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조'가 부시 애 먹이네
  • 로스앤젤레스 진창욱 편집위원 ()
  • 승인 2007.03.26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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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살레스 법무장관 '코드인사'로 곤욕...공화당 의원들까지 '경질' 압박

 
'곤조 Gonzo’가 애칭인 알베르토 곤살레스 미국 법무장관이 미국판 코드 인사로 불리는 연방검사 집단 해임을 강행하면서 여소야대 의회로부터 집중 공격을 받고 있다. 그 파장이 백악관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언론들은 이를 ‘곤조게이트’로 부르기 시작했다. 이라크 전쟁 수행이 최대 현안인 부시 대통령으로서는 민주당의 지지가 절실한 판인데, 입장이 난처해졌다. 부시는 지난해 11월 중간선거에서 패배해 의회 주도권을 민주당에 넘겨주게 되자, 선거 직후에 럼스펠드 국방장관을 경질했다. 민주당의 주공격 대상이었던 럼스펠드를 끌어내린 것은 민주당에 대한 부시의 첫 선물이었다.
이번 민주당의 두 번째 먹잇감 요구로 부시의 입장은 럼스펠드 경질 때보다 더 어렵게 되었다. 상·하원의 공화당 소속 의원들마저‘곤조 공격’에 나섰기 때문이다. 곤살레스 장관 경질을 요구한 상원의원 13명 가운데 3명이 공화당 소속 의원들이다. 하원에서도 공화당 소속 의원 1명이 민주당에 가세하고 있다. 공화당 소속 상원의원 가운데 민주당에 직접 가세하지는 않았지만, 곤살레스에게 비판적인 입장을 보이는 의원도 7명에 이른다.
상·하원 공화당 의원 4명의 반란은 주로 내년 총선에서 민주당에 자리를 빼앗길 위험이 있는 현직 의원들로 자기 선거구에서 공화당의 이미지 하락 여부에 민감한 의원들이다.
곤살레스에 대한 이번 민주당의 공격은 럼스펠드 때보다 더 거셀 것으로 보인다. 곤살레스의 코드 인사는 공화당에 불리한 수사를 하는 연방검사가 대상이라는 점에서 정치색이 짙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민주당이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사안이다.
이 코드 인사에 앞서 곤살레스 장관의 전 비서실장 카일 샘슨이 백악관 비서실장 칼 로브, 이미 퇴직한 백악관 보좌관 해리엇 마이어스 등과 상의한 것이 밝혀지면서 연방검사 인사에 백악관이 개입한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상원은 최근 곤살레스 장관에 대한 청문회를 연 데 이어 샘슨과 마이어스를 청문회에 소환하기로 했고, 백악관 비서실장까지 부를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민주당의 정치적 계산과는 달리, 언론들은 8명 연방검사들의 해임 사유가 모두 ‘직무 수행 능력 미달’이라는 데 주목하고 있다. 이들 중 6명은 지금까지 법무부 내에서 유능한 검사들로 알려져 있고, 일부는 표창까지 받은 적이 있다. 해임 검사들도 정치적 이유로 해임되었다는 것은 참을 수 있으나, 무능하다는 낙인에 대해서는 참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미시건 주의 마거릿 치아라 연방검사는 해임 통고를 받자 맥널티 부장관에게 편지를 보내 “내가 해임되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라고 따졌다. 직무 수행 능력 미달이라는 대답이 돌아오자 치아라 검사는 “그런 잘못된 이유는 철회하는 것이 서로에게 유익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들은 연방검사 직이 대통령의 정치적 임명직이기 때문에 임명권자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할 수는 없지만, 무능이라는 불명예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견해이다. 곤살레스가 코드 인사를 하면서 퇴출 대상자에게 불명예를 안긴 것이 악수가 셈이다.
이번에 해임된 검사 가운데 특히 관심을 끄는 인물은 캘리포니아 주의 캐럴 람, 뉴멕시코 주의 데이비드 이글레시아스, 애리조나 주의 폴 찰턴, 아칸소 주의 버드 커민스이다.
캐럴 람 검사는 예일 대학과 스탠퍼드 대학에서 법률을 전공하고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연방검사에 임명되었으며, 능력을 인정받아 1994년 법무부 표창까지 받았던 여성 검사다. 람 검사는 지난해 초 뇌물 수수 및 탈세 혐의로 구속되어 8년형을 살고 있는 공화당 소속 전 하원의원과 연계된 군납업자와 전 CIA 고위 간부에 대한 수색영장 신청을 하면서 미운털이 박혔다. 람 검사는 수사 개시 직후 해임 대상에 올랐다. 이글레시아스 검사는 공화당 소속의 한 상원의원이 법무장관에게 불만을 표시한 이후 경질 대상에 올랐다. 폴 찰턴은 애리조나의 공화당 소속 하원의원에 대한 선거법 위반 수사를 시작했다가 표적이 되었다. 아칸소 주의 커민스 검사는 공화당 간부를 수사하다가 바로 해임 대상이 되었다.


 
부시에 대한 과잉 충성도 도마에 올라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주지사를 지낸 아칸소 주에서 공화당에 불리한 수사를 하는 검사가 건재할 경우 내년도 총선에서 공화당이 불리해질지 모른다는 우려가 작용했다는 것이다.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이 내년 전당대회에서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될 경우에 대비한 것이다. 커민스의 후임에는 칼 로브 백악관 비서실장의 전 보좌관이었던 티모시 그리핀이 임명되었다. 그리핀 임명은 곤살레스식 코드 인사의 대표적 사례로 지적되고 있다.
곤살레스가 이번 위기를 쉽게 넘길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는 코드 인사뿐만 아니라 법무장관이 되기 전부터 얻은 악명 때문이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사설을 통해 곤살레스가 백악관 보좌관 시절 부시의 테러와의 전쟁과 관련해 부시에 대한 충성만을 과시했다고 지적하고, 법무장관은 대통령만이 아니라 헌법에도 충성하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곤살레스는 법무장관 취임 이후 알 카에다와 탈레반 포로들에 대한 미군의 고문 행위와 관련해 제네바협정 제3항을 적용하는 것은 무리라고 강조하면서, 관타나모 기지에서의 포로 고문을 옹호했다. 그는 제네바협정 제3항은 시대착오적이라고까지 말했다.
법무장관 취임 후 민간인에 대한 도청 사건이 불거지고 조사 대상에 자신의 이름이 오르자 직권으로 법무부 내 직무감사팀의 수사를 종결시킴으로써 의회와 언론으로부터 불신을 받기 시작했다.
곤살레스는 미국 내 히스패닉계로서는 정부 최고위 직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할아버지가 불법 체류자인 가정에서 태어나 텍사스 휴스턴에서 자란 그는 명문 라이스 대학을 거쳐 하버드 법대를 졸업한 후, 변호사가 되었다. 텍사스에서 활동하던 시절 실력을 인정받아 아버지 부시 대통령 재임 시절 백악관에서 보좌관을 지냈다. 현 부시 대통령과의 친분은 텍사스 주지사 때 시작되어 주 법무장관과 주 대법원 판사 등 요직을 거쳤다. 그는 최근까지 연방 대법원 판사의 결원이 생길 때마다 차기 대법원 판사 후보로 거론되곤 했다. 곤살레스의 이같은 출세는 부시에 대한 충성심과 부시의 절대적 신임 덕분이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주 초 사면초가가 된 곤살레스를 백악관으로 따로 불러 지지를 재확인하는 등 경질설을 일축하는 제스처를 보였다. 그러나 워싱턴의 정치 상황으로 보아 부시의 이같은 곤살레스 지지는 오래 가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이 일반적이다. 그의 과잉 충성이 오히려 부시를 어려운 처지로 몰아가고 있고, 또 스스로 부시의 신임을 잃는 위기를 자초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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