주장이다. 손 전 지사가 만약 경선을 거부하고 탈당 카드를 꺼내든다면 그 명분은 이명박-박근혜의 ‘줄 세우기’가 될 것이다. 줄 세우기의 명암은 이만큼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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