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이 ‘한 방’에 날아갈까
  • 김 행 편집위원 ()
  • 승인 2007.04.03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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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측, ‘검증의 칼’ 또 빼들어…‘4월 대혈투’에서 큰 승부 날 듯
 
우연일까? 최근 이명박 전 서울시장을 둘러싼 갖가지 의혹이 집중 제기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표측이 후보 검증의 칼을 다시 들고 나오면서부터다. 박 전 대표측은 고공 비행을 하고 있는 이 전 시장의 지지율은 후보 검증 ‘한 방’이면 끝난다고 믿고 있다. “한 방에 날아갈 후보가 어떻게 본선에 출마할 수 있느냐”라는 것이다. 이 전 시장측은 일단 “네거티브는 안 된다”라고 방어하고 있다. 후보 검증은 중앙당에 맡기겠다는 것이다.
이 전 시장측의 여유와 박 전 대표측의 초조는 지지율에서 기인한다. 박 전 대표가 정책·공약도 내놓고 지방도 부지런히 누비지만 지지율에 의미 있는 변화가 일어나지 않고 있다. 20%대에서 꼼짝하지 않는다. 이 전 시장에게 지지율 1위 자리를 내준 지 반년이 흘렀다. 따라서 박 전 대표측이 기댈 것은 검증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검증 과정을 통해 이 전 시장의 지지율이 떨어지면 결국 낙마할 것이라는 기대가 그 동력이다. 병역·재산·사생활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치명적인 약점이 드러나면 다른 의혹 모두 사실로 받아들여져 걷잡을 수 없는 추락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예측이 따른다. 그래서 나온 것이 “이명박은 한 방이면 날아가는 후보”라는 구호다.
박 전 대표측 한선교 대변인은 “검증 ‘한 방’에 날아갈 후보라면 누구든 대통령 후보 자격이 없다. 이 전 시장은 무엇이 두려우냐”라고 공격했다. 마치 이 전 시장이 ‘한 방’이면 날아가 버릴 후보라는 식의 공격이다. 흥미로운 점은 ‘한 방’이 애초 통합신당 추진 모임의 이강래 의원이 한 발언이라는 사실이다. 범여권의 한나라당 흔들기가 ‘이이제이’식으로 한나라당 내에서 위력을 발휘하는 기묘한 상황이다.
‘한 방’ 논란에 이 전 시장측 정두언 의원은 ‘뭐라고? 한 방이면 날아간다고?’라는 보도 자료를 통해 박 전 대표측의 검증 주장을 비난했다. 골육상쟁이라는 비난이다. “한나라당에 김대업이 있다”라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검증은 언론과 당원, 국민이 하는 것이고 경선 과정 자체가 검증이다”라며 발언 수위를 분명하게 지킨다. 확전을 바라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명박측이 ‘검증’에 질색하는 까닭
그러면 이 전 시장측은 왜 검증의 ‘ㄱ’자만 나와도 질색하는 것일까? 우선 이 전 시장은 뭔가 복잡할 것 같다는 인상을 준다. 막연하나마 사생활과 재산, 병역 등에 구린 것이 있을 것 같은 빌미를 주는 측면이 있다. 최근의 예를 들자면 전당대회 규모의 출판기념회다. 한나라당 소속 의원 62명을 불러 모으고 수만 명의 당원 등을 전국에서 동원해 기세를 올린 것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당장 선관위가 사전 선거운동과 불법 사례 조사에 들어갔고, 마침내 한나라당 대전 동구 당원협의회가 주도해 상경한 버스에서 금품이 뿌려졌다는 녹취록이 열린우리당과 선관위에 입수되기에 이르렀다. 조사 결과를 지켜보아야겠지만 다른 후보들이 선거운동을 온라인으로 급속히 이동하는 것과 달리 김영삼 전 대통령까지 불러들인 전형적인 아날로그식 집회가 결국 제 발등을 찍지 않았느냐는 개탄이 흘러나온다. 그것도 이 전 시장 캠프에서다.
최근 이 전 시장의 출생과 병역 면제 의혹을 제기한 지만원씨는 이 전 시장측으로부터 고소당하자, 이 전 시장을 무고죄로 맞고소했다. 이 전 시장의 출생과 병역 문제가 수면 위로 다시 떠오른 것이다. 지씨가 의혹을 제기한 근거는 이 전 시장의 자서전 <신화는 없다>이다. 이 전 시장은 ‘아버지 이충우는 1935년(29세) 총각으로 일본 오사카로 건너가 목축 일을 했고, 돈을 저축해 고향으로 나와 반야월 채씨와 결혼했고, 결혼 후 일본으로 다시 건너가 6남매를 일본에서 낳았고, 광복 후인 1945년 11월에 돌아와 막내를 한국에서 낳았다’라고 회고록에 기술했다. 그러나 이 전 시장의 형 이상득 의원은 1935년생이다. 그러나 가족사는 공개적으로 입에 올리기 쉽지 않다.
오히려 이 전 시장의 병역 면제에 관한 끊임없는 의혹이 더 골치 아프다. 자서전은 이 전 시장이 1961년에 갑종 판정을 받았고, 1963년 선거운동을 통해 학생회장이 되었으며, 1964년 학생운동을 하다 도피 생활을 했다고 적고 있다. 그리고 현대에 들어가 ‘1965년 여름, 강릉 경포대에서 정주영 회장과 28명의 신입사원들이 밤새워 술을 마셨는데 모두 쓰러졌고 이명박만 마지막으로 남아 술의 장사가 됐다. 그 후 신화적 능력을 발휘해 입사 만 10년 만인 1975년 나이 35세에 현대건설 사장이 됐다’라고 기술했다. 그런데 이 전 시장의 병역 면제는 1963년과 1965년 봄, 병역 관계 신체검사에서 기관지확장증의 최고 위험 수위라는 판정과, ‘악성 축농증’ 판정, ‘폐결핵’ 판정에 따른 것이다. 건강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도피 생활, 술의 장사, 국제 무대에서 보인 왕성한 활동들은 설명이 잘 안 되는 부분이다.
이 밖에도 박 전 대표측이 과녁으로 삼는 의혹은 많다. 이 전 시장의 여성 관계와 관련한 증인을 확보했다는 루머도 나돈다. 이 전 시장의 국회의원 시절 그의 한 측근이었던 사람이 박 전 대표측에 제보했다는 설이다. 이런 이 전 시장에 대해 범여권이 가만 있을 리 없다. 열린우리당 윤원호 의원이 최근 미국을 다녀와 “미국 전역 교포신문에서 이명박 후보와 관련된 ‘에리카 김’ 이야기가 신문마다 다 나왔다”라고 불을 지폈다. 에리카 김은 이 전 시장과 서울에서 사업을 같이하다 공금을 갖고 미국으로 달아난 김 아무개씨와 남매다.
박근혜, 4·25 재보선에 승부수 던져
화불단행(禍不單行)이라 했던가? 대선 후보 경선 룰 논란에서도 이 전 시장측은 판정패로 가고 있다. 일반 국민 지지율에서 앞서는 이 전 시장이 당 대의원에서 앞서는 박 전 대표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여론조사 반영률을 높이는 것이다. 그런데 당내 무계파 의원들의 ‘중심 모임’이 박 전 대표측 손을 들어주었다. 바른 말 잘하는 홍준표 의원도 박 전 대표의 주장에 동의했다. 이 전 시장으로서는 다 된 밥에 모래가 뿌려지는 느낌을 가졌을지 모른다.
박 전 대표는 최근 캐치프레이즈를 ‘남성에서 여성으로’로 바꾸었다. 경선 과정에서는 ‘여성이 여성을 찍어야 한다’는 점도 강조할 계획이다. 한편으로는 ‘깨끗한 경선을 사수하라’는 지침도 나왔다. 이 전 시장을 겨냥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박 전 대표에게는 4·25 재보선이 기회다. 국민중심당 심대평씨가 출마한 대전 보선에서 ‘미다스의 손’임을 입증하겠다고 나섰다.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가 빠진 후 이명박-박근혜 전쟁은 더욱 격렬해지고 있다. 상대가 죽지 않으면 내가 죽는 한판 승부다. ‘4월의 대혈투’가 ‘한나라당 위기설’의 진앙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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