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 '신바람' 농장 '찬바람'
  • 정우택 (자유 기고가) ()
  • 승인 2007.04.09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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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 대차대조표/차·섬유 '호기' 농산물 '위기'...쌀 개방 압력은 '잠재적 복병'

 
강한 자와 약한 자의 협상은 늘 강자의 승리로 끝난다. 하지만 이번 한·미 FTA 타결은 예외였다. 협상 시작 때는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 같았지만 결과는 돌멩이로 바위를 깨뜨린 싸움이었다.
  우리는 자동차와 섬유 분야, 개성공단 문제 등에서, 미국은 쇠고기와 농업 분야, 의약품과 서비스 분야 등에서 실리를 챙겼다. 협상 종료 시한을 몇 번씩 넘겨가며 협상을 벌인 것은 결과에 관계 없이 우리 협상단이 잘 싸운 것으로 평가된다.
정부가 가장 신경 썼던 쌀은 다행히 협상 대상에서 빠졌다. 하지만 미국에서 곧 새 협상을 요구할 것이 분명하다. 지금은 양국의 정치·경제적 이해가 부딪쳐 잠잠하지만 미국이 기어코 개방을 요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쌀이다. 쌀 시장을 지켰다고 하나 그 기간은 얼마 못 갈 것이다.
한·미 FTA 손익계산서는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다. 값싼 쇠고기가 들어오면 축산 농가는 ‘죽을 맛’이지만 쇠고기 값이 비싸 제대로 사먹지 못했던 소비자에게는 ‘좋은 일’이다. 특히 FTA 타결에 따른 손익을 금액으로 나타내는 것은 힘든 일이다.
이번 협상 결과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쌀 시장이다. 협상 전에는 가장 큰 걱정거리였으나 무슨 속셈인지 미국 쪽에서 의제에 넣지 않았다. 미국은 쌀을 뺀 다른 시장을 먼저 완전히 연 후에 쌀을 집중 공략할 것으로 보인다.
쌀이 협상에서 빠졌다고 좋아할 일이 아니다. 쌀 시장 개방 압력은 수년 내 쓰나미처럼 밀려들 것이 예견된다. 지금부터라도 쌀 시장 개방에 대한 대책을 치밀하게 세워야 한다. 한·미 FTA가 막을 내리려면 가장 중요한 쌀 시장 개방 문제가 매듭지어져야 한다.   
한국산 쌀은 80kg에 15만원 안팎인 데 비해 미국산은 3분의 1 수준이다. 미국 쌀이 들어오면 당연히 생산 농가가 큰 타격을 받는다. 값 차이가 너무 커 국산을 먹자고 애국심에 호소하기도 힘든 실정이다. 우리의 쌀 자급률은 고작 20% 정도이다.   
이번 협상에서 가장 큰 성과는 세계 자동차 시장의 문을 활짝 열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자동차 부문 협상은 독하게 달라붙어 미국이 한국산 자동차와 관련 부품에 대해 물리는 관세(2.5%)를 없애는 데 성공했다. 배기량 3천cc 미만은 즉시, 그 이상은 3년 안에 이를 없앤다. 이렇게 되면 2008년 한 해만 8억6천만 달러의 수출 증대가 기대된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대미 자동차 수출량은 약 70만 대. 87억5천만 달러어치로 전체 대미 수출액의 20%에 달한다. 반대로 미국은 5천여 대를 한국 시장에서 팔았다. 미국의 불만이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은 수입차에 붙는 자동차세(8%)를 없애고 자동차 보유세를 5단계에서 3단계로 줄였다. 또 2천cc 이상 승용차의 특소세 10%를 단계적으로 5%로 내린다. 미국의 불만을 해소해준 셈이다. 하지만 국내로 들어오는 미국 차 값이 5% 이상 낮아져 수요가 크게 늘어날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국가 신인도 오르고 외국인 투자 늘 듯


 
한국에 대한 외국인의 투자 기반을 마련한 것도 큰 성과다. 미국과 같은 입장에서 FTA를 타결함에 따라 국가 신인도가 오르고 외국인 투자액도 70%쯤 증가한다.
산업자원부와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등에 따르면 연간 외국인 직접 투자액이 30억 달러 이상 늘 것으로 전망되었다. 2006년 외국인의 한국 내 전체 투자액은 1백12억 달러, 미국은 17억 달러였다. 앞으로 10년간 우리가 미국에 수출하는 교역 품목의 90% 이상에서 관세가 단계적으로 철폐된다. 수출로 먹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우리로서는 아주 큰 성과라 할 수 있다.
양국 간 교역량 증가로 우리나라의 GDP(국내총생산액)가 2%(1백35억 달러) 정도 늘고 생산도 2%(27조원) 불어난다. 일자리 역시 10만 개쯤 생겨날 것으로 보인다. 관세 인하로 수입이 늘지만 상품 값이 하락해 소비자들의 후생은 더 좋아진다.
협상을 잘해서 얻은 것도 적지 않다. 평균 13%에 달하는 미국의 관세율이 5년 내에 없어지면 연간 대미 수출액이 2억~3억 달러 늘어난다. 1천4백93개 품목 중 69.1%인 1천31개가 5% 이상의 관세율을 적용받고 있다. 이중 5백64개 품목은 10% 이상의 무거운 관세를 내고 있다. 이에 따라 업계는 중국과의 가격 경쟁도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대미 섬유 수출액은 2001년 32억 달러에서 2005년에 23억 달러로 줄었으나 이번 타결을 계기로 다시 늘어날 전망이다.
금융 분야의 ‘안전판’ 마련도 큰 과실이다. 세이프가드(Safe Guard)를 도입키로 함에 따라 금융 시장에서 안전 장치가 마련되었다는 것이다. 세이프가드는 외환위기 등 긴급 상황이 생겼을 때 돈이 일시에 나라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는 제도로 1997년 외환위기를 경험한 우리에게 절실한 시스템이다.
우리는 경제 규모에 비해 외환 시장과 주식 시장 등 금융 시스템에 대한 외국 영향이 커 세이프가드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뉴욕 증시에서 주가가 떨어지면 국내 증시가 폭락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우리의 금융 기반이 약하다는 방증이다.
세이프가드를 둠으로써 긴급 상황 발생 때 돈이 빠져나가는 일은 막을 수 있게 되었다. 급박한 상황에서의 자금 유출이 국가 경제 파탄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주 잘된 것이라는 분석이다.
일부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개성공단 제품을 한국산으로 인정받게 된 점 역시 큰 성과이다.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경우 개성공단에서 생산된 제품을 한국산으로 인정할 수 있는 근거를 협정문에 넣은 것은 큰 소득이다. 개성공단 외에 다른 지역에서 생산한 제품도 한국산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이다.
개성공단에는 로만손시계 등 15개 업체가 들어가 있다. 그곳에서 생산된 제품을 한국산으로 인정하면 개성공단 제품의 대미 판매가 크게 늘고 다른 나라에 대한 수출도 활성화된다. 개성공단이 활기를 띠고 남북 경제 교류와 관계 개선에도 한몫 할 전망이다. 개성공단 문제는 남북한 관계 개선은 물론 앙숙 관계였던 북한과 미국의 관계 증진에도 도움이 될 것이 분명하다.
이 밖에 통신 분야에서 외국인 지분 한도를 49%로 묶어두기로 한 것도 성과다. 이것이 풀리면 국내 통신사업자에 대한 미국 통신사업자의 인수·합병(M&A) 등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40%의 관세가 적용되는 쇠고기에 대해서는 15년 내에 관세를 철폐하기로 해 우리로서는 일단 시간을 번 셈이다. 관세가 없어지거나 지금 수준에서 50%만 준다고 해도 쇠고기 2천4백억원어치, 돼지고기 1천5백억원어치의 생산이 줄어든다. 그만큼 축산 농가의 피해가 우려된다는 얘기다. 한우 값도 8.7% 떨어질 전망이다. 실례로 한우 등심 5백g의 소비자 값이 3만5천원인 데 비해 미국산은 8천5백원에 불과하다. 여기에 유통 마진을 더해도 호주산과 비슷한 1만5천원대에 팔려 파괴력은 엄청날 것이다.
쇠고기 검역 문제는 오는 5월 국제수역사무국(OIE)의 광우병 위험등급 판정이 나온 뒤 풀도록 했는데 이 또한 미국 요구가 관철된 것이다. OIE의 판정이 나와야 알겠지만 결과는 뻔하다. 그때부터 검역이 미국 입맛에 맞게 이루어질 것이고 그러면 수입이 늘 수밖에 없다.
농산물도 미국 요구대로 끌려갔다. 미국이 가장 재미를 본 분야다. 농업 피해액은 한 해 평균 2조원. 농산물의 경우 오렌지 50%, 사과 45% 등 무거운 관세가 부과되고 있다. 이번 합의로 사과·포도·감귤 피해가 예상된다. 사과 8백90억원어치, 포도 6백10억원어치, 감귤 5백50억원어치의 생산 감소가 불가피해진다.


반덤핑 문제 해소 안 돼 불씨 남겨


 
이렇게 보면 쌀을 제외한 쇠고기·돼지고기·오렌지·사과 등 농업 생산 감소액은 최소 1조원에서 많게는 2조3천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이는 축산 농가나 과수 농가에 큰 피해를 줄 것이다. 미국은 남아도는 농산물을 어떻게든 우리 시장에 팔려고 할 것이고, 국내 소비자들은 점차 미국산 농산물에 입맛을 붙여갈 것이다.
문화 산업의 타격도 불가피해졌다. 미국 요구가 먹혀든 까닭이다. 우선 저작권 보호 기간이 50년에서 70년으로 연장된다. 따라서 20년간 2천억원 이상이 해외로 빠져나가게 된다. 영화의 스크린쿼터는 현행 73일을 유지했지만 케이블 채널에 외국인의 간접 투자를 1백% 허용했다.
다국적 기업에 짓눌린 의약품도 우리가 잃은 분야다. 미국은 신약에 대한 특허 기간 연장, 약가 이의신청 기구 설치 등을 통해 얻은 것이 많다. 신약 특허 기간을 늘리면 한국의 피해 규모가 한 해 2조원에 달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신약은 주로 다국적 회사들이 개발해 판매하고 있는데 업계는 자칫 국내 기반이 무너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국내 업계의 경우 복제약 생산이 많아 피해가 더 크다. 의약품 협상은 미국의 거센 공세에 맞서 방어하는 수준에서 타결되었다. 
법률 시장은 미국이 의도한 대로 다 가져갔다. FTA 타결로 토종 로펌에 비상이 걸리게 되었다. 로펌 규모, 자금, 업무 경험 등이 미국보다 압도적으로 열세에 있어서다. 협정 발효 직후 1단계로 미국 로펌의 국내 사무소 개설이 허용되고 3단계인 5년 내 완전 개방된다. 독일의 경우 10대 로펌 중 8개가 합병되는 고통을 치렀다는 것을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미국의 대형 로펌은 2천~3천명의 변호사를 거느리고 있어 이들과 상대하기는 버거운 것이 사실이다. 
국산품의 미국 수출에 걸림돌이 되는 반덤핑 규제 완화(무역 구제)를 얻어내는 데도 실패했다. 국내 수출 업체들이 지난 25년간 미국의 반덤핑 관세 남발로 입은 피해는 3백73억 달러. 미국 수출액의 7%에 달하는 것으로 큰 문제다. 우리나라는 무역 구제를 큰 의제로 들고 나갔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불공정 무역 행위를 조사할 상시 채널로 무역구제위원회 설치를 합의하는 데 그쳤다.
의료 시장과 교육 시장 개방이 제외된 것은 너무도 아쉬운 일이다. 정부는 국민들이 의료 시장을 열어 더 좋은 서비스를 받고 싶어한다는 것, 교육 시장을 개방해 국내에서도 선진국 수준의 교육을 바라고 있다는 점을 알고는 있었지만 협상에서 다루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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