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의 불길 '활활' 타오르네
  • 서종수 (자유 기고가) ()
  • 승인 2007.04.09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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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국본' 중심으로 FTA 무효화 투쟁 가열...정부, 대대적 홍보전 '맞불'

 
한·미 FTA 협상이 우여곡절 끝에 극적으로 타결되었다. 하지만 이를 반대하는 진영이 강력히 반발해 발효 때까지 험로가 예상되고 있다. 한·미 FTA 협상 저지 범국민운동본부(범국본)를 중심으로 한 반대 세력은 국민들의 의사가 배제된 채 협상이 진행되었고, 협상 과정에서도 일방적 퍼주기로 일관했다며 정부를 성토하고 나섰다.
정부는 한·미 FTA 타결로 피해가 예상되는 농어민들에 대한 지원과 보상을 약속했지만 반대 세력은 협상 자체를 문제 삼으며 무효화 투쟁을 선언했다. 이들의 투쟁은 국회 비준 과정, 대선 일정 등과 맞물리면서 갈수록 격렬하게 펼쳐질 전망이다.
정치권에서도 찬·반 양론이 엇갈려 정국의 시계가 안개 속으로 빠졌다. 대선 주자들은 주자들대로 각자의 이해타산에 따라 복잡한 셈법에 몰두하고 있다. 한·미 FTA 협상이 천신만고 끝에 마무리되었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라 시작에 불과하다는 얘기가 그래서 나온다. 어쩌면 범국본의 조직적 저항, 정치 쟁점화 등은 협상보다 넘기 어려운 산일지도 모른다.
참여연대·환경운동연합·녹색연합·여성연합 등 주요 시민단체가 참여하는 범국본은 한·미 FTA가 타결된 지난 4월2일 기자회견을 통해 “국민의 여망을 모아 협정을 저지했어야 했는데 실패했다. 국회 비준을 반드시 막아내겠다”라고 다짐했다. 


“기본권·민주주의 지키려고 FTA 반대 투쟁”


참여연대는 “협상 내용이 공개되면 문제점을 분석해 국민에게 공개하고 비준 저지를 위해 대통령 탄핵 운동도 불사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등도 잇따라 성명을 내고 협상 무효를 선언했다. 인권단체연석회의 활동가 25명은 대정부 투쟁에 나섰다. 이들은 “노무현 정권이 집행해온 민주주의는 헌법상의 민주주의와는 전혀 다른 폭력일 뿐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민주주의의 보편적 가치에 입각해 정권 퇴진 외에는 방법이 없음을 선언한다”라고 했다.
지금까지는 상대적으로 느슨한 결합을 유지해온 노동자·학생·농민 등 범국본 산하 3백여 단체 역시 결속을 다지고 있다. 인권단체연석회의 쪽은 “촛불문화제 등 범국본 활동에 더 적극적으로 결합하겠다”라고 밝혔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은 ‘투자자-국가 소송제’ 등 협정 내용 일부가 헌법 가치에 어긋나는 부분이 있다고 보고 협상 과정과 내용에 대한 본격적인 정보 공개 요청을 통해 진상을 파악한 뒤 위헌 소송을 내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스크린쿼터 사수 영화인대책위원회는 협정에 반대하는 감독과 배우들이 나서서 국회 비준 반대 홍보대사로 활동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범국본 등이 정권 퇴진 투쟁이라는 극한의 투쟁 방침을 들고 나온 데는 협정 내용도 내용이지만 협상이 진행되어온 과정의 비민주성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단체 관계자들은 전했다. 정보 공개의 불투명성, 잇따른 범국본 집회 금지, 시위 참여자 형사 처벌 등 협상 과정에서 정부가 드러낸 태도가 민주주의 근본을 훼손했다는 문제 의식에 따른 것이라는 설명이다.
범국본 관계자는 “FTA 반대 투쟁은 단순히 경제적 관점의 싸움을 넘어서 국민의 기본권과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투쟁으로 접어들었다. 예상보다 많은 시민들이 촛불문화제에 참여했듯이 이 싸움은 확대되는 국면이라는 게 우리의 판단이다”라고 말했다.
‘원칙적 찬성’이라는 태도를 보여온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은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유기준 한나라당 대변인은 “국제화 시대 동반자로서 상호 협력하고 공존하기 위한 협상이 됐을 것으로 생각한다. 한나라당은 구체적인 협상 내용이 국익에 도움이 되는지, 피해 분야에 대한 대비책이 제대로 마련되었는지를 면밀히 검토하겠다”라고 말했다.
이기우 열린우리당 공보부대표도 “FTA는 한·미 FTA가 끝이 아니며 다른 나라와도 계속 추진하는 것이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열린우리당은 정부를 독려하고 뒷받침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과 민주당 등은 강하게 반발했다. 이영순 민노당 공보부대표는 “한·미 FTA 협상은 시작부터 굴욕·졸속·불평등 협상이었고 퍼주기로 일관한 협상이었다. 민주노동당은 FTA 협정 원천 무효화 투쟁과 함께 국민투표 운동 등 범국민 불복종 운동을 전개해나갈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상열 민주당 대변인도 “협정이 졸속 타결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국익과 민생에 도움이 안 된다면 비준 거부 운동도 불사하겠다”라고 말했다.
정당을 뛰어넘어 결성한 ‘한·미 FTA 졸속 타결에 반대하는 의원 비상 시국회의’소속 국회의원 51명도 성명에서 협정 타결을 비판하며 협상에 대한 청문회와 국정조사를 추진하고 국회 비준 동의안을 거부하겠다고 밝혔다.


대선 주자들, 정파 따라 찬·반 엇갈려


 
한나라당 대선 주자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는 협상 타결을 환영했다. 비한나라당 주자들 중에서는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만 긍정적 평가를 내놓았다. 열린우리당 김근태 전 의장과 민생정치모임 천정배 의원 등 범여권과 민노당 대선 주자들은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 전 시장은 “개성공단 원산지 인정 문제 등 일부 미흡한 점이 있지만 국가 미래를 생각할 때 개방은 불가피하다. 피해 분야에 대한 지원과 경쟁력 확보를 위한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박 전 대표는 “국익 차원에서 대통령 결단을 높이 평가한다. 정치권도 적극 동참해야 한다”라고 국회 비준 동의를 촉구했다. 제3 세력 통합을 추진 중인 손 전 지사는 “급성장하는 동북아에서 중심적 역할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은 “오는 6월 양국 정부 간 협정 체결을 저지하기 위해 모든 정당 및 사회단체 간 연석회의를 추진하겠다”라고 밝혔다. 정동영 전 의장은 “협상 결과는 국익과 민생의 관점에서 미흡하다. 하지만 비준 동의 문제는 국회가 손익을 따져보고 결정해야 한다”라고 유보적 입장을 보였다.
민생정치모임 천정배 의원은 “참여 정부가 ‘4·2 조공 협상’으로 경제 주권을 넘겨주고 민생을 포기했다. 범국민 항쟁을 통해 무효화시킬 것이다”라고 천명했다.
‘제3 후보’로 거론되는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은 “이번 협상 결과에 선뜻 동의할 수 없다. 국회는 협상 결과를 신중하고 면밀히 검토해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권영길 민노당 의원은 “협정이 발효되면 국부 손실 6조원, 개인소득 감소 12조원의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라며 협정 무효화를 주장했다. 노회찬 의원은 “시작이 무책임했고, 과정이 무능력했으며, 결과는 무이득인 3무(無) 협상이다”라고 비판했다. 심상정 의원도 “타결 내용대로 확정된다면 양극화는 심해지고 농업은 재앙을 맞을 것이다”라고 성토했다.
정부는 치밀한 대국민 홍보전으로 대응하는 한편 반대 세력을 설득해 정면 돌파한다는 전략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3월20일 농어업인을 상대로 한 업무 보고에서 “협정이 타결되고 나면 이 나라의 FTA를 반대하는 모든 정치인과 직접 토론할 것이다”라고 설득과 통합의 정치를 예고했다. 예고대로 청와대는 개헌 제안 때 그랬던 것처럼 협정 체결의 당위성을 알리는 대대적인 홍보 계획을 마련해놓고 있다. 지난 4월2일 노대통령 특별 담화에 이어 3일에는 범정부 차원의 워크숍을 열었다.
청와대는 FTA 홍보전을 대국회 협조 요청, 대국민 홍보, 농민 등 피해 분야에 대한 지원 대책 등 세 갈래로 진행할 예정이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지금까지와 달리 앞으로는 협상의 구체적 결과를 놓고 국익을 지켜냈는지, 장기적으로 한국 경제에 도움이 되는지에 논쟁의 초점이 맞춰질 것이다. 토론과 홍보에 적극 나설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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