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의 천국' 미국에서는...
  • 로스앤젤레스·진창욱 편집위원 ()
  • 승인 2007.04.09 10:0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휠체어 등 무료 제공, 교통비 무료...자원봉사 통한 도움도 '특급'

로스앤젤레스 윌셔 가에 있는 남캘리포니아 주(이하 남가주) 한인장애인협회 사무실에서 신효철씨(53)를 만났다. 협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중증 장애인이다. 그는 만나자마자 대뜸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말을 던졌다. “한국에 계신 장애인 여러분, 미국으로 오십시오. 어떻게든 미국으로 오세요. 미국은 장애인들이 장애를 잊고 살 수 있는 나라입니다.” 그의 이 뜬금없는 말은 자신의 25년에 걸친 장애인 삶과 요즘의 일상 생활에 관한 얘기로 이어지면서 전혀 생뚱맞지 않게 들리기 시작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미국은 장애인 천국이다.
신씨는 23살 때 이민해 1978년부터 3년간 미 육군에서 복무했다. 제대 후 통역 일을 하던 중 음주 운전자가 몰던 차에 치여 두 다리를 잃고 두 손을 쓸 수 없는 장애인이 되었다. 갓 결혼한 아내는 첫돌도 채 안 된 아들을 두고 떠났다. 그는 살림이 어렵기는 했지만 삶을 포기할 이유는 없었다고 말했다. 장애를 잊고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신씨는 목이 마르면 전동 휠체어에 장치된 파이프로 물을 마신다. 외부와 전화 통화를 하고 싶으면 책상 앞에 설치된 장애인용 막대기를 입에 물고 다이얼을 눌러 전화를 건다. 이 막대기는 용도가 다양하다.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쓸 때도 사용할 수 있다. 모두 정부가 무상으로 준 것이다.
미국 정부가 무상 제공하는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신씨는 매달 8백 달러의 생활비를 정부로부터 보조받는다. 장애인 생계비 보조(SSI) 계획에 따른 것이다. 필요한 약은 신청만 하면 집으로 배달된다. 병원은 언제든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집에는 각종 가전제품이 설치되어 있다. 손발 사용이 불가능한 그는 최신 전자 홈 네트워크를 통해 실내 조명, 냉장고, 에어컨, 히터 등을 마음대로 켜고 끌 수 있다. 이 모든 조작은 센서가 부착된 패널에 입김을 쏘이는 것으로 가능하다. 자동차도 무료로 개조해 휠체어를 탄 채 오르고 내릴 수 있다. 미 육군에서는 휠체어 운반 승강기를 무료로 설치해주었다. “다쳤을 때가 제대 후였지만 예비역 대우를 그런 식으로 해주었다.” 장애를 잊고 살 수 있도록 해준 미국 정부의 배려는 생활 주변 편의 제공에 국한되지 않는다고 그는 말했다.
사고 후 의식을 되찾으면서 눈앞이 캄캄했던 것은 아내가 두고 간 젖먹이 아들의 양육 문제였다. 신씨는 미국 정부의 양육비 지원 덕으로 위탁 양육을 통해 아들을 키웠다. 아들은 현재 24살의 늠름한 청년으로 성장했다. 미국 정부는 중증 장애인에게 간병인 지원까지 한다.
캘리포니아 주는 한 달에 2백83시간의 간병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비용은 주정부가 부담한다. 한 달에 4백80시간의 간병인 지원을 하는 주도 많다.
신씨는 지난 1995년 남가주 한인장애인협회를 창설했다. 한인 장애인들의 권익 찾기를 돕는 일을 하기 위해서다. 미국 내 기업이나 단체를 방문할 경우, 그곳에서 왕복 교통편을 제공한다. 미국 법에는 이런 지원 제도가 마련되어 있다. 또 여객기나 기차 여행시 장애인 본인은 물론이고 간병인에게도 무료 혜택이 주어진다. 미국은 장애인을 위한 사회 기본 시설과 장치도 잘되어 있다. 대중교통 시스템은 물론 도로나 공공 건물 또는 다수의 사람들이 이용하는 업소에는 모두 장애인 출입을 위한 시설을 설치하도록 법으로 의무화되어 있다.

 

미국, 40년 전만 해도 장애인 문제 ‘후진국’


신씨는 그러나 법만이 장애인을 돕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미국 자원봉사자들의 장애인 돕기는 자신의 체험으로 보아 세계 최고라는 것이다. 미국 사회와 미국인들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과 자세는 ‘도우며 함께 사는 사람’이다. 장애인이 불편하지 않도록 돕고 먼저 양보하고 같이 사는 것이 생활화되어 있다. 부자들도 장애인에 대한 이해심은 남다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가 출연한 자선 재단이 세계 최대 규모인 것이나,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워런 버핏이 자신의 재산 대부분을 빌 게이츠 재단에 기부하는 것은 미국인들이 장애인과 더불어 산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은 40년 전만 해도 오늘날과 같은 찬사를 받지는 못했다. 당시 올로프 팔메 스웨덴 총리는 1970년 미국을 방문해 스탠퍼드 대학에서 강연을 하면서 이렇게 꼬집었다. “미국에는 보통 사람과 장애를 가진 사람 두 종류의 인종이 살고 있다.” 스웨덴이 이미 장애인과 함께 사는 사회를 구축하고 있던 당시 미국은 장애인 문제에서는 아직도 후진국에 속했다는 의미다. 미국의 장애인 권리 운동은 1960년대 미국 흑인 민권 운동의 결과인 존슨 대통령의 민권법안(1966년) 서명과 여권 운동에서 시동이 걸리고 팔메 총리가 쓴소리를 던진 직후인 1970년대에 활발해졌다. 이후 캘리포니아 주의 독립 생활 운동과 1973년 재활법, 1977년 미국 장애시민연맹 결성으로 이어졌다.

 

장애인을 위한 법적 뒷받침이 본격화된 것은 1990년 아버지 부시 대통령의 장애인보호법(ADA) 제정이었다. 이 법은 미국 장애인에 대한 차별 금지법이다. 이 법을 어기는 개인·단체·기업은 매우 강력한 제재의 대상이 된다. ADA는 또 미국 고용기회균등법(EEOC)의 적용 범위를 확대해 장애인들의 취업 기회 확대에 직접적으로 기여하고 있다. 미국 기업에서는 취업 장애인을 쉽게 볼 수 있다. 장애인들이 좋아하는 미국 50대 기업이나 고용주 50인은 일반 정상인들이 선호하는 기업이나 회사 또는 고용주 이름과 순위에서 거의 일치한다. 이들 기업이 장애인에게 취업 문호를 크게 열어놓고 있다는 이야기다. 현 부시 대통령도 취임하자마자 ‘신자유 계획’에 서명했다. 신자유 계획은 장애인들에 대한 교육 및 고용 기회 확대를 통해 ‘함께 사는 사회’ 구축을 지향하고 있다. 장애 어린이의 교육 지원을 위한 법도 구체화되었다. ‘장애아교육지원법’(1990년)은 학교 교육에 커다란 변혁을 가져왔다.
이처럼 법적·제도적 바탕이 견고한데도 미국에서는 2004년 한 해 동안 장애인차별금지법 위반 관련 고발 사건이 1만5천 건에 달했다. 아직도 미국 사회에서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적지 않다는 의미이다. 이 숫자는 동시에 불이익을 받은 장애인들이 법적 구제를 통한 자기 보호 태세를 갖추어가고 있음을 뜻하기도 한다. 미국의 장애인은 5천4백만 명(인구의 18%)으로 추산된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