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찻길 옆 오막살이' 돈벼락 떨어졌다
  • 노진섭 (자유 기고가) ()
  • 승인 2007.04.09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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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재개발 바람 타고 용산 등 철로변 부동산값 급등

 
기찻길 옆♪ 오막살이♬ 아기 아기♪ 잘도 잔다♬.’ 우리나라 사람이면 누구나 흥얼거릴 줄 아는 이 동요 속의 오막살이들이 돈벼락을 맞고 있다.
1970년대만 하더라도 기찻길 옆 풍경은 판잣집이나 천막촌으로 상징될 만큼 하류층 서민들의 주거 지역이었다. 지방에서 상경한 가난한 사람들이 산등성이에 무허가 판잣집을 짓는가 하면 한편으로는 하루 종일 열차 바퀴 덜컹거리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 철길 주변에 모여들었다. 하루에도 수십 차례씩 오가는 기차 소리는 잠을 설치게 하기가 일쑤였다.
“기찻길 옆에는 꼬마들이 된통 많았다. 입심 건 동네 청년들은 새벽 기차의 화통소리에 선잠 깬 어른들이 괜히 이부자락 펄럭여가며 애새끼만 퍼질러 놨다고 했다…. 나는 잊을 수가 없었다. 나는 완행열차와 화물열차를 훨씬 좋아했다.”(김홍신 소설 <인간시장>)
이처럼 낙후된 지역의 대명사처럼 인식되었던 곳이 바로 기찻길 옆이었다. 수시로 지나가는 기차의 소음과 진동, 먼지 등으로 인해 주거 지역으로는 낙제점을 받았기 때문이다. 도심을 관통하는 기찻길은 지역 발전에 걸림돌로 여겨져 아예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지금도 도심지 안의 철길 주변 곳곳에서 수십년 전의 풍경을 쉽게 볼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게다가 강남의 개발 바람에 밀려 강북 지역은 그동안 찬밥 신세나 다름 없었다.
그런 기찻길 옆 동네들이 이제는 돈벼락을 맞고 있어 사정이 1백80° 달라졌다. “기찻길 옆 오막살이라고요? 무슨 말씀을…. 요새는 기찻길 옆 로또예요. 로또!” 서울 도심 기찻길 옆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고 있는 한 주민은 이렇게 말했다. 잇따른 부동산 규제 조처로 인해 서울 강남 등 주요 부동산 시장이 주춤하고 있는 가운데서도 서울 강북의 기찻길 옆 땅값은 천정부지로 뛰고 있다. 취재 중에 만난 부동산 중개인들은 한결같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값이 계속 오르고 있다는 표현이었다.
실제로 서울 삼각지의 철로변에는 2000년대 초만 해도 평당 3백만원이던 땅값이 3천만원대로 10배 이상 뛴 곳도 있다. 이쯤 되면 ‘기찻길 옆 오막살이’가 아니라 ‘기찻길 옆 대박살이’라는 말도 어색하지 않게 된 것이다.
특히 행정구역상 서울시 안에 들어 있는 경부선과 경의선 30km 구간의 기찻길 옆이 알토란 같은 주거·상업 지역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기찻길 옆이라도 생각만큼 소음이 심하지 않다는 것이 주민들의 말이다. 과거와 달리 기찻길 주변에 방음·방진 시설이 잘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서울 이촌동에 사는 한 주민은 “기찻길이 시끄럽다는 말은 옛말이다. 자동차 소음이 쉴 새 없이 들리는 올림픽대로나 강변북로에 있는 아파트에 비하면 기찻길 옆은 오히려 조용한 편이다”라고 말했다.
아예 기찻길을 지하에 건설하고 그 위에 공원 등 녹지 공간을 마련하는 계획도 나오고 있다. 없던 녹지 공간이 생겨나 전보다 좋은 조망권을 확보하게 되면서 주변 부동산 가격이 들썩일 수밖에 없다. 
요즘 인기 절정이라는 초대형 고급 주상복합 건물들도 이미 기찻길 옆에 여러 군데 들어섰다. 이들의 분양가·거래가가 화제가 되면서 인근 부동산 가격도 덩달아 뛰는 현상이 도미노처럼 나타나고 있다. 입주가 시작된 후에는 주민 수가 늘어나면서 신흥 상권도 형성되고 있다.
서울 삼각지 용산구청 방향 고가차도 일대는 요즘 철거·신축공사가 한창이다. 철로변에는 한눈에 봐도 수십년의 세월을 족히 견뎠을 만한 허름한 주택들이 반쯤 헐려 있었다. 이 자리에는 금호리첸시아 등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유명 브랜드의 고층 주상복합 건물들이 들어서기 위해 철거와 건설공사가 진행 중이다.

 

“2월 지가 상승률 0.77%로 전국 최고”


이 일대는 서울역에서 용산역으로 이어지는 경부선 철로를 사이에 두고 있는 대표적인 기찻길 옆 주택가이지만 최근에는 30~40층짜리 고층 주상복합 건물들이 우후죽순으로 올라가고 있다. 기찻길을 사이에 둔 문배동과 한강로1가에는 GS자이 아파트와 GEO베르크, 아크로타워, 나인파크, 이안 등 고층 주상복합 건물이 이미 들어섰거나 올 상반기 중 입주를 앞두고 있다. 이 철길 100m 안에 들어설 건축물의 세대 수는 어림잡아도 수천 세대가 넘는다.
GS자이의 경우 평당 가격은 약 3천만~4천만원선. 2~3년 만에 분양가 대비 2배 이상 뛰었다고 한다. 47평형짜리 아파트를 18억원에 내놓은 곳도 있다. 인근 중개업소에서는 가격 상승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한 부동산 중개인은 “용산역 주변 철도정비창 부지에 6백20m 높이의 1백50층짜리 초고층 빌딩이 들어설 경우 이 일대 부동산 가격이 뛸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바로 옆 신계동 등 주변 주택가도 덩달아 들썩이고 있다.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빌라를 찾는 수요가 몰리기 때문이다. 더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에 매물도 뜸하다고 한다.
철도공사에 따르면 삼각지 근처 경부선 기찻길에는 하루 3백30여 차례나 기차가 지나다닌다. 나란히 달리는 경부2선과 경부3선까지 합하면 하루에 1천 차례가 넘는다. 너무 빈번한 기차 통행 때문에 건널목 대신 고가차도와 육교가 설치되었을 정도이다.
소음과 매연, 진동 때문에 예전 같으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이 지역 부동산 가격이 오르는 이유는 미래 청사진이 밝기 때문이다.
주변에 있는 주한 미8군 부지에 민족공원이 들어선다. 용산가족공원과 국립중앙박물관에 이어 2045년까지 80만 평에 이르는 민족공원이 들어서면 조망이 좋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한남동 일대 고급 주거 단지와 연계한 시너지 효과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에 이 지역에서는 ‘부동산 시장 약세’라는 소리가 어울리지 않는다. 한 공인 중개인은 “올 2월에만 이 지역 땅값이 평균 0.77% 상승해 전국 최고의 상승률을 기록했다”라고 말했다.
또 2001년 용산 지구단위계획이 발표된 이후 이 지역은 용산 국제업무단지의 배후 타운으로 인식되면서 집값이 고공비행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4월1일, 서울에서 한강 조망이 좋기로 소문난 아파트 중 하나인 서부이촌동 중산시민아파트. 지은 지 30년이 넘어 가장 낙후된 아파트로 꼽힌다. 낡은 계단을 올라가니 낮 시간인데도 어두운 복도가 스산하게 느껴진다. 외관을 보면 현대식 아파트라고 하기 어려울 만큼 남루해 보인다.


‘1백50층’ 건축 계획 발표 뒤 1억원 뛰어


그러나 이 아파트 14평형은 5억5천만원을 주어도 구하기 힘들다. 최근 용산 철도정비창 부지에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고층 건물이 들어설 것이 가시화되면서 그나마 매물이 뚝 끊어졌다. 10년이 넘은 인근 아파트 27평형은 6억원을 주어도 살 수 없다고 한다. 
이 지역 부동산 중개인은 “국제업무단지 개발 계획이 나오자마자 5천만~1억원이 오른 곳도 있다. 더 오를 것이라는 기대 심리 때문에 매물을 내놓는 사람이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경부선 기찻길을 바로 옆에 끼고 있는 한 아파트. 지난해 10월 입주한 이 아파트의 경우 5개월 만에 분양가의 두 배가 넘는 매매가가 형성되었다. 한 주민은 “32평형 아파트에 입주할 때 분양가가 3억원 안팎이었는데 지금은 6억3천만원이 실거래가다”라고 말했다. 경부선 철로와 붙어 있어 소음이 심해 프리미엄이 높지 않을 것이라던 아파트였다. 땅값도 만만치 않다. 용산 철도정비창 인근의 땅값은 평당 1억원을 넘었고 서부이촌동 재개발지역도 5천만~8천만원을 호가한다.
이곳은 한강변이기 때문에 조망이 좋지만 개발은 더딘 지역이다. 남북으로 뻗은 한강대로를 경계로 나뉜 동부이촌동과 달리 이곳에는 하루 3백30번씩 기차가 다니는 경부선이 관통하고 있다. 또 용산 철도정비창이 인접해 하루 종일 기차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용산역 앞에 집창촌이 위치해 교육 환경도 좋지 않은 곳으로 인식되어왔다. 인근에 초등학교도 없고  노선 버스도 단 하나일 만큼 교통 사정도 좋지 않다. 공원 같은 휴식 시설과 편의 시설도 변변치 않다. 그러나 이 지역은 용산의 새로운 부촌으로 거듭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 지역 부동산 가격이 뛰는 이유는 단순히 국제업무단지 조성 때문만은 아니다. 서울시 도시계획에 따르면 기찻길 위로 녹지 공원이 조성된다. 기찻길은 사실상 지하로 숨어버리게 된다. 조망권을 확보한 채 편의 시설이 들어서면 기찻길 때문에 나뉘었던 서부이촌동이 하나로 된다.
용산역 앞의 집창촌은 철거되고 그 자리에 30층 이상의 업무용·주거용 건물이 들어선다. 집창촌의 평당 거래가는 이미 1억5천만원을 넘어섰다.


기찻길은 지하로, 지상엔 테마 공원


 
이미 기찻길이 없어지고 녹지가 조성된 곳도 있다. 서울 마포구는 지난해 약 1백년 동안 마포 지역을 관통한 용산선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2011년까지 테마 공원을 건립하기로 했다. 공덕동에서 가좌 구간까지 5.1km로 이어지는 너비 10~70m의 철길 터, 넓이로 따져 약 8만 평 부지에 5개의 테마 공원이 조성된다. 경의선과 인천국제공항선은 지하로 들어간다. 기존 용산선을 따라 평균 지하 10m 깊이로 경의선이, 그 아래 40m 깊이에 인천국제공항선이 건설된다. 테마 공원이 조성되면 조망이 좋아져 부동산 가격이 뛰기 마련이다.
공덕동 오거리 일대는 마치 신도시 개발 현장을 방불케 한다. 수십m 높이의 기중기가 육중한 강철 프레임을 옮기느라 분주하다. 65~1백3평의 고급 오피스텔인 롯데캐슬 프레지던트 건설 현장에는 이미 건물 두 동이 우뚝 솟았다. 대각선 쪽 도화1동 지역에는 고급 아파트 브라운스톤이 건설되고 있다. 용산선이 있던 자리는 지하로 20m 이상 파헤쳐 있다. 마포구의 ‘서울 그린 길’ 계획에 따라 건설 붐이 일기 시작한 것이다.
2005년 이 지역 아파트 분양가는 평당 2천만원을 넘지 않았다. 한 공인 중개인은 “공원 조성이 완료되면 분양가가 평당 3천만원까지 오를 것이라는 기대 심리 때문에 매물이 거의 없는 편이다”라고 말했다. 현재 아파트 42평형은 8억원대에 거래되고 있다. 
이 지역은 지하철과 도로 등 교통망이 좋고 한강이 가까워 부동산 가격이 높다. 앞으로 인천국제공항선과 테마 공원까지 생길 경우 부동산 가격은 더욱 뛸 것으로 보인다.
서울 중구 중림동과 순화동 경계에 있는 기찻길 건널목. 기차가 오고 있다는 요란한 신호음이 들리고 건널목 차단봉이 내려가자 지나던 자동차와 행인들이 멈춰 선다. 건널목 안전요원은 연방 호루라기를 불어대며 기차가 오고 있음을 주변에 알린다. 


30년 된 12평 아파트 값이 2억원


 
도심 한복판으로 나 있는 이 기찻길은 경의선으로, 하루에 2백88번이나 기차가 오간다. 서울역에서 도라산역까지 55.7km 중 10km 정도가 서울 도심을 관통한다. 이 기찻길과 나란히 하고 있는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서소문아파트는 기찻길 옆이라는 이유 때문에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부동산 매매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30년은 족히 넘은 이 아파트를 찾는 사람이 없었다. 예전에는 서울에서 몇 안 되는 아파트 중 하나로 인기를 모은 적도 있지만 세월과 함께 퇴물로 취급받았다. 기찻길을 끼고 있으니 더욱 인기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완전히 달라졌다. 이제는 사겠다는 사람은 있어도 팔겠다는 사람이 없다. 지난해 인근에 고층 주상복합 건물인 브라운스톤이 들어서면서 아파트값이 덩달아 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한 주민은 “워낙 낙후된 아파트이지만 1억원대이던 12평형이 2억원을 넘어섰다. 더 내려가지 않기만 바랐는데 오히려 올라가니 오래 살고 볼 일이다”라고 말했다.
이 지역 부동산 중개인은 “고급  주상복합 건물과 주변 아파트의 44평형이 7억원을 호가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이 지역은 서울에서 저평가된 곳이므로 향후 개발 가능성이 매우 높은 만큼 투자 가치가 높다”라고 강조했다.
이 지역은 주요 도심이고 교통은 좋지만 주거 공간이 부족했다. 역시 기찻길을 피하려는 인식 때문이었지만 최근 고급 주상복합 건물이 들어서면서 주변 부동산 시세가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주거와 업무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오피스텔 시세가 강세를 보이는 지역이라는 것이 한 공인 중개인의 말이다.
이제 기찻길 옆 오막살이는 옛말이다. 소음 등 기찻길 주변에 깔렸던 부정적 요소는 조망권 등 긍정적 요소에 비하면 주거 환경의 큰 변수가 아니라는 인식이 강해졌다. 기찻길은 지중화(地中化)되고 녹지 공간을 제공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면서 기찻길 옆에 새로운 부촌(富村) 바람이 불고 있다. 용산국제업무지구와 지구단위계획 등 정부의 도시개발계획도 순풍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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